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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다[13호] 우리부터 꽃피워야 한다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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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부터 꽃피워야 한다


3월은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총회의 계절이다. 어찌 보면 시민사회 활동가들에게 총회를 치르는 3월이 또 하나의 새해일 수 있을 것 같다. 2018년은 발전대안 피다가 출범한 지 3년째 되는 해로, 이제 홀로 서서 걸을 수 있도록 걸음마를 연습해야 하는 단계이다. 따라서 피다는 올 한 해 동안 지난해 회원들과 함께 논의한 활동방향을 토대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려 한다. 막연한 방향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활동전략을 회원들과 함께 수립하려 한다. 그래서 무엇이 가장 근본적이고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ODA Watch에서 발전대안 피다로 전환할 때, 많은 회원들이 중요하게 고민했던 개념이 ‘사람이 중심이 되는 발전’이었고, 이를 핵심적으로 담아 낸 문구가 ‘사람을 꽃피우는 발전’이었다.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사람들이 도구화되거나, 나와 우리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대상화되는 부정의한 개발을 반성하며 사람과 생명, 공동체의 성장이 최우선시 되는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사람을 꽃피우는 것’의 근본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기, 적어도 사람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언제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 죽여도 처벌받지 않을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는 지구상에 넘쳐나고 있다. 지난 7년간 35만 명 이상이 살상된 시리아 사태처럼 잔혹한 참상들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호모 사케르들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16년 한 해에만 1,832명이 이름도 없이, 추모하는 이들도 없이 무연고 사망자가 죽어갔고, 이들의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9년 전 생존권 보장을 위해 항의하던 용산의 세입자들이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사망했을 때, 부검을 위해 가족들의 동의를 얻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담당검사의 답변은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였다.


또한, 꼭 목숨을 잃어야만 호모 사케르일까? 현대적 의미의 호모 사케르는 누군가에 의해 생명이 처분될 수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생명과도 같은 존엄을 짓밟히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이들도 포괄한다. 우리가 인간의 존엄을 빼앗기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어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미투 역시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존엄이 짓밟힌 이들과 그 아픔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함께 부르짖고 변화를 위해 꿈틀대고 있는 운동이다. 인권의 역사는 차별이나 핍박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과정이자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고 거부하고 싶었던 것들이 기본적인 의무가 되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 인권의 수준과 인권 감수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역사적인 운동이 되어야 한다. 권력관계의 상위에 있는 개인이 강압적인 폭력을 가했다는 점에서 모든 형태의 권력관계와 폭력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이 미투 운동을 진정으로 확산하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도 성역이 될 수 없다. 사실 성역이지도 못했다. 정부와 시민사회 할 것 없이 성폭력 피해사실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성폭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폭력 사례들은 비공식적인 차원에서만 끝없이 토로되어 왔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을 사명으로 내걸고 활동해 온 분야이기에 선언과 현실의 격차가 더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드러난 사실들보다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이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리더들이 최우선으로 강조해 온 헌신과 순종이라는 가치에 실무활동가들은 세뇌되어 있거나 억눌려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존중 받는 경험과 훈련 없이 다른 누군가를 진정으로 존중하기 어렵다. 그래서 먼저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한다. 과연 내 앞의 동료들을 존중하지 못하면서 멀리 있는 가난한 이들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내 옆 여자동료들의 인권에 대해 관심 갖지 않으면서 지구촌의 젠더 이슈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우리 내부의 거버넌스는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이면서 진정으로 개발도상국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또 다른 각도에서 자문해 본다. 개도국에 대한 지원활동이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지구시민으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내가 착하기 때문에 선의로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결과에 대해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건 아닌가? 나의 권력 유지나 확장을 위해 내 동료들을 대상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단체의 비지니스 실적을 위해 지구촌의 가난한 이들을 도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피다의 구성원들이 먼저 치열하게 성찰하고 반성하려 한다. 그리고 어떤 원대한 계획에 앞서 우리 주변 동료들의 존엄성과 고유성, 가능성을 귀하게 여기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고자 한다. ‘가득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플레로오’는 ‘컵에 물이 가득 차서 흘러 넘치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 자신이 무언가로 가득 차면 그것이 흘러 넘쳐 주위를 적시게 되듯이, 누구에게 대안을 제시하기 이전에 피다부터 우리 스스로를 꽃피우는 대안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동료 기관들과 동료 활동가분들의 감시와 고언 역시 귀 기울여 듣겠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3-30


작성: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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