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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14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한살림의 도전

2018-05-30
조회수 2902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한살림의 도전

한살림은 SDGs <목표 12>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패턴 확립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나


[편집자 주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기존의 새천년개발목표(MDGs)에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공통의 문제로 범위를 확장하여 지구의 지속성, 인류번영, 사람의 발전, 평화의 확산,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이념을 지향한다. SDGs는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하는 큰 목표이지만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기본적 권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피움 14호를 시작으로 SDGs를 이행하는 국내 단체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글로벌 차원의 목표가 지역 단위에서 지니는 의미를 진단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로 SDGs 12번 ‘지속가능한 소비 및 생산 패턴 확립’을 이어가고 있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운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5월 서울 신촌에서 피플스페어트레이드협동조합(People’s Fair Trade Coop: PTCoop, 이하 피티쿱) 주관으로 민중교역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피티쿱의 필리핀 현지 파트너 단체 생산자 두 사람의 발표가 있었다. 이들은 사탕수수 단작체제와 판매이익의 대부분을 지주가 독점하는 사회경제 구조 하에서  빈곤과 생태계 파괴를 극복하기 위한 구성원의 임파워먼트와 자립, 생산자들의 노력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본 생협 및 유럽 공정무역연합 등과 진행한 민중교역을 통해 해마다 반복되는 “죽음의 계절”에서 벗어났고, 생산자 공동체 스스로 다양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2004년 한국의 두레생협과 처음 교류를 시작하여 2018년 현재 피티쿱 소속 4개 생협으로 관계를 넓혔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향한 민중교역의 핵심은 ‘관계의 전환’이다. 시장에서 더 싼 것을 찾는 소비자와 더 비싸게 팔려는 생산자의 각축이 불신을 만든다. 그런데 상품 대신 사람을 본다면 어떨까. 돈보다 사람의 가치를 우선하고, 상품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할까. 한살림은 피티쿱의 4개 생협 중에서 가장 늦게 합류했지만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왔다.


▲ 2017 한살림서울 가을걷이 잔치 한마당 ⓒ 하만조



생명의 순환을 위한 먹거리 운동


1980년대, 한 해에도 수백 명의 농민들이 농약으로 쓰러지고 먹거리 오염이 밥상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한살림은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를 열었다. 쌀은 농약중독으로 죽다 살아난 충북 음성의 최재명, 최재영 형제가 생산했다. 품이 훨씬 많이 드는 무농약 쌀이었지만 판로가 없어 일반 쌀과 같은 값으로 팔던 것에 한살림이 제값을 매겼다. 당시 논은 도시 산업화의 식량기지로서 생산량 극대화가 지상 과제였다. 그러나 한살림은 메뚜기와 새들이 돌아오는 논의 다른 역할에 주목했고 땅과 물 또한 농약 오염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쌀과 함께 유정란도 취급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오랫동안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해온 정현수 생산자가 흙바닥에 암탉과 수탉을 함께 풀어놓고 키웠다. 관행 양계에서 생산된 알은 어미닭이 품어도 부화하지 않지만 한살림의 유정란은 부화가 가능한 ‘생명이 담긴 알’이었다. 겉보기엔 다를 것 없지만 ‘쌀 한 톨, 유정란 한 알에도 세상이 담겼다’는 생각이었다. 일찍부터 한살림을 지지하고 도와준 무위당 장일순은 “나락 한 알 속에도 (...) 우주의 존재가 내포되어 (...) 그래서 들에 피는 그 조그만 꽃 속에 무한함이 있다.”고 말했다. 작아서 보잘것 없어 보이는 생명의 보이지 않는 깊은 속까지 들여다보며 그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 한살림의 지속가능성 모델 ⓒ 하만조


한살림은 생명이 담긴 먹거리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를 위해 직거래 방식을 적용했다. 그렇지만 한살림을 설립한 박재일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 속에서는 생명이 상품가치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때문에 그는 인간관계와 삶 전체를 바꾸는 것을 꿈꿨다. 주부와 농부, 실무자들이 같이 모여서 하나의 한살림을 운영했다. 그렇지만 친환경농업이 낯설고 기술도 부족한 때였다. 턱없이 낮은 생산량은 물론이고 벌레 먹은 배추, 까만 점이 무수히 박힌 귤을 가져와서 제값을 매겨 소비하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였다. 그래서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보장하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한살림은 ‘친환경물품의 생산’, ‘생산자 소비자의 직거래’, ‘이해관계자 경영참여’라는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조합원의 물품 이용이 우리 농업과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여가도록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확산하고자 노력했다., 각 국가와 국제 수준의 무수히 많은 단체들 또한 동참하고 있다. 이는 특히 글로벌 수준에서 2016년부터 2030년까지 UN이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맥락과도 이어진다.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향한 한살림 활동


한살림은 ‘부엌에서 세계가 보인다’, ‘사회주부’, ‘생산하는 소비자’ 등 지역적 차원에서 SDGs를 실천하는 주체로서 ‘조합원’을 강조했으며 이를 공간적 측면에서 가정과 이웃(지역사회), 도시와 농촌, 주부, 사람과 자연이라는 전 지구적인 수준으로 확장해왔다. SDGs가 발표되기 이전부터 ‘생명운동’ 혹은 ‘한살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한살림이 실천해온 사업과 활동은 밥상살림, 농업살림, 지역살림, 생명살림이라는 모토로 요약되며 한살림의 정체성과 차별성의 핵심을 구성한다.


한살림을 SDGs의 눈으로 바라보면 ‘12번째 목표: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패턴 확립(Sustainable Consumption and Production: SCP)’이라는 보편적인 과제와 직결되지만 SCP 원칙은 상당히 포괄적이다. 따라서 각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한 형태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친환경농업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고 확산하는 조직의 경우 SCP의 원칙과 관련해서 4가지 이슈를 생각해볼 수 있다. 1)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 증가. 2)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생산자와 이를 지지하는 개인들이 생산의 혜택과 위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지원농업(CSA). 3) 유기물을 퇴비화해 폐기물을 감소시키고 재사용을 촉진하는 친환경농업 고유의 특성. 4) 관행농업대비 탄소배출량을 저감시키는 친환경농업의 효과. 마지막 이슈는 SDGs 13번목표인 ‘기후변화 대응(Climate action)’과 직접 연관되면서도 2018년 UN SDGs 고위급정치포럼(HLPF) 중 12번 목표로 다룰 의미 있는 이슈라고 볼 수 있다.


위 4가지 이슈를 한살림의 활동에 비춰보면 글로벌 수준의 SCP에 한살림이 지역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 증가를 이끌어내 현재 조합원이 65만 명으로 한국 생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조합원은 한살림의 핵심 구성원이자 조합의 출자, 이용, 운영 주체로, 조합원의 증가는 친환경농산물 구매력을 결집시키며 친환경 농지의 유지 및 확대에 기여한다.. 외부적으로는 구성원의 규모 증대가 조직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며 사회 환경적 책임과 이와 관련한 정책의 입법 및 제안에 힘을 실을 수 있다. 실제로 한살림은 다른 생협 및 농업, 소비자 단체들과 함께 지난 2018년 4월 ‘GMO 완전표시제’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등록하여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로부터 동의를 구해 청와대로부터 답변을 받은 바 있다.


둘째,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농산물 생산 및 소비 약정을 체결하고 책임 있는 이행을 위해 노력하는 한살림의 사업방식은 규모화된 CSA로 볼 수 있다. 2014년 한살림은 독일의 유기 식품업체 Rapunzel Naturkost가 제정하고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이 후원하는 제 4회 국제유기농업상을 수상했다. 이때 한살림의 수상 이유에는 2천 개 농장에서 160만 명을 위한 건강한 식품을 생산하는 최대 규모의 CSA프로젝트라는 점도 인정되었다. 이 외에도 한살림은 2013년부터 친환경농업 생산자와 소비자 조합원을 직접 연결해주는 CSA형식의 ‘꾸러미Box scheme’를 소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셋째, 폐기물 감소와 재사용 촉진과 관련하여 한살림은 일찍부터 ‘쓰고 버리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환경, 에너지, 소비 등을 주제로 강좌를 기획하여 조합원들과 공유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알리려고 노력 해왔다. 농업 부문에서는 2007년부터 충남 아산 지역의 생산조직에서 유기농 쌀 미강과 콩 가공 부산물, 그리고 소의 축분을 재사용하는 ‘자원순환형 친환경지역농업 모델’을 구현하고 있다. 또한 일상적으로는 재사용병을 사용한 물품 생산과 이의 수거, 세척을 통한 재사용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2017년에는 80여 톤의 재사용병을 수거하여 추가적인 생산소요를 감소시킨 바 있다. 이 외에도 우유갑 수거를 통한 자원재생 캠페인으로 2017년 약 12만 개를 수거하였고 일상적으로는 사무실과 매장에서 종이컵 대신 개인컵을 사용하는 문화를 정착시켜가고 있다.


넷째, 한살림은 정책적으로 친환경농업을 지향하고 국내산 먹거리만을 취급해 왔다. 이로 인해 관행농업 대비 적은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하고, 유통 과정에서도 수입산에 비해 온실가스 발생량을 감소시키고 있다. 이 외에도 유리병을 재사용하고 햇빛발전소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며 조합원의 생활 속 이산화탄소 감축 노력을 응원함으로써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17년 한살림은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 햇빛발전협동조합 운영, 재사용병 수거로 1,869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



소농의 국제적 연대를 위하여


SDGs를 실천하고 홍보하는 것만큼이나 이를 이행하는 조직의 수가 늘어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UN SDGs 이행의 강력한 파트너 중 하나인 협동조합 진영은 이 분야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속가능발전을 협동조합의 DNA로 규정하고 전 세계적인 협동조합의 설립을 촉진하고 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살림 또한 사업규모가 확장되면서 한살림과 비슷한 모델을 확산하고자 노력했다. 주로 내부 조직을 분화하거나 출자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으며, 때로 외부 조직과 함께 출자하거나 내부 자원을 임차하는 방식을 시도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자연재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기금을 모아서 지원하거나 제3세계 소농을 돕고 교류하는 한살림의 국제연대 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한살림의 연대 활동은 2009년 창립한 <호혜를 위한 아시아 민중기금>을 통해서다. 지난 3년간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7개 국가 37개 단체와 함께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 농부들의 농지보전과 올리브오일 생산사업 지원, 동티모르 소농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양계 및 양식사업 지원, 필리핀 유기농 사탕수수 생산자회원들을 위한 어음할인 지원에 힘을 보탰다. 


또 해외 소농의 자립과 친환경농업 기반 조성에 초점을 맞추는 데에는 ‘각국, 각지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농업을 지향’한다는 한살림 농업정책의 영향도 있다. 끝으로 한살림 또한 창립 당시 교회 기반의 제3세계 원조단체인 독일의 미제레오르Misereor와 네덜란드 세베모Cebemo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던 경험, 기타 안팎에서 받은 유무형의 도움에 대한 성찰과 호혜의 실천이라는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2016년 한살림은 필리핀 생산자단체 ATC의 설탕을 한시적으로 취급하기로 하면서 국제연대 사업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뤄냈다. 교역이 시작된 지 2년만인 지난 5월에는 필리핀 생산공동체 2곳 및 필리핀알터트레이드재단과 <필리핀 설탕 공동체 기금 협약식>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농생태마을 프로젝트(SAVE)를 추진해 자연농업 및 유기농업을 통한 생태순환농업을 목표로 할 것에 동의했다. 이 다음날 협약에 참여한 필리핀 생산자는 신촌의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소비를 통해 투표를 합니다. 

어떤 물건을 고르느냐는 곧 그 생산자의 물품이 생산된 방식을 지지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오늘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기사 입력 일자: 2018-05-31


작성: 하만조 한살림서울생협 실무자 / mjhaaa@hansali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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