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다뷰[8호] 한국 국제개발협력 개혁, 강경화 장관에게 기대한다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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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제개발협력 개혁, 강경화 장관에게 기대한다


지난 6월 18일 강경화 전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가 문재인 정부의 초대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인사청문회를 전후로 지루한 공방전이 있었지만, 강 장관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큰 기대와 지지를 받고 임기를 시작했다. 임명과정에서 국제개발협력에 관계하는 개인과 단체들은 강장관을 강력히 지지했다. 2006년부터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고등판무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사무차장보 등을 지내며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인권과 인도주의 지원분야에서 활동한 강 장관이 역대 장관들보다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이해가 깊고, 개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여성으로서 보수적인 외교부의 유리천장을 깨고 장관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개혁이었다.    
 
제도의 변화에는 세계관과 규범적 신념으로서의 '아이디어'와 '정치적 구조' 그리고 '행위자'간의 조합이 영향을 미친다. 발전대안 피다는 10여 년 만의 민주정부의 등장, 국제개발협력과 관련한 다양한 아이디어의 분출, 핵심적 행위자로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등장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현 시기를 한국 국제개발협력 개혁의 적기라 판단한다. 강경화 장관은 한국 무상원조 주관기관이자 한국국제협력단의 상위 부처인 외교부의 수장으로서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과거 영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강경화 장관에게 제언을 하고자 한다.  
 
1964년 영국 총선거에서 승리한 노동당 출신 해롤드 윌슨(Harold Wilson) 총리는 바바라 카슬(Babara Castle)을 영국 해외개발부(Ministry of Overseas Development)의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 '영국 사회주의의 대모'라 불리는 정치가인 카슬은 노동당의 정책기조 위에, 오랜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영국의 식민지 문제와 아프리카의 독립문제를 연계했다. 카슬은 해외개발부가 그 당시 정부의 전 영역에 걸쳐있던 해외원조 정책과 관리에 대한 총괄책임을 가질 것을 주장하는 등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했고, 각 부처의 틈바구니에서 신생 해외개발부가 독립적인 부처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정부 부처 내 낮은 위상과 타 부처들의 견제로 큰 폭의 개혁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후 보수당 정부에서 해외개발부는 외교부 산하 기관으로 축소되었다가, 1997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제3의 길'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가 클레어 쇼트(Clare Short)를 독립적 원조부처인 국제개발부(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이하 DFID)의 초대 장관으로 임명했다. 쇼트는 국제개발부가 원조를 뛰어넘어 영국의 개발정책 전반에 대한 책임을 갖고 부처간 조정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내각회의에 참여하는 각료급으로서의 위상을 요구했고, 이를 얻어냈다. 이후 쇼트는 총리와 재무장관의 적극적인 지지 하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전 부처에 국제개발부의 요구사항을 우선수위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며, 영국 국제개발협력의 개혁을 이끌었다. 한 예로 쇼트는 정부 담당부처가 무기수출허가서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국제개발부와 협의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과거 1994년 보수당 정부에서 발생했던 무기수출과 원조제공의 연계로 영국 국제개발협력 개혁을 촉발시켰던 '페르가우 스캔들'의 반복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현재 영국 DFID가 국제사회에서 개혁적인 정책 추진으로 국제개발협력을 선도하는 기관이라는 평을 듣는 배경에는 이처럼 개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념적으로 준비된 집권당, 정치적 기회의 활용,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의 등장 이것이 영국 국제개발협력 개혁의 요체이다.
 
한편, 지난 2003년 일본 국제협력단(이하 JICA)에 역대와는 다른 총재가 부임했다. 10년간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으로 근무했던 사다코 오가타(Sadako Ogata)가 일본 국제개발협력의 새 수장이 된 것이다. 오가타는 약 8년 동안 JICA 총재로 재직하며 3S(Scale up, Speed up, Spread out)를 기조로 내세워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다. 오가타는 2008년 유무상 통합원조기관인 신 JICA 출범을 주도했고, '인간안보'를 새로운 이념으로 제시했으며, 평화구축을 강조하고, 많은 직원들을 현장에 내보내는 등 조직개혁작업을 진두 지휘했다. 오가타는 오랫동안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쌓은 안목과 경험, 전문성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일본 국제개발협력의 개혁과 통합을 이끌어 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오랜 보수정권 하에서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개혁의 길은 지지부진했다. 장관들은 역대로 국제개발협력에 큰 관심이 없었고, 전문성이 없는 대선캠프의 인사들이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에 낙하산으로 부임했었다. 10년 만에 들어선 민주정부에서는 무엇이 달라질까? 카슬과 쇼트, 오가타의 행보는 강경화 장관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이들은 국민과 임명자의 강한 지지 위에서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분명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인의 뛰어난 역량과 리더십을 활용해 개혁을 이끌어 갔다. 물론 단순하게 이들 개인의 노력만으로 개혁이 추진된 것은 아니다. 또한 개혁적으로 변모했던 영국과 일본의 국제개발협력이 현재 문제가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개혁의 단초가 이들에게서 기인한 것은 분명하다.  
 
현재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위기에 처해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활용된 ODA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어느 때 보다 낮다. 최근에 나온 ODA에 대한 감사원 보고서는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강경화 장관은 우리 사회의 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유엔에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활동을 통해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 한국 국제개발협력을 개혁해야 한다. 반쪽 짜리인 무상원조 담당부처의 수장이라고 스스로의 위상을 축소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과 타 부처 장관을 설득하고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적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장관 혼자서 하는 개혁은 오래갈 수 없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적폐를 해소하고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 나갈 개혁그룹을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시민사회는 이를 강력히 지지할 것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일본에는 오가타가 영국에는 쇼트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강경화가 있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6-30

작성: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