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보편적 가치 실현과
평화로운 국제사회 조성을 지향해야 한다
지난 2월 26일 개최된 제56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는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이하 제4차 종합기본계획)」을 채택했다. 2010년 한국이 OECD DAC 회원국이 된 이후 정부가 5년마다 수립해 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향후 5년간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방향과 주요 과제를 제시하는 최상위 정책문서로 기능한다.
최근 국제사회의 환경은 국제개발협력에 우호적이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재정 악화, 난민 수용 비용의 증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본격화된 안보 위기와 이에 따른 국방비 확대,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USAID 해체와 같이 전통적인 원조 체계를 파괴하는 정책 추진 등 복합적인 요인 속에서 공여국들의 ODA 규모는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그 결과 지구촌의 취약한 이들의 삶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표된 한국의 향후 5년을 규정할 국제개발협력 정책 문서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혁신과 성과를 기반으로 보편적 가치와 상생을 실현하는 K-ODA’라는 비전하에 ‘포용적 가치 실현’, ‘호혜적 상생 확대’, ‘혁신적 개발 이행’, ‘통합적 체계 구축’과 같은 4대 전략목표와 12개 중점과제 및 36개 세부 내용을 제시한다. 또한 3대 이행 기반으로 ‘정당성 확보’, ‘파트너십 강화’, ‘전문성 제고’와 그에 따른 9개 세부 내용을 설정한다. 발전대안 피다는 이 같은 「제4차 종합기본계획」의 지향점과 주요 내용 그리고 작성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지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미지 출처: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홈페이지 (링크)
K-ODA를 통해 드러난 공여국 중심주의를 경계한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출범시키며 ‘K’를 국가 브랜드로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K-OOO’라는 표현이 널리 확산됐다. K-팝, K-뷰티, K-방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K’ 접두어를 붙인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하나의 문화적·정책적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2025년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는 총 26개의 ‘K-OOO’ 정책을 제시했다. K-문화, K-민주주의, K-푸드, K-콘텐츠, K-수출전략품목, K-소상공인, K-헤리티지 관광벨트, K-Tech 국민기업, K-Space, K-의료·뷰티, K-AI 시티, K-조선업, K-해양강국, K-컬쳐, K-방산, K-관광·산업·문화, K-씨푸드, K-STAR 트랙, K-MOOC, K-아트, K-스포츠, K-관광 세일즈, K-관광콘텐츠화, K-플랫폼, K-보이텔스바흐 합의, K-이니셔티브 등이 그 내용이다. 이처럼 ‘K’는 문화 영역을 넘어 산업, 교육, 외교, 국방 등 정책 전반에 걸쳐 국가 정체성과 정책 방향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확대되고 있다. 모든 것에 ‘K’를 붙인 것은 브랜드나 유행을 넘어 일종의 지나친 강박으로 보인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에도 ‘K’가 등장한다. 향후 5년간의 비전인 ‘혁신과 성과를 기반으로 보편적 가치와 상생을 실현하는 K-ODA’가 그 내용이다. ‘K’를 붙여서 국가 브랜드의 일관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효용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타 국가들과의 호혜적 협력을 강조하는 국제개발협력 정책에서 최상위 목표인 비전에 노골적으로 ‘K’라는 국가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국제개발협력 정책 시행의 역사가 4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주는 자’의 존재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공여국 중심주의가 반영된 것 같아 아쉽다. 국제개발협력에서 강조되는 중요 원칙이 협력국 존중이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합의해서 만들어 온 보편적인 규범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국내 구성원들을 고려한 점은 이해하지만, ‘주는 자’로서 한국을 전면에 내세운 ‘K-ODA’라는 표현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이 ‘한국 알리기’를 넘어 자칫 오만함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란다.
‘상생’의 명목 아래 상업적 이익 추구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비전에서 제시한 ‘상생’의 내용으로 한국의 이익 추구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다수 제시한다. 이 중 단기적이거나 상업적 이익 추구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도 포함하고 있어 우려를 낳는다. 첫째, ‘전략 2. 호혜적 상생 확대’의 하위 과제인 ‘② 협력국 발전 기반 강화’에서 제시된 “민간부문의 참여 가능성이 높은 유망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대형·고부가가치 사업을 발굴하고 협력 기반 확충을 지원한다”는 대목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인프라 사업 발굴과 지원의 기준이 한국 민간 부문의 참여 가능성에 놓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발협력 사업의 출발점은 협력국의 필요이며, 한국 민간 기업의 참여 가능성은 그 다음에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현지의 실제 수요는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의 진출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사업이 추진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전략 2의 하위 과제인 ‘③ 글로벌 위험 대응 협력 강화’에서 제시된 “민간부문 수요를 고려하여 공급망–ODA 연계 사업을 체계화·구조화하는 시장 발굴형 사업 추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발협력 사업의 목적이 민간 부문의 수요를 고려하는 데에 맞추어져서는 곤란하다. 과거 1950~70년대 일본이 원자재 공급 확보를 목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ODA를 제공하면서 기업 이익을 위해 ODA를 오용하고, 관련하여 부패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 국제개발협력에서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전략 3. 혁신적 개발 이행’에서 제시된 ‘제안형 ODA’ 도입도 쟁점 사항이다. 이는 그동안의 사업 발굴 방식이었던 협력국 요청형이 아니라, 공여국이 기획을 통해 사업을 발굴하여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는 “협력국의 수요와 여건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수요조사를 통해 사업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재외공관을 통해 협력국과 협의체를 구성하여 구체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협력국의 수요와 민간 부문의 수요가 충돌할 경우 어떤 기준으로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존재한다. 민간 기업의 수요가 협력국의 개발 수요보다 우선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은 2023년 제안형인 ‘Offer-type Cooperation’을 도입했다. 그러나 바로 협력국의 주도성(ownership) 약화, 기업 중심 ODA 확대, 개발협력의 외교·산업화, 구속성 원조 가능성 등의 이유로 시민사회와 학계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이 방식은 ‘Co-Creation for Common Agenda Initiative’ 방식으로 수정됐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 역시 유사한 문제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전략 3. 혁신적 개발이행’의 하위 과제인 ‘③ 민간 참여 활성화’에서 제시된 “기업 등 민간부문의 관심 분야를 타겟팅한 KSP 민간제안제를 통해 정책자문 종료 이후 후속 인프라 사업에 기업 참여 가능성을 확대한다”는 내용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이 기업의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발굴하게 될 경우, 협력국의 우선적인 개발 수요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발협력에서 민간의 참여 자체는 중요한 흐름이다. 특히 협력국 정부와의 정책 대화, 현지 시민 사회와의 협력, 현지 학계와의 학문 교류 등이 국제개발협력에서 권장되는 것처럼, 한국 기업이 현지 기업이나 공공 및 민간 단체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 또한 협력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민간 기업의 참여를 협력국의 개발 수요보다 앞서는 방식으로 사업을 설계할 경우, 개발협력은 자칫 상생이라는 이름하에 기업의 효과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ODA의 공공성과 개발 목적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상생이라는 이름 아래 공여국의 경제 및 기업의 사업 이익이 협력국의 수요를 대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명확한 원칙과 이를 통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무상ODA 통합 체계 구축을 둘러싼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이 과열돼서는 안 된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에서 특히 주목되는 과제는 ‘전략 4. 통합적 체계 구축’ 가운데 ‘원조 체계 정비’, 그중에서도 무상원조 사업 정비다. 이는 비록 무상 ODA 부문에 국한되었지만, 한국 ODA에서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구조적 문제인 분절화(fragmentation)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2025년 기준 41개에 이르는 무상 ODA 시행 기관을 절반 이상 정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KOICA 공공협력사업을 중심으로 통합적 플랫폼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향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추진한 당국자들의 노력과 수고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비 기준의 명확성,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특히 41개 기관 가운데 절반 이상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은 상당한 구조적 변화를 수반하는 만큼, 정책 결정 과정과 기준이 충분히 공개되고 사회적 논의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어려운 개혁을 추구한다는 명분하에 특정 기관과 그룹의 독단과 독선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무상 ODA 통합 체계 구축 과정에 대한 우려되는 점이 있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국무조정실 국제개발협력본부와 외교부 개발협력국 간의 긴장이 상당히 고조되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 왔다. 이는 무상 ODA 정책 조정을 둘러싼 주도권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ODA 체계의 통합과 효율성 제고는 단순한 부처 간 권한 문제가 아니라, 향후 한국 개발협력의 구조와 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정책 과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부처 간의 과도한 갈등이 정책 추진 과정에 영향을 미쳐 중요한 개혁 과제의 실질적 성과 도출을 저해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정부 당국은 한국 ODA 체계 개편이 특정 부처들 간의 주도권을 둘러싼 지나친 과열 경쟁 및 갈등으로 흐르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체계의 신뢰성과 정책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고위 정책 결정자들의 책임 있는 판단과 조정 역할이 요구된다.

이미지 출처: rawpixel.com on Freepik (링크)
「제4차 종합기본계획」과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을 연계해야 한다
정부의 최상위 정책 문서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이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공식 채택된 것은 지난 2월 26일이다. 그러나 하위 정책 문서인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은 그 이전에 이미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1월 27일 뉴욕에서 개최된 제19차 한–UNDP 정책협의회에서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이 소개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략목표가 설명된 바 있다.
① 청년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기술·디지털·혁신 역량 강화
② 건강한 청년 육성을 위한 보건의료 회복력 강화
③ 청년의 기후 회복력 강화를 위한 기후적응·감축 및 에너지 접근성 개선
④ 청년 소득 증대를 위한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농촌 지역사회 조성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4대 전략이 오직 ‘청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공여국의 ODA 정책 대상은 청년 외에도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번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이 청년층에만 집중한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관련하여 우려되는 점은 「제4차 종합기본계획」과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간의 정책 연계성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위 정책 문서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4대 전략, 12개 중점 과제, 36개 세부 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발표된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4대 전략목표는 이러한 구조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상위 정책과 하위 정책 간 목표와 전략이 명확히 연계되지 않는다면 정책 체계의 일관성과 실행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무상 ODA 시행 기관을 절반 이상 정비하겠다고 강조했지만, 3월 10일 발표된 외교부 보도자료는 2030년까지 10여 개로 정리한다고 한다. 어느 것이 정확한 목표인지 혼란스럽다. 물론 현재까지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전체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개발협력 최상위 정책과 하위 정책 간의 연계성 문제는 향후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다른 차원에서의 문제도 있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제13조(국제개발협력 주관기관의 역할 및 기능)는 주관 기관의 역할 가운데 하나로 “분야별 기본계획안과 분야별 시행계획안의 작성 및 위원회 제출”을 명시하고 있다.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이 국무조정실에 제출된 것으로 확인되지만, 복수의 국제개발협력위원회와 실무위원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은 해당 회의들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하위 정책 문서인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주요 내용들이 최상위 정책 문서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 작성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무상 ODA 통합 정책과 같은 주요 정책이 두 문서에 동일하게 중요하게 담겨진 것으로 파악되지만, ‘청년’을 중심으로 하는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4대 전략목표가 「제4차 종합기본계획」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보면 두 정책 문서 간 연계가 충분한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상황은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책 이행의 체계성, 수립 과정의 적법성과 투명성에 대한 의문과 신뢰성을 갖게 한다. 정부는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내용과 수립 과정에 대해 보다 명확한 설명을 제공하고, 상위 정책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과의 정책적 연계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 국제사회가 처한 환경이 암울하다. 오랜 시간 쌓아 온 국제 규범이 쉽게 무너지고, 전쟁은 계속되는 가운데 무고한 희생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기후 위기는 가속화되어 지구촌 구성원들의 삶의 기반을 위협하고 있으며, 인도주의 위기는 증대되고 있다. 미국발 통상 위기와 확장되는 전쟁의 소식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위기감의 여파가 국가의 직접적 이익 추구를 강조했고, 결국 그 영향이 보편적 가치 추구를 중요시하는 국제개발협력 정책까지 영향을 미쳤다. 타 국가의 발전을 위한 협력이라는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개발협력은 오랜 어려움을 극복해 온 한국이 이웃 국가들과 함께 살아갈 평화로운 지구촌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이행하는 중요한 정책이다. 발전대안 피다는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단기적인 자기 이익 추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길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품격 있는 방식으로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글쓴이: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발전대안 피다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 응원하기 2026년 피다는 정책 분석 보고서 발간, 정책 토크 개최, 세이프가드 제도 개선 등 다양한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을 진행합니다. 이 활동들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후원으로 함께해 주세요. 👉 후원하기
|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보편적 가치 실현과
평화로운 국제사회 조성을 지향해야 한다
지난 2월 26일 개최된 제56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는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이하 제4차 종합기본계획)」을 채택했다. 2010년 한국이 OECD DAC 회원국이 된 이후 정부가 5년마다 수립해 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향후 5년간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방향과 주요 과제를 제시하는 최상위 정책문서로 기능한다.
최근 국제사회의 환경은 국제개발협력에 우호적이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재정 악화, 난민 수용 비용의 증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본격화된 안보 위기와 이에 따른 국방비 확대,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USAID 해체와 같이 전통적인 원조 체계를 파괴하는 정책 추진 등 복합적인 요인 속에서 공여국들의 ODA 규모는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그 결과 지구촌의 취약한 이들의 삶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표된 한국의 향후 5년을 규정할 국제개발협력 정책 문서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혁신과 성과를 기반으로 보편적 가치와 상생을 실현하는 K-ODA’라는 비전하에 ‘포용적 가치 실현’, ‘호혜적 상생 확대’, ‘혁신적 개발 이행’, ‘통합적 체계 구축’과 같은 4대 전략목표와 12개 중점과제 및 36개 세부 내용을 제시한다. 또한 3대 이행 기반으로 ‘정당성 확보’, ‘파트너십 강화’, ‘전문성 제고’와 그에 따른 9개 세부 내용을 설정한다. 발전대안 피다는 이 같은 「제4차 종합기본계획」의 지향점과 주요 내용 그리고 작성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지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K-ODA를 통해 드러난 공여국 중심주의를 경계한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출범시키며 ‘K’를 국가 브랜드로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K-OOO’라는 표현이 널리 확산됐다. K-팝, K-뷰티, K-방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K’ 접두어를 붙인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하나의 문화적·정책적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2025년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는 총 26개의 ‘K-OOO’ 정책을 제시했다. K-문화, K-민주주의, K-푸드, K-콘텐츠, K-수출전략품목, K-소상공인, K-헤리티지 관광벨트, K-Tech 국민기업, K-Space, K-의료·뷰티, K-AI 시티, K-조선업, K-해양강국, K-컬쳐, K-방산, K-관광·산업·문화, K-씨푸드, K-STAR 트랙, K-MOOC, K-아트, K-스포츠, K-관광 세일즈, K-관광콘텐츠화, K-플랫폼, K-보이텔스바흐 합의, K-이니셔티브 등이 그 내용이다. 이처럼 ‘K’는 문화 영역을 넘어 산업, 교육, 외교, 국방 등 정책 전반에 걸쳐 국가 정체성과 정책 방향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확대되고 있다. 모든 것에 ‘K’를 붙인 것은 브랜드나 유행을 넘어 일종의 지나친 강박으로 보인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에도 ‘K’가 등장한다. 향후 5년간의 비전인 ‘혁신과 성과를 기반으로 보편적 가치와 상생을 실현하는 K-ODA’가 그 내용이다. ‘K’를 붙여서 국가 브랜드의 일관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효용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타 국가들과의 호혜적 협력을 강조하는 국제개발협력 정책에서 최상위 목표인 비전에 노골적으로 ‘K’라는 국가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국제개발협력 정책 시행의 역사가 4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주는 자’의 존재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공여국 중심주의가 반영된 것 같아 아쉽다. 국제개발협력에서 강조되는 중요 원칙이 협력국 존중이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합의해서 만들어 온 보편적인 규범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국내 구성원들을 고려한 점은 이해하지만, ‘주는 자’로서 한국을 전면에 내세운 ‘K-ODA’라는 표현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이 ‘한국 알리기’를 넘어 자칫 오만함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란다.
‘상생’의 명목 아래 상업적 이익 추구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비전에서 제시한 ‘상생’의 내용으로 한국의 이익 추구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다수 제시한다. 이 중 단기적이거나 상업적 이익 추구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도 포함하고 있어 우려를 낳는다. 첫째, ‘전략 2. 호혜적 상생 확대’의 하위 과제인 ‘② 협력국 발전 기반 강화’에서 제시된 “민간부문의 참여 가능성이 높은 유망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대형·고부가가치 사업을 발굴하고 협력 기반 확충을 지원한다”는 대목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인프라 사업 발굴과 지원의 기준이 한국 민간 부문의 참여 가능성에 놓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발협력 사업의 출발점은 협력국의 필요이며, 한국 민간 기업의 참여 가능성은 그 다음에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현지의 실제 수요는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의 진출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사업이 추진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전략 2의 하위 과제인 ‘③ 글로벌 위험 대응 협력 강화’에서 제시된 “민간부문 수요를 고려하여 공급망–ODA 연계 사업을 체계화·구조화하는 시장 발굴형 사업 추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발협력 사업의 목적이 민간 부문의 수요를 고려하는 데에 맞추어져서는 곤란하다. 과거 1950~70년대 일본이 원자재 공급 확보를 목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ODA를 제공하면서 기업 이익을 위해 ODA를 오용하고, 관련하여 부패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 국제개발협력에서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전략 3. 혁신적 개발 이행’에서 제시된 ‘제안형 ODA’ 도입도 쟁점 사항이다. 이는 그동안의 사업 발굴 방식이었던 협력국 요청형이 아니라, 공여국이 기획을 통해 사업을 발굴하여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는 “협력국의 수요와 여건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수요조사를 통해 사업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재외공관을 통해 협력국과 협의체를 구성하여 구체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협력국의 수요와 민간 부문의 수요가 충돌할 경우 어떤 기준으로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존재한다. 민간 기업의 수요가 협력국의 개발 수요보다 우선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은 2023년 제안형인 ‘Offer-type Cooperation’을 도입했다. 그러나 바로 협력국의 주도성(ownership) 약화, 기업 중심 ODA 확대, 개발협력의 외교·산업화, 구속성 원조 가능성 등의 이유로 시민사회와 학계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이 방식은 ‘Co-Creation for Common Agenda Initiative’ 방식으로 수정됐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 역시 유사한 문제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전략 3. 혁신적 개발이행’의 하위 과제인 ‘③ 민간 참여 활성화’에서 제시된 “기업 등 민간부문의 관심 분야를 타겟팅한 KSP 민간제안제를 통해 정책자문 종료 이후 후속 인프라 사업에 기업 참여 가능성을 확대한다”는 내용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이 기업의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발굴하게 될 경우, 협력국의 우선적인 개발 수요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발협력에서 민간의 참여 자체는 중요한 흐름이다. 특히 협력국 정부와의 정책 대화, 현지 시민 사회와의 협력, 현지 학계와의 학문 교류 등이 국제개발협력에서 권장되는 것처럼, 한국 기업이 현지 기업이나 공공 및 민간 단체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 또한 협력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민간 기업의 참여를 협력국의 개발 수요보다 앞서는 방식으로 사업을 설계할 경우, 개발협력은 자칫 상생이라는 이름하에 기업의 효과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ODA의 공공성과 개발 목적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상생이라는 이름 아래 공여국의 경제 및 기업의 사업 이익이 협력국의 수요를 대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명확한 원칙과 이를 통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무상ODA 통합 체계 구축을 둘러싼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이 과열돼서는 안 된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에서 특히 주목되는 과제는 ‘전략 4. 통합적 체계 구축’ 가운데 ‘원조 체계 정비’, 그중에서도 무상원조 사업 정비다. 이는 비록 무상 ODA 부문에 국한되었지만, 한국 ODA에서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구조적 문제인 분절화(fragmentation)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2025년 기준 41개에 이르는 무상 ODA 시행 기관을 절반 이상 정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KOICA 공공협력사업을 중심으로 통합적 플랫폼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향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추진한 당국자들의 노력과 수고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비 기준의 명확성,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특히 41개 기관 가운데 절반 이상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은 상당한 구조적 변화를 수반하는 만큼, 정책 결정 과정과 기준이 충분히 공개되고 사회적 논의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어려운 개혁을 추구한다는 명분하에 특정 기관과 그룹의 독단과 독선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무상 ODA 통합 체계 구축 과정에 대한 우려되는 점이 있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국무조정실 국제개발협력본부와 외교부 개발협력국 간의 긴장이 상당히 고조되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 왔다. 이는 무상 ODA 정책 조정을 둘러싼 주도권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ODA 체계의 통합과 효율성 제고는 단순한 부처 간 권한 문제가 아니라, 향후 한국 개발협력의 구조와 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정책 과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부처 간의 과도한 갈등이 정책 추진 과정에 영향을 미쳐 중요한 개혁 과제의 실질적 성과 도출을 저해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정부 당국은 한국 ODA 체계 개편이 특정 부처들 간의 주도권을 둘러싼 지나친 과열 경쟁 및 갈등으로 흐르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체계의 신뢰성과 정책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고위 정책 결정자들의 책임 있는 판단과 조정 역할이 요구된다.
이미지 출처: rawpixel.com on Freepik (링크)
「제4차 종합기본계획」과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을 연계해야 한다
정부의 최상위 정책 문서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이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공식 채택된 것은 지난 2월 26일이다. 그러나 하위 정책 문서인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은 그 이전에 이미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1월 27일 뉴욕에서 개최된 제19차 한–UNDP 정책협의회에서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이 소개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략목표가 설명된 바 있다.
① 청년 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기술·디지털·혁신 역량 강화
② 건강한 청년 육성을 위한 보건의료 회복력 강화
③ 청년의 기후 회복력 강화를 위한 기후적응·감축 및 에너지 접근성 개선
④ 청년 소득 증대를 위한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농촌 지역사회 조성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4대 전략이 오직 ‘청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공여국의 ODA 정책 대상은 청년 외에도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번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이 청년층에만 집중한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관련하여 우려되는 점은 「제4차 종합기본계획」과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간의 정책 연계성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위 정책 문서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4대 전략, 12개 중점 과제, 36개 세부 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발표된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4대 전략목표는 이러한 구조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상위 정책과 하위 정책 간 목표와 전략이 명확히 연계되지 않는다면 정책 체계의 일관성과 실행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제4차 종합기본계획」은 무상 ODA 시행 기관을 절반 이상 정비하겠다고 강조했지만, 3월 10일 발표된 외교부 보도자료는 2030년까지 10여 개로 정리한다고 한다. 어느 것이 정확한 목표인지 혼란스럽다. 물론 현재까지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전체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개발협력 최상위 정책과 하위 정책 간의 연계성 문제는 향후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다른 차원에서의 문제도 있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제13조(국제개발협력 주관기관의 역할 및 기능)는 주관 기관의 역할 가운데 하나로 “분야별 기본계획안과 분야별 시행계획안의 작성 및 위원회 제출”을 명시하고 있다.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이 국무조정실에 제출된 것으로 확인되지만, 복수의 국제개발협력위원회와 실무위원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은 해당 회의들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하위 정책 문서인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주요 내용들이 최상위 정책 문서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 작성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무상 ODA 통합 정책과 같은 주요 정책이 두 문서에 동일하게 중요하게 담겨진 것으로 파악되지만, ‘청년’을 중심으로 하는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4대 전략목표가 「제4차 종합기본계획」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보면 두 정책 문서 간 연계가 충분한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상황은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책 이행의 체계성, 수립 과정의 적법성과 투명성에 대한 의문과 신뢰성을 갖게 한다. 정부는 「제4차 무상분야 기본계획」의 내용과 수립 과정에 대해 보다 명확한 설명을 제공하고, 상위 정책인 「제4차 종합기본계획」과의 정책적 연계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 국제사회가 처한 환경이 암울하다. 오랜 시간 쌓아 온 국제 규범이 쉽게 무너지고, 전쟁은 계속되는 가운데 무고한 희생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기후 위기는 가속화되어 지구촌 구성원들의 삶의 기반을 위협하고 있으며, 인도주의 위기는 증대되고 있다. 미국발 통상 위기와 확장되는 전쟁의 소식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위기감의 여파가 국가의 직접적 이익 추구를 강조했고, 결국 그 영향이 보편적 가치 추구를 중요시하는 국제개발협력 정책까지 영향을 미쳤다. 타 국가의 발전을 위한 협력이라는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국제개발협력은 오랜 어려움을 극복해 온 한국이 이웃 국가들과 함께 살아갈 평화로운 지구촌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이행하는 중요한 정책이다. 발전대안 피다는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단기적인 자기 이익 추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길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품격 있는 방식으로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글쓴이: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2026년 피다는 정책 분석 보고서 발간, 정책 토크 개최, 세이프가드 제도 개선 등 다양한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을 진행합니다.
이 활동들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후원으로 함께해 주세요.
👉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