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3호] <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돼지감자 캐는 할머니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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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돼지감자 캐는 할머니"


돼지감자 캐는 할머니 ©하동훈


봄볕이 따사로워지던 어느 날, 겨우내 움츠려져 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 하천을 걸었다.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마른 풀 사이 쪼그려 앉아 계신 한 할머니에게 눈이 가닿았다. 햇볕도 바람도 느긋해서 나는 할머니를 멀찌감치 바라본다. 함께 나오신 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할머니 근처에도 강 저 편에도 같이 오셨을 것 같은 분은 보이질 않는다.


할머니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될까 조심스럽게 할머니 쪽으로 가서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인사를 건넸는데 기척이 없으시다. 조금 기다렸다가 엉거주춤 오리걸음으로 두어 발짝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이번에도 별 반응이 없으시다. 연세가 많으셔서 귀가 잘 안 들리시는 걸까? 바쁘셔서 아는 척할 여유가 없으신가?

그런데 왠지 그 자리를 바로 뜨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연신 호미질만 하시던 할머니는 흙 밭 한쪽에 모아진 것들을 빨간 망태기에 넣으시며 그제야 한 번 자리를 고쳐 앉으신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런데 뭐를 이렇게 열심히 하고 계셔요?”

“돼지감자 캐는 거야.”

“아~ 이게 돼지감자에요. 생강이 엄청 크다 생각했어요.”

“돼지감자가 당뇨에 좋다더라고. 아는 사람이 부탁을 좀 해서… 작년에도 이 자리에서 캤는데, 올해 나와 보니 이렇게 또 있는 거야.”

… 

잠깐 나를 보아주셨던 눈은 이내 땅 속 무언가를 뒤적이신다.


말동무라도 해드리자 싶은 마음이었는데, 더 길게는 아니다 싶어 나는 살짝 물러나 앉는다. 손주들 고기 사주려고 하시는 것도 아니라면서, 한동안 그 자리에서 흙 속 돼지감자만 갈라내신다.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나는 무릎이 아파 두세 번 다리를 바꾼다. 할머니는 이십여분이 넘는 시간동안 허리 한 번 펴지 않으신다.


할머니의 세간살이를 위한 일도 아니고, 자식을 위해 하는 일도 아니었다. 곁을 두고 살아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담아내어 마음을 쏟고 계시던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던 아침. 땅에 거의 붙다시피 몸을 낮추어 앉으신 그 마음이 봄 햇살 보다 더 따뜻하게 내려와 앉았다.



입력 일자 : 2020-04-29


사진&글 :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 donghoon.ha.micha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