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다뷰[14호] 우리도 액터다!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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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액터다!


국제개발협력은 다양한 행위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각국 정부, 다자간협력기구, NGO, 기업 등이 주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행위자(Actors)로 여겨지는 주체들이다. 각 주체들은 각각 고유한 역할을 하고, 또 다른 행위자들과 협력 하면서 이 분야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개발협력의 행위자 목록을 보고 있으면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하나는 ‘왜 이들 이외의 참여자들은 행위자로 여겨지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가’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아닌 다수의 일반 참여자들의 역할은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위에 언급된 행위자들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하고 고려해야 할 행위자는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이다. 개발협력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개도국의 시민들은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우선적으로 시민 개개인의 삶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시민) 당사자들은 많은 활동에서 간과되거나 배제되기 일쑤이다. 가령 프로그램의 평가보고서를 발행하는 경우에 그 보고서를 그 나라 혹은 민족의 언어로 번역하고, 주민(시민)들과 함께 결과를 공유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의미 있는 연구가 이뤄지고, 성과를 확인한다 하더라도 정작 당사자들이 이를 확인할 수 없다면 이는 순서가 많이 뒤바뀐 것이 아닐까? 또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주민(시민)들의 의사는 얼마나 반영되고 있을까? 전문가들이 책상에서 임의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목적, 목표를 수립한다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사자들이 바라는 사회상과 삶의 내용, 구체적인 욕구가 담겨지지 않은 프로그램은 과연 누구를 위한 프로그램인가? 유용한 시설을 기간 내에 안전하게 완공하는 결과 못지않게, 당사자들이 프로그램에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잠재된 힘을 발견하고, 책임의식을 갖게 되는 체험의 과정이 중요하다.


개도국의 시민들뿐만 아니라 소위 공여국 시민들의 참여 역시 소중하다. 우리 정부는 연간 3조원이 넘는 ODA 기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고, 협력국에 어떤 영향을 만들고 있는지를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식통계로만 한 해 약 5천억원의 기금(조사대상 267개 단체 중 응답단체 127개 통계, KCOC 2015 한국 국제개발협력 CSO편람)을 집행하고 있는 NGO들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매년 재정통계와 몇 가지의 사례를 싣는 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책무성(accountability)은 설명책임을 넘어 증명책임을 의미한다. 국민의 세금과 후원자의 후원금을 집행하는 정부와 NGO들은 정보의 투명성을 넘어 성과와 영향을 증명하려 노력해야 한다. 또한 평가를 통해 발견한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 역시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개발도상국과의 교류활동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발도상국들과 교류활동의 의미와 그 활동들로 인한 의미 있는 변화들을 확인함으로써 우리사회가 잃어버리고 있거나 우리에게 부족한 가치와 이야기들을 발견하여 시민들의 삶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주목 받지 못하고 있지만, 귀한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는 주체들이 있다. 아무 보상이 없거나, 생활비 보조금 정도의 사례를 받으면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이나 선한 사명과 가치를 품고 최저생계비를 받으며 애쓰고 있는 NGO 실무자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20~30대의 청년들로 이루어져 있다. 장기봉사자만 하더라도 연간 2천여 명(코이카(KOICA) 봉사단 1,412명, 코이카 YP(Young Professional, 이하 YP) 410명, KCOC NGO봉사단 304명 등)의 청년들이 봉사자와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이카는 이 청년들에게 경력사다리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봉사단 → 코디네이터 → 전문가 순서로 경력이 쌓이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실제 성공사례는 많지 않고, 이 정책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싸늘하다. 1~2년 간의 인턴이나 봉사단 활동을 경험한 청년들의 반응은 더욱 냉소적이고 암울하다. 현장에 파견되어 보면 현지의 수요가 별로 없어 역할이 없는 경우, 봉사자인 줄 알고 갔는데 단체 실무자로 배치되어 현지인 직원들을 통솔하며 막중한 임무를 당당해야 했던 경우(심지어는 지부장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경우), NGO 본부에서 인턴(YP)으로 일하면서 적절한 업무교육과 지원체계 없이 사업담당자의 역할을 전담하다가 국제개발에 대한 관심마저 잃게 된 경우...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안쓰럽고, 미안해지는 사연들이다.


“국제개발협력 일은 제 꿈이었거든요...”,

“이렇게 떠나고 싶지는 않았는데...”,

“여기도 어차피 갑질이 난무하는데, 차라리 돈 많이 주거나, 퇴근시간 칼 같은데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우리사회에서, 좀 더 좁혀서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들에게 청년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들의 아픔과 고민을 경청할 마음과 의지는 있는 것인가? ‘부모보다 살기 어려워진 최초의 세대’라는 암울한 상황을 견뎌내며, 소중한 경험이나 경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찾아오는 청년들의 열정을 기관이나 단체들의 실적을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이카는 지난 4월 5일 일자리 위원회를 발족하고 청년 해외 봉사단 파견을 늘리기로 결정했으면서, 정작 위원 가운데 청년은 단 1명도 임명하지 않았다. 여전히 당사자인 청년의 목소리는 없었고, 청년은 일방적인 결정만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청년을 주체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실상이다. 혹이라도 청년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한국을 떠나 개도국에 머물러야 하는 청년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올 한 해, 발전대안 피다는 위의 고민들을 가지고 시민들과 함께 두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한다. 하나는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담은 국제개발협력의 준거기준을 수립하는 프로그램이다. 시민들로 구성된 조사팀을 꾸려서 캄보디아와 한국의 시민들, NGO활동가들, 정부관계자들, 기업들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원하는 변화와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하나의 준거기준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또한 국내의 시민들과 함께 주목받지 못해왔거나 목소리를 낼 기회가 부족했던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안을 모색해보는 시민토크를 10회에 걸쳐 진행할 계획이다. 비판과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부터 성찰하고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한 피다의 노력의 과정이 될 것이다. 다양한 시민과 주체들의 참여와 조언을 기대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5-31


작성: 김경연 발전대안 피다 공동대표 / kaykim707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