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26호] 평화와 발전 (이대훈 칼럼)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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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발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발전한 평화학은 일찍이 1960년대부터 평화연구의 대상을 경제착취와 가난, 억압과 인권탄압 등 정의(justice)의 문제로 확대하기 시작했다.[1]  이어서 60~70년대 제3세계에의 빈곤과 분쟁 상황에 직면해서 전쟁과 군비경쟁, 군수 무역 등이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2] 이후 70년대 이후 지구적 빈부격차 또는 ‘중심부-주변부의 착취적 세계체제’가 확인되면서, 평화연구에서는 ‘저발전이라는 평화부재 상태’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었다.[3]


안보 문제는 통상적으로 국제정치와 비판적 평화론에서 다루어 왔는데,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서 ‘인간안보 human security’라는 개념을 처음 제기함으로써 경제와 성장의 한계가 안보 문제와 연관되어있다는 문제 제기가 본격화되었다. 이후 1983년 유엔 사무총장이 위촉해서 제출된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도 인간안보가 주요 개념으로 정식화되어 사용되었다. 1994년 유엔발전프로그램의 1994 인간안보 보고서 출간은 인간 안보론의 획을 그었다. 이 보고서는 ‘인간안보’라는 통합적 개념을 통해서 궁핍으로부터의 자유와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인간의 불가분의 기본적인 요구며, 인권-민주주의와 발전 및 폭력 예방이 동일한 의제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주목할 것은 1994년 인간 안보론에 조금 앞선 1992년이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UN 사무총장이 “평화의 의제”라는 획기적인 보고서[4] 를 발표했던 시기라는 점이다. 이 보고서를 기점으로 국제 평화정책에 ‘평화구축 peacebuilding’의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부트로스갈리 사무총장은 “갈등으로 회귀하지 않도록 평화를 강화하고 정착시키는데 기여하는 구조들을 확인하여 지원하는 행동”이라고 평화구축을 규정하였다. 그 의미는 “갈등의 개시 또는 갈등으로의 회귀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의 일련의 조치들로서, 해당 국가의 모든 수준에서의 갈등관리 역량 강화와 지속가능한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 형성이 중심이다.”[5] 1992년 “평화의 의제” 보고서와 그 후속 작업을 통해서 평화와 발전의 의제 통합은 실질적으로 토대가 완성되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이후 1996년 이스탄불 유엔인간정주회의, 1999년 군소도서발전도상국가 특별총회, 2000년 밀레니엄정상회의, 2002년 요하네스버그 세계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 2005년 세계정상회의에서 인간안보가 평화와 발전을 연결하는 주요 정책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1993년 비엔나 유엔세계인권회의 역시 합의된 19개 주요 항목의 하나로서 ‘테러리즘의 대항으로서 민주주의와 발전과 인권’을 채택하여, 무력 분쟁의 대안으로서 민주주의-발전-인권 넥서스를 확인하였다.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여성 의제 중심 국제적 합의의 장이었던 1994년 베이징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도 무력 분쟁과 관련된 여성 보호 방안을 중요한 합의를 끌어냈다. 이어 1995년 코펜하겐 사회발전 세계정상회의는 최고 의제를 사회발전으로 정하고, 주요 합의의 하나로서 UNDP가 제시한 “인간안보”를 처음으로 지구적으로 확인하고 공식화하였다.


1999년 5월 헤이그에서 개최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주도 세계평화회의(Hague Appeal for Peace Conference)가 열렸다. 헤이그 세계평화회의는 전쟁 종식과 평화의 문화 형성이라는 목표 아래 ‘21세기 평화와 정의를 위한 헤이그 의제’를 채택하였다. 이 합의문의 10대 주제는 (평화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의 실패, 인간안보, 무력의 법칙을 법치로 대체하기,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등이며, 실천과제에서는 발전 의제가 평화의 토대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세계화의 역효과에 대한 대응, 환경자원의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사용,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의 근절. 인종차별 종교적 차별 성차별 등 차별의 폐지, 성별 정의(Gender Justice)의 촉진-여성 권리의 신장, 어린이와 청소년의 보호와 존중, 국제적 민주주의와 공정한 세계적 통치의 증진,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민주적 법제 형성 등의 발전 목표가 전쟁과 군비경쟁의 근절에 토대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헤이그 세계평화회의의 합의는 평화 의제를 인권, 민주주의, 발전, 군축 등 영역과 가장 세밀하게 실행과제로의 목록을 통해서 통합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에 호응하여 같은 해 유네스코도 ‘평화의 문화 선언’[6]을 통해 21세기를 앞둔 국제사회가 평화를 위한 보편적 문화 규범을 확립하기를 요청하였는데, 그 핵심적인 규범은 국가 주권 존중, 영토 보전, 내정 불간섭, 보편적 인권 및 발전의 권리 존중, 갈등의 평화적 해결, 환경 보호, 젠더 평등성이다. 역시 ‘평화의 문화’ 속에 인권, 발전, 생태, 갈등 해결을 포괄시켰다.


21세기에 들어 평화의 프레임에서 발전을 인식하는 방식은 평화구축론과 포괄적 갈등 예방론으로 대표된다. 평화구축은 평화조성 및 평화유지와 구분되는 중요한 평화 개념으로서, 분쟁의 멈춤과 멈춤의 유지 그 자체보다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시스템 변화와 사회서비스 제공을 통해서 갈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중장기 목표와 정책을 의미한다. 기원은 1992년 부트로스갈리 유엔 사무총장의 “평화의 의제” 보고서이며, 이후 평화구축에서 해당 국가가 정책 주도성과 해당 국가의 구체적인 요구 존중, 신중하고 우선순위가 분명한 실행 순서와 집중된 조치를 강조하는 추가 권고가 제시되고 갈등 지역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국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시된다. (1) 사람들의 기본 안전 지원, (2) 정치적 절차 지원, (3) 기본 서비스 제공, (4) 핵심 정부 기능의 회복, (5) 경제 활성화. 아울러 갈등 해결, 갈등 후 계획 수립, 갈등 후 재정, 젠더 기반 시민 역량, 갈등 후 거버넌스에서 여성의 대표성, 법치, 경제 회복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와 역할이 필수임을 강조하게 되었다.[7]


이렇게 축적된 평화구축론은 평화를 위한 종합적 사회변화를 다음과 같은 4가지 영역에서의 사회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한다.[8] 

 1. 갈등의 근본 원인과 추동 요인에 대응한다. (예, 사회 구성 집단 간의 불평등)

2. 갈등을 관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 구축과 개인 및 집단의 역량 강화 (예, 정치, 안보, 사법, 사회복지 행정 분야 등)

3. 사회적 통합성을 증진하고 사회 집단 간의 신뢰를 구축한다. (예, 화해 과정)

4. 정부에 대한 신뢰(국가-사회관계)와 정당성을 세운다. (예, 사회적 대화)


발전의 과제를 포괄하는 갈등 예방론은 2018년 세계은행과 UN이 공동으로 펴낸 [평화로의 경로 Pathways for Peace]가 대표적이다. 발전기구인 세계은행이 최신 평화론과 접합하여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린 평화-발전 통합론의 모델이다. 이 보고서는 분쟁(갈등) 예방을 국제협력의 핵심에 놓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8가지로 요약하는데 그 핵심은 폭력적 분쟁 재증가, 분쟁 비용 급증, 최선의 예방은 포용적 지속적 발전, 권력-기회-서비스-안전에서의 소외가 집단의 불만과 분쟁의 최고 원인, 분쟁 예방 국가 역량 약화 심각, 전통적 발전(성장과 빈곤 완화)은 평화유지에 불충분 등이다. 그 처방의 핵심에는 포용적 접근인데, 포용적 의사결정, 여성과 청년층의 참여와 대표성, 제도적 역량이 경제적 인센티브와 결합할 때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약 70여년간 진행된 평화-발전론의 조우는 최근의 평화구축론과 포괄적 갈등 예방론에서 가장 잘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두 프레임은 폭력적 파국의 예방을 위해서 반드시 분쟁 리스크 모니터링, 다양한 차원의 리스크 해결, 평화발전 프레임워크에 기초하여 방해물 극복, 포용적 평가과 진단, 공유-공동 메커니즘, 우선순위 설정과 합의, 지역글로벌 파트너십, 분쟁 예방을 위한 투자 등을 권고하고 있다. 


기사 입력 일자 : 2020-11-19


작성 : 이대훈 피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 한반도평화친선대사 / francis.dhlee@gmail.com


[1]  Diane Hendrick, “Development Studies and Peace Studies – The Links” in Trόcaire Development Rvjew, p. 83. Dublin:1989.

[2] 예를 들어, Green, R., "'Killing the Dream, The Political and Human Economy of War in Sub-Saharan Africa", IDS Discussion Paper 238, Nov. 1987, R. Green and P. Manning, "Namibia: Preparations for Destabilization", R. Green and C. Thompson, '·Political Economies in Conflict: SADCC, South Africa and Sanctions", in Frontline Southern Africa: Destructive Engagement 등 연구. 

[3]Diane Hendrick, “Development Studies and Peace Studies – The Links” in Trόcaire Development Rvjew, pp. 85-86. Dublin:1989.

[4] An Agenda for Peace: Preventive diplomacy, peacemaking and peace-keeping, https://www.un.org/ruleoflaw/files/A_47_277.pdf. 검색일 2018.1.2.

[5] 위 보고서

[6]  UN 총회 결의안 “평화의 문화 선언”, 1999년, A/Res/53/243. Declaration and Programme of Action on a Culture of Peace

[7] Secretary-General’s Seven-Point Action Plan on Gender-Responsive Peacebuilding, UN Document S/2010/466

[8] “What is Peacebuilding?”, UN Peacebuilding Fund, http://www.unpbf.org/application-guidelines/what-is-peacebuilding/) 검색일: 20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