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포스트코로나 특집 (1)] 양동화 운영위원 인터뷰 “코로나 시대의 개발협력이요? 대학교 시험 문제 같아요”

2021-08-26
조회수 2788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2년째.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가 혼란스러웠던 지난 해, 피다는 재난 속에서도 대안을 찾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며 분투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자리들을 마련했었다. 상반기에는 피움 지면을 통해 <멈춘 시간 속에서 알게 된 것들 – 한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의 기록> 시리즈를 연재했고, 하반기에는 온라인 토크콘서트 <코로나19 재난 속,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다>를 열었다. 그로부터도 1년이 또 지난 지금, 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작년에 이야기를 나눠 주었던 활동가들을 한 명씩 다시 만나 보기로 했다.



포스트코로나 특집 (1)

“코로나 시대의 개발협력이요? 대학교 시험 문제 같아요”

- 발전대안 피다 양동화 운영위원 인터뷰


📌 관련 기사 _ [피움 25호] 4. 행사 후기 : 코로나19 재난 속,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다! (2020.10.) (링크)



어느 여름 밤, 피움 기자단은 피다의 양동화 운영위원님을 만났다. 첫 만남부터 밝고 쾌활했던 모습에 매료되어, 인터뷰를 하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듯했다.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서, 또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하고 당차게 살아가고 있는 양동화 위원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안녕하세요! 저희는 피움 기자단입니다. 간단히 위원님의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저는 피다 운영위원이라는 자리에서 부족하고 게으르게 일하고 있고요. (웃음) 지금은 제주도에 살고 있어요. 서울에서 내려온 지는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오늘이 딱 두 달째 되는 날이네요.


피다와는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으셨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에는 어떤 계기로 발을 들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시민단체에서 교육 운동을 했어요. 시민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죠. 시민들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연장선에서 평화 교육 운동을 하기 위해 동티모르에 파견을 갔어요. 

그러다가 개발협력의 방향이나 목적, 비전이 불명확하고 불편했던 부분들에 목소리를 내주는 ODA Watch 활동들을 눈여겨 봤어요. 내가 선한 의지로 왔다고 해서 결과가 다 선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 (워치가) 교육도 하고, 활동가들끼리 네트워크도 형성하고, 어쨌든 제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ODA 활동에 대해 감시를 하는 등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기 운영위원으로 제안을 받았어요. 제가 힘들었을 때 많이 위로가 되어 준 단체이기에 기꺼이 수락했죠.


동티모르에 계셨었군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동티모르에서는 태양광 사업을 했었어요. 제가 있던 곳은 완전한 시골이라, 마을 사람들은 전기를 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열심히 사업을 도왔죠. 사실 태양광 에너지가 생각만큼 효율적이지는 않아요. 패널만 반영구적이지 그에 딸린 부품들은 다 소모품이거든요. 수명을 다한 부품들은 처치 불가능한 위험한 쓰레기가 돼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을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하지만 좋았던 기억도 있어요. 무거운 기자재를 나르는 걸 마을 청년들이 늘 도와줬는데, 어느 날 제가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는 거예요. “너는 어딜 가나 마을 사람들이 고맙다고 하고 커피도 주고 그러지? 우리도 이걸 하면 옆 마을 사람들이 고맙다고 하면서 커피도 주고 과자도 주고 그래. 우리가 네가 된 기분이야.” 

그 대답이 저에게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어요. 저도 이 사람들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시혜적인 마인드가 있었던 거예요. 이들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봉사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데, 내가 주는 걸 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어요. 누구나 베풀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게 받는 것보다 행복한 건데 말이죠. 

또 동티모르에서 사회적 기업 형식의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었어요. 동티모르는 카페가 많은데 가격이 한국 카페 수준으로 비싸서 현지인들은 잘 이용하지 못해요. 그래서 다른 가게에서 2.5달러 받는 아메리카노를 75센트만 받고 시중의 3분의 1 가격으로 카페를 운영했어요. 사업에 같이 참여했던 분들은 수익성이 없다고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했지만, 저는 이 사업이 수익 창출도 중요하지만 동티모르 청년들을 위한 공간과 문화, 커피 산업의 학습이 더 중요한 목적으로 있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간이나 물질이 지속되는 게 지속가능성일 수도 있지만 얼마나 불안정한 지속성이겠어요. 그렇지만 정신이나 문화 같은 가치가 지속되면 공간과 형태는 변하겠지만 오히려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며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지속가능성이라고 보거든요. 카페를 운영하면서 카페 문화를 알리고, 카페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카페라는 장소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생겼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작년 10월에 진행됐던 피다의 온라인 토크콘서트 <코로나19 재난 속,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다> 행사에서 팬데믹으로 인한 사업 현장의 어려움들을 여러 가지 이야기해 주셨어요. 혹시 작년과 비교해서 상황이 개선되거나 더 어려워진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 국제개발협력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한국인들이 빠진 이후에 사업을 이어 나갈 현지 인력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개발협력 단체들의 빈부격차가 보였어요. 규모가 작고 재정이 탄탄하지 않은 단체들은 YP 같은 단기 인력 지원 프로그램에 의존해서 파견 인력을 수급하다 보니 (그런 지원에 차질이 생기면) 사업이 축소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어요. 

또한, 그간 한국 ODA의 규모와 더불어서 단체들이 수행하는 개발협력 사업들의 규모도 확대되어 왔는데, 질적 성장 없이 양적 성장만 추구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현지에서 감당할 수 있는, 현지 역량에 맞는 규모의 사업을 해야 하는데 너무 큰 예산이 들어가는 대규모의 사업들을 하다 보니 그걸 관리할 한국인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고, 그게 다시 현지의 역량 강화를 가로막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굳이 한국 사람들이 가지 않아도 현지 역량으로도 충분히 수행 가능한 프로젝트들이 생겼으면 해요. 그리고 한국 인력이 없어도 한국 ODA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업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인이 아예 파견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떤 형태로 파견되느냐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현장을 배워 가고 경험하는 신규 인력이나 단기 인력이 현장에서 소장의 역할들을 하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고민이요.


한국 인력의 존재가 현지의 주인 의식 강화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겠네요. 작년에도 주인 의식의 문제를 중요한 과제로 지적하셨는데, 직접 참여하시거나 지켜보셨던 활동 사례 중 주인 의식 제고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있었나요? 

저는 주민 회의를 위해 정말 노력했었어요. 그런데 결국 회의에 오는 사람들은 마을 유지거든요. 정말 평범한 마을 주민들은 회의에 안 와요. 그래서 3년 동안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은 마을의 젊은이들이 마을 유지들한테 대드는(웃음) 좋은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어요. 프로젝트를 잘 완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를 자신의 프로젝트라고 여기는 데 이 과정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결국은 자발적인 참여가 주인 의식의 제고에 도움이 되는 거죠. 프로젝트 시행 기관이 아니라 진짜 당사자인 마을 주민들이 사업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요.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의 상황이 단기적인 위기가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고 또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게 명백해 보이는데요. 이런 점에서 개발협력(혹은 시민사회)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동티모르에 있을 때 제가 했던 고민은 이거였어요. 개발협력으로 사회(국가)의 발전을 이룬다는 거대한 담론도 필요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마을 단위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더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티모르처럼 대부분의 의식주와 생활 필수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마을은 작은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나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대단한 것들을 먹고 입고 살고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굶어 죽지 않고, 비 맞지 않고, 헐벗지 않고, 그렇게 의식주가 해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을 안에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코로나를 겪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위드 코로나라는 건 너무 어려운 과제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쨌든 개발도상국은 의료 인프라가 열악하니까요. 하지만 의료 인력을 파견하고 의대를 세운다고 당장 해결되는 게 아니라, 국가 인프라를 비롯해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 플랜을 가지고 가야 하잖아요. 그런 장기 플랜도 필요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발전이 필요하지만 이렇게 코로나 시대에 외부와 단절되어도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다시 코로나든 전쟁이든 어떤 외부 상황에서도 내성을 갖추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꿔 봅니다. 


그렇다면 혹시 개별 활동가들에게 있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중요하게 요구되는 자질이나 미덕이 따로 있을까요?

코로나 얘기 너무 어려워요. 대학교 시험 문제 같아요. (웃음) 저는 코로나 시대의 변화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코로나든 아니든 활동가는 이래야 하고 국제개발협력은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어요. 코로나가 종식이 되든, 위드 코로나처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든, 다시 하늘길이 열리면 우리는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할 거거든요. 코로나 이전부터도 평소에 우리는 이래야 한다고 늘 생각하던 게 있는데, 그 기본을 못하면서 자꾸 혁신과 변화를 얘기하는 것에 대해 저는 조금 비판적이에요. 기본이 되어 있는지 묻는 성찰이 먼저인 것 같아요

굳이 특별히 더 필요한 걸 꼽아 보자면 현지 네트워크, 현지 협력 체계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 NGO들은 현지 NGO들하고 네트워킹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코로나 시대에 개발협력 활동가들이 더 잘해야 하는 건, 가면 사람 많이 사귀고 현지 NGO들과 많이 네트워킹을 하는 것. 그러면 지금처럼 한국 사람들이 파견되지 못할 때 현지에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충분히 협력해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미래에 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후배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그 기본적인 소양은 무엇인가요?

미래의 동료가 될 여러분들께 딱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부탁은 사회에 관심을 가지라는 거예요. 국제개발을 하는 친구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과 국가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아요. 내가 발 딛고 사는 지역의 이슈에 관심이 없는데 해외 어디를 가서 지역을 변화시키고 뭔가를 한다는 것이 좀 모순적이죠. 개발협력이라는 게 꼭 해외 현장에 나가서 국제 이슈를 다루는 것만 해당되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사는 한국 사회 내에서도 서로 연결돼 있는 무수히 많은 이슈와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면서 왜 밖에 나가서 그런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그 괴리에 대해서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부터 다양한 이슈와 활동에 관심을 갖고, 모든 것을 꼭 해외에 나가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기서부터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코로나 얘기를 정말 딱 한 번만 더 하자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서 예비 활동가들이 특히 준비해야 되는 것 한 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백신 맞아라. (웃음) 하나 더 이야기를 하자면, 간단한 거지만 안전 문제예요. 많은 활동가들이 지나치게 안전에 민감하거나 지나치게 안전에 불감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때 안전에 대한 매뉴얼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와야 하나 말아야 많이 우왕좌왕했죠. 그래서 나올 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떠나면서 현지도 힘들었지만, 활동가가 겪은 상처와 아픔도 있었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안전에 대한 감각을 기르고 매뉴얼을 잘 수립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죠. 활동가들도 안전 이슈에 대한 대처 능력 또한 자기 전문성이라 생각하고 잘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단체와 활동가들이 함께 연구하면서 안전 문제에 대한 감각을 키워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전쟁과 테러를 비롯한 수많은 위험들이 늘 도사리고 있는 현장에 나갈 거니까요. 


활동가 선배님의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는 조언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활동가들이 세계시민성을 길렀으면 좋겠어요. 개발협력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세계시민성이 자동으로 탑재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계시민성을 가지라는 게 마지막으로 활동가들과 개발협력 단체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함께 나눈 대화를 통해 그녀가 그동안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신만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솔직하게 개발협력에 대해 풀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 19가 우리 삶에 들어 온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로 인해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본에 충실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개발협력 분야에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터뷰 진행/정리: 피움 기자단 2기

유하랑 (hara1201@hanmail.net)

최수은 (justlikehannah@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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