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12호] 모두를 위한 평가, STP 임팩트 리포트 -함께일하는재단 이명희 책임매니저 인터뷰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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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평가, STP 임팩트 리포트
-함께일하는재단 이명희 책임매니저 인터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내고자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일이 실제로 어떠한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확인하고픈 당연한 욕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스러운 욕구는 사업을 둘러싼 내, 외부적인 관계 및 시스템 안에서 “해야만 하는 것”으로, 혹은 “맞추어 내야 하는 것”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임팩트 평가’라는 초미의 관심사가 사업 실무자와 현장의 짐이 아닌 모두에게 힘이 되는 과정이 될 수 있으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최근 “2017 스마일투게더파트너십 임팩트 리포트’를 발간한 함께일하는재단의 이명희 책임 매니저를 만났다. 스마일투게더파트너십 사업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발도상국의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2011년부터 총 12개국 22개의 국내외 기관을 지원해왔다. 지난 7년간 사업을 담당하여 기획하고 진행한 장본인이며, 어쩌면 각자의 사업을 붙들고 치열하게 고민해 본 바 있는 여러 사업 담당자들을 대표하는 이 매니저님의 진솔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평가의 참모습이란, 평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파트너십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 스마일투게더파트너십(STP) 임팩트 리포트 표지 ©함께일하는재단
(리포트 다운로드: 
http://hamkke.org/archives/27293)


최진경(이하 최): 먼저 함께일하는재단의 스마일투게더파트너십 사업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명희(이하 이): 스마일투게더파트너십(Smile Together Partnership, 이하 STP) 사업은 SBS 희망TV라는 모금 프로그램을 통해 모인 후원금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개발도상국 사회적기업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2010년에 기획단계를 거쳐 2011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기획할 때 사업의 성격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쳐 세 가지 정도 원칙을 정했어요. 먼저 특히 심각하고 사회문제의 근본과도 맞닿아 있는 도시빈곤의 확산을 지양할 수 있는 지역기반의 프로젝트를 지원하자는 것, 두 번째는 국제 NGO들이 빠져나간 뒤 사업의 단절에 대한 어려움을 현장에서 많이 들어서, 지원 동안 지역에 소속감이 있는 청년 리더십을 양성해 사람이 남도록 하는 사업이어야 할 것, 세 번째로는 사회, 문화 및 환경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재정적 지속가능성 확보를 통해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단체의 수익사업들을 기준으로 했어요. 사회적기업 육성이 재단의 전문 분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지원 규모가 기관의 운영을 좌지우지할 만큼 커서 지원금 의존성을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원금은 최소 3만에서 최대 5만 불로 하고, 최장 3년까지 지원합니다. 그간 재단이 국제 교류 사업을 통해 구축한 네트워크 기관들이 많이 있어서 처음에는 이들을 통해 추천을 받았었는데, 초기에는 한국 사람들이 주도하는 비영리 기반의 스타트업 지원이 많았어요. 이제는 70% 정도 현지 기관들과 직접 파트너십을 맺고 있습니다. 기수당 4~6개 사업을 지원하는데, 5기 이후부터는 크게 홍보하지 않아도, 그간 참여했던 파트너들이나 기타 네트워크를 통해서 좋은 제안서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이제 막 6기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최: 그러면 이번에 임팩트 리포트를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업 발전단계에 따라 필요로 하셨던 것인지, 아니면 내외부적인 요구가 있었나요?

이: 사업 5년 차가 지난 후부터 임팩트 평가를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이러한 방식의 지원이 기존의 개발협력 사업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실제로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2016년도에 외부 기관에 평가사업을 발주하려고 했는데, 평가 비용을 한 사업당 천만 원 정도씩 생각해야 하겠더라고요. 기관당 지원금액이 3~5천만 원인데 그 기관을 천만 원을 들여 평가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도 하고, 평가의 목적이 기부자들에게 기부를 더 하라고 하는 것인지,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함인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아 조직적인 차원으로도 평가시행에 대한 답을 선뜻 못 내리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2017년, 2009년부터 연세대 경영대학과의 산학협력 프로젝트인 uGET(undergraduate Global Experience Team)과 함께 해 오던 STP 파트너 기관 개별 컨설팅 프로젝트가 확대되면서, 3개 팀 12명의 학생들과 함께 임팩트 리포트를 기획하고 만들게 되었어요.


최: 평가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고려하셨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고도로 전문적이거나 학술적인 보고서는 아니었어요. 이 리포트가 나왔을때 많은 사람들이 우리 파트너들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좋겠고, 일반 기부자 말고도 KOICA나 업계 관련자들이 읽고 영감을 받아서 각자의 사업들에 반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재단에서 직접 하는 것보다, 어쨌든 연세대 학생들은 제3자니까 칭찬보다는 중립적인 시각을 보여줄 거고,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읽히리라 생각했어요.

평가 디자인에서는, STP 사업 자체가 지원금이 크지 않은 프로그램인 만큼, 결과를 숫자로만 나타내면 매우 미천하게 보일 것으로 생각했죠. 이 마이크로 한 것들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했어요. 그래서 평가자들에게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사례들의 예를 많이 알려줬어요. 그러한 관점으로 함께 평가 틀을 만들게 되었죠. 그 사이에 프로보노 전문가 세 분이 도와주기도 했고요. 논의하면서 STP 사업은 일자리를 통한 지속가능성과 미래세대 양성에 핵심이 있다는 점으로 뜻을 모으고, 숫자 외에도 현장에서 청취한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의 목소리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들을 보여주자고 했죠. 평가 항목은 크게 고용의 규모(경제적 효과), 고용의 질, 지역공동체에 대한 기여, 미래세대 양성의 부분으로 선정했고, 3년 지원이 완료된 7개 기관을 대상으로 1개월간 현장에서 평가를 진행했어요.


최: 평가 과정은 어떠셨는지,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도 궁금한데요.

이: 기관별로 차이가 컸어요. 데이터를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사업 진행 시에 아예 조사를 안 했던 거예요. 이미 옛날이라 사업담당자도 기억도 까마득해, 기본적인 사업대상자의 남녀비율이나 연령대 등이 조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래서 일단 가능한 대로 다 조사를 하고, 유효성이 없는 항목들은 들어내는 방식으로 해야 했어요. 고용의 경제적인 효과(수치화) 부분은 임팩트 투자회사가 하는 평가 방식을 일부 차용했는데, 유효한 데이터가 다양하게 존재하지 않아서 임금 기준만 자료로 삼아 계산했어요. 원래 임팩트를 계산하려면 우리 사업을 통한 긍정적, 부정적 외부효과(externalities)
[1]도 고려해야 하는데, 유효한 데이터가 없었죠. 그래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STP 파트너들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일자리 수와 실제 지급되고 있는 임금과 STP 지원금 지원 이후 고용 지속기간만을 고려해서 지원금의 효율성을 달러(USD)의 현재가치로 평가했어요.


최: 평가 결과를 보셨을 때, 담당자로서 사업을 진행해 오며 파트너 기관에 대해 평가하셨던 것과 대개 일치하던가요?

이: 네. 더 확신을 준 것 같아요. 사업을 잘하는 기관은 숫자로 표현되는 결과 외에도 다른 무엇으로라도 그 의미가 보이게 되어 있다고 할까요? 숫자로 의미를 읽는 경영학과 학생들이 평가를 다녀와서 이런 이야기들을 해요. “여기 되게 잘하고 있는 기관 같다.”, “이런저런 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그곳에 있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고요. 그것을 평가자 본인들이 보고 왔다는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평가작업 다 끝나고 나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여전히 비영리에 올 생각은 없지만, 이 분야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고. (웃음)

우리가 왜 임팩트 리포트를 만들고자 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기존의 임팩트 리포트가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틀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임팩트 보고서는 기관당 보통 60쪽 이상이 나오는데, 저는 그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인데도 저와 상관없는 다른 기관의 임팩트 보고서는 다 읽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리포트는 한국어와 영어로 만들어지는데, 파트너 기관들에는 제2외국어로 읽혀지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끈기를 가지고 읽을 수 있을까요? 그런 측면을 고려했을 때, 연구자료집이 아닌 임팩트보고서는 일단 신뢰 가능한 범위에서 간결해야 하고, 간결한 것을 숫자로만 보여주지는 않아야 하겠더라고요. 그러한 취지에서 김경연, 강지훈, 김서영, 한성휘 네 전문가분들과 고민을 많이 나눴고, STP만의 임팩트 프레임워크를 만들게 되었어요. 또 학생들과 함께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담으면 더 재미나게 읽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독자들도 그 부분이 더 궁금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인터뷰 중인 최진경 피움 편집위원(왼쪽)과 이명희 매니저(오른쪽) ©발전대안 피다


최: 이 리포트를 만드는 과정이 평가를 받았던 파트너 기관들에는 어떤 경험이었을까요?

이: 전 사실 임팩트 평가가 지원금을 받은 지 2년 이상이 지난 STP 파트너들에게는 매우 귀찮은 일일 거라 생각했어요.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용지 그대로 주지 말고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직접 작성하라고 당부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그런데 의외로 파트너들이 이런 것까지 챙겨주니 감동했다고 고맙다 하시더라고요. 학생들이 현지에 와서 함께 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이 자신들이 하는 사업을 높이 인정해 주는 느낌이었다, 자존감을 높여줬다고 했어요. 개발협력 단체와 달리 사회적기업 하시는 분들은 이러한 평가 과정이 새롭고 그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는 계기도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지속적인 참여 의사를 밝힌 파트너들과 함께 평가를 기획해 보고 싶어요. 생각해보면 엑셀 시트에 보고서용 데이터를 채워달라고 파트너기관에 요청하고 온라인으로 받아서 채워 넣는 일은 간단해요. 저희가 지원금을 지원하는 입장이라 ‘언제까지 채워줘’, ‘이거 해줘야 내년도 제안서 접수하고 지원금도 나올 거야’ 할 수 있잖아요. 그것을 내려놓고 파트너들과 함께 올해의 평가 과정을 돌아보고 내년도에 할 평가를 기획하며 좀 더 서로에게 타당한 측정 지표를 정할 수 있다면 자발적인 참여가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최: 보통 현장에 있을 때, 특히 후원기관이 평가팀을 보낸다는 건, 아까 말씀하신 것과는 반대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못 믿는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일반적인데요. 이 평가가 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저는 평가가 학습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배움이 있어야 하는데, 한쪽이 필요해서 나오는 결과는 그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과정이 서로 재미있지 않거나 명확한 보상이 없다면 좋은 평가가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 동기화를 어떻게 하느냐가 예술의 영역인 것 같아요. STP 팀은 드러나는 문제가 없는 한 사업 중 모니터링을 가지 않아요. 그 대신 파트너 선정 전에 2배수를 뽑아 현장실사와 대표자 미팅을 심층적으로 진행해요. 이후에는 믿고 사업을 같이한다고 생각하고, 현지에서 보내주는 리포트를 중심으로 판단하죠. 개발협력 사업을 주로 하는 한국 기관들의 경우 사업결과를 공유할 때는 “~했다(output)” 중심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카페를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한다고 했을 때, 카페사업을 위한 직원 교육의 결과가 바리스타 교육생이 커피를 10잔 내려봤든, 20잔 내려봤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카페사업을 하려고 훈련생을 몇 명 뽑아, 그 훈련생들 중 몇 명이 팔리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지가 최소한의 교육의 결과로 여겨져요. 나아가 그 교육생이 내린 커피가 몇 잔 팔려서 급여를 받아가고, 그래서 지역 내 고용이 늘고 그런 게 중요한건데, 교육 몇 명 실시, 판촉행사 몇 회 실시 이런 정보들은 지원금을 제안서대로 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외의 의미가 있을까요. 사업이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이루어져야 하는데, 제안서대로 이행하는 것만을 최고가치로 강조해 온 지원기관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일이라고 생각해요.

STP는 해마다 받는 파트너기관 결과공유서 맨 앞에 기관장의 평가서신을 중시해요. 에세이식으로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대표의 의견이 실리죠. 어떤 의도로 무엇을 해서 어떤 결과가 나왔고, 어떤 지원을 더 받으면 자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의견들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 좋더라고요. 기관에서 중요시하는 것들이 입체적으로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 여러 사업 중 하나로 “지역주민 대상 패션쇼 1회 진행”이 있었다고 한다면, 성과공유서를 읽는 입장에서는 행사 1회 했다고 평면적으로밖에 읽히지 않아요. 그런데 만약 이것이 그 해에 파트너 기관이 지역에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중요한 일로 이 사업에 남다른 공을 들여 진행하고, 그 기대효과를 냈다면 평가서신에 그 부분이 다루어지죠. 패션쇼 하나를 하기 위해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래서 어떤 보람과 성과가 있었는지가 입체적으로 보이게 되죠. 또한, 저희가 직접 간 것이 아니라, 제3자를 보낸 것도 유효한 것 같아요. 저희가 uGET과 사업을 기획하면서 생각했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학생들이 이 과정을 통해 배우고, 나중에 우리의 든든한 아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프레임워크 설계부터 함께 만들어 갔던 것도 좌충우돌이었지만 다른 평가가 될 수 있도록 한 것 같아요.


최: 저는 STP 사업이 만들어내고 있는 파트너십이 조금 다른 점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파트너십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돈 제 때 제 때 군말 없이 주는 거요? 뽑을 때 힘들게 뽑고, 사업 진행에 별다른 관여 안 하고, 믿고 주는 거. STP는 처음에 회계 지침을 파트너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회계법인도 부르고 함께 회의했죠. 현장에서 증빙하기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하고, 회계법인에서는 그것도 못 하면 무슨 회계보고냐며 난상토론을 했죠. 그 이후에도 최대한 현장에 맞추려고 점차 회계 기준을 완화하고 있어요. 사업 진행 중 회계증빙도 그래요. 사업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지원금 지원기관으로서 행정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시스템이 잘 갖춰진 한국에서나 가능한 계좌이체, 세금영수증, 비교 견적 3건 이상 등 증빙을 무조건 요구하기보다, 해외 사정과 사업을 잘 모르는 기부자가 봐도, 이 정도면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믿음이 갈 정도로 설명 가능하며 투명한, 그러나 업무부하가 과하지 않을 회계규정으로 계속 개선해 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불가능한 이야기로 들리시나요? (웃음) 지원금을 주는 곳의 요구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KOICA의 회계규정이 절대적인 규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번거롭고 성가셔도 사업특성에 맞는 기준들을 창의적으로 제안하고 주류화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서의 혁신인 거 같아요. 어떤 기관이 3년 안에 자립하기로 하고 지원을 제안했고, 그게 심사와 실사를 통해 타당하다고 믿음이 가 파트너십을 맺는 경우라면, 당연히 기금은 누구보다 해당 파트너가 적당히 아끼며, 효과적,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을까요.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업에 돈을 준다고 갑질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파트너십이 잘 되었는지는 지원기간이 종료된 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지원이 끝나고 연락이 끊기는 관계는 나중에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사업을 해 나가며 지속해서 상의하거나 협력을 제안할 수 있는 관계가 좋은 파트너십인 것 같아요. 돈으로 시작된 관계가 돈이 아니고서도 이어질 때 정말 뿌듯하죠. STP가 프로그램 차원에서 들이는 특별한 노력으로는 기간의 제한 없이 파트너가 되면 매년 지원할 수 있는 HEAP(Happily Ever After Project)가 있어요. 매년 파트너기관 중 지원신청을 통해 예산 한도 내에서 기관별로 2000달러를 별도로 지원하는 프로젝트에요.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 제품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한다거나, 해외에 상품 쇼케이스가 있거나 임팩트 투자받는 데 가서 발표하거나 하는 기관의 재정적 지속가능성 재고를 위한 기회에 출장경비를 지원해요. 그러면서 관계를 이어가기도 해요.

▲ 2017년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에 참가한 STP 파트너기관(10개 단체) ⓒ함께일하는재단



최: 파트너십 사업을 통해 서로 성장하였다고 느껴지는 사례가 있을까요?

이: 성장은 파트너 기관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었을 때 하게 되죠. 1월에 사업을 시작하는데 어떻게 사업비를 3월에나 승인 받아 보내겠다는 거냐, 회계 가이드라인에 예산 변경 지침을 바꿔 줬으면 좋겠다. 등등 관성적으로 해왔던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았을 때, 이 과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면서 파트너와 같은 페이스로 성장하는 것 같아요.

저는 한국 기관들이 현장에 가서 현지인보다 더 높은 위치로 무엇을 직접 하려고 해서 현지와 파트너 관계를 맺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게 의도적으로는 아닌 것 같고, 지원하는 입장이니 자연히 위치가 그렇게 지워지는 것 같은데, 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하는 한국인이라면 동등한 위치에 대한 고민과 자리매김을 의도적으로 치열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장학금 받고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지역을 바꾸겠다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저희보다 영어도 잘하고, 제가 하는 고민을 오히려 상담받아야 할 정도거든요. 한국 기관이 줄 수 있는 지식이나 경험-아시아 국가로서의 문화적 유사성이라거나 개발의 경험, 빠른 법제화, 열린 사회 등-을 장점으로 삼아서 동등한 협력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현장에서 원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장의 고민은 그 나라의 맥락과 이해가 있으니 더 소극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 나라에 뭐가 잘 안되어 있고, 내가 그걸 한국에서 많이 해봤으니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식의 접근은 해당 국가 진입 초기에는 하면 안 될 말 같아요.
파트너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동등한 위치와 자세일 텐데, 먼저 우리가 얼마나 다양성에 대한 톨레랑스가 있는가를 돌아봐야 해요. 어린 것도, 성별이나 문화가 다른 것도 다양성이잖아요. 동등함은 기득권에 대한 포기를 통해 얻을 수 있기도 한데,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지키면서 동등해지자고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가 해서 저도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있어요.


최: 국제협력이나 사회적 경제 섹터에서 매우 드물게, 개발도상국에 있는 사회적기업들을 지원하고 계시는데, 과연 지속가능성의 입장에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가요?

이: 개발협력 사업들을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짧은 기간 안에 효율성이나 지속가능성이 성취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오류이기 쉬워요. 적용 가능한 경우가 있고 아닌 분야가 있는데 모두 뭔가 사회적기업화, 협동조합화 하려는 것은 현장에서 무리가 된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개발협력 사업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초기에 저희가 SBS 희망TV 사업에 참여할 때에는 사회적기업 모델은 어쨌든 밥도 먹고 굶어 죽지 않고 아프지도 않으니까 모금 소재로 적합하지 않다고 담당 PD가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회적기업 지원, 임팩트투자 이런 것들이 주목받고 있잖아요? 여전히 개발협력 사업으로 되어야 할 부분은 되어야 하고 모금할 부분은 모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영리가 사회적기업을 재정충당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다가는 실패하기 쉬워요. 모금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사업을 해서 돈 버는 것도 어려워요. 저희 파트너 중에서도 비영리 기관인 모 기관의 재정 안정을 위해 수익사업을 진행하시는 곳이 많은데, 재정의 30~40% 정도만 충당하겠다는 점진적인 목표를 세우고 안정화하는 전략이 성공했었죠. 그 과정에 많은 아이디어와 상품 개발 등의 노력 투입이 필요했고, 시간도 걸렸고요.


최: 그렇다면 파트너십 사례 중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성도 성취한 사례가 있을까요?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한 걸까요?


이: 주민과의 소통인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의 호시조라파운데이션(HosiZora Foundation) 사례인데, 대표가 그 마을에서 자란 사람이에요. 주민들이 대표가 어릴 때부터 크는 것, 유학 가는 것도 봤고, 똑똑한 앤데 마을에 와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뭘 하겠다고 자기를 찾아오는데 귀엽고, 그래서 참여했더니 돈도 되고… 이런 과정이 엄청난 힘으로 모이는 걸 봤어요. 흔히들 지역개발사업의 성공에 주민참여가 큰 열쇠라고 하는데, 그 기업가가 본래 가진 마을에 대한 소속감이 사업에 대단한 에너지를 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역 사람들이 한배를 타고 같이 사업을 하고, 거기에 STP가 마중물이 되었던 거죠. 사회적기업 ‘호시조라투어엔트래블(HoshiZora Tour&Travel)’을 설립해 마을주민을 중심으로 책임관광사업을 하는 동안, 지역의 전통음식인 ‘잉쿵(Ingkung)’을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요리법대로 개발하여 관광객에게 판매했어요. 이게 성공을 거두자 마을에 잉쿵 식당도 10개가 생겼어요. 연쇄작용으로 지역 농부들이 이 식당에 필요한 재료를 판매하면서 하면서 마을의 200여 가구 중 49가정이 안정적인 소득을 얻었어요. 현재 관광사업 자체의 순이익은 많지 않지만, 여행 왔던 관광객들이 마을 학생들을 위해 기부자가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사회적기업의 성공이 마을에 긍정적 효과를 확대해 나가고 있어요.

▲ 호시조라투어의 개발/운영 전 과정에 마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마을 주민들의 회의 모습. ©함께일하는재단


최: 마지막으로, 한 사업을 이렇게 오래 수행해 온 운 좋은 담당자로서 좋았던 점과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이: 행운이죠.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볼 수 있어서요. 하지만 제한된 목적이 있는 한정된기금으로 운영되는지라 새로운 시도에 투자하기 어렵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정체된다는 느낌도 있어요. 이번 평가를 설계하면서 고민을 나눌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리기업에서 일하다가 비영리로 옮기고 나서 제일 좋았던 점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면 나눌수록 세상이 좋아진다는 점이었거든요. 영리기업에서는 내가 체득한 지식을 다른 기업에 알리면 스파이가 되는데, 비영리에서는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서로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공짜라서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시적인 포럼 이외에도 소규모로 보다 심화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국제개발협력과 사회적기업을 고민하는 집단지성의 베이스가 있으면 좋겠어요.


‘누구를 위한 평가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보고서인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라는 이 매니저님의 이야기. 여러 가지 교과서에도 쉽사리 쓰여 있는 그 한 줄은 사업을 하는 실무자들에게는 지난한 시도와 실패, 토론과 자기반성의 파노라마이다. 바삐 돌아가는 프로젝트 사이클 속에서, 그리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요구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놓치지 않고 사업에 담으려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아가 우리가 서로 고민을 나누며 격려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리, 집단지성의 베이스로 피다가 자리 잡기를 희망해 본다. 짧지 않았던 인터뷰, 그보다 더 길었던 뒤풀이까지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신 배울 점이 많은 동료 두 분, 이명희 책임 매니저님, 피다 이유정 간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1-31

인터뷰 및 정리: 최진경,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 GSEF 사무국 사업팀장·피움 편집위원
/ jkchoi68@gmail.com
기록: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