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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다's View[17호]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 발전대안 피다의 늦은 답장

2018-11-30
조회수 1294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 발전대안 피다의 늦은 답장


늦은 답장을 씁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의 피해 당사자이자 발전대안 피다의 회원이 운영위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받은 지 3개월이 흘렀습니다. 미투운동이 확산되도록 피다가 역할을 하기를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3월부터의 일입니다. 6월에는 전•현직 활동가 162명과 11개 단체가 참여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5개월여가 지났습니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발전대안 피다는 어디에 있었냐는 질문을 받아 마땅합니다. 신중한 언어로 말하려다 늦어졌다고 하면 솔직하지 않습니다. 참담함을 느꼈으되 고통을 나누고 함께 분개한 공동체는 못 되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이 고발한 사건들은 '권력형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입니다.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무언가를 정확하게 명명해 부르는 행위가 있었던 일을 흐리게 하고 회피하고 왜곡하기를 멈추는 일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깊이 동의하며 다시 말합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이 고발한 사건들은 '권력형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 입니다.

명망가 남성이 권위와 권력을 차지한 단체와 현장에서 이십 대 여성 활동가들이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을 당했고 고통 속에서 그 사실을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개발협력 현장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니까" "자원 활동을 하러 온 만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니까" "후원을 유지하고 사업을 이어나가야 하니까" "운영이 어려운 단체에 타격이 되면 안 되니까" 라는 말을 들으며 수년 동안 울분을 삼켰습니다. 인권에 기반한 개발을 기치로 내세웠으나 개발협력의 현장에서 일하는 이의 인권은 그 중심에 있지 못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뼈아픈 사실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발전대안 피다를 낳은 ODA Watch의 설립자 일부도 미투운동이 호명한 가해자입니다. ODA Watch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정책 변화를 이끄는 시민감시그룹이었고 이 운동에는 전문가가 이끄는 정책 애드보커시와 시민참여를 바탕으로 한 캠페인의 결합이라는 추진체가 있었습니다. 대게 남성인 중년의 전문가 그룹과 이십 대 청년 활동가 그룹이 두 축이었습니다.

이 구조가 파생하는 힘의 불균형을 미리 알아채고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은 매우 큰 실책입니다. 운동의 목적이 작은 목소리들을 압도했고 누구도 이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운동을 이끄는 이들의 지위와 체면을 지키는 일을 운동 자체를 지키는 일과 혼동했습니다. 상황을 덮고 폭력을 축소하거나 에둘러 말하고 덮었습니다. 오랜 시간 고통받은 활동가분들은 그 침묵에 더욱 분개하고 절망하였을 것입니다. 대안을 말하는 곳에 대안이 없었습니다.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이라는 특수성으로 둘러대고 싶겠으나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이 고발한 내용은 모두 젠더정치의 보편적 특성을 드러내는 전형적 사건입니다.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이 갖는 특수성 - 출장이 잦고 현지 문화와 한국의 문화가 충돌하는 - 때문에 어쩌다 벌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제개발협력 커뮤니티가 보인 느슨한 인식이 예외적이고 특수하다고 해야 말이 됩니다. 안일했습니다. 인종, 국적, 지위, 젠더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현장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습니다.

도덕적 정당성은 위선적이고 공허한 말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만나고 부딪치는 현장의 복잡함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커뮤니티, 연대, 공존이라는 말은 힘이 없었습니다. 그 말은 오히려 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를 지우는 변명처럼 쓰였습니다. 힘이 불균형한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동료들을 지키는 힘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홀로 덩그러니 떨어진 것 같은 고립의 현장에서 이 모든 폭력과 외롭게 싸웠을 활동가들에게 뒤늦은 사과를 전합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의 사례를 고발한 당사자분들에게 발전대안 피다의 이름으로 아래와 같이 약속합니다.

발전대안 피다부터 이야기를 다시 쓰겠습니다. 2019년 3월 열리는 총회에서 미투운동이 호명한 ODA Watch 설립자 일부에 대한 피다의 대응 방안을 회원들과 함께 논의하겠습니다. 한때 우리를 대표한 가해자들의 안위를 걱정하기를 멈추고, 그러는 동안 우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잃은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운영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고충 처리와 고발을 위한 창구를 만들겠습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의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쓰겠습니다.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가져야 합니다.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무엇을 말했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귀 기울여 듣는 이를 가진다는 것, 듣는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말하는 이의 이름으로 말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 이야기를 다시 쓸 힘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의 목소리 또한 그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은 필연적으로 힘의 불균형을 안고 가는 현장입니다. 발전의 길은 국적, 인종, 젠더, 빈부에 따른 힘의 차이를 인식하고 줄여가는 과정이라고 배우며 이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차이를 인식하기 위해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 나가고 언어를 익혔습니다. 그 공부와 활동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소용 있어야 합니다.

명망가를 내세운 운동이 시민참여가 꽃피는 운동을 막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명망가 중심의 운동이 가졌던 속도와 효율은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느리더라도 지금부터는 발전대안 피다의 속도로 걸어가겠습니다. 사람이 꽃피는 발전은 오직 그 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겠습니다.



기사 입력 일자: 2018-11-30

작성: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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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를 대표한 '가해자분'들의 안위를 걱정하기를 멈추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가져야 합니다... 피해자는 피해자인데 가해자는 가해자분인가요
대응 혹은 답변이 많이 늦어 졌다고 하셨는데, 4개월 후 총회까지 기다리는 것 보다 임시 총회를 바로 개최해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피다가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 단란의 무게가 참 크네요. 늘 응원할게요.
지난 몇개월 어떻게 되나 지켜봤습니다.
솔직히 매우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결국 그렇게 비겁하게 입다물고 있어야만 했던거 였습니까?
다른 이슈들처럼 해보시지 그랬습니까?
ODA Watch가 아니라 Self Watch가 더 필요했던거 였군요.
ODA Watch부터 지금 Pida까지 늘 지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참 마음이 아픕니다.
철저하게 털고 가십시오. 쪽팔립니다. 진짜..
시기의 문제를 벗어나 중요한 사안에 대한 피다의 명확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어 위안이 됩니다. 총회를 비롯해 앞으로의 길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