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10호] “나의 땅에 올리브처럼 뿌리내리고 싶다” - 고단한 삶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가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백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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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땅에 올리브처럼 뿌리내리고 싶다”

- 고단한 삶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가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백


영화가 그려내는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농사지어 자녀 10명을 키우고, 전쟁으로 아들 셋을 잃고,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높다란 장벽에 갇혀 지내야 하고, 일거리 없는 곳에서 일자리를 애타게 찾고, 군인들이 봉쇄한 도로 때문에 지척의 거리를 멀리 우회하고……. 6.25 정전 후 70-80년대까지의 한국 사회를 많이 닮았다. 남자들이 실내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광경도 무척 닮았다.


이들에게도 꿈은 있다. 가족과 자녀의 행복이다. 걸음마를 배우는 제나,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아흐마드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부모와 조부모의 땅인 팔레스타인에서. 문제는, 고통스럽지만 꿈꾸는 삶이 있는 팔레스타인을 이들이 떠날 수 없다는 데 있다.  


영화 <올 리브 올리브(All live, Olive)>는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고통보다 자신들 뒤에 남게 될 세상을 걱정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 사는 속기사 위즈단의 음성으로 그녀의 두 아이와 남편 그리고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영화 '올 리브 올리브' 메인 포스터 ©시네마달


이 영화는 한국인 감독의 작품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에 관한 한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어진 국내 지형 속에서 좀 더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읽힌다. 감독의 속내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대인에 대한 다소 과잉스러운 칭찬과 아랍이나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정보 부족 때문이다. 유대인의 토론식 수업법은 요즘도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공한 유대인을 기른 유대인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이나 사업가, 영향력 있는 정치가 등을 낳은 유대인 교육에는 뭔가 비법이 있다는 묵언의 동의가 그 관심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에 비해 아랍은 최근까지도 제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실패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산이 아랍세계를 통해 고스란히 중세 유럽에 전해졌다는 것은 그나마 알려진 사실이다. 서구의 근대적 학문이 하나씩 발견해 나간 중요한 개념과 이론들을 이미 수백 년 전 체계적으로 논의한 이슬람의 학자, 이블 할둔에 대한 국내의 관심과 평가는 인색하다.


당연히 이슬람, 아랍 등에 대한 복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의 저자 타밈 안사리는 중동이라는 서구식 지리개념을 거부하면서 중동이 아닌 “중간세계”로 재 호명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서구의 시각으로 아랍세계를 보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다. <올 리브 올리브> 역시 종전의 시각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보기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이슬람 또는 아랍 다시 보기와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의 확보는 당장 현실 적용력은 없을지 몰라도 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아닐 수 없다. 인티파다(민중 봉기)나 테러 등 팔레스타인의 저항에만 초점을 맞춰 이들을 폭력 집단으로 보는 피상적 이해가 득세하는 한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왜 절망하고 몸부림치는지 관심을 갖지 않으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언제나 테러리스트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제나 피해자일 뿐이다. 이 영화는 90분 내내 이런 관점의 전복을 시도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전까지만 해도 동네 길을 유대인과 함께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관할 지역까지 점령해 정착촌을 만든 이후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동행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정착촌 인근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할 무기가 없다. 그저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절대 떠날 수 없다. 난민이 되기에 십상인 까닭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곤궁한 삶은 올리브 농사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올리브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역사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생계 원천인 올리브는 대부분 이스라엘 정착촌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올리브를 다 뽑아버리려고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올리브 농사를 위해 허가를 받아야 자기 땅에 출입할 수 있다. 서류제출 후 통행증을 받는 데만 해도 석 달이 걸린다. 그 사이 정착촌은 갈수록 늘어나고, 이스라엘인들은 점령을 공고화하기 위해 이슬람 사원까지 파괴한다. “복수하자. 대가를 치르게 하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표출되지 못한 분노가 낡은 담장에 새겨진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땅에 뿌리내린 올리브처럼 자신의 땅에 뿌리내리고 싶어한다.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은 비단 올리브 농사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정착촌을 통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통제와 봉쇄는 팔레스타인 경제를 아주 위축시켰다. 쪼그라든 영토, 투쟁전력이 있으면 이스라엘 거주를 불가능하게 하는 정책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어쩔 수 없이 난민촌으로 모여든다. 거리에는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모여 모닥불을 피워 놓고 담소를 나누는 정도다. 어려서부터 인티파다에 참여하느라 글을 깨치지도 못한 청년이 앞으로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사실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16년 12월 23일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사실상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미국이 기권한 가운데 15개 이사국 중 14개국이 결의안에 찬성했다. 이날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명백한 국제법 침해로 보고,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모든 정착촌 관련 활동을 즉각 전면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인 정착촌의 확산은 앞서 2012년 11월 유엔이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회원국 지위를 부여한 것과는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이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아랍권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자기방어와 안보가 더없이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수천 년의 디아스포라(민족 이산)를 겪은 뒤 얻게 된 자신들의 국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태도를 시종 홀로코스트를 겪은 피해자의 정당방위로만 보기만은 쉽지 않다.


<굿모닝 예루살렘>. 캐나다 출신 만화 작가 기 들릴(Guy Delisle)의 작품이다. 이 자전적 만화 속에서 작가는 1년간 예루살렘에 머물 기회를 얻는다. 그러던 중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심리학자들 파티에 초대받아 간다. 그 자리에서 어느 심리학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다른 민족에게 되풀이하는 거죠. 마치 매를 맞고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의 아이를 때리는 것처럼.” 흘려 들을 이야기만은 아니다. 2015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보수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이 예상을 뒤엎고 크게 승리했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땅을 빼앗아 하층민에게 나눠주며 불만을 달래려고 한다. 그리고 그 하층민을 자신들의 열렬한 보수 강경 지지층으로 만들어 간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인물이 자국 내에서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고 동방의 땅을 침략해 자국 하층민을 달래려고 사용한 수법을 빼닮았다.


▲몸에 밴 강인함으로 팔레스타인 재건을 이끌어가는 팔레스타인 여성 ©네이버영화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온통 절망투성이인 것만은 아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여성에게 큰 기대를 건다. 격동의 세월을 산 팔레스타인 여성들 가운데는 남편이나 자식 한 둘을 먼저 보낸 여성들이 수두룩하다. 날마다 벌어지는 비극 속에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모두가 강인하고 아픔을 견딜 힘을 체득했다. 팔레스타인의 재건을 위해 모성애와 강함을 동시에 지닌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희생된 남성을 대신해, 아니 어쩌면 남성들이라면 하지 못했을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뿐만 아니다. 영화 속 와엘과 같은 올리브 심기 활동가도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올리브 심기 운동을 펼친다. 반드시 자신의 땅을 찾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암 환자이면서 자유와 독립을 위해 올리브 심기 활동에 힘을 보태는 자원활동가도 있다. 위즈단 아버지인 마텔의 바람처럼, 언젠가는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의 땅에서 올리브처럼 뿌리 내리는 날이 올지 모른다.  


▲이스라엘 정착촌 인근에서 올리브 나무를 심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활동가 ©네이버영화


이슬람 사원을 향해 걸어가면서 무함마드가 말한다. 무함마드는 고향 야파(오늘날의 텔아비브)에서 쫓겨난 난민 1세대다. 보행 중 읊조리는 그의 음성에는 고통, 분노, 열정 등 갖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내 정체성은 무엇인지.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지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아닙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나라를 찾으면 그때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인 걸 말입니다.” 무함마드의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의 진정한 독립이 있을 때 개인의 삶도 독립적일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립과 자유를 학수고대하는 자들에게 해도 될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무함마드가 나라를 찾는 데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라를 찾은 뒤 이스라엘과 공존의 길도 모색했으면 한다. 분명 호응하는 이스라엘인이 있을 것이다. 너무 한가하고 낭만적인 소리일까.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감싸고 있는 악순환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젊은 독자를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서 팔레스타인 아이읍과 자리를 같이 한 이스라엘인 엘라드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런 기대가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많은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웃 아랍국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 유대인들에게 온 곳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말과 같아요. 난 다른 곳이 아닌 여기에서 분명히 살고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이읍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여기에 있고, 이곳이 바로 우리 집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야 해요.”


그렇다. 다른 방도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사 입력 일자: 2017-09-25


작성: 신종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경영지원팀 팀장 / jbshin@unesc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