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17호]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시리즈 7회차 후기: 국제개발협력의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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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시리즈 7회차 후기

국제개발협력의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아디, 어필 그리고 피다이야기-


지난 5월부터 선보인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시리즈가 지난 11월 8일 국제개발협력의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편에서 벌써 7회차에 이르렀다.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길> 시리즈는 올 한 해 동안 아름다운 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제개발협력 분야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사람(actors)의 목소리와 불편하지만 꺼내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분야 내의 다양한 이슈들을 이야기하고자 기획된 행사이다.


이번 행사가 기획되고 열렸던 시점은 11월 초로 발전대안 피다(이하 피다)의 창립 12주년이자 ODA Watch에서 피다로 전환한 지 꼭 2주년이 된 시점이었다. 이에 행사 참가자들과 기념 떡을 나누고, 말미에는 간소하게 기념식을 같이 했다. 피다로 전환 후 지난 1년간은 회원들이 직접 참여해 ‘피다의 활동 방향을 세우는 회원 워크숍’을 진행했고 올해는 워크숍 결과들을 종합해 단체의 중(장)기 전략 문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요즘 이 문서를 만들어 가는 와중에 드는 큰 고민은 ‘발전대안’을 말하는 피다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어떻게 우리의 활동을 알려 참여를 설득시킬 것인가’이다. ODA Watch 시절, ‘개발과 원조에 대한 설명과 설득도 어려운 가운데,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가’ 라는 한 회원의 질문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 요즘이다.


이에 피다가 생각하기에 함께 고민을 나눠 줄 수 있고, 지향점과 결이 비슷한 단체들을 찾은 끝에 ‘어필(공익법센터 어필: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 APIL, 이하 어필)과  ‘아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Asian Dignity Initiative, ADI, 이하 아디)’ 에게 연대를 요청했다. 이들은 국제개발협력 단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넓게 보면 분야 안에 속한 단체들이었다. 이들이 세운 정체성과 그에 따른 여러 활동이 굉장히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기존의 개발 단체들과는 다른 활동 방식들과 독특한 문화를 보였다. 시민들과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SNS 활동이나 행사 기획, 모금 활동 등이 새롭고 친숙하며, 신선하게 다가왔기에 여러 경험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두 기관은 어떤 언어로 그들의 비전과 미션을 세웠을까?’, ‘어떻게 활동으로 풀어나가고 있을까?’,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를 조직문화에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시민들에게 그들의 활동을 어떻게 설득하고 참여하게 할까?’ 등의 질문들이 앞다투어 떠오르며 피다가 배우고, 부딪히며 시도해봐야 하는 것들은 없을지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가고 있는 이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펼쳐보았다.


▲ 국제개발협력의 경계를 허무는 사람들 편 행사현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하니, 정신영, 공선주, 이재원) ⓒ 발전대안 피다



아디가 걷는 길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아디의 공선주(이하 별빛) 활동가는 한 불교 기반 개발 NGO에서 오랜 시간 실무를 맡아왔으나 본인의 뜻과 가치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단체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뜻 맞는 활동가 3인과 함께 공동으로 아디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디는 로힝야 난민을 대상으로 한 인권실태조사와 심리치유,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 곳곳의 분쟁과 재난, 인권침해 지역에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며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현장 활동가 및 피해자와 함께 하는 단체이다.


별빛 활동가는 설립자 4인의 자발적 시작으로 단체가 설립되어 각자의 활동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 조직이다 보니 그에 따른 조직문화 특징으로 자발성과 자기 주도성, 유연성, 보람과 가치를 주요 키워드로 꼽았다. 이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자발적 참여를 근간으로 하며, 사람 중심, 과정 중심의 활동을 통해 평등한 협력관계를 지향’ 한다는 아디의 활동원칙과도 잘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한 예로, 일반 조직에서 활용하는 것처럼 직책과 직위로서 조직 구성원을 대하거나 부르지 않고, 고구마/기남킴/라이언/별빛/셀림 등의 별명으로 부르며, 평등한 협력관계를 지향하고 있었다.


현장 중심의 회원 소통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시의성 높은( 이슈들을 찾아 영상으로 생동감 있게 활동 소식과 결과를 전달하거나 함께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일례로, 로힝야 난민들과 함께 한 심리치유 활동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어 실시간으로 공유하거나 팔레스타인 이슈에 관심 있는 회원 및 시민들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평화 여행을 하는 등 누구나 참여 가능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을 보장하고 있었다.  



어필의 놀림, 울림, 살림


다음으로 올해부터 어필의 대표를 맡게 된 정신영 변호사의 발표가 있었다. 정신영 대표는 어필의 대표는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라고 설명하며 모두가 주인인 어필의 남다른 조직문화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막연히 좋은 일을 하고 싶었던 평범한 회사원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정신영 대표는 어필을 만나 사회의 여러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필은 난민과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해외 한국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 등 우리 사회의 취약한 이주민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일을 하는 비영리 공익변호사 단체이다.


정신영 대표는 이번 행사에서 단체의 활동 소개를 넘어 가치를 담은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신선하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며, 놀림 그리고 울림, 살림의 키워드로 단체를 소개했다. ‘놀림’의 경우 취약한 이주민들에게 필요한 소송, 연구와 입법 활동, 국제인권메커니즘 활용 등의 주요 활동들을 지칭하는 말이고, ‘울림’의 경우 다양한 홍보 활동들을, ‘살림’은 단체 운영에 필요한 행정 관리 등을 지칭한다고 설명했다. 딱딱한 사업 용어가 아닌 예쁘고, 아기자기한 단어 사용에서부터 어필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듯했다.


어필의 조직문화와 울림 활동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누구나 자신의 귀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환대문화와 부지런한 SNS 활동이었다. 어필은 사무실에 누군가가 찾아올 때 가장 예쁘고 귀한 잔에 차를 담아 대접을 하고, 연차보고서와 단체를 소개하는 팜플렛 등도 많은 공을 들여 질 높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껏 아이디어를 모으는 작업을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늘 있는 손님일지라도, 매번 제작하는 팜플렛 일지라도 받아보는 사람들이 기분 좋게, 또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어필의 성의가 느껴졌다.


울림 활동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활용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어필은 단체의 활동만을 콘텐츠화 하는 것이 아니라 출장지에서 찾은 맛집이나 전기자전거 시승기 등 시민들에게 정보와 재미까지 전달할 수 있는 친숙한 콘텐츠들도 생산해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고 익숙하게 다가가고자 했다. 정신영 대표는 사실 아직 맛집 정보에 대한 구독 수와 조회 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더 많은 대중이 어필의 활동에 조금씩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신영 대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기술들을 잘 살펴보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며 다시금 어필의 유투브 채널 구독도 해주면 더욱 좋겠다는 말을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사람이 꽃피는 피다’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피다에서 시민활동가로 시작해 실무자로까지 8년간 활동해왔던 필자(이재원 애드보커시팀장)의 발표가 있었다. 피다가 ODA Watch에서 피다로 전환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의 고민들을 나누면서 다소 활동하기 어려운 요즘의 사회 환경과 피다의 약점, 강점들을 진솔하게 풀어갔다.


▲ 발표중인 이재원 팀장 ⓒ 발전대안 피다



필자는 먼저 생존 이상의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과 성장집착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질 낮은 고용정책과 근로환경들을 피다가 마주하고 있는 부정적인 사회 환경들로 정리했다. 또한, 단체의 약점으로 재정의 한계와 인력 부족 문제, ODA 이외의 전문성 부족 등을 말했다. 그러나 한국 국제개발협력 내 애드보커시 전문 기관으로 활동해온 12년의 역사성과 이제는 발전(개발)의 철학과 가치를 정립해 나가자고 말하는 활동의 특수성, 높은 인지도와 꾸준한 회원들, 민주적인 조직문화 등이 피다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실제로 피다에서는 수평적 관계로 진행되는 구성원들간 의 토론 문화와 만장일치로 의견을 합의하는 등의 조직문화를 유지해오고 있다. 더욱이 적은 실무진으로 이렇게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피다의 방향과 가치에 동의하는 많은 활동가의 자발적인 참여로 단체의 활동을 만들고, 채워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피다가 앞으로 더 단단한 활동 토대를 마련하려면 앞으로 발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지지자를 늘리고, 이를 최대한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고, 시대에 맞게 매체를 잘 활용하고, ODA를 넘어서 활동 범위와 전문성을 넓히려는 시도를 계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친구처럼


각자의 정체성에 맞게, 그리고 지향하는 가치에 따른 활동을 충실하게 해나가는 두 기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피다가 조금 더 문턱을 낮춰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어려운 주제를 다룬다는 핑계로, 그래도 피다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안도감으로 시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노력을 많이 기울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시대와 사람들의 변화, 미디어의 여러 변화을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겠다는 생각도 컸다. 트렌드를 읽고, 기술을 익혀가는 것 또한 단체의 생존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겠다는 위기감을 느껴서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아디와 어필이 지켜가고 있는 조직 내 수평성과 자발성, 존재의 귀함 등 조직 내에 중요시하는 가치들이 피다 안에서도 소중히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지만 그간 이를 잘 드러내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껏 마음과 의욕과는 달리 서툴고 투박하게 해서일까? 두 조직의 좋은 점들을 우리 안에 잘 녹여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에 연대의 계획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답을 고민하다 보니 이미 아디와 어필, 피다는 함께 뜻을 모아 활동을 하고 있었다. 부러 모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지향하는 사명과 가치를 좇다 보니 어느 순간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댐 사고 대응 한국시민사회 TF’ 자리가 바로 그 자리였다. 각자가 걸어왔던 사람을 향한 걸음이 자연스럽게 합쳐진 것처럼 앞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든든한 친구가 되길 바라본다.



기사 입력 일자: 2018-11-30


작성: 이재원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 / tony5jw@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