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6호] <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누가 누구에게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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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누가 누구에게'


▲ 누가 누구에게   ©하동훈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더욱 바쁜 아침. 


간혹 빗물에 미끄러지는 운동화 소리만 들리는 긴 통로. 옆에 누가 지나고 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한 곳으로만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파란색 빗물받이통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갈라진다. 발소리들로만 가득하던 통로에서 거칠어진 숨소리가 마스크를 뚫고 나왔다.


“감사합니다아”


다들 앞만 쳐다보며 걷고 있어서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산 좀 털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미 젖은 물걸레로 정신없이 바닥에 빗물을 훔치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


사람들은 서로 먼저 개찰구에 닿으려는 듯 팔을 앞뒤로 흔들며 빠르게 걸었고, 그 손에 들려있는 우산 끝에 맺힌 빗물은 야속하게도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근처에 정차하는 마을버스는 배차 간격도 없어진 것인지, 흥건히 젖은 물걸레를 짤 시간은 너무도 짧다. 잠깐 훔쳐내지 못한 곳에서 삐빅 소리가 들리면,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세요~ 우산 좀 털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오가셨을까… 승객 한 무리가 또 쏟아져 오자 아주머니는 친절하면서도 힘찬 목소리로,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세요~ 우산 좀 털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분명 반복해서 하시는 말인데, 지루함이나 귀찮음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한 여학생이 다소곳이 인사를 건넨다.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아이고… 말씀 감사해요. 출근길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이제 출근한 지 일 년이 되셨다는 아주머니는 지나시는 분들이 간혹 다치시는 경우가 있었다며, 비 오고 눈 오는 날이면 원래 출근 시간보다 두어 시간 일찍 나오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니도록 하면 그뿐이라고 낮추어 말씀하신다.


나는 혹여라도 걸리적거릴까 오래 있지 못하고 인사를 드린다.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이 한숨을 돌리셨는지 밝아진 미소로 또 보자며 손을 흔들어주신다. 


자신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만, 통에 우산을 털어주는 사람들이 그냥 고맙게 느껴진다고 하시던 아주머니의 말씀이 묵직하게 들려왔다.


감사함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외치던 그 아침의 풍경.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마주했던 아주머니의 충혈된 두 눈이 아직도 선하다.



기사 입력 일자 : 2020-11-16


사진&글 :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donghoon.ha.micha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