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강을 잃어버릴 우리에게> 서평 - 메콩강과 한강을 잇는 책 (회원 보리)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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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발전대안 피다는 지난 2018년 발생했던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를 통해 메콩강 개발 사업의 그림자와 발전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 보는 책 <강을 잃어버릴 우리에게>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올 4월부터 피다의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신청을 받아 배포되기 시작했는데요, 지인의 소개로 책을 읽고 피다의 회원으로 함께해 주기로 결심하신 보리님이 보내 오신 책 후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메콩강 개발과 라오스 댐 이야기 <강을 잃어버릴 우리에게> 서평

메콩강과 한강을 잇는 책


최근 남한강 상류에 있는 충청북도 충주호에 다녀왔습니다. 충주호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라고 합니다. '내륙의 바다'라고도 한다는데, 충주호 한가운데 섬처럼 솟아있는 비봉산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바닷마을에 와 있는 듯한 절경이 펼쳐졌습니다.


비봉산 자락에서 바라본 충주호의 모습 ⓒ보리


'이렇게 멋진 곳이니 오랜 설화도 많겠지'라는 생각에 나무위키에서 충주호를 검색해 봤습니다. (여행지에 갈 때마다 나무위키를 찾아보는 스타일) 새끼를 잃은 봉황이 열흘 밤낮 눈물을 흘려서 생겨난 호수라거나, 지혜로운 원님이 가뭄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해 기도했더니 이를 갸륵하게 여긴 구름의 신이 물을 채워 주었다는 등의 설화를 기대하면서요.


그런데 뜻밖에도 충주호는 1985년 충주댐을 세워 물길을 막으면서 생겨난 인공 호수였더군요. 댐을 지으면서 충주와 단양, 제천에 걸쳐 66㎢가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수몰 이재민은 무려 5만 명. 간혹 가뭄으로 충주호 수위가 낮아지면 옛 마을의 모습이 드러나 실향민들이 찾아와 눈물을 흘린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강을 잃어버리고 있는 그들


충주댐이 지어진 해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정부는 인근 도시에 신축 주택과 아파트를 지어 이재민에게 새 거처를 마련해 주려 한 듯합니다. 하지만 전체 가구의 42%에 이르는 영세민 중 상당수는 새 정착지에서 일감을 찾지 못해 떠나야 했다고 합니다. 옛 마을에선 채마밭을 일구거나 품팔이를 하며 살아갈 수 있었지만 새 집으로 오니 전기료와 수도료는 껑충 뛴 반면 벌이가 없어진 것이죠 (1985년 11월 16일자 동아일보). 청풍면의 한 이주 지역에선 상수도 시설을 잘못 지어 하루 20분만 물을 쓸 수 있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충주댐 수몰 이재민의 어려운 생활을 담은 기사. 출처: 1985년 11월 16일자 동아일보 6면


발전대안 피다가 지난해 12월 펴낸 책 <강을 잃어버릴 우리에게>에 담긴 이야기가 충주호의 풍경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이 책에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메콩강 유역의 수력 발전 댐 건설과 그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충주호 실향민이 이미 '강을 잃어버린 우리들'이라면, 메콩강 실향민은 '바로 지금' 강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들인 셈입니다.


2018년 7월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 발전 댐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도 그렇습니다. 댐에 가둔 물이 쏟아지면서 라오스 주민 49명이 사망하고 22명이 실종되고 6,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위의 책 98쪽). 충주댐이 지어진 해에 예고 없는 방류로 초중생 3명이 숨졌고, 그로부터 2년 후에도 비슷한 사고로 50여 명이 숨질 뻔한 것과 겹치는 대목입니다.



메콩강과 한강


그런데 부끄럽게도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라오스에서 저런 비극적인 사고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대외경제협력기금으로 955억 원을 지원하고, 한국 기업 SK건설(현 SK에코플랜트)이 시공을 맡은 사업인 줄은 더더욱 몰랐죠(98쪽). 사실 제가 부끄러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한때 SK건설의 주식(그때도, 지금도 비상장 주식입니다)에 투자하려고 회사의 이모저모를 나름 따져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도 저런 사고가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은, 투자 결정을 할 때 그 기업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 적이 있는지 제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투자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반성합니다.


발전대안 피다가 2020년 12월 발간한 <강을 잃어버릴 우리에게>


이 책은 우리 정부가 세피안·세남노이 사고 발생 다음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사업 시행 기관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은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점(99쪽), SK건설이 라오스 정부에 보상금을 내놓으면서도 사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점(104쪽)을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사업임을 지적하며(15쪽) 우리의 역할도 있지 않았을지 돌아보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메시지는 메콩강에서 이뤄지는 한국의 ODA 사업을 관심 있게 보자는 얘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짜 주제는 서문에 나오는 것처럼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우리나라의 고속 성장과 압축 개발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잃었는지 돌아보자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보여도 멈추지 않는 사회'의 수많은 비극(산업 재해와 안전사고)을 막을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글쓴이들의 진심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의 제목을 '메콩강을 잃어버릴 그들에게'가 아니라 '강을 잃어버릴 우리에게'라고 지은 이유도 메콩강과 한강이 그렇게 맞닿아 있다는 뜻이겠지요.



어려운 고민


전기 수출을 통해 라오스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라오스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나 된다니 깜짝 놀랐습니다(66쪽). 어마어마한 비중입니다. 국장(國章, national emblem)에 수력 발전소를 그려 넣을만도 합니다(69쪽). 한국으로 치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져서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이 총 수출액의 19%로 수출 품목 1위더군요. 최빈국 라오스에 전기 수출을 포기하라는 얘기는 한국에 반도체를 그만두라는 얘기나 다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20대 수출 품목.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2020년 수출입 동향' 보도자료  (2021년 1월 1일)


한국의 반도체처럼, 라오스가 전기를 팔아서 번 돈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겁니다. 한국은 반도체 기업에서 걷는 세금 없이는 현 수준의 복지 재정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라오스가 전기 수출로 번 돈은 어떨까요. 라오스 국민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한 바가 결코 적지 않을 듯합니다. 국제 정치의 측면에서 보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집니다. 미국이 반도체 없는 한국에 코로나19 백신을 공짜로 내주었을 리 만무한 것처럼, 중국과 신흥국 사이에 끼인 라오스에게 전기 수출은 국가의 위상을 높일 몇 안 되는 돌파구로 보입니다.


그래서 고민은 더 깊어집니다.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삶의 터와 가족을 잃은 비극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이었느냐"는 물음은 지극히 당연합니다(99쪽). 한편으로는 라오스와 한국 정부가 그 물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차근차근 들려주는 메콩강 개발의 앞뒤를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들을까,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 그 어려운 고민을 피다가 계속 함께해 주길 바라며 초라한 액수의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의 부처


라오스 불교에서는 태어난 요일마다 모시는 부처가 다르다는 내용이 생각납니다(37쪽). 이 이야기가 재밌어서 제가 태어난 일요일에 해당하는 부처를 찾아보았습니다. (별자리 운세 같은 걸 꼭 찾아보는 타입) 일요일 부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선 모습이었습니다. 부처가 보리수 아래에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그 감동에 일주일간 선 채로 보리수를 바라본 형상이라고 합니다. 


라오스에서 2005년 발행된 '요일 부처' 우표. 맨 왼쪽 아래 두 손을 모은 채 서있는 부처가 일요일 부처다. 
출처: 우표 수집 사이트 Phil India Stamps (링크)


이 책은 최근 저에게 한 그루 보리수가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진리를 깨닫고 부처가 된 것까지는 아니고요, 그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세계를 내 주변의 풍경과 겹쳐서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책은 가르치거나 꾸짖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지은이들의 진심 한가운데로 읽는 이를 초대합니다. 아직 책을 읽어 보지 못한 분들께, 부족하지만 이 글이 초대의 글이 되었기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바랍니다.



작성: 보리 (피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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