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17호] 모두를 위한 발전을 찾아서 in 캄보디아 (2편)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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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발전대안 피다(구 ODA Watch)는 (재)바보의나눔의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시민이 직접 개발협력현장을 감시한다’ 라는 기조로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시민현장감시단 활동을 진행해 왔다. 2015년 캄보디아, 2016년 르완다, 2017년 네팔을 선정해 한국 국제개발협력 활동 전반을 모니터링하고, 현지 시민들의 의견을 모았다. 올해는 (재)바보의나눔의 ‘나눔공유화’ 사업의 일환으로 3년간의 사업을 되돌아보면서 ‘함께 찾아가는 발전상’ 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활동 국가였던 캄보디아를 찾아 다양한 그룹에서 말하는 진정한 발전상에 대해 인터뷰했다. 피움 16호에 이어 피움 17호에서는 캄보디아 팀원들에게 프로젝트의 경험이 어떤 의미인지, 캄보디아 시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변화된 점이 있다면 무엇이지 들어보고자 한다. 방문 단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피움 16호 기사를 참고 바란다.

① 모두를 위한 발전을 찾아서 in 캄보디아 (1편) (클릭)


② 모두를 위한 발전을 찾아서 in 캄보디아 (2편) 


지난 호 기사에 이어 이번에는 ‘함께 찾아가는 발전상(像)’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했다. 이들이 캄보디아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래서 어떠한 발전상을 찾아냈는지도 물론 궁금하지만, 그것은 곧 있을 결과발표회에서 상영될 다큐멘터리와 내년에 발간될 예정인 책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니 좀 아껴 두려 한다. 그 대신, 피움에서는 캄보디아 프로젝트팀의 일원을 만나 현장 방문에서 특히 어떤 것들이 마음에 남았는지, 또 그 시간을 통해 변화된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11월 중순의 어느 추운 날, 인터뷰를 위해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발전대안 피다의 이재원 애드보커시 팀장과 함께일하는재단에서 활동하다 AVPN(Asian Venture Philanthropy Network)의 컨설턴트로도 일하는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공제사업단 임팩트평가팀  이명희 팀장이었다.


          ▲ 한창 인터뷰 중인 모습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김은파, 이명희, 이재원) ⓒ 발전대안 피다


은파: 캄보디아에서 총 여섯 그룹을 만나셨다고 들었는데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곳이나 인상 깊으셨던 만남은 어디였는지 궁금합니다.



재원: 저는 저희와 결이 비슷했던 벙꺽 호수 사람들이 굉장히 와 닿았어요. 저는 사실 시민운동이나 애드보커시 활동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채 피다(당시 ODA Watch)에 입사 했거든요. 그렇지만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게 재밌고 내 목소리가 반영돼서 어떤 활동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무척 재밌었어요. 한 해, 두 해 활동하면서 ‘아, 애드보커시 활동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 벙꺽 호수의 여성 활동가들을 통해 애드보커시 활동이 무엇인지 더 이해하게 된 거 같아요. 그분들은 10년 동안 자신들의 터를 지키기 위한 운동을 해 오신 분들인데, 연대하는 방법이나 운동의 전략 이런 것을 생각해서 하신다기보다, 경험적으로 체득한 공동체 의식을 갖고 하시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벙꺽처럼 다른 지역의 토지 수탈 문제가 있을 때 벙꺽 분들이 먼 거리라도 가서 연대의 힘을 보태는데, ‘캄보디아 사람들의 일이니까 캄보디아 사람이 도와야 한다.’라는 인식, 그런 공동체 의식이 이미 깔려 있고, ‘우리도 어려움을 겪었고 도움을 받았으니 함께 나누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라는 것을 체득한 게 보였어요. 그렇다면 한국 시민사회로 돌아와 생각해 볼 때 나는 그럼 시민들하고 얼마나 진정성 있게 연대하려고 노력했을까, 전략·전술대로 쉽게 가는 방향으로만 해 보려고 하진 않았나 하는 반성을 많이 하게 됐어요.


벙꺽 분들을 지원하는 HRTF(Housing Rights Task Force)라는 조직이 있는데, 훈센 정권에 대항하는 NGO라는 이유로 활동과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밝고, 의지가 강하고 삶과 본인들의 활동 현장에 있어서 투쟁적이었어요. 저는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했고 그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정도이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전달하는 역할 정도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역할만이라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벙꺽 사람들은 자기 터를 지키고 자녀들이 더 이상 국가의 폭력에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본인들의 삶을 걸고 투쟁의 길을 계속 걷고 있는 건데,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미래 세대를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정말 감동적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명희: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는데, 먼저 저를 훅 때린 이야기는 ‘너희 이거 왜 물어보는데?’라는 질문이었어요. 라따나끼리를 방문했을 때 주민들이 인터뷰 마지막에 ‘그런데 너네 이거 왜 물어보고 어디에  쓸 건데?’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질문으로부터 이분들이 우리가 연대하고 이 소식을 알려 주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 후속 액션이 있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됐어요. 왜냐하면, ‘너무 즐겁고 의미 있게 잘 갔다 왔어’라는 게 이 활동의 끝이 될 수도 있잖아요. 보고서 잘 써 내고. 그런데, 마지막 그 질문에 마음이 찔리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가서 그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공유를 받는 건 엄청 소중한 일 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여기서 끝!’하지 말고,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는 점에서 그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또 하나는,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제가 펀더(funder)로 있을 때 지원했던 조직을 두 곳 방문하게 되었어요. 반띠에이쁘리업과 고엘 공동체였는데, 저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 그 조직이 가진 경제적, 건강의 안정성과 이런 안정감이 주는 효과를 보면서 이게 정말 필요한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월급이 밀리지 않고, 아플 때 챙김 받을 수 있는 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선하게 바뀌게 하는지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사실 돈을 지원하기 시작하는 시점에는 그런 것들이 잘 안 보이는데, 이번에 가서 사람의 이야기로 그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던 거 같아요. 저의 기억에 남는 건 이런 거예요. 고엘 공동체의 어떤 사람이, 처음에는 자기가 이 공동체에 몇 년도에 들어왔는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런데 고엘을 사랑하게 되면서 다시 자기가 몇 월 몇일에 들어왔는지를 생각해 보게 돼서 지금은 그것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본인이 일한 지 한 10년 정도 됐는데 ‘내 월급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월급이 중요해졌다.’, ‘같이 사는 게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이 사람이 자기가 정말 아프거나 가족이 먹지 못하거나 하는 상황이라면 이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커뮤니티의 형성을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은파: 사람들한테 공통적으로 했던 질문 중에 ‘발전이 뭐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대답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재원: 비슷해요. 예를 들어서, 발전상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 어떤 세상을 살기를 바라는지’를 물어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해요. ‘애들이 병원도 빨리 갈 수 있으면 좋겠고, 학교도 잘 가면 좋겠고, 더 커서는 프놈펜에서 공부하고 다시 지역(고향)으로 왔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들을 해요. 그러면서 또, ‘공동체성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나는 공동체성이 살아 있는 게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저희가 방문한 고엘 공동체도, 반띠에이쁘리업도, 벙꺽 그룹도 다 공동체로 묶여서  상호작용하고 어려움과 기쁨, 슬픔을 나누며 살다 보니까, 그런 끈끈한 공동체가 자기들이 오랜 시간 연대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공동체성만 바라는 것은 아니었어요.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들 - 아프면 당연히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는 교육을 받는 등 자신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인프라가 마련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치료도, 교육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지역에 와서 본인이 배운 지식을 나누는 일을 자녀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자라면서 그런 공동체성을 아이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을 했어요. 무조건 잘 살고 돈을 많이 벌고 이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큰 게 보였어요. 그분들은  자신이 직접 체험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방문했던 여섯 그룹은 공통적으로 공동체성, 사람이 혼자 설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저한테는 많은 울림을 줬어요. 그것을 보면서 우리한테도 좀 다른 발전이, 발전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은파: 공동체성. 그렇군요. 그런데 캄보디아에도 공동체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인프라를 갖추는 거나 내가 편리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공동체가 덜 중요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그런 것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진 않을까요?



명희: 갈등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이걸 같이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잖아요. 대안 교육을 한다거나, 개발에 반(反)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데이비드 소로우 책을 읽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개발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는 저희도 고민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상황은 그쪽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얘기를 같이 해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가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는 어쨌든 어떤 하나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서 그런 갈등을 빚을 만한, 반대편 사람들을 못 만났죠. 앞으로 저희가 다녀온 결과물을 낸 이후에 그런 반대편의 목소리를 듣고 수렴하는 작업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어요. 일단은 오랜 시간 사업이 잘 유지되고 공동체를 지속하고 있는 곳, 한국 사회에 귀감이 될 수 있는 단체 이런 곳을 먼저 만나보고 싶었어요.



은파: 캄보디아에서 만나셨던 그룹들을 보면, 사람들을 공동체로 엮어주는 역할을 한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곳에서는 그것이 공동의 투쟁이나 중요한 삶의 문제였고, 또 다른 곳에서는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한 것 같고요. 그것이 무엇이었든 이분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준 뭔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면에서 저는 지금 제가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무엇이 나를 공동체에 엮어주는지 잘 모르겠다고 할까. 가족은 선택해서 태어나는 게 아니니까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같이 살아가지만, 사회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는 이들이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 싶으면 발을 빼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공동체라는 게 매우 좋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양면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캄보디아에서 하셨던 인터뷰 기록을 보면서 참 부럽기도 했어요. 인터뷰 중에, ‘더불어 사는 것 외에는 안전망이 없다, 힘든 일이 있어도 사람이 있으면 지나가고 견뎌낸다’는 이야기를 보았을 때 ‘그래 이게 맞는데, 그렇다면 지금 나는, 우리는 어떤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나’ - 그런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명희: 저는 그게 제 이슈였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여러 조직에서 일을 맡았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다른 사람이 나한테 그만큼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그 존재 자체로 만족인 거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차적인 거예요. 그런데 나 자신이 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뽑아준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웃음), 하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럼 열심히 해야지’ 그랬던 것 같은데, 사실은 아무도 나한테 그걸 요구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희가 방문했던 공동체에서 뭘 가장 많이 느꼈는지 생각했을 때 그건 여백, 여유예요. 왜냐하면 고엘 공동체나 위드나 다, ‘실수해도 괜찮아, 몰라도 괜찮아’라고 하는데 사실 사업에서는 실수하면 못 파는 거, 손해나는 거잖아요. 위드에서 만난 현지인 활동가가 얘기했어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안다고, 그런데 센터장님이 그걸 이야기하지 않고 괜찮다고 했을 때 더 감사한 마음과 다음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 하는데 이게 참 감동적이었어요. 사람이 다 그렇잖아요, 내가 틀리면 내가 알지.(웃음) 그런데도 공동체가 괜찮다고 보듬어 주는 거, 그게 엄청난 힘이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렇게 한 번 용서받거나 허용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랬을 때도 괜찮다고 해줄 수 있는 에너지와 내공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원: 한국 사회의 조직은 그런 게 별로 없잖아요. 몰아치고, 돈을 받았으면 해내야 하고, 그 이상으로 원하고. 조직문화 자체가 ‘못 하는 게 당연해, 처음 해 보잖아’라고 하면서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알려주는 그런 문화가 아닌데, 우리가 방문했던 곳에서는 ‘모르는 게 당연하고 못 하면 다음에 잘하면 되고’ 이런 식의, 어떻게 보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이해해주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 여유와 품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다소 느리고 서툴고 투박할지라도, 그런 과정을 인정해주면서 성장해 나가는 게 오히려 오래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명희: 근데 거기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느껴요. 누군가 잘못했을 때, 이 사람이 잘못한 거를 덮어주고 가려면 조직이 천천히 갈 수밖에 없거든요. 대표는 대표만의 고민이 있겠지만, 대표만 답답하겠어요? 같이 있는 사람도 답답한 거예요. 올해 100만원 받았으면 내년에 120만원 받고 싶은 게 본인의 마음일 텐데. 그래서 결국은 이게 상호보완적인 것이, 내가 실수한 게 용납받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데 가면 300만원 받을 수 있는데도 여기서 100만원 받고도 만족하고 있어요’라고 결을 맞춰가는 느낌이에요. 그게 커뮤니티, 공동체 아닌가 싶어요. 어떨 때는 적자가 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돈을 조금 가져가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조직을 지속하여 오면서 자기 마음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나아진 부분은 분명히 보이기 때문에, ‘천천히 가도 같이 간다.’는 생각을 그 공동체가 가지고 있다면 지속가능한 조직, 사람이 다치지 않는 조직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재원, 이명희) ⓒ 발전대안 피다



캄보디아에서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들 각자와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어졌다. 대화를 다 나누고 나니, ‘함께 찾아가는 발전상’이라는 프로젝트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만남으로부터 우리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인연과 만남은,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한국 사회에 잘 전달하고 연대할 책임으로도 이어지는 듯하다.


인터뷰를 하기 전만 해도 이 프로젝트에 붙은 ‘함께 찾아가는’이라는 말은 흔한 수식어로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의 삶터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는 머릿속에 그려보기 어려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만남을 통해 중요한 것을 서로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대안적인 발전이 어떤 것인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함께 찾고, 알게 된 것을 나누는 과정 에서 우리는 조금씩 그것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기사 입력 일자: 2018-11-30


작성: 김은파 피움 편집위원 / piyabb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