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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18호] 기록으로 기억하는 이야기

2019-01-30 10:41
조회수 85


기록으로 기억하는 이야기 


기록의 개인적 의미


가족사진. 홈비디오. 편지. 그림. 일기장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결국 남는 건 그림(영상/사진)과 활자다. 누구에게나 기록의 욕구는 있지만, 기록을 남기고 간직할 수 있는 건 정서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집안 사정으로 이사가 잦은 편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나는 늘 불만이었다. 기억할 사람들과 추억할 곳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그 기억들을 기록할 여유는 없고, 혹 했더라도 다른 곳으로 또다시 옮겨가는 과정에서 대부분 잃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록은 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일상이 불안하고 불규칙하면 기록의 기회도 간직할 힘도 느닷없이 사라져버리곤 하니까.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것도 돌이켜보면 나의 기록, 그리고 스스로 발언하고 기록할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공간을 위해 대신 카메라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피다와의 만남

피다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해 다큐멘터리 제작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건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막 마치고 영화제 상영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개발 이슈에 한창 관심이 많던 터라 캄보디아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분별한 개발사업과 대안적 발전상을 고민하는 현지인들,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새로운 사람과 작업이 목마를 시기에 찾아온 설레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발전대안 피다와 ‘함께 찾아가는 발전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무더웠던 작년 8월 우리는 캄보디아로 떠나게 되었다. 팀에 누가 되지 않게 비타민 주사를 미리 하나 맞아 놓는 것도 잊지 않고!


다시 방문한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3년 전 동남아 배낭여행을 하면서 들렸던 나라 중 하나였다. 당시 캄보디아를 여행지로 넣은 건 순전히 앙코르와트 때문이었다. 앙코르 사원 꼭대기에서 바라본 일몰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다. 물론 앙코르 사원에 앉아 바라보던 일몰은 넋을 놓고 볼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관광지’ 캄보디아만을 소비하고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어 캄보디아는 늘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었다.

다시 방문한 캄보디아는 확실히 각오도 감회도 새로웠다. 무사히 촬영을 잘 마칠 수 있을까. 오기 전 했던 캄보디아 공부는 충분했는가. 우리가 만날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을까. 그 말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촘촘하게 엮어낼 수 있을까. 걱정과 부담 그리고 기대가 한데 뒤엉켜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방문의 이유가 달라지니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도로 위 수많은 오토바이, 한국 기업 로고가 적혀있는 공사장, 새로 지어지고 있는 주상복합단지, 울퉁불퉁했다가 갑자기 매끄러워지는 도로 그리고 이곳 사람들. 나의 눈은 자연스레 관광지가 아닌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서 있는 풍경을 향하고 있었다. (아, 물론 관광지가 아닌 곳들을 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프놈펜에서 흔히볼 수 있는 공사장풍경 ⓒ <발전을그리는사람들>


▲ 벙꺽마을 주민 ⓒ <발전을 그리는 사람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설레는 마음도 잠시,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촬영 또한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카메라앵글, 사운드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인터뷰 현장에서 사람들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말의 내용보단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에 더 집중할 수 있었는데, 때론 그 사람들이 내뿜는 분위기가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인터뷰를 해주신 분들 모두 단단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곧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 찍어온 촬영본을 하나씩 열어보니 그제야 현장에서 미처 듣지 못한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놀랐던 건 현장에서 느낀 눈빛만큼이나 인터뷰가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어떤 말을 취사 선택해 편집기 위에 올릴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촬영본의 90%가 인터뷰 영상이라는 것이었다. 벙꺽 개발이슈는 푸티지 영상을 현지 활동가분을 통해 받아서 영상이 풍성한 편이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약간의 인서트샷과 인터뷰 영상이 다였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일지라도 40분 내내 인터뷰가 병렬적으로 나오면 보는 사람들도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인터뷰이들간의 공통점을 찾아내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는데, 자연스레 이 과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말을 직조해 맥락을 만들어내는 일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기록의 좋은 점은 현장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빛나는 순간들을 다시 꺼내 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다행히 몇 번이고 인터뷰들을 돌려보니, 같은 결의 이야기들이 더디지만 묶이기 시작했다. 테두리를 만들고 나면 속도가 붙는 퍼즐처럼 그렇게 구성에도 속도가 붙었다. 


질문하는 자, 기록하는 자

내가 좋아하는 심보선 시인의 시 <집>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불평등이란
무수한 질문을 던지지만 제대로 된 답 하나 구하지 못한 자들과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던지지 않지만 무수한 답을 소유한 자들의 차이다.”


▲ 스레폭 마을 주민의 인터뷰 ⓒ <발전을 그리는 사람들>


문득 “정부와 마을이 친했으면 좋겠어요.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관계요.” 라던 로워세산2댐 인근 스레폭 마을 주민의 말이 떠올랐다.

열흘 동안 캄보디아를 방문해서 느낀 건 나라, 언어, 문화가 달라도 결국 개발 담론 위에서 우리는 모두 비슷한 아픔과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발 담론은 정치적이다. 발화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언어도 다르게 작용한다. 똑같은 언어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법이 되기도 하고, 아무런 효과도 가지지 못한 채 휘발해 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질문들이 휘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움직임이 필요할까. 이건 늘 끝나지 않는 숙제처럼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묻혀버린 질문들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지만, 여전히 나의 카메라는 방황 중이다.  


▲ 프놈펜 도시 풍경 ⓒ <발전을 그리는 사람들>

▲ 벙꺽 마을 철거 현장 ⓒ <발전을 그리는 사람들>


▲ 한국 도시 풍경 ⓒ <물의 도시>


 ▲ 노량진수산시장 철거 현장 ⓒ <물의 도시>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는 누군가를 위해 혹은 특정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기도 하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을 끊임없이 재편하기 위해 만들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나와 타인의 세계가 만나 충돌할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많은 우연이 쌓여 캄보디아까지 가게 되었다. 우연히 허락된 그 작은 확률로 조금은 낯선 눈들과 마주하게 됐다. 나의 눈과는 사뭇 다르게 생긴 크고 깊은 그 눈 속엔 내 모습이 되비친다. 낯설지만 왠지 낯설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방황하는 카메라를 붙잡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이 수많은 만남을 기억하자. 그리고 기록하자. 



기사 입력 일자 : 2019-01-31


작성: 박소현 다큐멘터리 감독 / sososok1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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