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2호] <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소리로 보다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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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소리로 보다"


▲ 한빛 맹아원에서 진행한 사진 프로그램 중 참여자들과 함께 걷는 모습  ©진양희 


내가 분명 그보다 반 발자국 앞에서 팔을 내주고 있는데, 그의 걷는 속도가 나보다 빠르다.


“영준 씨 더운 날인데도 쌩쌩하네요. 원래 이렇게 걸음이 빨라요?”

“자주 산책 다니는 곳이라 익숙하기도 하고요.”


사람들 없이 둘만 걷다 보니 말이 슬슬 많아진다. 나는 도로 경계석을 보고서도 이야기를 듣느라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냥 걸었다. 나를 잡고 있던 영준 씨의 왼손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간다. 아차 싶었다.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다. 더 긴장을 하게 되니 이젠 그의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는 그냥 가던 길이나 가자는 듯, 손에 아주 살짝 힘을 더해 앞쪽으로 밀어준다. 아직도 내가 미안해하고 있다는 마음을 알아채버린 것 같았다. 


나는 방향만 잡아주면, 그가 빠르게 혹은 느리게 걸음을 조절하였다. 


돌아내려오는 길. 빗길에 아직 미끄러운데 아까 보다 더 속도감 있게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나를 잡고 있던 그의 손은 더 여유가 생겼고 편안함도 느껴진다. 힘은 더 빠졌는데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산책길을 올라갈 때 미안한 마음에 잔뜩 긴장해 ‘ㄴ’ 자로 접어두었던 나의 팔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내려와 있었고, 우리는 지난밤 비로 살짝 불어난 냇가의 물소리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자동문을 열고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영준 씨. 나 동훈이에요. 잘 있었죠??” 

“어? 저 여기 오고 있는 걸 보고 있었던 거예요? 허허허”

“그럼요, 영준 씨 발소리가 들려서 기다리고 있었죠. 허허허” 


나는 이전보다 편하게 오른쪽 팔을 내밀었고, 나의 목소리에 잠시 머무르던 그는 내가 보이는 듯 팔 높이를 한 번에 가늠하여 편안하게 잡았다. 


그는 이제 소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 입력 일자 : 2019-12-04


사진: 진양희 / 글: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