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 치는 국제개발협력 공약, 멀어지는 개혁
숨 가쁘게 달려온 19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은 이제 10여 일 뒤면 새 지도자를 맞이하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치러질 이번 조기 대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적폐청산’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차기 대통령은 적폐세력을 청산하고, 나아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반적인 개혁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비선실세의 사적 이용으로 논란을 빚은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개혁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2월, 최순실의 인사 개입이 드러난 한국국제협력단(이하 코이카) 김인식 이사장은 3월 특검의 최종 수사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계속 버티다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비단 김 이사장의 사퇴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직 최순실 ODA 이권개입에 연루된 기관과 관계자들의 책임을 묻지 못했고,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개혁과제는 시민사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됐을 뿐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다. 적폐청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차기 정권이 집권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겠지만,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각 대선후보들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어떤 대안을 내어놓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과연 ‘국제개발협력’은 어디쯤 와 있을까?
대통령 후보들은 ‘국제개발협력’에 얼마나 관심 있나?
<표 1> 제19대 대선 후보별 시민사회 대응 여부 및 공약 유무

대선후보들이 국제개발협력 이슈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위 <표 1>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이하 코피드)이 지난 3월 13일 당시 공식 출마선언을 하기 전인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고 각 당의 후보들에게 ‘코리아에이드’와 ‘새마을운동 ODA’ 등 국제개발협력 개혁과제에 대해 발송한 질의서에는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만이 답변서를 보내왔다.[1] 지난 4월 20일 코피드가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심상정 후보 등 세 캠프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각 후보가 발표한 정책공약 중 국제개발협력 관련 공약이 있는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 두 명이었다.* 안철수 후보는 평화 ·통일·외교 분야 중 ‘동아시아 안정과 지역 협력, 국제사회 협력과 국제공헌’, ‘인도적 지원 통해 지구촌 문제, 인류의 평화적 발전 기여’ 등으로 간략하게 두 줄 정도를 언급했다. 심상정 후보는 외교통일 분야의 10가지 과제 중 하나로 ‘제3세계 발전과 세계평화 기여하는 적극적 외교’를 설정하고, ‘지구촌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제3세계 발전 기여외교 적극 전개’와 ‘무분별한 대외파병 금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토론회에도 참석하지 않은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의 경우, 국제개발협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이다.
(* 이후 문재인, 홍준표, 유승민 후보도 최종 발표한 정책공약집에 국제개발협력 공약을 포함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 공공외교를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공공외교를 위한 정부 내외 통합조정체계 구축', '청년일자리와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개발원조 사업 추진', '개발원조사업의 체계성, 투명성, 효율성 제고'를 내세웠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글로벌 공공외교를 통한 국가위상 제고'를 강조하며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지역과 포괄적 협력관계 심화', '인도주의의 외교 브랜드화'를 약속했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개발협력을 통한 국제공헌 확대'를 목표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신한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관협력 원조 프로그램의 다양화, 효율화'를 공약했다.)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국제개발협력 공약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최순실 ODA 이권개입 사태를 겪은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대선’을 계기로 현재의 문제를 성찰하고 개혁할 수 있도록 각 후보자를 대상으로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을 펼쳤다. 먼저 코피드는 질의서 발송에 이어 지난 4월 11일에는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크게 5대 방향 9개 과제를 제안했다.[2] 코피드는 인도주의 정신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국제개발협력 기본정신을 명확히 하고, 원조분절화를 극복하기 위한 유·무상 통합 원조기구 설치를 주장했다. 또, 무상원조 및 비구속성 원조와 인도적 지원 확대를 통한 원조의 질적 개선과 정보공개 확대, 기업의 관리·감독 강화, 치안·군사협력 수단으로서의 원조 근절을 통한 원조의 투명성·책무성 제고를 강조하면서 국제개발협력 파트너로서 시민사회의 참여 확대와 민관협력 강화를 주장했다.
발전대안 피다도 4월 17일 국제개발협력 정책제안서를 발표하고 한국 국제개발협력을 ‘포괄적 발전’으로 전환하기 위한 5대 방향 9개 과제를 제안했다.[3] 코피드가 기본정신, 체계, 원칙 측면에서의 구체적인 정책제안이라면 발전대안 피다는 △파트너국 시민들의 발전권을 보장하는 포괄적 발전 지향, △한국 개발신화의 파트너국 이식 중지, △시민들의 정보권 보장을 위한 책무성·투명성 제고, △현지사회의 인권, 노동권, 환경규범 준수, △국제개발협력 참여자의 노동가치 존중 등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어떤 철학과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더 초점을 맞췄다.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국제개발협력 공약
코피드는 4월 20일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차기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정책 비전과 과제’를 주제로 19대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4] 토론회에는 홍준표 후보, 유승민 후보를 제외하고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심상정 후보의 정책 담당자들이 참석해 각 후보의 국제개발협력 정책공약과 코피드 정책과제 제안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다. 빡빡한 조기 대선 일정을 고려하더라도 세 후보의 공약은 관점이나 구체성 측면에서 미흡한 지점이 많았다. 공약의 수준은 5년 전인 지난 18대 대선과 비교해서도 더 후퇴했고, 각 캠프 측의 정책 담당자는 지난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당일 토론회에서 오갔던 내용 중 핵심 쟁점들만 몇 가지로 추려 소개한다.

▲ <한국 ODA 발전을 위한 19대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 장면 (왼쪽부터 이미현 코피드 정책위원장/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팀장,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캠프 정해문 전 대사, 한재광 코피드 운영위원장/발전대안 피다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캠프 박채순 교수, 정의당 심상정 캠프 손종필 정책위원) ⓒ코피드
1) 국제개발협력은 외교적 수단이다 vs 아니다
후보들이 국제개발협력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는가는 향후 제도와 정책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문재인 후보 측은 국제개발협력을 외교의 대표 브랜드로 발전시켜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국익과 대외전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후보 측 역시 세계 평화와 글로벌 외교의 일환으로 국제개발협력을 추진하겠다며 특히 한국의 인력수출과 기업의 해외 진출을 국제개발협력과 연동하여 한국과 파트너국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후보 측은 이에 반박하며 보편적 인류애에 기초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았고, 기업의 해외진출 방편으로 활용되는 ODA를 비판하며 구속성 원조 비율을 감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쟁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철학과 이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명문화된 기본정신만이 아니라 분명한 노선을 정하고, 그러한 방향에 기반을 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한편 발전대안 피다는 앞서 언급한 정책제안서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발전을 지향하고,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이 ODA를 벗어나 무역, 투자, 이주, 기후변화, 인권, 거버넌스 등 다른 대외정책과 일관성 있게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경제발전만이 아닌 ‘포괄적 발전’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대외경제협력기금법」을 전면 개정하겠다는 심상정 후보와 ODA 정책을 대외전략 및 외교정책과 연계해야 한다는 문재인 후보는 이러한 맥락과 잘 닿아있다. 하지만 세 후보 모두 과거 원조를 받았던 한국의 경험과 ‘주는 나라’라는 소위 ‘공여국’으로서의 위상을 강조하는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이 과거 원조를 받았기 때문에, 혹은 경제규모에 맞게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국제개발협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위기에서 공존하기 위한 당연한 의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2) 한국식 발전모델 전파, 계속해야 vs 중단해야
후보들은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전파하는 문제에서도 다른 견해를 보였다. 심상정 후보 측은 국가 동원체계를 활용하고, 인권과 노동을 담보로 성장한 한국의 모델을 성공적인 모델로 다른 국가에 확산시키는 것은 국제개발협력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세계적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새마을운동 ODA’ 등 개발시대의 모델 전파를 중단하겠다는 주장을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반면 문재인 후보 측은 우리의 독특한 경제개발 모델을 국제사회에 전수해야 한다며 한국이 원조 규모로 선진국과 경쟁하기는 어려우므로 한국의 독특한 개발 경험을 토대로 우리만이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질적으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발전대안 피다는 정책제안서를 통해 권위주의 정부,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 인권신장을 위한 투쟁, 민주주의의 발전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한국의 발전과정을 역사적, 시대적, 사회적 맥락이 다른 국가에 전수하는 것을 비판하며 면밀한 검토 없이 국가 브랜딩의 일환으로 수출하려는 시도는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새마을운동 ODA’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객관적인 검증 없이 한국식 발전모델을 전수하자는 것은 성급하고 무리한 주장이다.
3) 고질적인 ‘분절화’ 문제, 이번에는 정말 해결 가능할까?
세 후보가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가장 큰 문제로 꼽은 사안은 단연 ‘분절화’였다. 세 후보 모두 분절화를 극복하기 위해 유·무상원조를 통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지만, 방안에 대해서는 조금씩 달랐다. 문재인 후보 측은 유·무상 통합을 중기적 과제로 검토하겠다며 임기 내에 통합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심상정 후보 측도 현재 40여 개가 넘는 부처와 기관이 시행하고 있어 통합적 사고가 없다며 하나의 기구로 통합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측은 유상과 무상을 조정하고 있는 국무조정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격상하여 위상과 권한을 더 강화하겠다는 것을 주요 공약으로 선언했다. 분절화 문제는 오래전부터 계속 제기되어 왔고, 유·무상 통합의 필요성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유·무상 통합기구를 어떤 형태로 설립할 것인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은 무엇인지,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으로 분절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 등이 더욱 중요하다. 구체적인 실행방안 없이 문제제기와 필요성에만 공감하는 것은 지난 10년으로 충분하다.
4) 아무도 관심 없는 국제개발협력의 노동 문제
발전대안 피다는 정책제안서를 통해 실업대책으로 추진하는 해외봉사단 파견 정책을 폐지하고, 열정만 착취당하며 정당한 권리 실현이 어려워진 국제개발협력 참여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 후보 모두 이러한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특히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여전히 ‘인력 양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보였다. 문재인 후보 측은 해외봉사단 파견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이는 글로벌 인재양성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토론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기존 봉사단원들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데다 다녀온 단원들의 전문성도 잘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원만 늘릴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봉사단 확대를 주장한 문 후보 측의 공약은 ‘글로벌 인재양성’이라는 명목으로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면서 결과적으로 취약한 일자리만 양산한 역대 정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안철수 후보 측은 한국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현지 재외동포를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재외동포를 국제개발협력의 어떤 부문에 어떻게 활용한다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평가하기가 어렵다.
한편, 인턴, 해외봉사단 등을 경험하고 현재 구직 중이라는 한 참가자는 주변에 무보수로 일하거나 노동강도가 높고 열악한 상황이라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며, 국제개발협력 분야 종사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상정 후보 측은 청년 실업자가 많으니 해외로 내보낸다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며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인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내부에서도 깊이 고민하지 못한 문제라고 밝혔다. 다른 후보들도 토론회 현장에서 뒤늦게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했지만,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는 못했다.
5) 기타: 군사협력 오용, 투명성 제고, 시민사회 파트너십
한국 ODA가 치안과 군사협력 수단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문재인 후보 측은 파트너국이 요청할 경우 국익 관점에서 수사 역량강화 등의 치안협력 프로그램은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고,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 측은 인권을 침해하고 기본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투명성과 책무성 제고에서는 안철수 후보 측이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운영이 아닌 투명성 제고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고 다른 후보 측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으나, 다양한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선언적 수준을 넘어선 공약은 찾기 어려웠다. 시민사회의 참여도 형식적인 수준을 벗어나 실질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5년 전보다 더 후퇴한 공약, 우리는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19대 대선 후보들의 국제개발협력 공약은 여전히 자랑스러운 공여국으로서의 한국을 강조하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행계획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지난 18대 대선보다 나아진 점이 없고, 오히려 더 후퇴했다. 이번 대선이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인 데다 국제개발협력이 대선에서 늘 우선순위에 밀려 뒷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각 후보들의 공약 수준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대선 직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었고, 많은 사람이 ODA를 최순실의 먹잇감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후보들은 GNI 대비 ODA 비율(2016년 기준 0.14%)이 지나치게 낮다며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0.25% 달성을 약속했던 지난 두 정권 모두 실패한 경험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ODA는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의지만큼이나 사회적 공감대가 중요한데, 지금과 같이 불신이 팽배해진 상황에서 과연 규모 확대가 바람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러한 점에서 후보들의 공약이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토대로 수립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특히 시민사회가 오래전부터 제기해 온 국제개발협력의 수단화, 한국식 발전모델 전파 등의 문제에 대해 전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해결방안 없이 논란이 많은 공약을 주장하는 것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대선 후보로서는 너무 무책임한 태도이다. 더군다나 제시한 공약들을 당위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실현할 준비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실천하지 못한 공약을 내뱉은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 ‘대선’과 같은 모멘텀은 5년 후에나 다시 있을 테고, 그동안 최순실 ODA 이권개입과 같은 사태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내부의 적폐를 청산하고, 전면적인 개혁을 시도할 수 있었던 기회가 이렇게 또 허무하게 흘러가고 있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4-25
작성: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
[1] 질의서와 상세한 답변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조.
[피움 5호] 국제개발협력 개혁과제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생각은? http://pida.or.kr/220971973956
[2] [KoFID 보도자료] 제19대 대선 국제개발협력(ODA)분야 정책과제 제안(2017.04.11)
http://pida.or.kr/220980614998
[3] [보도자료] 제19대 대선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책제안서 발표 (2017.04.17) http://pida.or.kr/220985440019
[4] 토론회 자료집 http://www.kofid.org/ko/bbs_view.php?no=60787&code=kofid
뒷걸음질 치는 국제개발협력 공약, 멀어지는 개혁
숨 가쁘게 달려온 19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은 이제 10여 일 뒤면 새 지도자를 맞이하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치러질 이번 조기 대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적폐청산’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차기 대통령은 적폐세력을 청산하고, 나아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반적인 개혁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비선실세의 사적 이용으로 논란을 빚은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개혁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2월, 최순실의 인사 개입이 드러난 한국국제협력단(이하 코이카) 김인식 이사장은 3월 특검의 최종 수사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계속 버티다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비단 김 이사장의 사퇴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직 최순실 ODA 이권개입에 연루된 기관과 관계자들의 책임을 묻지 못했고,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개혁과제는 시민사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됐을 뿐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다. 적폐청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차기 정권이 집권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겠지만,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각 대선후보들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어떤 대안을 내어놓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과연 ‘국제개발협력’은 어디쯤 와 있을까?
대통령 후보들은 ‘국제개발협력’에 얼마나 관심 있나?
<표 1> 제19대 대선 후보별 시민사회 대응 여부 및 공약 유무
대선후보들이 국제개발협력 이슈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위 <표 1>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이하 코피드)이 지난 3월 13일 당시 공식 출마선언을 하기 전인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고 각 당의 후보들에게 ‘코리아에이드’와 ‘새마을운동 ODA’ 등 국제개발협력 개혁과제에 대해 발송한 질의서에는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만이 답변서를 보내왔다.[1] 지난 4월 20일 코피드가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심상정 후보 등 세 캠프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각 후보가 발표한 정책공약 중 국제개발협력 관련 공약이 있는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 두 명이었다.* 안철수 후보는 평화 ·통일·외교 분야 중 ‘동아시아 안정과 지역 협력, 국제사회 협력과 국제공헌’, ‘인도적 지원 통해 지구촌 문제, 인류의 평화적 발전 기여’ 등으로 간략하게 두 줄 정도를 언급했다. 심상정 후보는 외교통일 분야의 10가지 과제 중 하나로 ‘제3세계 발전과 세계평화 기여하는 적극적 외교’를 설정하고, ‘지구촌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제3세계 발전 기여외교 적극 전개’와 ‘무분별한 대외파병 금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토론회에도 참석하지 않은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의 경우, 국제개발협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이다.
(* 이후 문재인, 홍준표, 유승민 후보도 최종 발표한 정책공약집에 국제개발협력 공약을 포함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 공공외교를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공공외교를 위한 정부 내외 통합조정체계 구축', '청년일자리와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개발원조 사업 추진', '개발원조사업의 체계성, 투명성, 효율성 제고'를 내세웠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글로벌 공공외교를 통한 국가위상 제고'를 강조하며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지역과 포괄적 협력관계 심화', '인도주의의 외교 브랜드화'를 약속했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개발협력을 통한 국제공헌 확대'를 목표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신한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관협력 원조 프로그램의 다양화, 효율화'를 공약했다.)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국제개발협력 공약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최순실 ODA 이권개입 사태를 겪은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대선’을 계기로 현재의 문제를 성찰하고 개혁할 수 있도록 각 후보자를 대상으로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을 펼쳤다. 먼저 코피드는 질의서 발송에 이어 지난 4월 11일에는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크게 5대 방향 9개 과제를 제안했다.[2] 코피드는 인도주의 정신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국제개발협력 기본정신을 명확히 하고, 원조분절화를 극복하기 위한 유·무상 통합 원조기구 설치를 주장했다. 또, 무상원조 및 비구속성 원조와 인도적 지원 확대를 통한 원조의 질적 개선과 정보공개 확대, 기업의 관리·감독 강화, 치안·군사협력 수단으로서의 원조 근절을 통한 원조의 투명성·책무성 제고를 강조하면서 국제개발협력 파트너로서 시민사회의 참여 확대와 민관협력 강화를 주장했다.
발전대안 피다도 4월 17일 국제개발협력 정책제안서를 발표하고 한국 국제개발협력을 ‘포괄적 발전’으로 전환하기 위한 5대 방향 9개 과제를 제안했다.[3] 코피드가 기본정신, 체계, 원칙 측면에서의 구체적인 정책제안이라면 발전대안 피다는 △파트너국 시민들의 발전권을 보장하는 포괄적 발전 지향, △한국 개발신화의 파트너국 이식 중지, △시민들의 정보권 보장을 위한 책무성·투명성 제고, △현지사회의 인권, 노동권, 환경규범 준수, △국제개발협력 참여자의 노동가치 존중 등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어떤 철학과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더 초점을 맞췄다.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국제개발협력 공약
코피드는 4월 20일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차기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정책 비전과 과제’를 주제로 19대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4] 토론회에는 홍준표 후보, 유승민 후보를 제외하고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심상정 후보의 정책 담당자들이 참석해 각 후보의 국제개발협력 정책공약과 코피드 정책과제 제안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다. 빡빡한 조기 대선 일정을 고려하더라도 세 후보의 공약은 관점이나 구체성 측면에서 미흡한 지점이 많았다. 공약의 수준은 5년 전인 지난 18대 대선과 비교해서도 더 후퇴했고, 각 캠프 측의 정책 담당자는 지난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당일 토론회에서 오갔던 내용 중 핵심 쟁점들만 몇 가지로 추려 소개한다.
▲ <한국 ODA 발전을 위한 19대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 장면 (왼쪽부터 이미현 코피드 정책위원장/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팀장,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캠프 정해문 전 대사, 한재광 코피드 운영위원장/발전대안 피다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캠프 박채순 교수, 정의당 심상정 캠프 손종필 정책위원) ⓒ코피드
1) 국제개발협력은 외교적 수단이다 vs 아니다
후보들이 국제개발협력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는가는 향후 제도와 정책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문재인 후보 측은 국제개발협력을 외교의 대표 브랜드로 발전시켜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국익과 대외전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후보 측 역시 세계 평화와 글로벌 외교의 일환으로 국제개발협력을 추진하겠다며 특히 한국의 인력수출과 기업의 해외 진출을 국제개발협력과 연동하여 한국과 파트너국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후보 측은 이에 반박하며 보편적 인류애에 기초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았고, 기업의 해외진출 방편으로 활용되는 ODA를 비판하며 구속성 원조 비율을 감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쟁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철학과 이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명문화된 기본정신만이 아니라 분명한 노선을 정하고, 그러한 방향에 기반을 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한편 발전대안 피다는 앞서 언급한 정책제안서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발전을 지향하고,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이 ODA를 벗어나 무역, 투자, 이주, 기후변화, 인권, 거버넌스 등 다른 대외정책과 일관성 있게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경제발전만이 아닌 ‘포괄적 발전’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대외경제협력기금법」을 전면 개정하겠다는 심상정 후보와 ODA 정책을 대외전략 및 외교정책과 연계해야 한다는 문재인 후보는 이러한 맥락과 잘 닿아있다. 하지만 세 후보 모두 과거 원조를 받았던 한국의 경험과 ‘주는 나라’라는 소위 ‘공여국’으로서의 위상을 강조하는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이 과거 원조를 받았기 때문에, 혹은 경제규모에 맞게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국제개발협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위기에서 공존하기 위한 당연한 의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2) 한국식 발전모델 전파, 계속해야 vs 중단해야
후보들은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전파하는 문제에서도 다른 견해를 보였다. 심상정 후보 측은 국가 동원체계를 활용하고, 인권과 노동을 담보로 성장한 한국의 모델을 성공적인 모델로 다른 국가에 확산시키는 것은 국제개발협력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세계적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새마을운동 ODA’ 등 개발시대의 모델 전파를 중단하겠다는 주장을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반면 문재인 후보 측은 우리의 독특한 경제개발 모델을 국제사회에 전수해야 한다며 한국이 원조 규모로 선진국과 경쟁하기는 어려우므로 한국의 독특한 개발 경험을 토대로 우리만이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질적으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발전대안 피다는 정책제안서를 통해 권위주의 정부,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 인권신장을 위한 투쟁, 민주주의의 발전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한국의 발전과정을 역사적, 시대적, 사회적 맥락이 다른 국가에 전수하는 것을 비판하며 면밀한 검토 없이 국가 브랜딩의 일환으로 수출하려는 시도는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새마을운동 ODA’를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객관적인 검증 없이 한국식 발전모델을 전수하자는 것은 성급하고 무리한 주장이다.
3) 고질적인 ‘분절화’ 문제, 이번에는 정말 해결 가능할까?
세 후보가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가장 큰 문제로 꼽은 사안은 단연 ‘분절화’였다. 세 후보 모두 분절화를 극복하기 위해 유·무상원조를 통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지만, 방안에 대해서는 조금씩 달랐다. 문재인 후보 측은 유·무상 통합을 중기적 과제로 검토하겠다며 임기 내에 통합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심상정 후보 측도 현재 40여 개가 넘는 부처와 기관이 시행하고 있어 통합적 사고가 없다며 하나의 기구로 통합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측은 유상과 무상을 조정하고 있는 국무조정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격상하여 위상과 권한을 더 강화하겠다는 것을 주요 공약으로 선언했다. 분절화 문제는 오래전부터 계속 제기되어 왔고, 유·무상 통합의 필요성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유·무상 통합기구를 어떤 형태로 설립할 것인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은 무엇인지,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으로 분절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 등이 더욱 중요하다. 구체적인 실행방안 없이 문제제기와 필요성에만 공감하는 것은 지난 10년으로 충분하다.
4) 아무도 관심 없는 국제개발협력의 노동 문제
발전대안 피다는 정책제안서를 통해 실업대책으로 추진하는 해외봉사단 파견 정책을 폐지하고, 열정만 착취당하며 정당한 권리 실현이 어려워진 국제개발협력 참여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 후보 모두 이러한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특히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여전히 ‘인력 양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보였다. 문재인 후보 측은 해외봉사단 파견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이는 글로벌 인재양성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토론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기존 봉사단원들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데다 다녀온 단원들의 전문성도 잘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원만 늘릴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봉사단 확대를 주장한 문 후보 측의 공약은 ‘글로벌 인재양성’이라는 명목으로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면서 결과적으로 취약한 일자리만 양산한 역대 정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안철수 후보 측은 한국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현지 재외동포를 활용하겠다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재외동포를 국제개발협력의 어떤 부문에 어떻게 활용한다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평가하기가 어렵다.
한편, 인턴, 해외봉사단 등을 경험하고 현재 구직 중이라는 한 참가자는 주변에 무보수로 일하거나 노동강도가 높고 열악한 상황이라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며, 국제개발협력 분야 종사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상정 후보 측은 청년 실업자가 많으니 해외로 내보낸다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며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인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내부에서도 깊이 고민하지 못한 문제라고 밝혔다. 다른 후보들도 토론회 현장에서 뒤늦게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했지만,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는 못했다.
5) 기타: 군사협력 오용, 투명성 제고, 시민사회 파트너십
한국 ODA가 치안과 군사협력 수단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문재인 후보 측은 파트너국이 요청할 경우 국익 관점에서 수사 역량강화 등의 치안협력 프로그램은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고,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 측은 인권을 침해하고 기본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투명성과 책무성 제고에서는 안철수 후보 측이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운영이 아닌 투명성 제고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고 다른 후보 측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으나, 다양한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선언적 수준을 넘어선 공약은 찾기 어려웠다. 시민사회의 참여도 형식적인 수준을 벗어나 실질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5년 전보다 더 후퇴한 공약, 우리는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19대 대선 후보들의 국제개발협력 공약은 여전히 자랑스러운 공여국으로서의 한국을 강조하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행계획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지난 18대 대선보다 나아진 점이 없고, 오히려 더 후퇴했다. 이번 대선이 조기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인 데다 국제개발협력이 대선에서 늘 우선순위에 밀려 뒷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각 후보들의 공약 수준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대선 직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었고, 많은 사람이 ODA를 최순실의 먹잇감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후보들은 GNI 대비 ODA 비율(2016년 기준 0.14%)이 지나치게 낮다며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0.25% 달성을 약속했던 지난 두 정권 모두 실패한 경험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ODA는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의지만큼이나 사회적 공감대가 중요한데, 지금과 같이 불신이 팽배해진 상황에서 과연 규모 확대가 바람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러한 점에서 후보들의 공약이 얼마나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토대로 수립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특히 시민사회가 오래전부터 제기해 온 국제개발협력의 수단화, 한국식 발전모델 전파 등의 문제에 대해 전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해결방안 없이 논란이 많은 공약을 주장하는 것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대선 후보로서는 너무 무책임한 태도이다. 더군다나 제시한 공약들을 당위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실현할 준비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실천하지 못한 공약을 내뱉은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 ‘대선’과 같은 모멘텀은 5년 후에나 다시 있을 테고, 그동안 최순실 ODA 이권개입과 같은 사태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한국 국제개발협력 내부의 적폐를 청산하고, 전면적인 개혁을 시도할 수 있었던 기회가 이렇게 또 허무하게 흘러가고 있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4-25
작성: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
[1] 질의서와 상세한 답변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조.
[피움 5호] 국제개발협력 개혁과제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생각은? http://pida.or.kr/220971973956
[2] [KoFID 보도자료] 제19대 대선 국제개발협력(ODA)분야 정책과제 제안(2017.04.11)
http://pida.or.kr/220980614998
[3] [보도자료] 제19대 대선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책제안서 발표 (2017.04.17) http://pida.or.kr/220985440019
[4] 토론회 자료집 http://www.kofid.org/ko/bbs_view.php?no=60787&code=kof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