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17호] 르완다 커피 비즈니스 현장에서 지속가능성을 묻다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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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커피 비즈니스 현장에서 지속가능성을 묻다


지속가능성과 커피

최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함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언급이 잦아졌다. 많은 기업이 비즈니스에 지속가능성을 가치로 담기 시작했고 기업의 사회책임(CSR), 기업의 공유가치창출(CSV)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국제개발 단체, 기관들도 SDGs의 세부 목표를 활용하여 단체의 사업을 설명하며 얼마나 자신들이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 소개하기도 한다.


필자가 ‘사회적기업’, ‘공정무역’, ‘커피 비즈니스’라는 세 가지 분야가 겹친 곳에 일하면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커피 비즈니스에서도 ‘지속가능성’이 회자되고 있다. 생협과 윤리적 소비 기관들은 물론, SDGs 등장과 함께 공정무역 기관들도 공정무역이 어떻게 SDGs에 기여하고 부합하는지 설명한다.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스페셜티(Specialty) 커피 업계에서는 ‘지속가능한 커피(Sustainable Coffee)’라는 주제로 SDGs 못지않게 심각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즈음에서 궁금해진다. 기업들이, 비즈니스 이해관계자들이 그 비즈니스를 지속가능하게 바꾸고자 하는 것은 정확하게 어떤 부분일까. 그리고 그 지속가능성은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성일까, 아니면 일부를 위한 것일까. 일부라고 했을 때, 그렇다면 그 일부는 누구일까.


현대의 한국과 같은 소비국가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대다수 그러하듯, 커피는 전 지구적으로 산업화된 비즈니스의 상징 중 하나이다. 커피는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2번째로 가장 거래가 많이 되는 상품이자, 약 3천만 명의 농부가 재배하는 상업 작물이며, 세계 5억 명 이상이 마시는 기호식품이다. 전 세계 커피 시장의 규모는 이미 2013년에 2천조 원에 달했고, 소비량은 85억 톤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85억 톤의 커피를 3천만 명 정도의 소농들이 재배하여 전 세계로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농부들이 받는 지금의 커피가격은 40년 전인 1980년대와 차이가 없다. 이는 지금도 전 세계 커피 농부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이들은 더 이상 농사를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되었다. 즉 향후 50년 후에는 커피를 마실 수 없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거대한 커피 시장을 움직이는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커피를 지속가능하게 재배하여 비즈니스를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지속가능성은  커피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글로벌 커피 비즈니스에서의 지속가능성 이슈가 소농들의 삶에선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르완다 농부들의 사례를 통해 그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르완다 커피 농부들의 덫


르완다는 커피로 유명한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의 옆에 위치해 그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커피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소득원인 나라이다. 또한 지리적으로 에티오피아, 케냐와 같은 동아프리카로 커피를 재배하기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고, 품질 역시 뛰어나 스페셜티 커피로 대부분 해외로 수출된다. 아프리카 커피를 떠올릴 때 소비자들이 ‘르완다’를 제일 먼저 떠올리진 않지만, 이 나라에서는 ‘커피’가 가장 큰 비즈니스이다. 한국의 1/4만 한 크기의 국토 구석구석 커피가 재배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국토 자체가 작아 대규모 농장을 설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농 대다수는 협동조합 형태로 커피를 가공하여 판매하고 있다. 생산자 협동조합은 주로 행정구(District)별로 구성되어 있고, 르완다 정부는 커피의 품질관리와 투명성을 위해 최근에 커피 재배를 위한 지역(Zone)을 새롭게 정비하고 각 지역에 커피 가공시설을 배치하는 등의 관리를 하고 있다. 이는 커피의 생산과 추적 가능성(Traceability)을 높여 상품 가치를 높이려는 정부의 노력과도 맞닿아 있다. 이처럼 커피 비즈니스 자체가 국가 전체 GDP의 32%를 차지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상품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좋은 품질의 커피 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수세식 가공시설(Washing Station)을 지역(Zone)마다 2개씩 배치하고 생산되는 커피의 품질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현장에서 정부의 노력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가치사슬 가장 아래 생산자인 ‘농부들의 거래’ 단계로 내려오면, 비즈니스 고유의 성격이 극대화되어 정부가 많이 개입하지 못하게 된다. 사실 이 단계가 르완다 농부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


커피는 일 년에 한 번 수확하는 작물로 르완다에서는 1~3월경에 수확해서 가공 및 건조를 통해 5월경부터 판매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다수 커피가 수출품으로 품질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워싱스테이션이라는 가공시설을 중심으로 커피의 수매, 가공, 판매를 한다. 협동조합이 워싱스테이션을 소유하고 있으면, 조합원인 농부들은 협동조합에 커피 열매를 판매하고 협동조합은 가공을 한다. 이를 위해 조합은 커피 열매를 수매하기 위한 종잣돈이 필요한데, 대다수 조합은 스스로 커피 열매를 살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커피가 거래하는 르완다 커피 협동조합인 쿠카무(COOCAMU)조합의 경우, 설립된 지 8년 차 신생 조합으로, 농부인 조합원이 386명이며, 연간 30톤의 커피 생두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이를 생산하기 위해 맨 처음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구매해야 하는 커피 열매는 200톤이 조금 넘고, 필요한 금액은 총 한화 8천만 원 정도가 된다. 당연히 협동조합은 이런 규모의 자금을 보유하지 못해 빌릴 곳을 찾지만 소규모 조합은 지역 은행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다. 특히 약속된 구매계약이 담보되지 않은 경우, 즉 판로가 없는 경우는 대출이 아예 불가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합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해외 거래처를 개척하던지, 지역 은행 외 개발은행 등 다른 곳에 대출을 얻는 등 두 세가지 정도인데, 대다수는 다음의 한 가지로 귀결된다.


사실, 이와 같이 농부들이 직접 접근할 수 있는 판로는 매우 제한적이다. 앞에서 강조한 대로 커피는 고도로 산업화된 상품이어서 협동조합이 가공한 파치먼트(parchment) 커피(파치먼트는 중간 단계로, 도정되지 않은 쌀과 같은 개념이다.)를 사들여 이를 다시 재가공해서 대규모로 수출하고 판매하는 내수 기업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상당히 독점적이며, 다수 글로벌 다국적기업 자본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르완다에서 활동하는 이러한 기업들로는 Rwanda Trading Company(RTC)와 Dorman 등이 있는데, RTC는 전신 국영기업으로 민영화된 회사이며, Dorman의 경우 아프리카 대륙 커피 비즈니스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기업 성격을 갖는다. 이들은 커피협동조합이 초기 자본을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을 잘 알고 협동조합이 커피를 수매하고 가공할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는 대신, 이들이 생산한 커피를 저가로 전량 매입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즉, 이들은 커피협동조합에게 판로가 되어 조합이 커피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직접 대출해 주고 이에 총 25%에 달하는 이자를 붙이며, 협동조합이 생산한 커피를 시중가 75%에서 80%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다. 협동조합들은 이들 외에 해외 바이어와 같은 판로를 직접 개척하지 못하는 이상 당장 커피를 생산하고, 농산물이므로 생산한 커피를 연내에 판매해 종잣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기업들의 조건을 받아들여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판매되는 커피 파치먼트는 최종 RTC, Dorman 같은 수매기업들이 한번 더 가공해서 자신들의 이름으로 해외에 수출하게 된다.


▲ 커피 가치사슬 및 거래방식 비교 (공정무역 vs 관행무역) 필자 작성 



문제는 이런 거래 조건이 커피 농부들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와 같이 RTC, Dorman과 거래한 협동조합 네 곳 중에서 두 곳은 8년 동안 매년 빚이 생겼다. 다른 한 곳은 그나마 매년 빚을 갚으며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고, 마지막 한 곳은 직접 해외구매자인 아름다운커피와 연결되어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앞의 빚을 보유하고 있는 두 곳은 규모가 100명이 되지 않은 협동조합이고, 세 번째 매년 빚을 갚으며 하고 있는 곳은 500명이 넘는 규모의 협동조합이며, 마지막 한 곳은 아름다운커피와 RTC, Dorman보다 1.6배 높은 가격으로 거래하고 60%의 선급금을 무이자로 지급받으며 공정무역으로 거래하는 협동조합이다. 즉, 기존의 RTC와 Dorman과 같은 내수 독과점 기업과의 거래로 커피협동조합은 이익을 얻지 못하고, 이는 조합의 규모가 작을수록 더 심화되는 것이다. 조합의 규모가 큰 경우 그나마 수익과 비용을 맞출 수 있는 정도였으며, 이것과 전혀 다른 방식인 공정무역으로 거래하는 경우, 실제 수익이 쌓이고 조합원들에게 Second Payment라는 보너스 개념의 프리미엄을 지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다국적 독과점 수매기업들의 거래 조건이 얼마나 커피 농부들에게 이익이 되느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커피 농부들에게 접근해서 비즈니스를 이행하는 방식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위에서 언급한 아직도 빚을 보유하고 있는 조합 중 한 곳은 16명으로 구성된 아주 작은 조합인데, 가장 극명하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 조합은 처음에 105명으로 시작했는데, 당시 한 INGO의 권유로 커피 협동조합을 구성하게 되었고, 이때 이 NGO로부터 Dorman의 전신기업인 K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설립 시기인 2010년경 르완다에서 커피협동조합이 유행처럼 번졌고, NGO들이 협동조합 결성을 장려하고 커피 비즈니스가 희망적 전망을 보이자 농부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한 것이다. 협동조합은 K가 워싱스테이션을 지원해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커피 판매도 도와줄 것이라 믿었다. 실제 K는 3년에 걸쳐 워싱스테이션 건축과 가공 기계를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협동조합에 대출금을 빌려줘서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고, K에 판매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년 거래를 할수록 K는 협동조합에게 ‘줄 수 있는 남은 잔금이 없다, 오히려 빚이 더 남아 있다’는 식으로 결산을 해주지 않았다. 협동조합은 매년 빚과 이자가 얼마인지 물었지만 정확히 대답해주지 않았고 산출내역도 공유해주지 않았다. 계속되는 불투명한 거래에 조합이 거래를 거부하자, 처음에 도와주었던 NGO와 K가 같이 와서 지원했던 워싱스테이션의 가공 기계와 시설들을 철거해 갔다. NGO와 K의 설명은 이 시설은 애초에 이자가 있는 투자금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매년 또 커피 수매대금을 대출금으로 지원했고. 매출이 좋지 않아 수익이 남지 않았으며, 협동조합엔 빚이 쌓였다는 설명뿐이었다. 그제야 밝혀진 내용은 당초 투자한 워싱스테이션과 가공 기계의 가치는 르완다 현지화가 아닌 USD로 산정되었고, 매년 르완다 프랑 환율이 떨어져 빚이 계속 쌓여갔던 것이다. 그리고는 끝까지 매년 조합의 커피를 얼마에 팔고 얼마의 빚이 감해졌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워싱스테이션을 자신들이 산정한 대가로 회수하고 돌아가 버렸다. 이로 인해 커피협동조합은 와해되었고, 조합원들은 조합을 떠나 16명이 남았다. 이들은 스스로 개인 대출까지 받아가며 새로 워싱스테이션을 짓고, 기계를 사 조합을 다시 구성했다. 조합이 와해된 지 3년이 넘어 다시 지금의 커피협동조합을 구성할 수 있었고, 그다음 해 비즈니스를 다시 시작했다. 올해가 4년 차이지만 조합을 재건하며 빌렸던 빚이 여전히 남아있다.



커피, 지속가능성 담론에 대한 질의


다시 돌아가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질문해보고자 한다. 대다수 커피 산업은 르완다의 사례와 같이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 르완다는 하나의 사례일 뿐 중남미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개발도상국인 커피 생산국 대다수의 이야기이다.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커피 절반이 3개의 무역회사에 의해 거래되고 있고, 5개의 로스팅 가공 회사에 의해 가공된다. 생산지 단계까지 내려와도 앞서 언급한 다국적 수매기업들이 대다수 커피를 구매하고 공급하고 있다. ‘커피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는 직접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의 손에 돌아가는 몫이 너무 적고, 이들이 2018년에도 40년 전과 같은 가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르완다의 사례에 따르면 다국적 수매기업, 무역기업, 로스팅 가공 회사들은 여전히 40년 전과 동일한 커피 가격에 대해 대책이 없다. 솔직히 모두 침묵하고 있는 카르텔처럼 느껴진다.



▲ 커피 글로벌 공급사슬 내의 이윤 배분 ⓒ 프랑스 공정무역 단체 내부자료(Who's got the power)중 필자 발췌



이미 거대하게 산업화된 커피 비즈니스의 구조에서 소농들은 커피를 재배할수록 빚에 허덕인다. 아이들은 부모의 고통을 보고 배운 탓에 차라리 다른 길을 선택하지 커피를 재배하려 하지 않는다. 커피 비즈니스 기업들은 스스로의 비즈니스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 더 생산성 좋고 품질 좋은 커피를 강요하고 새로운 가공법에 투자하라고 농부들에게 소개하지만, 농부들은 새로운 가공법을 도입할 여유가 없다. 종자를 개량하고 맛을 높이더라도 농부가 받는 가격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속가능한 커피’라는 주제에서 무엇을 더 논의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걸까. 우리모두는 어쩌면 ‘지속가능성’이라는 고민의 몫도 ‘품질’과 ‘생산성’이라는 가벼운 단어로 농부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농부들은 우리가 전가한 생산성, 품질이라는 숙제에 오늘도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에 팔아 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2018-11-30

작성: 김다영 아름다운 커피 르완다 센터장 / dykim14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