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대안 피다는 2024년부터 (재)바보의나눔의 지원으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인간존엄 모금문화 확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개발도상국 최취약층의 삶을 대상화하고 자극적으로 재현하여 '빈곤포르노'라는 비판을 받는 모금 광고들이 여전히 제작·소비되는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도덕적 옳고 그름, 물질적 지원과 비물질적 옹호의 이분법, 분절적인 책임 소재 규명 및 절차적 정의를 통한 해결이라는 접근을 넘어, '인간존엄'이라는 가치를 시작과 끝에 둔 새로운 상상을 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총 3개년 사업의 2차년도 활동을 마무리하며, 이러한 피다의 뜻에 공감하여 기고로 참여한 대학생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글은 2025년 1학기 국립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의 교양 교과목 <글로벌 이슈와 세계시민> 수업에서 진행된 '빈곤포르노' 및 기부 문화에 관한 조별 활동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20대 대학생이 빈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더 건강한 모금과 기부를 위한 제안을 조사한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글로벌 남반구와 국제개발협력:
시혜에서 연대로 재정의하다
<글쓴이의 말> 이 글은 발전대안 피다에서 제작한 애드보커시 필름 <Africa Is Not This: 재현과 존엄을 말하는 11개국 30명의 목소리>를 시청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Africa Is Not This>는 인터뷰 기반 다큐멘터리로, 모금 광고와 미디어에서 '글로벌 빈곤의 얼굴'로 소비되는 아프리카 지역의 재현 방식의 윤리와 인간 존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
국제개발협력은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실천으로 논의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세계시민교육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CSO)와 비정부기구(NGO)가 모금 캠페인과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련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우리는 주로 SNS나 TV 광고에서 가난하고, 아프고, 불행해 보이는 개발도상국 아동들의 모습을 계속 접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한' 장면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내면에서 올라오는 어떠한 거부감을 토로하게 되기도 한다. "이제 이런 영상 그만 좀 보고 싶다", "저거 다 가짜야" 등과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모금 캠페인 영상 속 당사자의 모습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존엄과 주체성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결국 동정심을 끌어내기보다 오히려 피로감과 불신을 낳을뿐더러, 무기력함과 절망만을 강조하는 ‘패배주의적’ 이미지로 소비되면서 기부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수혜자의 비존엄성을 강요하는 '빈곤포르노'
대중은 살아가며 NGO나 시민단체의 모금 홍보 사진이나 광고 영상을 다양한 경로로 접하게 된다. 발전대안 피다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TV를 통해 송출되는 국제개발협력 NGO 모금 광고의 대부분에서 수혜자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무고하고 순수한 피해자로 보인다.1) 그리고 기부자가 수혜자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은 기부자가 주체가 되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만을 전시하고, 수혜자는 그저 아무일도 하지 않는, 즉 주어진 상황에서 개선할 의지가 없는 존재로 수렴된다.
'빈곤포르노'는 단순히 주어진 상황을 자본을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전락시킬 뿐만 아니라, 수혜자의 인간 존엄을 강탈하고 주체성을 지배하려는 듯한 식민주의 사관의 정당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금 캠페인 방식은 단기적인 재정 확보에는 성과를 거둘 수 있으나, 한국과 글로벌 남반구의 협력에 있어 엇나간 위계 질서를 고착화시키는 ‘굴욕적 협력 관계’를 형성할 위험성이 있다. '기부자'와 '수혜자'라는 이분법은 국제개발협력을 일방적인 시혜 행위로 축소시키며, 지구촌 빈곤과 구조적 불평등의 해결이라는 관점을 오히려 가로막는 방해물이 된다.
시혜에서 연대로 나아가다
한국은 글로벌 남반구와의 협력을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할까? 글로벌 남반구와의 협력은 더 이상 시혜의 형태가 아닌 역사적·구조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되돌아 보는 방식으로 접근하여, 수혜국이 국제개발협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그리고 공여국은 그 옆에서 협력하는 과정으로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 이는 '도움 받는 국가'와 '도움 받는 사람'이라는 위계적인 협력 구조를 재편하고, 수원국이 협력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국제개발협력을 하려면 글로벌 남반구가 협력의 과정에서 주체성을 가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주도권'이 필요하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주도권은 단순한 사업 진행 권한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개발의 의제로 결정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 적절한 해결 방안인지, 그 성과를 누가 평가하는지에 관해 수원국과 공여국이 협력해 수원국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괄한다. 국제개발협력에서 주도권은 즉, 자기결정권 및 자주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기결정권·자주권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결정권 및 자주권은 국제개발협력의 의의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다. 수원국이 스스로의 필요를 결정하지 못한 채 외부의 기준에 따라 개발 의제가 설정될 경우, 협력은 필연적으로 현지의 삶과 괴리된 상태로 주체성을 상실한다. 이는 개발의 효과를 단기적 성과로만 축소시키고, 장기적인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며, 본질적인 해결책 또한 찾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반면 수원국이 협력하는 과정 속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국제개발협력은 비로소 '전시용'과 '상업용'이 아닌 '해결용'으로 작동한다. 자기결정권과 자주권은 단순한 선택권이 아닌, 자신의 사회와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주권적 판단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리가 존중될 때 국제개발협력은 시혜가 아닌 연대의 형태로 전환되며 수원국의 자주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국제개발협력의 의의는 빈곤과 불평등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데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원국의 자기결정권과 자주권에 기반한 국제 연대로 나아가는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시민이 가져야 할 자세
이러한 국제개발협력의 전환은 정부나 국제개발협력 단체만의 해결 과제가 아니다. 직접 선택하고 행동하며 참여하는 시민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인식 전환이 함께 이루어질 때, 국제개발협력의 방향성도 새롭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시민들은 '수혜자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프레임에 피동적으로 반응하는 데에서 나아가, 국제개발협력의 방식과 그 과정에서 글로벌 남반구의 이미지가 재현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동성을 갖춰야 한다.
한국 시민들은 '빈곤포르노'의 성격을 띤 모금 광고 영상을 마주할 때 '얼마나 불쌍한가'가 아닌 '이 협력은 누구를 주체로 상정했는가'를 중점으로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방식이 되기 위한 협력을 선택하자는 요구다. 사업 기획과 수행, 그리고 모금까지 전 과정에 걸쳐 인간 존엄을 배제하지 않는 국제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책임감 있는 국제개발협력이 필요하다.
글쓴이: 정성결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제개발협력전공 학생
참고자료 1) 발전대안 피다 (2024). 모금의 안과 밖, 그리고 사이: 한국 국제개발협력 NGO의 TV 모금 캠페인 연구. pp.26-30, 40-41. |
발전대안 피다는 2024년부터 (재)바보의나눔의 지원으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인간존엄 모금문화 확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개발도상국 최취약층의 삶을 대상화하고 자극적으로 재현하여 '빈곤포르노'라는 비판을 받는 모금 광고들이 여전히 제작·소비되는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도덕적 옳고 그름, 물질적 지원과 비물질적 옹호의 이분법, 분절적인 책임 소재 규명 및 절차적 정의를 통한 해결이라는 접근을 넘어, '인간존엄'이라는 가치를 시작과 끝에 둔 새로운 상상을 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총 3개년 사업의 2차년도 활동을 마무리하며, 이러한 피다의 뜻에 공감하여 기고로 참여한 대학생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글은 2025년 1학기 국립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의 교양 교과목 <글로벌 이슈와 세계시민> 수업에서 진행된 '빈곤포르노' 및 기부 문화에 관한 조별 활동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20대 대학생이 빈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더 건강한 모금과 기부를 위한 제안을 조사한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글로벌 남반구와 국제개발협력:
시혜에서 연대로 재정의하다
<글쓴이의 말>
이 글은 발전대안 피다에서 제작한 애드보커시 필름 <Africa Is Not This: 재현과 존엄을 말하는 11개국 30명의 목소리>를 시청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Africa Is Not This>는 인터뷰 기반 다큐멘터리로, 모금 광고와 미디어에서 '글로벌 빈곤의 얼굴'로 소비되는 아프리카 지역의 재현 방식의 윤리와 인간 존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국제개발협력은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실천으로 논의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세계시민교육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CSO)와 비정부기구(NGO)가 모금 캠페인과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련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우리는 주로 SNS나 TV 광고에서 가난하고, 아프고, 불행해 보이는 개발도상국 아동들의 모습을 계속 접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한' 장면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내면에서 올라오는 어떠한 거부감을 토로하게 되기도 한다. "이제 이런 영상 그만 좀 보고 싶다", "저거 다 가짜야" 등과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모금 캠페인 영상 속 당사자의 모습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존엄과 주체성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결국 동정심을 끌어내기보다 오히려 피로감과 불신을 낳을뿐더러, 무기력함과 절망만을 강조하는 ‘패배주의적’ 이미지로 소비되면서 기부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수혜자의 비존엄성을 강요하는 '빈곤포르노'
대중은 살아가며 NGO나 시민단체의 모금 홍보 사진이나 광고 영상을 다양한 경로로 접하게 된다. 발전대안 피다의 2024년 연구에 따르면, TV를 통해 송출되는 국제개발협력 NGO 모금 광고의 대부분에서 수혜자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무고하고 순수한 피해자로 보인다.1) 그리고 기부자가 수혜자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은 기부자가 주체가 되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만을 전시하고, 수혜자는 그저 아무일도 하지 않는, 즉 주어진 상황에서 개선할 의지가 없는 존재로 수렴된다.
'빈곤포르노'는 단순히 주어진 상황을 자본을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전락시킬 뿐만 아니라, 수혜자의 인간 존엄을 강탈하고 주체성을 지배하려는 듯한 식민주의 사관의 정당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금 캠페인 방식은 단기적인 재정 확보에는 성과를 거둘 수 있으나, 한국과 글로벌 남반구의 협력에 있어 엇나간 위계 질서를 고착화시키는 ‘굴욕적 협력 관계’를 형성할 위험성이 있다. '기부자'와 '수혜자'라는 이분법은 국제개발협력을 일방적인 시혜 행위로 축소시키며, 지구촌 빈곤과 구조적 불평등의 해결이라는 관점을 오히려 가로막는 방해물이 된다.
시혜에서 연대로 나아가다
한국은 글로벌 남반구와의 협력을 어떤 방향으로 재구성해야 할까? 글로벌 남반구와의 협력은 더 이상 시혜의 형태가 아닌 역사적·구조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되돌아 보는 방식으로 접근하여, 수혜국이 국제개발협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그리고 공여국은 그 옆에서 협력하는 과정으로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 이는 '도움 받는 국가'와 '도움 받는 사람'이라는 위계적인 협력 구조를 재편하고, 수원국이 협력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국제개발협력을 하려면 글로벌 남반구가 협력의 과정에서 주체성을 가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주도권'이 필요하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주도권은 단순한 사업 진행 권한이 아니다. 어떤 문제가 개발의 의제로 결정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 적절한 해결 방안인지, 그 성과를 누가 평가하는지에 관해 수원국과 공여국이 협력해 수원국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괄한다. 국제개발협력에서 주도권은 즉, 자기결정권 및 자주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기결정권·자주권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결정권 및 자주권은 국제개발협력의 의의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다. 수원국이 스스로의 필요를 결정하지 못한 채 외부의 기준에 따라 개발 의제가 설정될 경우, 협력은 필연적으로 현지의 삶과 괴리된 상태로 주체성을 상실한다. 이는 개발의 효과를 단기적 성과로만 축소시키고, 장기적인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며, 본질적인 해결책 또한 찾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반면 수원국이 협력하는 과정 속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국제개발협력은 비로소 '전시용'과 '상업용'이 아닌 '해결용'으로 작동한다. 자기결정권과 자주권은 단순한 선택권이 아닌, 자신의 사회와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주권적 판단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리가 존중될 때 국제개발협력은 시혜가 아닌 연대의 형태로 전환되며 수원국의 자주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국제개발협력의 의의는 빈곤과 불평등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데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원국의 자기결정권과 자주권에 기반한 국제 연대로 나아가는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시민이 가져야 할 자세
이러한 국제개발협력의 전환은 정부나 국제개발협력 단체만의 해결 과제가 아니다. 직접 선택하고 행동하며 참여하는 시민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인식 전환이 함께 이루어질 때, 국제개발협력의 방향성도 새롭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시민들은 '수혜자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프레임에 피동적으로 반응하는 데에서 나아가, 국제개발협력의 방식과 그 과정에서 글로벌 남반구의 이미지가 재현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동성을 갖춰야 한다.
한국 시민들은 '빈곤포르노'의 성격을 띤 모금 광고 영상을 마주할 때 '얼마나 불쌍한가'가 아닌 '이 협력은 누구를 주체로 상정했는가'를 중점으로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방식이 되기 위한 협력을 선택하자는 요구다. 사업 기획과 수행, 그리고 모금까지 전 과정에 걸쳐 인간 존엄을 배제하지 않는 국제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책임감 있는 국제개발협력이 필요하다.
글쓴이: 정성결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제개발협력전공 학생
참고자료
1) 발전대안 피다 (2024). 모금의 안과 밖, 그리고 사이: 한국 국제개발협력 NGO의 TV 모금 캠페인 연구. pp.26-30, 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