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야기[18호] ‘국제개발협력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정책’ 수립의 맥락과 의미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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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정책’  수립의 맥락과 의미



지난 1월 15일, 제32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이하 국개위)는 ‘국제개발협력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정책(이하 파트너십 기본정책)’을 심의·의결했다. 이는 한국 국제개발협력분야의 정부-시민사회 관계가 1995년 KOICA의 ‘민간단체지원사업’ 시작 이후 24년 만에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본 글에서는 ‘파트너십 기본정책’의 도입 배경, 추진 과정, 주요내용, 의미, 그리고 향후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1.    도입 배경

국제개발협력에서 시민사회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역사적 흐름


오랜 기간 동안 국제개발협력의 주도적 행위자는 ‘국가’였다. 공여국의 양자간 원조기관과 국제기구의 다자간원조기관이 다양한 측면에서 국제개발협력을 주도해왔다. 시민사회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주로 피해자들을 돕는 구호사업을 중심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국제개발협력의 중요한 행위자이자 정부의 파트너로 부각되었고, 2009년 가나 아크라에서 개최된 3차 원조효과성 고위급회의(HLF-3)는 시민사회단체(이하 CSO)를 ‘독립적 개발 행위자’로 명명했다. 2016년 OECD DAC 회원국들은 CSO를 통해 전체 ODA의 15%인 19,768백만불을 집행했으며, CSO는 정부와 다른 고유한 특성과 강점을 가진 핵심적인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
[1]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의 제도화


1950년대부터 일부 서구 공여국이 자국의 개발NGO에게 원조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는1980~90년대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제도화 되었다. 서구 공여국들은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신 정책의제’라는 정책 기조 하에, ‘NGO’를 신 자유주의적 민영화 정책의 대상이자 개도국에서 민주주의와 굿거버넌스를 성취할 요체로서 선택하고, 이들에 대한 재정지원을 담은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제도화했다.
[2] 2000년 들어 ‘원조효과성’ 정책담론이 확장되며, 공여국들은 그 동안 시민사회의 특성과 자율성 존중을 바탕으로 운용해 온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자국의 원조정책에 보다 더 조화(harmonize)시키고, 더 일치(align)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갔다.[3] 국제개발협력분야에서 정부기관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시민사회와의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정부 원조정책의 효과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맞추어나간 것이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성장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의 진행


한국 정부는 1995년 KOICA의 ‘민간단체지원사업’으로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KOICA외 다양한 정부 부처와 지방정부가 시민사회의 국제개발협력사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고, 이에 투입하는 재정규모와 프로그램 종류와 수는 갈수록 증대했다. 한국 시민사회는 오랜 기간 동안 전통적인 개발NGO 중심으로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했으나, 최근 사회적 경제단체, 여성단체, 환경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는 한국 CSO의 해외사업비 규모(지출기준)는 5,416.8억원으로 2017년 한국 ODA 예산 2조 6,359억원의 약 20.5%이자 2017년 KOICA 예산 7,713.06억원의 약 70.2%에 해당한다.
[4][5]  

한국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년 이상 대통령 후보캠프와 인수위를 대상으로 정부의 중기 국제개발협력 정책문서에 ‘시민사회 파트너십 정책’을 구성할 것을 주장해왔다.
[6] 그러나, 이 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제개발협력분야에서 독립적인 ‘시민사회 파트너십 정책’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고,  NGO 지원확대 방안이나 KOICA와 같은 수행기관의 개별적인 지원전략 마련 정도에서 머물렀었다. 이런 가운데 OECD DAC는 2017년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동료검토 수행 후 정부에 대한 정책권고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해, 권고사항 12항에 다음과 같이 한국정부와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을 규정할 ‘규범적 틀(partnership framework)’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    

 “ 한국정부는 이행파트너이자 독자적 개발협력주체로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역할을 인정하는 규범적 틀을 마련함으로써 시민사회와의 협력관계를 명확히 하고 심화 할 필요가 있다. ”
[7]



2.    추진과정 및 결과


정부의 공동작성 제안


2018년 4월, 권고사항 12항의 이행을 책임진 외교부는 오랜 기간 시민사회 협의체로 활동해온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이하 KCOC)와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이하 KoFID)에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프레임워크(이하 파트너십 프레임워크)’의 공동 작성을 제안했다. 정부가 시민사회를 정책 대상이 아닌 정책 형성자로 대한 것이다.

시민사회의 작성주체 구성


KCOC와 KoFID는 ‘파트너십 프레임워크’ 작성 과정에 한국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에 대한 설명회 등의 과정을 거쳐 13개 단체가 ‘파트너십 프레임워크 수립을 위한 시민사회협의회(이하 협의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협의회’에 참여한 13개의 단체는 KCOC(총 137개 회원 단체), KoFID(총 24개 단체) 등 협의체와 개발사업을 수행하는 개발NGO, 정책 애드보커시에 중점을 둔 시민사회단체 및 장애인단체이다.
[8]
‘협의회’는 타 공여국 및 국내 타 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사례 등 관련 연구를 통해 ‘파트너십 프레임워크’의 구성과 내용을 구체화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파트너십 정책’문서를 작성했다.
[9] 또한 이 과정에서 3번의 시민사회 대상 공개 간담회를 개최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공식적인 정책 문서채택


정부와 시민사회는 최종회의를 거쳐 정책문서 명을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정책’으로 확정했고, 이는 2019년 1월 제32차 국개위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부 - 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정책(안) 표지  ⓒ ODA KOREA 홈페이지



3.    구성 및 주요내용


‘파트너십 기본정책’은 Ⅰ.배경, Ⅱ.국제개발협력과 시민사회, Ⅲ.파트너십 목적 및 목표, Ⅳ. 파트너십 원칙, Ⅴ. 파트너십 이행방안 Ⅵ. 맺음말 등 총 6개 단락으로 구성됐으며 다. 구체적인 내용은 ODAKOREA
[10] 사이트의 32차 국개위 활동보고에서 볼 수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트너십의 목적은 ‘정부와 시민사회는 개발도상국의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Leave No One Behind) 지속가능한 발전과 인도주의 실현을 도모한다.’ 로 설정했다. 이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담고 있는 핵심정신과 국제개발협력 기본법상의 ‘기본정신’의 실현을 중심에 둔 것이다. 또한 파트너십의 목표로, ‘개발효과성 제고, 투명성과 책무성 강화, 취약층에 대한 포용성 및 형평성 강화, 국제개발협력 인지제고 및 국민참여 활성화’를 설정했다. 정부와 시민사회 양자가 가져야 할 파트너십 원칙으로 ‘상호존중과 신뢰, 상호보완성, 독립성 및 자율성존중, 상호학습, 현지환경 존중’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파트너십의 목적과 목표를 실현할 구체적 이행방안으로는 ‘효과적인 국제개발협력 이행, 투명성과 책무성 제고, 취약층 우선지원 및 협력확대, 국제개발협력 인지제고 및 국민참여확대’를 제시했다. 그리고 맺음말을 통해 이후 ‘구체적 이행방안과 전략을 수립’할 것과 ‘추진현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것’을 명확히 했다.  



4.  의미


‘파트너십 기본정책’ 문서는 다음의 네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한국 국제개발협력 역사상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의 규범적 틀을 정리한 최초의 포괄적(overarching) 정책문서이다. 지난 1995년 KOICA가 민간단체지원사업을 시작한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국제개발협력분야 정부-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의 목적, 목표, 원칙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파트너십 이행방안을 구체화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이 이미 오래 전에 제도화된 반면, 이를 규정하는 규범적 틀은 거의 한 세대 정도 흘러 정리된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둘째,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작성한 정부 정책문서이다. ‘파트너십 기본정책’은 정부가 공동작성을 제안하고 시민사회가 이에 응해 완성됐다. 양자간의 파트너십을 담은 정책문서 작성과정에서 시민사회가 의견을 제시하는 정책대상이 아닌, 직접 정책을 구성한 주체였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있다. 시민사회에게 공동작성을 제안한 정부의 자세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셋째, 국제개발협력에서의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을 진보시켰다. 현재 정부와 시민사회 파트너십은 한국 개발NGO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 정책 문서는 ‘Ⅴ. 파트너십 이행방안’에서 ‘개발도상국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공식화 했다. 이는 궁극적인 발전의 주체가 개도국 자신이며, 공여자들은 이들과 협력하는 존재라는 국제사회의 담론을 반영한 내용이다.  


넷째, ‘파트너십 기본정책’ 작성을 가능케 한 결정적 행위자는 국내 주체가 아닌 OECD DAC이다. 시민사회는 2000년대부터 꾸준히 정부에게 ‘시민사회 파트너십 정책’을 구성할 것을 주문해왔다. 이 요구가 오랜 기간 동안 반영되지 않은데 비해, OECD DAC 동료검토 권고라는 외부 기제가 결국 정부를 움직였다. 우리 정부가 정책변화를 꾀하는데 있어 당사자가 아닌 국제 사회라는 외부의 시선에 더 민감하다는 현실이 다시 한번 확인 됐다. 이행여부가 확인될 OECD DAC 권고사항이 아니었으면 정부가 정책문서 작성에 이리 적극적이었을까?  


▲ 개발협력분야 시민사회 정부간 파트너십 프레임워크 수립을 위한 제 2차 시민사회 간담회 ⓒ KCOC 홈페이지



5.  향후 주목할 점


‘파트너십 기본정책’은 한국 국제개발협력에서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명확히 ‘파트너’로 규정했으며, 향후 파트너십의 방향과 내용을 제시하는 기준을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의미가 실제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첫째, ‘파트너십 기본정책’ 수립 자체가 최종성과가 아닌 출발점이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목적과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이행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Ⅵ. 맺음말’에서 명기한 ‘구체전략과 이행방안’을 수립하는 작업을 늦지 않게 실행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파트너십 기본정책’ 의 내용을 2021년부터 적용될 ‘3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21-2025)’ 및 ‘2020년 종합시행계획’에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또한 외교부, KOICA 뿐만이 아닌 시민사회의 국제개발협력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 및 산하 시행기관과 서울시, 경기도 등 지방정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도 구체화해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의 책임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파트너십 기본정책’은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지원을 제도화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의 실질적인 내용이 담긴 ‘Ⅴ. 파트너십 이행방안’ 아래 4개 항목의 주어는 ‘정부와 시민사회’이다. 즉, 시민사회는 정부와 더불어 정책 이행에 대한 공동책임자이다. 시민사회는 이를 명심하고 ‘파트너십 기본정책’의 내용들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 2019-01-31


작성 :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공동대표 / hanlight@hanmail.net



[1] KCOC. 2018. 시민사회를 통한 ODA 집행현황. 국제개발협력 이슈팡팡. 제 52호

[2] Lewis David., and Nazneen Kanji. 2009.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and Development. New York: Routledge

[3] Nijs Leen., and Robrecht Renard. 2009. "Reforming government funding of development NGOs, A comparative analysis of eight European donors." University of Antwerp working paper.

[4] KCOC. 2018. 2017년 한국개발협력CSO편람

[5] 한재광. 2018. 2017년 한국개발협력CSO편람 토론문. 2018년 국제개발협력학회 동계학술대회

[6] 한재광. 2018. 국제개발협력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의 흐름. 2018. 국제개발협력 분야 시민사회-정부간 파트너십 프레임워크 수립을 위한 시민사회 간담회 자료집

[7] 외교부. 2018. OECD 개발협력동료검토 대한민국 2018

[8] 고앤두 인터내셔널, 굿네이버스, 더프라미스, 발전대안 피다, 비에프월드, 세이브더칠드런, 지구촌나눔운동, 하트하트재단, 한국월드비전, 한국장애인연맹, 휴먼인러브, KCOC, KoFID

[9] 2018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협의회’는 정부와의 회의를 총 6차례, 자체 회의를 19차례 개최했다.

[10] 제32차 개발협력위원회 -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부 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정책 원문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