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9호] '가장 낮은 곳’의 여자들을 만나다 -인권과 젠더의 렌즈로 보는 동남아시아의 여성 수감자들-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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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의 여자들을 만나다
-인권과 젠더의 렌즈로 보는 동남아시아의 여성 수감자들-


1.
하얗고 둥근 얼굴의 호아는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다. 수감되기 전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는 A국 국경 지역 카지노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남편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이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돈을 좀 더 모아야 할 것 같아서 친구와 함께 카지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밤과 낮이 뒤집힌 생활과 긴 노동시간을 버티는 건 젊고 건강한 그녀에게도 힘들었다.

“불법인 줄은 알았지만..” 품에 안긴 아이를 보듬으며 그녀는 조금 흐린 표정이 되었다. “밤에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 졸려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가 3일간 복용했다는 그 마약은 ‘야바’라고 불린다. 정식 명칭은 메탐페타민(methamphetamine). 메탐페타민은 각성제의 일종인데 일시적으로 피로와 배고픔을 느끼지 않고 몸이 가뿐해진 것 같이 느끼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가격도 무척 싸서 말하자면 ‘서민의 마약’인 셈이다. 동료 중 한 명이 어디선가 구해와서 나눠주었는데, 이걸 복용하면 에너지가 생겨서 더 긴 시간, 졸리지 않고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잠이 안 와서 일을 하기가 수월해져서 좋았다고, 호아는 말했다. 그녀는 같은 카지노에서 일하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체포 당시 임신 5개월이었다. 이제 생후 5개월이 조금 넘은 아이는 그녀와 함께 교도소에서 산다. 마약 복용으로 2년을 선고받은 그녀는 아직 14개월을 더 이 곳에 있어야 한다. 그녀의 품에 안긴 여자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생애 첫 2년을 교도소에서 보낼 것이다. 그녀와 아이는 말 그대로 자기 몸 누일 자리밖에 없는 아주 작은 방에서 다른 스무 명 남짓의 여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주말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해 씻지도 못하고 빨래도 하지 못한다. 평일과 달리 관리할 교도관 숫자가 많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남편 말고는 아무도 그녀가 이웃나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걸 모른다.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살아계시는데, 어머니는 딸이 그냥 이웃나라에서 일을 한다고만 알고 있다. 어머니한테 연락이 갈까봐 대사관에 연락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방문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녀는 A국의 언어를 거의 모른다. 그래서 감옥이 그녀에게는 무인도 같다.


▲ 호아의 무인도는 높은 담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박민지



한 시간 반 정도 그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기저귀 없이 꼼지락거리던 아이는 오줌을 두 번, 똥을 한 번 쌌다. 아이의 똥오줌이 갈아입을 옷도 변변찮은 호아의 가슴팍과 무릎을 온통 적시고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기저귀를 아주 가끔밖에 구할 수 없고 빨래도 자주 할 수 없어서 호아는 이런 일에 익숙해졌다. 이 옷도 면담 온다고 빌려 입은 옷인데 큰일이네요, 라고, 그녀는 멋쩍게 웃었다.

호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보다 일 년 전쯤 B국의 어느 교도소에서 만난 인다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어서 문맹이며, 태어나 자란 나라의 국적을 얻지 못한 소수민족이라 법적으로는 ‘외국인’이다. 열여섯 살 때부터 이 집 저 집 가정부 일을 해주면서 돈을 벌었고 일이 없을 때는 길거리에서 커피 같은 걸 팔았다고 했다. 서른두 살인 지금까지, 줄곧. 신분증이 없으니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남편이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녀는 거리에서 코카인을 팔다가 체포되었다. 임신 8개월 차에, 남편은 집에 돈이 하나도 없으니 나가서 이걸 팔아오라며 그녀에게 마약을 건넸다. 그녀가 거리에서 붙잡혔을 때 집에는 태어난 지 9일이 된 아이가 있었다. 경찰은 약의 출처를 말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남편이 가져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줬다고 하면 남편도 감옥에 갈 텐데, 그럼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누가 나를 보러 와 주겠어요? 그래서 그냥 내가 직접 구한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남편은 딱 두 번, 다른 여자를 데리고 면회를 왔고, 그게 끝이었다. 아이는 이제 인다와 함께 교도소에서 산다. 국적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아이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아이는 만 2살이 되면 교도소에서 나가야 한다. 보낼 곳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보내야 한다.

인다를 만났던 그 교도소에서, 여성 재소자들이 설문지에 답을 하는 동안 교도소에 엄마와 함께 수감되어 있는 한두 살짜리 아이들 두셋을 침대에 눕혀 놓고 엄마들 대신 지켜보는 역할을 했다. 그 곳은 교도소 내 병동 같은 역할을 하는 방이었는데, 병동이란 말이 무색하게 악취가 심해서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간헐적으로 숨을 참았다가 내쉬면서 그 와중에도 잘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 아이의 아이들은? 부양자인 엄마가 사라진 교도소 밖의 아이들은 어쩌고 있을까. 왜 남자들은 이 여자들 곁을 떠날까. 왜 아이는 늘 엄마에게 혹은 엄마의 가족에게 남겨질까….

그 뒤로도 얼굴과 국적, 나이가 다를 뿐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 여자들을 끊임없이 만났다. 부모로부터 대물림한 가난, 어려서 더 어린 형제를 돌보고, 커서는 남편과 부모 그리고 제 자식들의 부양자가 된 여자들, 학대인 줄도 모르고 부모에게 그리고 남자들에게 멸시당하고 학대당한 경험들, 여성이라서 가난해서 성 소수자라서 소수인종이라서… 온갖 이유로 숨 쉬듯 차별당해온 생에 대해.

너무도 거대한 슬픔과 막막함 앞에 섰을 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지는 경험. 감옥을 현장으로 하는 연구를 한다는 건 그런 경험의 연속이 될 거라는 걸 그 때 어렴풋이나마 알았다.



2.
그 자신이 27년간 수감 생활을 했던 고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감옥에 들어가 봐야 그 나라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한 나라를 판단하는 기준은 상류층 국민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국민을 대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It is said that no one truly knows a nation until one has been inside its jails. A nation should not be judged by how it treats its highest citizens, but its lowest ones)”라는 말을 남겼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 이라는 말은 단순히 그 장소가 감옥이어서일까?

감옥의 인구통계를 들여다보면 감옥이 종종, 그 공간이 소속된 사회에서 가장 주변화되고 차별 받는 집단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장소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감옥은 물리적으로 바깥세상과 단절되었을지는 몰라도 그 성격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구조적으로 가장 빈곤하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가장 차별 받는 집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 공동체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는 거울 같은 곳이다. 거의 삼십 년을 감옥 안에서 보내면서 그는 내가 감옥의 인구통계를 들여다보고 논문들을 뒤적이며 배운 사실을 일찍이 온 몸으로 체감했을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자들이 모인 이 곳에서도 다시 다수집단과 소수집단이 갈라지고, 그중에서도 더 차별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감옥 공동체에서 가장 고통받는 집단은 사회에서 주변화된 집단과 그 성격이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는데, 이곳에서도 가장 힘없는 약자들은 여성, 아이들, 외국인, 소수 민족, 성 소수자, 노인, 장애인 등의 집단이다. 그들은 숫자로도 소수 집단이라 교정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감옥은 (지금도 많은 사회가 그러하듯)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공동체이다. 관리자들의 성별도 남성이 압도적이고, 각종 시설과 규칙, 내부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남성을 대상으로 상정하고 만들어졌다. 이는 물론 감옥 내 남성의 숫자가 여성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정시설 내 여성 수감자의 비율은 세계적으로 적게는 2퍼센트에서 많게는 9퍼센트 정도 된다.

나라나 지역마다 다른 맥락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교도소에 있는 여성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몇 가지로 간추려진다. 비폭력적 범죄와 경범죄 사범의 비율이 높고, 정규교육을 받은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물리적, 감정적, 성적 학대에 노출된 과거가 있을 확률이 평균보다 훨씬 높고, 가족 내에서 주 양육자이자 부양자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이 취약한 계층. 동남아시아에 한정 지어서 보면 여성 재소자 중에는 마약 관련 사범의 비율이 가장 높은데 이런 경향은 지난 수십 년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무조건적인 엄벌주의로 일관한 이 지역 형사사법 정책의 영향이 크다. 엄벌주의는 동남아시아에서 손쉽게 대중적 지지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아젠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여성 재소자의 숫자와 비율이 지난 몇십 년간 가장 가파른 상승치를 보이는 지역 중 하나가 바로 동남아시아인데 이는 마약 사범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소위 ‘쉬운 표적들’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과 관련이 깊다. 경미한 약물 복용자나 소지자, 마약카르텔에서 꼬리에 해당하는 소규모 마약 운반책 중 여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감옥에 마약밀수 혐의로 수감되어서 재판받던 태국 출신 여자가 종신형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녀의 얼굴이 기사 밑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어서 나는 곧 그녀가 내가 바로 몇 달 전에 만났던 미결수 중의 한 명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고작 이십 대 중반인 그 여자는 생전 처음 사귄 외국인 남자친구가 해외여행을 보내주었고, 남자친구의 형이라는 사람이 돌아갈 때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준 초콜릿 상자를 받아왔고, 그 상자 안에는 초콜릿 대신 마약이 들어있었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그녀가 매우 특별나게 운이 없는 케이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 대부분이 비꼼과 비난이었다) 실은 이건 남성보다 여성을 상대적으로 덜 경계하고 수색한다는 점을 이용한 마약 밀매 조직의 매우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 여자들은 전 세계에 느슨하게 퍼져있는 마약 밀매 조직의 꼬리들이다. 자르면 그만인. 마약 밀매 조직은 가난하고, 남자에게 이미 몇 번이나 버림받았고, 부양해야 할 부모나 자식이 있어서 물질적, 정신적 모든 면에서 취약한 여자들을 고른다. 그 남자들은 먼저 남자친구, 동거인, 심지어는 남편이 되고 그 여자의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그 여자들을 해외로 보내 물건을 받아오게 하거나 전하게 한다. 해외여행이라고 속이는 경우가 가장 전형적이고, 알고도 남편이니까, 남자친구니까, 가는 여자들도 있다. 마약(혹은 무언가 불법적인 것)이 들어있다는 걸 알았더라도, 마약 밀매가 어떤 죄인 지, 그게 얼마나 무거운 형을 받는 죄인 지 모르는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정말 속았던 거라면 조사해서 무죄가 되겠지, 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당연히 그런 일은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 같은 건 어디까지나 원칙이고 실제로는 무죄라는 증명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유죄다. 형은 그 여자들이 밀매했다고 하는 그 마약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5년 이상부터 최대 종신형까지가 가장 일반적이다. 소위 개발도상국의 감옥에서 저 정도 형을 받으면 형이 끝나기 전에 죽을 확률이 더 높을 테니 어느 쪽이든 종신형이나 다름없다.



3.
수감자 인권 옹호 활동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나름대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활동의 결과로 탄생한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된 국제적 기준이 1957년 유엔총회를 통과한 ‘유엔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United Nations Standard Minimum Rules for the Treatment of Prisoners)’인데, 2015년 12월에 개정되면서 ‘넬슨 만델라 규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수감자 처우에 관한 한 가장 오래되고 존중받는 이 규정들은 수감 시설 내 여성을 비롯한 다른 소수자 집단들의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고 열악한 위치를 인지하는 데 그칠 뿐 구체적인 처우 기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성인지적인 관점을 반영한 국제 규범은 ‘피구금자 최저기준 규칙’이 처음 등장한 지 53년이 흐른 2010년에서야 ‘유엔 여성수감자 처우와 비구금조치에 관한 규칙(United Nations Rules for the Treatment of Women Prisoners and Non-custodial Measures for Women Offenders; 방콕 규칙이라고 부른다)이 제정되면서 등장한다. 유엔규칙들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연성법이지만 각 나라 대표들이 모인 유엔총회에서 합의하여 통과했다는 상징성 때문에 유엔 가입국들에 대한 도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여성 수감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젠더적인 특성, 수감 전까지의 인생 경로 등에 대한 연구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방콕 규칙의 등장으로 인해 그 동안 접근성이 매우 낮은 연구 현장이었던 동남아시아 지역의 감옥과 여성 재소자들의 처우와 인권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난 몇십 년간 서구에서 이루어진 교도소에 대한 연구는 한 가지 동일한 결론을 낸다. 감옥은 다른 그 어떤 방법도 남지 않았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감옥에 보내야 한다면 감옥은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수감자들의 배경과 상황을 살피고 그들이 필요한 도움과 치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화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증적인 연구와 잘 정비된 형사사법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고 재정과 인력도 부족한 나라에서는 이 모든 일이 어려우니 악순환의 쳇바퀴를 돈다. 교도소 말고는 대안이 없으니 아주 사소한 범죄에도 일단 교도소로 보내놓고 보고, 인력이 부족하니 케이스는 계속 쌓이고, 그러다보니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결론이 나지도 않았는데 감옥 생활을 견뎌야 하고, 수용 가능 인원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을 받아야 하는 감옥은 점점 더 열악한 환경이 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재소자 분류 시스템, 열악한 재정과 부패로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도 인간다운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어지고, 수감자 간의 권력관계에서도 최하위 약자인 여성, 어린이, 외국인 등은 더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고, 그 와중에 그나마 교도소 내에 존재하는 치료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남성 위주라 여성은 소외당하기 일쑤이다. 최소한의 인권 교육도 받지 못한 교도관들은 매우 종종, 의도적이든 아니든, 재소자들에게는 인권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군다. 그런 환경에서 여성 재소자는 아주 쉽게 성폭력 등의 젠더 폭력에 노출된다. 또한 그들은 감옥에 오기 전에도 이미 젠더 폭력에 차별이 일상적인 세상에 살았을 확률이 높다.


▲ 국제규범과 인권중심적 재소자 처우에 대한 교육에 참여한 교도관들. 지역 실태에 맞춘 관련 기관 직원 인권 교육은 연구결과에 근거해서 할 수 있는 중요한 후속 활동 중 하나이다. ⓒ태국형사사법연구소



감옥은 그 안에 발을 들이기 이전에는, 누구에게든 심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멀고 낯선 공간일 것이다. ‘바깥 세계’의 우리는 닫힌 문 뒤의 공동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막연한 이미지 속의 감옥은 지나치게 춥거나 덥고, 더럽고 위험하며,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그래서 견디기 어려운, 형벌의 공간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감옥이 그토록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감옥은 그러한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 안에서의 삶은 형벌이어야 마땅하니 ‘범죄자’의 인권 같은 걸 논하는 건 종종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그게 사람들이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인 이상, 교도소가 처벌의 장소가 아니라 다른 삶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일은 요원하다.

범죄자가 인권이 어딨냐는 차별의 언어는 그들을 ‘비범죄자’인 ‘우리’와는 다른 ‘그들’로 분리해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땅에서 솟아 나온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며 감옥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래서 교도소는 한 사회의 빈곤과 차별, 불평등의 산물인 동시에 그것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교도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왜 그 곳에 가게 되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연구하고 쓰고 말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4.
호아와 인다를 다시 떠올린다. 호아와 인다는 각각 A와 B국에서 ‘외국인’ 신분이었고 인다는 그 중에서도 국적이 없는 소수민족이었다. 호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호아의 얼굴에 인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인다의 얼굴 위로는 또 너무 작아서 만질 수도 없던 남자아이를 껴안고 있던 다른 면담자의 얼굴이, 그 위로는 또 가방에 있는 비상 생리대라도 쥐여 주고 싶은데 그조차도 할 수가 없어서 손만 잡았다 놨던, 동갑내기 다른 여자의 얼굴이, 그렇게 자꾸자꾸 수많은 여자들의 얼굴이 겹쳐서 결국 하나의 얼굴이 된다.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이 완전히 잊힌 존재들은 아니라는 가난한 위안을 얻는 여자의 얼굴. 내게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은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기사 입력 일자: 2017-07-31

작성: 박민지, 태국형사사법연구소(TIJ) 여성인권 연구원 / min.yamada.p@gmail.com


* 연구 현장의 특성상 자세한 국가, 지역명 등은 생략하고 면담자들의 이름, 나이 등의 개인정보는 글의 흐름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수정하였음.

** 필자소개: 연구 노동자.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수감시설 내 인권중심적 소수자 처우와 관련한 질적 연구를 하고 있다. 방콕을 기지 삼아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교정시설을 방문한다. 교도소 내 여성의 삶과 교정시설 관리에 있어서 국제 인권 기준 준수 여부를 평가하는 연구에서 시작해 현재는 교도소 내 이민자, 소수민족, 무국적자 등의 소수자 처우 관련 정책과 이민자 수용소 등 다른 형태의 수감 시설 내 여성과 아이의 처우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읽고 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