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켜 보면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정권의 여러 주요 장면에는 국제개발협력이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서막과도 같은 "바이든·날리면" 사건은 윤석열이 결핵·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에 대응하는 국제기구인 글로벌펀드 기여금을 늘리겠다고 갑자기 발표한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2022년 캄보디아 순방 중 김건희가 14살 소년을 아기 안듯 안고 사진을 찍은 일은 '빈곤포르노' 논쟁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한때 우크라이나 '재건 특수'를 대대적으로 띄우며 한국 기업의 우크라이나 진출 촉진을 명분 삼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크게 늘렸고, 심지어는 무기 수출에 ODA를 결합하는 모델을 제시1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개발협력의 관점에서 윤석열에 제동을 걸고 스스로를 성찰할 사건은 많았지만,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충분히 비판하고 싸우지 못했다. 정부나 기업의 좋은 '파트너'로 인정받고 그들로부터 자원을 더 얻는 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정부와 기업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용기와 노력은 부족했다.
12.3 이후 광장에서 내란 종식과 사회 대개혁을 외칠 때도, 심지어 윤석열 정권의 ODA 비리가 하나둘 드러날 때도 국제개발협력 단체는 대부분 침묵했다. 국제개발협력의 침묵이 던지는 질문은 개별 사건의 문제보다 더 무겁다. 국제개발협력 단체는 해외 사업과 모금 캠페인에서 늘 참여와 권리, 변화와 연대를 말하지만, 정치적인 사안이나 국내 사안을 마주하면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중립'을 택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호소하지만 제국주의 폭력과 한국의 무기 장사2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해외에서 난민 지원 사업을 하지만 국내를 찾은 난민에 대한 혐오 여론이 불거질 때는 침묵한다. 반복되는 침묵은 국제개발협력의 세계가 전문가의 손에 쥐어질 정도로 잘게 다듬어진 사업에 갇히고,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모셔야 할 후원자와 도와야 할 수혜자만 남아 시민 없는 시민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
국제개발협력이 이른바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사업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는 동안 광장의 시민사회는 국경과 경계를 넘는 연대와 협력의 그물을 짰다. 12.3 내란 사태에 맞선 광장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깃발을 만나고 여러 목소리를 들었다. 그중에는 이주민도 있었고, 팔레스타인 깃발도 있었고, 미얀마 군부 독재정권과 무기 거래를 하는 한국 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을 살아내는 가난한 이들과 글로벌 남반구 시민, 그리고 이들을 착취하고 밀어내는 발전에 관한 이야기도 광장에서는 이미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거대 자본과 강대국이 퍼뜨리는 위로부터의 획일화된 세계화뿐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돌보고 다름을 존중하며 글로벌 부정의에 함께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다채로운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광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이 여기저기서 만나는 현실, 그리고 이바지하고 싶은 변화와 관련이 있지만, 광장과 국제개발협력의 고민과 논의는 좀처럼 연결되지 못했다.

사진 출처: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내란에 침묵하고 광장과 단절된 국제개발협력은 무엇을 위한 개발이고 누구와 하는 협력일까? 그 답이 두려운 질문 앞에서 국제개발협력이 자본과 강대국 논리에 영합하며 낡은 경제성장의 꿈을 파는 일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만드는 데 함께하는 일이 되기를 여느 때보다 더 간절히 바라본다. 비상계엄은 저지되고 정권도 바뀌었지만, 내란의 토양이 됐던 차별과 혐오, 배제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연대와 투쟁, 존재의 광장은 내란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광장에서 우리는 틀에 갇힌 국제개발협력에서 잊히고 잘려 나간 우리의 주변을 다시 만나고, 발전과 변화에 대한 더 넓고 깊은 논의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6월, 발전대안 피다는 국제개발협력의 안팎에서 글로벌 연대의 실천을 모색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대안적국제개발시민사회네트워크(Korean Solidarity for Development Alternatives, KOSODA)'를 출범했다. 네트워크에 모인 다섯 단체3는 정책 제안과 해외 개발현장 당사자 연대 활동, 정부의 ODA 활동 감시 등을 함께하며 글로벌 발전을 더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국내외 시민사회와 더 연결되는 국제개발협력의 실천을 모색했다. 어느새 국제개발협력 내부에서의 활동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피다로서는 어색하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새로운 만남에서 얻은 힘과 영감은 그보다 훨씬 컸다. KOSODA는 주류 국제개발협력에 균열을 내고, 다른 상상과 실천을 하는 이들이 서로 만나 더 큰 연대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해 내년에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발전대안 피다도 KOSODA, 그리고 또 다른 시도를 통해 광장에 대한 나름의 응답을 계속 찾아갈 것이다. 광장이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이 되고, 국제개발협력에도 광장을 닮은 실천이 꽃피는 내일은 분명 가능하다고 믿는다.

글쓴이: 우승훈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
각주 1. 2024년 6월 대통령실이 개최한 <제5차 방산수출전략평가회의>에서 정부와 무기 기업은 “K-방산의 성공”을 위해 정부 ODA를 무기 수출과 결합한 수출 모델을 확산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출처: 문제원, ‘”올해 방산수출 200억 달성”···정부, ODA 연계 맞춤형 지원’, 아시아경제, 2024.6.12, https://www.asiae.co.kr/article/2024061216345193954. 2.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시작된 이후인 2024년 한국의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액은 최소 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처: 신다은, ‘[단독]한국, 2024년 이스라엘에 무기 84억원 팔았다’, 한겨레21, 2024.11.29,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459.html. 3. 국제기후종교네트워크, 국제민주연대, 발전대안 피다, 사단법인 아디, 해외주민운동연대 |
돌이켜 보면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정권의 여러 주요 장면에는 국제개발협력이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서막과도 같은 "바이든·날리면" 사건은 윤석열이 결핵·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에 대응하는 국제기구인 글로벌펀드 기여금을 늘리겠다고 갑자기 발표한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2022년 캄보디아 순방 중 김건희가 14살 소년을 아기 안듯 안고 사진을 찍은 일은 '빈곤포르노' 논쟁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한때 우크라이나 '재건 특수'를 대대적으로 띄우며 한국 기업의 우크라이나 진출 촉진을 명분 삼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크게 늘렸고, 심지어는 무기 수출에 ODA를 결합하는 모델을 제시1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개발협력의 관점에서 윤석열에 제동을 걸고 스스로를 성찰할 사건은 많았지만,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충분히 비판하고 싸우지 못했다. 정부나 기업의 좋은 '파트너'로 인정받고 그들로부터 자원을 더 얻는 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정부와 기업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용기와 노력은 부족했다.
12.3 이후 광장에서 내란 종식과 사회 대개혁을 외칠 때도, 심지어 윤석열 정권의 ODA 비리가 하나둘 드러날 때도 국제개발협력 단체는 대부분 침묵했다. 국제개발협력의 침묵이 던지는 질문은 개별 사건의 문제보다 더 무겁다. 국제개발협력 단체는 해외 사업과 모금 캠페인에서 늘 참여와 권리, 변화와 연대를 말하지만, 정치적인 사안이나 국내 사안을 마주하면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중립'을 택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호소하지만 제국주의 폭력과 한국의 무기 장사2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해외에서 난민 지원 사업을 하지만 국내를 찾은 난민에 대한 혐오 여론이 불거질 때는 침묵한다. 반복되는 침묵은 국제개발협력의 세계가 전문가의 손에 쥐어질 정도로 잘게 다듬어진 사업에 갇히고,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모셔야 할 후원자와 도와야 할 수혜자만 남아 시민 없는 시민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
국제개발협력이 이른바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사업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는 동안 광장의 시민사회는 국경과 경계를 넘는 연대와 협력의 그물을 짰다. 12.3 내란 사태에 맞선 광장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깃발을 만나고 여러 목소리를 들었다. 그중에는 이주민도 있었고, 팔레스타인 깃발도 있었고, 미얀마 군부 독재정권과 무기 거래를 하는 한국 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을 살아내는 가난한 이들과 글로벌 남반구 시민, 그리고 이들을 착취하고 밀어내는 발전에 관한 이야기도 광장에서는 이미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거대 자본과 강대국이 퍼뜨리는 위로부터의 획일화된 세계화뿐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돌보고 다름을 존중하며 글로벌 부정의에 함께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다채로운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광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이 여기저기서 만나는 현실, 그리고 이바지하고 싶은 변화와 관련이 있지만, 광장과 국제개발협력의 고민과 논의는 좀처럼 연결되지 못했다.
사진 출처: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내란에 침묵하고 광장과 단절된 국제개발협력은 무엇을 위한 개발이고 누구와 하는 협력일까? 그 답이 두려운 질문 앞에서 국제개발협력이 자본과 강대국 논리에 영합하며 낡은 경제성장의 꿈을 파는 일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만드는 데 함께하는 일이 되기를 여느 때보다 더 간절히 바라본다. 비상계엄은 저지되고 정권도 바뀌었지만, 내란의 토양이 됐던 차별과 혐오, 배제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연대와 투쟁, 존재의 광장은 내란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광장에서 우리는 틀에 갇힌 국제개발협력에서 잊히고 잘려 나간 우리의 주변을 다시 만나고, 발전과 변화에 대한 더 넓고 깊은 논의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6월, 발전대안 피다는 국제개발협력의 안팎에서 글로벌 연대의 실천을 모색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대안적국제개발시민사회네트워크(Korean Solidarity for Development Alternatives, KOSODA)'를 출범했다. 네트워크에 모인 다섯 단체3는 정책 제안과 해외 개발현장 당사자 연대 활동, 정부의 ODA 활동 감시 등을 함께하며 글로벌 발전을 더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국내외 시민사회와 더 연결되는 국제개발협력의 실천을 모색했다. 어느새 국제개발협력 내부에서의 활동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피다로서는 어색하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새로운 만남에서 얻은 힘과 영감은 그보다 훨씬 컸다. KOSODA는 주류 국제개발협력에 균열을 내고, 다른 상상과 실천을 하는 이들이 서로 만나 더 큰 연대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해 내년에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발전대안 피다도 KOSODA, 그리고 또 다른 시도를 통해 광장에 대한 나름의 응답을 계속 찾아갈 것이다. 광장이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이 되고, 국제개발협력에도 광장을 닮은 실천이 꽃피는 내일은 분명 가능하다고 믿는다.
글쓴이: 우승훈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
1. 2024년 6월 대통령실이 개최한 <제5차 방산수출전략평가회의>에서 정부와 무기 기업은 “K-방산의 성공”을 위해 정부 ODA를 무기 수출과 결합한 수출 모델을 확산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출처: 문제원, ‘”올해 방산수출 200억 달성”···정부, ODA 연계 맞춤형 지원’, 아시아경제, 2024.6.12, https://www.asiae.co.kr/article/2024061216345193954.
2.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시작된 이후인 2024년 한국의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액은 최소 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처: 신다은, ‘[단독]한국, 2024년 이스라엘에 무기 84억원 팔았다’, 한겨레21, 2024.11.29,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459.html.
3. 국제기후종교네트워크, 국제민주연대, 발전대안 피다, 사단법인 아디, 해외주민운동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