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움 ㅣ 코너별 보기

발전대안 피다에서 격월로 발행하는 웹진 '피움' 기사를 코너별로 보실 수 있습니다. 

피움 ㅣ 코너별 보기

피다's View[21호] 애국을 넘어 보편적 가치를

2019-08-21
조회수 332


지난 7월 1일 일본이 3개 반도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 하면서 시작된 한일 간 갈등이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역사 가운데서 언제나 그랬듯 나라의 위기 극복 과정을 앞장서서 이끌어간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일본의 조치가 발표된 직후 과거 국채보상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불매운동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온라인을 통한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하며 일본 정부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가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도 발맞춰서 이번 위기가 ‘반도체 핵심 부품의 국산화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 임을 주장하고 있다. 근대 이후로 국가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자 공동체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개인의 안녕은 보장될 수 없고,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36년간의 식민지 만행과 잔인하고 파괴적인 내전을 겪어본 우리 민족만큼 뼈저리게 알고 있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혹은 둘 다) 경험한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보며 갖는 ‘애국심이 부족하다(없다?)’는 염려도 이해할 만하다. 한데 그 어르신들이 걱정하는 젊은이들이, 더구나 개인주의적이고 공동체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 혹은 오해를 받는 그들이 일상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며 불매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론 이번 일본의 조처가 기억 속에 잠재해 있던 역사적 기억과 상처를 끄집어낸 부분도 있고, 불매운동을 비롯한 시민들의 움직임 가운데는 민족적 혐오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모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반일감정’, ‘불매운동’이라고 불리는 움직임에는 과거의 ‘일본에게는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된다’는 식의 무조건적 반일감정을 넘어서는 무엇이 느껴진다. 바로 ‘애국’이라는 가치와 더불어 ‘자유, 평화, 인권’ 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가 운동의 동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녀상에 담은 것은 평화와 인권이다”라고 한 ‘평화의 소녀상’ 김운성 작가의 말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의 언급이 이러한 움직임을 잘 보여준다.


그동안 시민들은 국가, 사회, 회사,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할 경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지만, 지금의 이러한 자발적인 행동은 고귀한 보편적 가치가 도전 받는 공동체의 위기 상황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동기에서 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청년세대를 비롯한 우리 시민들은 애국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애국심 못지않은 다른 보편적 가치들로의 확장을 이루어온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저항 운동 역시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가 간의 경쟁이라는 측면 못지않게,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거나 무시하고, 불합리하고 부당한 요구와 시도를 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라는 측면이 작동하고 있다. 


맹목적인 국익 추구는 엘리트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으며 종종 보편적 가치와 충돌한다. 2014년 캄보디아 파업과정에서 보여준 한국대사관의 행동이 한 예이다. 당시 127개 공장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연대 파업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벌어진 시위대에 대한 캄보디아 군의 유혈진압이 있었고, 이는 캄보디아 총파업에 대한 무자비한 유혈진압의 시발점이 되었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관은 당시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국투자기업들에 미칠 부정적인 효과를 방지하고자 캄보디아 정부와 군에 강력한 개입을 요청했다고 한다. 기본적인 생존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애절한 요구에 공권력, 특히 군대를 동원하여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겪은 우리가 어떻게 그런 나쁜 역사를 다른 나라에서 반복할 수 있는지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사태 이후 한국대사관은 자신들의 신속한 대처가 군 병력이 투입 등 특별조치로 이어진 점을 자신들의 공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일본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보상금을 원조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게다가 소위 그 원조금으로 시행한 사업에 참여하여 이익을 얻은 이들이 전범기업들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차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생산한 특정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표현으로 하면 구속성 원조를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구입해서 사용했던 그 물품들은 지금도 일본 수입의존도가 최소 60%에서 최대 90%에 이를 만큼 원조를 명목으로 한 경제적 침투 전략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전후 일본의 대한국 유상원조의 제1 수혜자는 일본의 대기업(특히 전범기업)이었듯이 한국 유상원조의 경우도 구속성 비율이 높아 (2016년 47.8%, DAC 회원국 2015년 평균 19.4%), 한국 기업에게 큰 수혜가 돌아가고 있다. 한국 정부가 천명한 "인류의 공동 번영과 세계 평화에의 기여" 라는 ODA 비전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세계시민의식은 민주시민의식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상당한 수준의 민주시민의식을 갖춘 우리 시민들이 국수주의라는 확장된 이기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의 공영과 평화를 함께 추구하는 세계시민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각국 정부의 부당한 조처에 함께 분노하고, 공동의 현안들에 대해 함께 교류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소프트 파워는 현대사회에서 국력을 형성할 주요한 요소로 부상하였고, 그 중 시민들이 자국 정부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성장에 발 맞춰 우리 정부 역시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국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기사 입력 일자 : 2019-08-21


필자 : 김경연 발전대안피다 공동대표/운영위원, kaykim7070@gmail.com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