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 ㅣ 코너별 보기

발전대안 피다에서 격월로 발행하는 웹진 '피움' 기사를 코너별로 보실 수 있습니다. 

피움 ㅣ 코너별 보기

피다뷰[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드러난 탄소 제로 사회에 대한 전망] 성장의 색은 푸르지 않다

2021-07-01


성장의 색은 푸르지 않다

-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드러난 탄소 제로 사회에 대한 전망 -


지난 5월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라는 이름으로 열린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Global Goals 2030) 정상회의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물론 이 회담이 ‘성황’을 이룬 것은 엉뚱한 이유에서였다. 노루가 등장하는 가상현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흐르는 폭포 등 첨단 기술로 표현한 영상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 개막식 영상에 사용된 위성 사진이 평양 대동강이었다는 점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그리고 정치권에서 공방을 주고받게 된 것이다. 사소한 실수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분개한 사람들 중 대한민국 국민의 일인당 탄소 배출량이 북한보다 무려 8배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적은 듯하다(2019년 기준). 한국은 민주주의, 인권, 문화, 해외 원조 등 많은 분야에서 국제 사회에 공헌한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정작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알려진 탄소 배출에서만큼은 북한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P4G에 한국과 함께 참여하는 11개국(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덴마크, 멕시코, 방글라데시, 베트남,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칠레, 케냐, 콜롬비아)과 비교할 때 한국은 단연 최악의 탄소배출국이다.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일인당 연간 탄소 배출량은 2019년 기준 11.93톤으로, P4G에 참석하는 9개 개발도상국 중 남아공을 제외한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총 탄소 배출량으로 볼 때 세계 9위에 해당하는 한국은 이른바 탄소 강국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한다면 조금은 겸허한 자세를 보여 주었을 법한데 회담을 주최한 한국 정부의 분위기는 달랐다. 2018년 덴마크 1차 정상회담 대통령 연설에서 ‘환경 정책에서 성공을 거둔 나라’, ‘폐허의 땅을 울창한 숲으로 바꾼 나라’로 소개된 한국은 이번 개회사에서는 보다 조리 있게 ‘경제 성장을 자연의 회복과 함께 이룬 나라’로 소개되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국의 영토에 심은 나무는 자국의 것이지만 자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지구의 몫이다. 한국은 푸르러지는 영토 상공 대기 속으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왔다. 이뿐인가, 한국이 산림 녹화에 성공하는 동안 개도국에 공장과 대규모 단일 품종 농장(플랜테이션)을 건설해온 한국 기업들의 개발 산업에 사라졌을 삼림은 또 얼마나 될까? 그들이 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에 세워진 석탄 발전소는 또 몇 곳일까? 


외교적인 행사에서 과도한 성찰적 자세는 관례가 아니라 할 수 있다. 또한 과거가 어두웠으니 미래에 대한 힘찬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 한국이 보여준 미래에 대한 의지는 무엇보다 자연의 회복이 경제 성장과 병행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의지였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물론 P4G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중 아주 작은 하나의 대응이고 그 효과도 미미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이념과 전략은 그렇게 작지도 무해하지도 않다. 바로 시장 주도의 기후 위기 대응인 ‘녹색 성장’이다. P4G는 한국과 덴마크의 신자유주의 닮은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뢰케 라스무센 전 총리의 합작품이다. 자국에서 사회 복지 축소와 부자 감세를 추진한 이들 우파 정부는 자유 시장에 기반한 환경 대응을 구체화하려는 노력 끝에 글로벌 녹색 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P4G를 출범시켰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권의 정책들을 비판해 왔던 문재인 정부가 왜 이를 주도하려고 할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이번 P4G 회담에서 보여준 한국 정부의 입장은 기후 위기를 맞아 뭐라도 해보려는 간절함의 표현보다는 한국 환경 엘리트들–환경 피해를 가장 많이 일으키면서 그 비용을 외부화하고 그로부터 이윤을 획득하는 집단–이 탈탄소 인류 공동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망과 야심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근원에 바로 좌우,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주류가 공유하는 뿌리깊은 성장주의가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은 존재하되 성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녹색 성장’이라는 단어는 매력적인 조합일 것이다. 하지만 녹색 성장이 가능하다면 ‘여성친화적 가부장제’, ‘이윤지양적 자본주의는 어떤가? 녹색 성장을 주장하는 한국 환경 엘리트들의 현실인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1) 화석연료를 사용해서 2) 성장한 결과 3)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이 문제가 되었으니 이제 1) 다른 에너지를 사용해서 2) 성장한다면 3) 탄소 대신 지속가능성을 배출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에너지원의 대체처럼 단순하지 않다. 두 가지 공식 모두의 중심에 ‘성장’이 버티고 있는 한 말이다. 먼저 성장이 중심에 놓이는 한 화석 연료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체하는 일은 지체된다. 코로나 위기에 대응할 때 경제 살리기와 질병 억제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방역의 시기를 놓치듯이 계속해서 성장과 탄소 제로 사이의 손익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해서 대체 에너지가 성장을 주도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성장이 만들어낸 모든 문제들에서 탄소만 제외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성장 중심의 발전이 지금까지 무엇을 초래했는지를 보다 종합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화석 연료가 우리에게 성장을 강요한 것도 맞지만 이보다는 성장을 추구하는 조급함이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경향을 만든 것이 더 맞다. 성장 중심의 발전은 자연을 자원으로 바꾸었고, 이를 얻기 위해 식민지를, 또 개도국을 착취했고, 국가 간 전쟁을 유발했으며, 인간노동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가부장제를 통해 돌봄 노동을 착취했고, 공유재를 사유화했다. 성장은 산업을 통해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사용가치는 퇴화했다. ‘선진국’ 소비자들은 대량 생산-대량 유통-대량 소비-대량 폐기의 틀에 갇혀 쓸모없거나 유해한 재물(illth)을 부(wealth)라고 믿으며 이를 위해 기술과 지식을 독점한 기업에 자신의 행복을 의지한다. 재벌이 지은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이 생의 목적이 되고 다시 그 집을 재벌이 만든 상품으로 채워야 하는 욕망에 쫓긴다. 기후위기가 공론화되기 이전에 이미 이반 일리치(Ivan Illich)와 같은 날카로운 비판자들은 풍족하지만 결코 풍요롭지 않은 삶이야말로 성장이 일군 성과임을 지적하며 이러한 상황을 ‘저발전’이라고 불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성장에 투입되는 에너지와 기술을 세련된 것으로 바꾼다고 할지라도 성장이 만들어낸 저발전은 반복될 것이다. 성장이 중심에 서는 한 최신 에너지 기술은 화석 연료만큼의 무기가 될 수 있으며 자연은 여전히 자원으로 남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의 한 전자업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전부 바꾸라”며 글로벌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혁신을 부르짖었다. 불량 제품을 쌓아 놓고는 화형식까지 거행했다. 이 기업은 곧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의 대표 기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바꾸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무노조 경영이었다. 그 결과 21세기의 20년이 지난 지금 이 기업 간부들은 노조 파괴 공작이라는 시대착오적인 행동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기업이 고집한 또 다른 전략은 정치와의 유착이었다. 그 결과 이 기업의 회장은 현재 수감 중이다. 이 기업은 민주화 시기 무노조 경영, 독재시절 정경유착이 성공을 있게 한 핵심 전략이었기 때문에 바꾸지 못했다. 성장은 한국에게 성공의 비결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현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속에서 우리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절박함보다 기후 위기라는 조건 속에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하는 절박함을 발견한다. 이 절박함은 그레타 툰베리의 절박함보다는 그 굴지의 기업이 9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보여 주었던 그 절박함을 닮았다. P4G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이 친환경용지에 콩기름 잉크를 사용해 제작한 “함께 알아가는 P4G 이야기”는 매우 솔직하게 이를 고백한다 “궁극적으로는 수익을 창출해 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번 P4G 정상회의는 한국의 환경 엘리트들이 탈탄소 미래를 선도하기는커녕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은 대통령이 5월 30일 개회사에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추가 상향을 약속했고 이를 11월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제시할 것을 공표했다는 점이다. 추가 상향이 없다면 2030년에는 주요국 중 한국이 온실가스 최고 배출국이 된다는 전망이 이미 나온 만큼 국제 사회는 이에 주목할 것이다. 현재 기후 위기 상황은 개발도상국들의 맞춤형 녹색 성장을 지원하면서 한국 기업의 수익 창출을 꾀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 하는 순간 위기를 심화시키는 단계에 이미 와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지구와 인류의 생존에 공헌하고 싶다면 한국 환경 엘리트의 혁신기술을 이용한 개도국 녹색 성장 지원이 아니라 한국 내 탄소 배출을 줄이고 개도국의 자연을 파괴하는 해외 개발 사업과 이에 대한 투자의 철폐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개도국을 향한 선의의 진정성이 느껴질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성장 속 저발전을 초래한 생태 빌런 중 하나임을 인정하고 우리의 성장 경험에서가 아니라 저탄소 삶을 살아온 개도국의 시민들의 삶의 덕목 속에서 탈탄소 사회에 대한 전망을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탈탄소 사회 건설의 주체와 수혜자는 환경 엘리트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성장 사회의 피해자들이 되어야만 공정하다. 녹색 성장은 이들을 다시 한번 피해자로 만들 위험한 시도이다. 성장의 색은 결코 푸르지 않다.



글쓴이: 장대업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

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