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4호] Coming back to a life - 서울환경영화제: 영화 <먼지가 가라앉은 후> 리뷰

2020-07-31
조회수 3289

*피움 24호 5번째 기사는 총 3개의 짧은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20년 7월 2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된 <제 17회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작 중 피움 기자단이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감상하고 싶은 작품 3편을 선택해 공유합니다. 


Coming back to a life

영화 ‘먼지가 가라앉은 후’ 리뷰


‘먼지가 가라앉은 후’는 시야를 가리는 모래바람이 가라앉고 비로소 눈앞의 상황을 밝히 보게 된 순간을 말한다. 즉, 상황이 잠잠해져 일의 결과를 살피고 처리해나갈 수 있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영화는 제목과 같이 ‘먼지가 가라앉은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하고 있다. 영화 속에는 지진으로 파괴된 이탈리아 아마트리체(2016년), 원전사고가 일어났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1986년), 전쟁으로 망가진 시리아 알레포(2012년~2016년)의 주민들이 나온다. 재난을 다루는 다수의 영화가 재난의 원인과 책임소재, 피해 정도, 재건과정 등에 초점을 두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파괴된 지역의 모습과 주민들의 이야기만으로 채워진다.


자신이 잃은 것을 받아들이고 현재 가진 것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려는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재난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얼마나 좁았는지, 사람이 아닌 물리적 회복에 얼마나 집중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겪으며 재난이 제비뽑기 뽑듯 선택된 누군가에게 닥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모두의 재난임을 체감하면서, 영화 속 주민들의 안녕과 회복이 나의 안녕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사를 겪은 지역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영화는 가볍지 않다. 당장 우리의 상황이 평온하지 않기에 멀리하고 싶은 주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영화 속 주민들이 재난을 겪고 회복해나가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고통 한가운데의 삶

영화는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아마트리체와 그곳의 신부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마트리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혔던 곳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지진으로 파괴된 모습만 나온다. 만약 지진 전 아마트리체의 모습을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같은 곳이라고 믿기 어려울 것이다. 2016년 8월 24일 새벽, 규모 6.2의 강진이 이 도시를 덮쳤다. 주민 249명이 목숨을 잃었고,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과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비롯한 구시가지의 주요 건물들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문화재들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잔해 보존 여부를 논의해야 했다. 영화에서 아마트리체의 신부님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늘 모든 걸 재건했어요. 하지만 이번엔 마을 주변까지 많은 희생자가 나왔어요. 

아마트리체는 완전히 파괴돼서 재건할 수 없을 거예요.”


도시를 재건할 수 없을 거라는 신부님의 말이 이해될 정도로 영화 속 아마트리체는 여전히 파괴되어 있다. 지진 후 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복구 과정은 매우 더디다. 지진으로 마을에 전기와 물이 끊기는 등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재건될 수 없을 거라 말하면서도 신부님은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지진 후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우면서도 그때의 상황을 기록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는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대가 발견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임시숙소에 하나둘 늘어나는 희생자들의 시신을 잊지 않았다. 이제는 임시로 지어놓은 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마을 주민들을 위로한다. 신부님은 말한다. 이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삶을 살아갈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은 지역 주민들도 아마트리체를 떠나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터전에서 자리를 지킨다.


아마트리체가 재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아마트리체 사람들이 회복될 때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신부님의 말처럼 고통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낸 사람들이 새로운 아마트리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삶의 새로운 가치

아마트리체에 이어 체르노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남아 도시를 지키는 아마트리체와 달리 모두가 떠난 체르노빌의 모습이 삭막하게 느껴진다. 소련이 해체되며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 땅이 되었고, 발전소 주변 30km 이내는 거주 금지로 아무도 살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재 체르노빌은 관광지다. 몇 년 전, 체르노빌을 다룬 드라마가 성공하며 관광객은 더 많아졌다. 영화는 관광지로 변모한 체르노빌의 모습과 관광 가이드 알렉세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렉세이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기술자였다. 1986년 4월 26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억되는 폭발이 일어났을 때 그는 현장에 있었다. 알렉세이는 생존자였지만 가족과 동료 그리고 집을 잃었다. 사고로 새까맣게 변했던 몸이 회복된 후에도 그는 오랜 시간을 헤맸다고 한다. 사고의 원인이 기술자들의 조작 실수로 알려지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오랜 고통 속에서 알렉세이는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찾았고, 다시 체르노빌로 돌아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제 일은 관광객들과 많은 사람이 체르노빌에 관심을 갖게 하는 거예요.

죽은 동료들이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제가 할 수 있으니까요.”


소련이 해체되면서 알렉세이는 사고 후 KGB와 작성했던 문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에 의하면, KGB는 기술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공식 문서에 근거해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속 알렉세이가 이야기한 문서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 데이터 목록은 어떤 상황에도 공개할 수 없다.

● 4호기 사고의 진짜 원인을 밝히는 것을 금지한다.


영화에서는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진실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다만, 사고 후 삶의 새로운 이유를 찾은 알렉세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 뿐이다. 발전소가 있는 프리피야트 마을에는 그가 살았던 아파트와 결혼식을 했던 놀이공원이 그대로 남아있다. 가이드로써 사람들에게 마을의 사고 전 모습과 폭발 사고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것에서 알렉세이는 삶의 이유를 다시 찾았다. 재난을 겪은 많은 사람이 절망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알렉세이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을 사는 것, Coming back to a life

시리아에서는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알레포 전투는 시리아 내전 중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전투 중 하나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지속된 전투는 알레포를 물리적으로 파괴했을 뿐 아니라 2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알레포에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이 미국, 러시아, 이란, 터키 등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혔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군의 승리로 전쟁이 종료되었다. 2017년에는 철도 운행이 재개되는 등 도시는 복구 중이다. 그렇지만 영화 속 알레포의 모습은 아마트리체, 체르노빌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재난이 끝나고 회복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재난 속에 있기 때문이다. 알레포의 북서부는 반군 거점 지역으로 정부군과 반군 간의 다툼이 잦다. 여전히 알레포는 전쟁의 위험 아래에 있다.


영화 속 알레포 사람들은 끝났지만 실은 끝나지 않은 내전 상황에서 일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알레포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명소였다. 호텔을 운영하는 말린은 2011년 이후로 손님을 받지 못했다. 17년 동안 여행가이드로 일했던 여성은 나이든 어머니를 두고 떠날 수 없어 전투와 봉쇄가 이어졌던 5년간 숨어 살았다. 그녀는 전쟁 후 8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한다. 관광객들에게 파괴된 시장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무너진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며 떠오른 예전의 아름다웠던 모습이 그녀의 말문을 막았는지도 모르겠다. 파괴된 자신의 터전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알렉세이와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가이드로 다시 일하는 것이 어떤가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대답한다.


“다시 사는 거니까요. 전하고 같을 순 없겠지만 오늘을 살 수 있어서 아주 좋아요.

이 순간이 저에겐 행복이에요. 충분해요.”


영화는 내내 담담하게 질문을 던져왔다. 재난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재난을 겪고 회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가? 새로운 일상은 물리적 환경의 회복이 뒷받침되어야 하는가?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갑작스레 닥친 재난이 사람의 마음에 먼지 바람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력감, 불안, 절망 등의 부정적인 바람이 가라앉을 무렵 신부님, 알렉세이, 알레포의 가이드는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했다. 영화 속에 비치지 않은 재난을 겪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재난이 꼭 지진이나 전쟁과 같은 물리적 파괴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코로나19는 집, 학교, 회사라는 건물을 파괴하진 않았지만, 그곳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일상이 무너져 내일을 생각하기 두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통스럽더라도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다 보면 분명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영화 속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도 이 시기를 무사히 넘겨 다시 새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아마트리체의 신부님
▲ 체르노빌의 알렉세이
 알레포의 관광가이드




기사 입력 일자 : 2020-07-31


작성 : 최하영 피움 기자단,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생 / zakhar10200@gmail.com



[1]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 : http://seff.kr/project/once-the-dust-settles/

[2] 사진출처 : ‘먼지가 가라앉은 후’ flyer ∥ http://cobosfilms.nl/downlo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