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4호] '건강'의 비참한 양극화 - 인권영화제: 영화 <사고 파는 건강> 리뷰

2020-08-05
조회수 3995

*피움 24호 6번째 기사는 2개의 짧은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름 특집으로 지난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작 소개에 이어 2020년 7월 2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된 <제 24회 코로나19 인권영화제 :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상영작 중 피움 기자단이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작품 3편을 소개합니다.


'건강'의 비참한 양극화

- 영화 '사고 파는 건강 (Health for Sale, 2009)' 리뷰-



“정말 무엇을 우선시해야 할까요? 다국적기업의 상업적 이익일까요, 아니면 인간 생명에 대한 권리일까요?” 

– 영화 <사고 파는 건강> 中


▲ 사진1. 영화 ‘사고 파는 건강’ 中, 출처 서울인권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유엔이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의 기본 정신은 ‘Leaving No One Behind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다. 많은 국제기구와 NGO는 이 정신을 우리가 추구하고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여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그 중 에서도 SDGs의 3번 목표인 ‘건강과 웰빙(Good Health and Well-being)’은 사람들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건강을 위한 보편적 권리에 소외되지 않은채 살아간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선진국의 의료 기술은 가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도 약을 구할 수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히 죽어가고 있다. 쉽게 약을 구할 수 있는 사람과 약을 구할 수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건강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분명히 나타낸다. ‘건강’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다. 생명이 돈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면, 그것만큼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미 내성이 생겨버린 말라리아 약으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들, 혹은 그 조차도 없어 비참히 죽어가는 사람들, 에이즈에 걸렸지만 약을 구하지 못해 기본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왜 건강에 대해서도 이런 비참한 양극화를 경험해야 하는가! 영화 ‘사고 파는 건강’은 이러한 불평등한 의약품 접근권 문제의 원인을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이하 WTO)의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인 트립스(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이하 TRIPS)로 규정한다.


[TRIPS가 보호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1994년 TRIPS가 WTO의 부속협정으로 채택되면서 특허권은 침해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TRIPS는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과 같은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으로, WTO 회원국 모두에게 적용된다. 이것이 영화에서 ‘의약품 접근성’에 대한 논의를 TRIPS로 시작하는 이유이다. 제약회사도 TRIPS를 통해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제약회사는 약을 독점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시장에서 약의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특허권이 부여된 의약품은 제약회사가 원하는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구매자에게 돌아간다.

전 세계 환자의 85%가 남반구에 살고 있지만 이들은 의약품에 대한 세계 지출의 11%만을 차지한다. 영화는 약이 필요한 환자 중 대부분이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로 인정되지 않으며, 이들에게 약을 판매하는 시장조차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만약 제약회사의 특허기간이 지금처럼 길지 않았다면, 독점이 아닌 다른 방식의 지적재산권 보호 방안을 적용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신약의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경우, 다른 제약회사들은 동일성분으로 제네릭(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다. 다양한 약이 시장에 유통되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제품의 가격은 하락한다. 가난한 사람도 저렴한 가격에 약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TRIPS는 누군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지만, 역설적으로 다른 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TRIPS를 채택할 때 이러한 상황을 예상했던 사람들이 있었을까? 영화에서 인용한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의 말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무역 장관들은 이 협정에 서명하면서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수십억의 시민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조셉 스티글리츠 (경제학자, 컬럼비아대학교수)


[제약회사 VS 정부]

TRIPS는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생산자(특허권자)와 소비자의 이해관계의 균형을 이루는 아래와 같은 예외적 조항도 가지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예외적 조항을 둘러싼 제약회사와 정부 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 예외적 조항

  •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 : 공중보건과 같은 보편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이유로 제한된 기간동안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특허상품을 생산하도록 하는 행위
  • 병행수입(Parallel imports) : 특허권을 갖고 있는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를 통해 다른 유통경로로 상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


몇몇 국가에서는 자국의 보건 상황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이 불평등한 상황을 예외 조항을 실행함으로써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 특히 개발도상국은 예외적 조항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약업계의 엄청난 압력에 맞서 싸워야 했다. 이와 관련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의 사례가 등장한다. 1998년 2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남아공에게 TRIPS 위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남아공은 고가의 에이즈 특허약을 다른 나라에서 저렴한 가격에 수입해오는 ‘병행수입’을 시행하고 있었고, 이는 에이즈가 주요 사회문제였던 남아공에게 필수불가결한 조치였다. 제약회사들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짐과 동시에 국제 보건/인권 활동가, 에이즈 감염자 단체 등의 강력한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2001년 4월 제약회사들은 소송을 취하했다.

제약회사와의 싸움은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2019년, 대표적인 제약회사 Medtronic은 299억 달러(약 35조 6,100억원)을, Johnson&Johnson은 270억 달러(약 32조 1,500억원)을 벌어들였다.[1] 이처럼 막대한 수익을 내는 제약회사들은 국제제약협회연합(IFPMA)을 구성하여 특허에 대한 규제 및 임상실험, 의약품 가격 책정 등에 대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는 의약품을 판매하는 모든 시장에 영향을 미치며, 개발도상국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의약품 접근의 불평등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렘데르시비르는 특허권을 가진 제약회사 길리어드사이언스와 치료제를 공급하려는 국가들 사이의 갈등 속에 있다. 방글라데시는 강제실시권을 사용해 저렴한 가격에 제네릭을 생산하기 위해 준비중이고, 길리어드사는 강제실시권을 피해 유럽, 아시아 등의 나라에 특허권 사용을 허가하는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의 약품 가격평가기구인 임상경제평가연구소(ICER)은 렘데르시비르의 치료과정 당 비용을 4,400달러(약 540만원)으로 예측했다.[2] 코로나19와 같이 전세계적인 감염병에 대한 치료제도 단지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된다면, 그 어느 누구도 ‘건강을 사고 파는’ 불평등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영화에 비춰진 이 불평등은 우리와 동떨어진 제3세계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곧 마주하게 될 비참한 현실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사 입력 일자 : 2020-08-06


최수은 피움 기자단,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 justlikehannah@khu.ac.kr

최하영 피움 기자단,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생 / zakhar10200@gmail.com



[1] https://www.proclinical.com/blogs/2019-5/the-top-10-medical-device-companies-2019

[2] http://www.newspim.com/news/view/20200506000672

[3] 영화 상세 정보 : http://covid19shrff.org/portfolio-item/사고-파는-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