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8호] <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들려가지 못한 화분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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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들려가지 못한 화분'

▲ 들려가지 못한 화분   ©하동훈 


월요일 아침 10시, 서울혁신파크 3층.

평소 활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들이 보이질 않는다. 

일개미라도 된 듯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종이상자와 사무집기를 나르는 청년들 서너 명만이 보일 뿐이다. 

언젠가부터 들리던 이삿날이 오늘인가 보다.


커피잔을 씻으러 조용해진 복도를 지나는데, 

플라스틱, 종이, 일반 쓰레기를 버리는 곳 옆에 놓여진 화분 하나에 시선이 닿았다. 

여러갈래 줄기가 나왔던 곳에는 잘려진 흔적만 남았고, 

아직 푸른색을 잃지 않은 줄기는 허리를 세우지 못해 양갈래로 고꾸라져 있다. 

줄기 끝 잎사귀는 바닥에 닿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 처럼 보인다.


이사짐은 아직 반 나절도 더 옮겨야할 것 같고, 청년들은 말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미 화초는 쓸모 없어 버려진 것들과 함께 있다. 화분은 사무실을 찾았던 손님의 한 손에 들려 왔을 것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한껏 담아 전해진 선물이었을지도.


그렇다면 그 마음은 언제부터 잊혀진 것일까?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새롭게 잘 꾸며진 사무실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못했을까?


그 다음 월요일이 되도록 화분은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살아있는 화초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생명을 다한 것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미화원분들의 손에도, 이사를 나가던 청년들의 손에도 들려가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버려야 했던 사람은 누구라 할 수 있을까?


오래도록 마음 속에 충돌이 일어났다.



<들려가지 못한 화분>


기사 입력 일자 : 2021-04-01


사진&글 :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donghoon.ha.micha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