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13. 바람이 바뀌었다.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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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하동훈


백여 미터가 채 되지 않는 재래시장 골목에는 기름 짜는 냄새, 김 굽는 냄새 보다 더 은은한 사람 냄새가 있고, 오래된 주택과 다세대 빌라들이 있어 ’동네’라는 낱말이 참 잘 어울리던 이곳에 예년과는 다른 초겨울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가을, 재개발 확정 소식이 들리더니, 순식간에 골목마다 공사중 울타리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초저녁이면 모퉁이에 둘러앉아 자식과 손주 이야기에 여념이 없는 어르신들이 있던 골목, 아이들이 친구와 엄마와 재잘거리며 함께 등교하던 골목, 뻥튀기 트럭이 근처 어머니들을 불러 모으던 골목에 돌덩이와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하다.



어둠이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한 골목을 잰걸음으로 가는 남자가 보인다. 어린이집 현관에서 이르자, 안에서 달려 나오는 아이를 번쩍 들어 꼬옥 안아준다. 이제 보니 다른 사람보다 걸음이 유달리 빨랐던 이유를 알 듯하다. 아빠는 며칠 사이 더 짧아진 해와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아이가 더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마음을 썼을 것이다. 


가방을 받아들고 다정하게 손을 잡아 주는 아빠를 만나니 아이는 이제 더 바랄 게 없다. 아빠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대수롭지도 않은 이야기를 아빠는 차분하게 들어준다. 신이 나서 골목을 내려가던 아이의 걸음을 아빠가 잠시 멈춘다.


공사장을 옆을 지나가려니 혹시 아이가 미끄러지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신발을 고쳐신겨 준다.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하고 지낼 수 있도록 매 순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일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더욱 편리하고 안전한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루의 고단함도 달게 받아낼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것들을 들이는 일로 인해 오랜동안 서서히 쌓여온 ‘정취’까지 마구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도 씁쓸하다. 


나의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남아있게 되고, 나는 무슨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사진 & 글: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가 사진가

donghoon.ha.micha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