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20호] 가상대담: 3인의 사상가, 발전과 교육을 말하다 (2편)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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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편에 이어 2편으로 마무리 되는 본 원고는 2019년 7월, 국제개발협력학회의 국문학술지인 「국제개발협력연구」11권 2호에 실린 ‘교육의 눈으로 발전을 보다: 센, 굴렛, 프레이리를 중심으로(Examining Development through the Lens of Education : Focusing on Sen, Goulet, and Freire)’ 논문(정용시 저) 을 재구성했습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의 ‘윤리’의 문제에 주목하여 센, 굴렛, 프레이리의 주요 저술 및 문헌들을 토대로 ‘발전과 교육’을 논하는 내용들을 저자가 직접 가상의 대담 형식으로 구성해 쉽고 재미있는 구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봅니다.

*1편 다시보기 링크 : http://www.pida.or.kr/pium/?idx=2138085&bmode=view 

대담순서

[1편]

     1. 만남 

    2. 무엇이 문제인가

    3.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2편]

    4. 발전,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

    5. 어떻게 변화를 만들 것인가

    6.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교육


[가상대담] 3인의 사상가, 발전과 교육을 말하다 (2편)



4. 발전,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

■ 프레이리: 저는 얼마나 더 많은 개인이 ‘인간’이라는 존재로 인식되는지가 그 시대의 변화를 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발전을 ‘사회의 인간화’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사회의 인간화는 인간화된 개인의 연대로 가치와 문화의 변화가 일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변혁이 일어났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변화의 주체인 개인은 자신이 처해있는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인식하면서 행동하는 프락시스(praxis)가 필요합니다.


 센: 저는 ‘세계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개인’이라는 프레이리 교수님의 말씀에서 사회적 책임(commitment)을 인식하는 정의로운 개인이 떠오릅니다. 아시겠지만 제 연구 영역에서 중요한 주제가 정의인데요. 저는 정의가 규범적이고 선험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의에 대한 어려운 이론을 이야기 하기 이전에 우리 인간은 이미 부정의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끼고, 차별 받는 사람을 보거나 불평등한 상황을 보면 분노를 느끼지요. 저는 이렇게 정의를 개인의 윤리와 가치의 문제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부정의를 제거해서 궁극적으로 모든 개인이 각자의 다양성과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이고 발전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역량(capability) 개념을 주장하는 이유도 각 사회에서 존엄한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즉 사회가 얼마나 정의로운지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습니다.


 굴렛: 제가 주장하는 발전의 윤리는 글로벌 수준에서의 정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개발 분야에서의 예를 들면, 제3세계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부분의 개발 프로젝트는 해당 지역사회나 주민들의 목소리를 여전히 듣지 않고 있거든요. 현지 사람들을 발전의 당사자이자 행위주체, 즉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인간 사회와 집단은 그 집단만의 역사와 환경에서 비롯된 고유한 행동 전략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실존합리성(existence rationality)이라고 하는데요. 현지 지역사회와 집단의 실존합리성을 존중하지 않고 외부의 관점과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는 개발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발전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의 부정의한 관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센 교수님의 참여적인 역량 개념과 프레이리 교수님의 문제제기식(problem-posing) 교육 개념의 밑바탕에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5. 어떻게 변화를 만들 것인가

굴렛: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발전은 대략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가 보장되는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현실에서의 발전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인데요.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의 주체로서 발전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은 여전히 우리에게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학자로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프레이리: 제 졸작 『페다고지』가 다양한 언어로 발간되고 나서, 전 세계적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감사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세계의 억압된 구조 아래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페다고지』에 공감하는 세계의 여러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안타깝게도 억압 구조에 저항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권위적이고 차별적인 억압자들의 지배 사상이 피억압자들의 일상의 영역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동 유연성’이라는 언어로 노동자의 불안정성을 정당화하고 있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개인은 언제든 위험에 내몰릴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런 위험에 대해 개인은 지속적인 두려움으로 인한 피로를 누적할 수밖에 없는데요. 저는 이러한 현상을 실존적 피로(existential weariness)라고 부릅니다. 실존적 피로로 인해 개인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는 거지요. 하지만 이럴수록 억압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읽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센: 프레이리 교수님의 현실 인식에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교수님의 말씀에 한 가지만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프레이리 교수님께서는 부정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프락시스와 대화(dialogue)와 같이 주로 문화적인 차원의 해결 방식에 주목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물론 문화의 변화가 근본적인 측면이긴 합니다만, 저는 여기에 제도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하고 싶습니다. 개인이 위험을 감수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려면 이것이 가능한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예컨대 시장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있어야 할 것이고, 비판적 사고를 기르고 행동하려면 그에 맞는 시민 교육과 공론장이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 민주적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한 것이지요.


프레이리: 센 교수님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저는 그 제도를 만드는 주체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은데요. 현실적으로 누가 그 제도들을 만들까요? 저는 교육학자라서 주로 학교 교육과정과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관찰해왔는데요. 대부분의 학교 교육 과정은 지배 계급의 억압적 사상을 주입하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회의 다른 제도들도 시민들의 비판과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제도보다는 개인의 의식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교육자나 지도자들의 역할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입니다.


굴렛: 흥미로운 토론입니다. 제도가 중요한가, 개인이나 문화가 중요한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 거 같은데요.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요. 인간의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인류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변화로서 발전이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라는 제도를 간과해서는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역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개인의 자유와 사회 집단의 실존합리성을 존중하는 제도를 국가 내에 수립해야 하고, 비판적 개인들이 그 수립 과정을 감시하고 참여하도록 해야겠지요. 결국 제도와 문화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가치가 개인과 사회 안에 내재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굴렛 교수님께서 먼저 꺼내주셨습니다. 실은 발전을 위한 운영 원리로서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개념이 민주주의입니다. 사회적인 정의와 부정의를 구별하고, 시장의 논리를 사회의 어느 영역까지 수용할 것인가를 정하고, 물질적 부를 어떻게 분배하고 이를 도덕적으로 다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논의하려면 사회적 공론장, 다시 말해 민주주의라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정의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대화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충분히 주어진다면 우리 공동의 미래를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프레이리: 저도 동의합니다. 이미 저는 제 사상의 운영원리로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밝혀왔습니다. 인간의 삶은 소통을 통해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고, 이를 위해 모두가 모두에게 배울 수 있는 민주적 대화로서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6.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교육


굴렛: 대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 발전을 위한 운영원리로 민주주의를 언급하게 됐네요. 그렇다면 변화의 주체인 개인과 개인의 일상에 어떻게 민주적 가치를 투영할 수 있을까요? 


프레이리: 그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도 제가 먼저 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민주주의가 교육의 영역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명한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민주주의를 단지 정치사상이나 제도가 아닌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의 생활 방식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민주주의는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인간의 행위, 즉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지요. 제가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는 지점은 그 교육의 주제와 내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느냐인데요. 민주주의의 가치를 개인과 사회가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내용과 전달 과정부터 민주적인 방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학교 운영과 교육 내용의 구성에 학습자를 포함한 교육의 모든 주체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굴렛: 그렇군요. 기본적으로 프레이리 교수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만, 여기서 제가 궁금한 점은 학습자의 참여입니다. 개발이든 교육이든 현장의 개인들의 의견은 존중 받지 못하거나, 존중하려 해도 본인들이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모르고 있거나, 심지어 알고 있더라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컨대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일방적인 지도 방식에 순응해온 어린 학생들이 교육 내용의 구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요?


프레이리: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교육자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이유도 사실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건데요. 학교도 억압적 권력 구조가 엄존하는 하나의 사회이기 때문에 학습자들의 의견을 들으려 해도 침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억압적 구조가 피억압자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거지요. 저는 이것을 침묵의 문화(culture of silence)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교육자는 피억압자의 침묵의 문화와 언어에도 익숙해 져야 합니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들의 언어로 끊임없이 대화해야 합니다. 묻고 답하기를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라고 느꼈던 상황을 넘어 학습자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주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이 오는데요. 이것을 생성적 주제(generative theme)라고 합니다. 지속적인 상호 작용을 통한 주제들의 생성 과정에서 개인의 의식화가 일어나는 거지요. 물론 이 과정은 교육자의 애정과 인내가 요구되는 무척 지난한 과정입니다.


센: 저와 역량 이론을 함께 연구한 누스바움(Martha Nussbaum) 교수는 적응적 선호(adaptive preference)라는 개념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 구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는 개인에게는 자신의 선호를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본인의 선택을 무의식적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프레이리 교수님 말씀처럼 억압이 내면화되어 있는 개인은 선택을 한다 해도 이미 자유롭게 선호를 표현할 수 없게 되는 거지요. 저는 역량과 기능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억압된 개인의 적응적 선호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요. 오늘 대화를 통해 프레이리 교수님의 문제제기식 교수법과 생성적 주제 개념에서 큰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굴렛: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아시겠지만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현지에서의 실행연구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대화를 통한 생성적 주제의 발견은 실행연구를 위한 훌륭한 방법론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센 교수님께 질문이 있는데요. 교수님의 저작에서 나타난 교육에 관한 내용들을 보면 교수님께서는 주로 기초교육으로서의 학교교육을 중시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 성장 사례를 대표적인 교육의 역할로 소개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교육을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보시는 건지요?


센: 그렇지 않습니다. 제 연구의 궁극적 목적은 윤리적 가치의 회복을 통해 사회적 부정의를 제거하고 존엄한 개인이 자유롭게 잠재력을 발현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을 단순히 경제 성장을 위한 인적자본(human capital)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너무 협소하게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육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측면도 분명 존재하지만, 교육을 통해 개인이 얻게 되는 다양한 가치와 내적 능력, 삶의 변화들도 인간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개인의 발현과 사회 발전의 기초가 되는 토대 역량입니다. 


굴렛: 발전과 교육, 교육과 발전.. 모처럼 분야를 넘어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결국 발전의 과정과 결과에서 인간의 숨결을 어떻게 불어넣어야 하는가 인데.. 오늘부터는 두 분께 받은 학문적 영감과 통찰을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좀더 고민해봐야겠네요. 일단은 두 분 다 시장하실 테니 밖에서 뭐라도 먹으며 못다한 이야기 나눌까요?


센: 기다리던 말씀입니다. 오늘은 제가 인도 식당으로 모시지요.


프레이리: 좋습니다. 그럼 2차는 제가 대접하지요.


굴렛: 오늘 2차까지 가는 건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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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다운로드 안내

1) 국제개발협력학회 홈페이지(www.kaidec.kr) 

- 학회 정회원 가입 후(유료) 다운로드 가능

- 정회원 가입 링크 : https://www.kaidec.kr/contents/kr/about.htm?ch=6

2) 한국학술지인용색인 홈페이지(www.kci.go.kr) : 논문 초록 및 5페이지 미리보기 가능



기사 입력 일자 : 2019-08-01


작성 : 정용시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글로벌교육협력전공 박사과정,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선임전문관 / ysjung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