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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다's View[22호] 2. 홍콩, 낡은 발전의 종말일까 새로운 발전의 서막일까?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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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낡은 발전의 종말일까 새로운 발전의 서막일까? 

우리는 새로운 발전을 시작하려는 홍콩시민의 저항에 연대한다.  


비무장 시위대의 등위로 쏟아지는 곤봉세례, 출근길 시민의 얼굴에 뿌려지는 페퍼스프레이, 총탄에 쓰러지는 소년, 유서를 쓰고 경찰에 대항하는 10대들. 지난 몇 달 동안 보아온 홍콩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다. 현재의 사태는 홍콩정부가 흔히 ‘송환법’이라고 불리는 범죄인 인도법안을 발의하면서 촉발되었다. 수십만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대규모 시위에 직면한 홍콩정부는 송환법 폐기를 선언하였다. 단순히 법안에 대한 반대였다면 여기에서 사태는 진정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위대는 송환법 완전철폐를 포함, “경찰강경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무조건적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의 직선제” 등 5대 요구 중 하나라도 거부된다면 시위를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홍콩당국의 대응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했으며, 결국 연이은 무력충돌이 홍콩시내를 전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아시아의 글로벌 도시'로 불리던 홍콩이다. 그곳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국의 ‘치욕의 100년’을 시작한 아편전쟁 이후 영국령으로 편입된 홍콩은 150여년의 영국 식민지배를 끝내고 1997년 ‘평화적으로’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반환 전후 홍콩에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다. ‘사회주의’ 중국에 두려움을 느낀 많은 시민들이 영국과 캐나다 등지로 빠져나갔지만 남아있는 홍콩인들에게 반환 후 10년은 적어도 ‘기대의 시대’였다. 중국 최대의 무역항으로, 자본시장으로, 그리고 자본투자자로서 홍콩이 중국경제에 가지고 있는 위상은 공고했다. 홍콩기업들은 중국 특수를 한껏 누리며 성장했다. 중국정부가 홍콩을 민주화하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에 천명했던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 원칙은 홍콩시민사회가 본토에 비해 더 많은 집회와 시위,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홍콩의 범민주세력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천안문 사태 이후 억눌린 중국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국제사회에서 대변했다. 이렇게 “기대의 10년”은 많은 홍콩인들이 세계 속에서 상승하는 중국의 지위를 보면서, 또 중국의 부상에서 홍콩의 역할을 보면서,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홍콩거주 “중국인”으로 여겼던 시기이다. 


그러나 기대는 기대로만 남았을 뿐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흥분과 기대에 가려진채 홍콩사회는 양분화 되고 있었다. 한국과 더불어 전후 호황기 ‘아시아의 호랑이’로 떠오른 홍콩의 기업들은 한국기업들과 흡사하게 60-70년대에 노동집약적 수출산업과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다. 장시간 노동과 최저수준의 임금을 감수하며 일한 홍콩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홍콩의 자본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중국의 개방이후 이들은 중국본토로 공장을 이전했다. 본토의 농민공을 값싸게 고용하면서 이들은 광동성과 장수성 등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수출벨트를 구축, 막대한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홍콩의 노동대중들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다수의 홍콩인들은 중국이 가져다준 ‘희망’을 나누도록 허용되었지만 중국 특수가 가져온 열매를 나누지는 못했다. 이 기대의 10년 동안 홍콩의 임금은 계속 정체되었고 양질의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반환 후 10년이 지나고 홍콩에는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추락하는 금융이윤과 중국발 수출 감소로 인해 홍콩은 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한다. 이 위기와 함께 홍콩사회가 품어왔던 기대는 가짜임이 명백해 졌고 홍콩은 이제 불안의 시대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문제를 홍콩의 엘리트와 국제금융자본이 떠안은 것은 아니었다. 중국본토에서 그러했듯이 홍콩이 세계경제위기로부터 입은 타격은 결국 극복되었지만 이는 홍콩 엘리트나 홍콩에 진출한 초국적 금융자본이 아닌, 홍콩의 노동대중들에게 그 짐을 지움으로서만 가능했다. 이미 반환 후 10년 동안 양분화 된 사회는 위기마저 양분화한 것이다.[1] 일국양제의 양제(two systems)는 이제 중국의 사회주의와 홍콩의 자본주의간의 양제가 아니라 중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과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두 가지 다른 세상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에서의 “기대의 10년” 동안 홍콩시민들이 반환 이후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인 기대역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애초에 일국양제가 천명되었을 때 홍콩의 시민사회는 중국이 기본법에서 보장한 점진적인 보통선거의 도입에 초점을 맞추어 홍콩에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포함, 자유민주주의적 제도들이 공고해 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반면 중국당국은 이 보통선거에 대한 확고한 중국의 통제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이러한 양측의 상반된 기대는 2003년에 홍콩기본법 23조에 의거 국가보안법 도입을 시도한 홍콩당국과 이에 대응해 같은 해 7월 1일 50여 만 명 규모의 반대시위를 조직한 범민주 세력 간의 대규모 충돌로 드러난다. 보안법 도입시도의 철회이후 이들 간의 충돌은 계속되었지만 전면적인 대결은 기대의 10년이 완전히 끝나고 난 뒤에 찾아왔다. 2012년 시진핑의 집권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태도는 점점 더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변화되었다. 한편으로는 혼다자동차부품공장 파업을 비롯하여,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홍콩과 인접한 광동성에서 벌어진 노동자 파업의 물결이 중앙정부가 홍콩시민사회에 대해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되었다. 본토의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운동을 지원하려는 홍콩단체들은 이러한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되었고 이후 이들의 활동은 전면 중지되었다. 중국정부는 중국내 홍콩단체들의 활동을 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홍콩 시민사회 자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다른 한편 홍콩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자신감을 반영했다. 1997년 반환 당시 홍콩의 GDP는 중국 본토의 18%에 달했으나 2018년의 경우, 중국의 전체 GDP에 2.7%에 불과했고 중국수출 중 홍콩 경유 비중은 10%를 겨우 넘는 실정이었다. 중국의 고도성장 이후 경제적 중요성을 상실한 홍콩은 정치적으로 더 이상 특별한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대의 10년”이 종결된 후 홍콩의 중국화 과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 중국화 과정에서 기존의 범민주세력 외에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던 홍콩의 1020세대들이 비로소 저항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대학졸업 후 엘리트로 편입되던 선배들, ‘중국굴기’의 세례를 받은 본토의 학생들과 달리 이들은 유아기에서부터 일국양제하에 점증하는 불평등속에 살아온 세대이다. 현재 홍콩 이공대학을 점거하고 있는 학생이 남긴 낙서 “I have nothing to lose, I have no stake in the society”(나는 잃을 것이 없다. 나는 이 사회에 어떤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현재 홍콩의 1020세대의 저항이 가진 배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2] 이들 세대는 2012년 초중학교에서 애국심 교육을 의무화려는 시도에 맞서 조슈아 웡 등의 주도하에 “학민사조”(Scholarism)등의 단체를 만들어 저항했고 이 투쟁은 이들 젊은 세대의 깊은 절망감을 표현했던 2014년 우산운동(Umbrella Movement)으로 이어진다. 우산운동은 보통선거를 통한 행정장관 선출을 주장하며 그해 9월 26일부터 12월 15일까지 79일간 홍콩시내 곳곳을 점거했지만 직접적인 성과없이 해산되었다. 이후 홍콩에서는 불평등의 심화를 멈출 수 있는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채 중국화 과정이 가속화 되었다. 홍콩의 대학강의에는 교수들의 반중국 발언을 감시하는 요원들이 등장했다. 2015년에는 5명의 홍콩출판인들이 중국당국에 의해 납치되어 본토로 압송된다. 홍콩인들이 누리고 있던 작은 시민적 자유마저 곧 박탈당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은 팽배해졌다. 송환법은 이러한 의구심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 저항에 대해서 국제사회는 매우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홍콩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되풀이 하면서 무역과 투자 강국이 된 중국의 눈치를 보기 급급한 서구의 “민주”정부들의 모습은 자신들 내부에서 지난 200년간 해결하지 못한 민주주의 확장과 성장위주 발전 사이의 갈등을 그대로 드러낸다. 민주주의 외교를 하겠다며 요란하지만, 민주화를 위한 홍콩시민의 항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민주정부도 다르지 않다.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의 지지는 계속되고 있지만 시민사회 일각에서 홍콩의 저항을 바라보는 입장에도 석연치 않은 지점이 존재한다. 일부는 홍콩시위가 미국 등 제국주의세력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중국정부의 입장을 반복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홍콩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며 한국이 걸어온 민주화의 길을 ‘대견’하게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홍콩을 누군가를 통해서 파악한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거나 구제국주의의 일부이거나, 혹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아바타로 이해될 뿐 홍콩의 일을 홍콩인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은 부재하다. 우리는 홍콩과 홍콩발전의 문제를 홍콩인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홍콩의 목소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홍콩인들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홍콩과 진실되게 연대할 수 있다. 


홍콩과 연대함에 있어 또한 중요한 것은 홍콩의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일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민주국가들이 홍콩의 민주화 열망에 크게 동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홍콩의 젊은이들이 저항하고 있는 현실이 홍콩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의 청년들이 처한 보편적인 문제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중국이 홍콩에 강요하고 있는 발전은 사실상 제국주의 시대에서 신자유주의 시대까지 줄기차게 추구되어왔던 발전의 마지막 모습이다. 발전은 경제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며 이 발전의 내용과 방법은 공동체가 직접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의 대리자, 즉 ‘신탁자’가 정하는 것이라는 점은 19세기에 식민주의를 통해 영국이 만들어내고 20세기 제국 미국이 공고히 해놓은 ‘발전정설’이다. 중국의 중앙정부가 발전을 대하는 태도도, 홍콩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발전이, 자유롭고 능동적인 공동체가,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선택한 정신적, 물리적 행복을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방법을 통해 충족시켜 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국의 식민지로서 근대화 과정을 시작, 미국주도의 냉전 속에 산업화를 경험하고 이제 권위주의 중국에 의해 중국식 발전을 강요당하는 홍콩은 이러한 발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있다. 우리가 그들과 연대하지 않는다면 홍콩의 미래는 우리가 될 수 있다. 


다행히도 홍콩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진영이 전체 452석 중 388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투표율은 70%를 상회하였다. 홍콩시민들의 홍콩항거에 대한 지지는 명확하게 드러났으며 다수의 시민들은 시위대와 동조하지 않는다는 중국당국의 해석은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당선자들은 당선 직후 수십 명의 1020 세대 활동가들이 고립되어있는 홍콩이공대를 찾았다. 이들은 이공대에 대한 포위를 중지하고 즉각적으로 5대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이들의 연대는 홍콩시민사회가 분열되어있으며 서구제국주의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류가 이 운동을 주도한다는 외부의 해석도 틀렸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홍콩의 발전이 홍콩인의 자주적 결정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를 중국, 미국의 목소리가 아닌 홍콩시민들의 목소리로 이해하고 이에 연대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홍콩의 현재가 곧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하면서 현재의 홍콩의 항거에 연대하고자 한다. 우리는 홍콩이 부당한 발전의 완성을 보여주는 징표가 아니라 새로운 발전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기사 입력 일자: 2019-11-28


필자: 장대업 서강대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 daeoup@gmail.com
 



[1] 한국보다 앞서 일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2007년에 넘어선 홍콩에서 2011년 기준 최저임금은 시급 4천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이 완전한 불평등을 0이 완전한 평등을 의미한다) 홍콩 반환이후 계속해서 증가하더니 2016년 0.539에 이르러 홍콩은 단연 세계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이는 OECD 국가 중 불평등의 정도가 심한, 부동산 갑부가 통치하는 미국 (지니계수 0.39, 2017년)과 비교해도 도드라진다. 이 와중에 홍콩의 복지지출은 밑바닥에 머물러 2017년 홍콩의 공공지출 중 사회복지 지출과 의료서비스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 모두 한국의 절반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가계지출은 늘어났다. 특히 주거비의 상승을 보면 홍콩시민들이 가지는 불만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지난 10년간 주택가격은 약 3배 상승했으며 이제 홍콩 주택의 중간가격은 중간가계연수입의 20배를 넘어선다. 주거비용이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30.6%에서 2015년 36%로 증가했는데 이는 미국과 한국의 주거비용 지출비중의 두 배를 넘어선다.

[2]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가장 먼저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되었다. 다른 한편  미국 등 자본주의 선진국에 대한 동경, 심지어 홍콩을 150동안 지배한 영국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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