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시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편집자주] 지난 12월 20일 20개의 평화 시민사회단체는 시리아에 대한 공습 중단과 주민들의 안전한 피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광화문 광장에서 후속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다.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시리아 내전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모인 활동가들의 현장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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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PeaceNotBomb #평화 #EndTheWarOnSyria #광화문광장
정유년 새해 첫 주 토요일, 조금씩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하는 오후 5시경 광화문 광장은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광장으로 바로 연결된 9번 출구의 경사진 보도 위에는 세월호 사건 1000일을 추모하며,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구명조끼 304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외에도 각자의 사연을 써내려 간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수많은 개인, 모임, 단체들로 가득한 광장은 거대한 토요판 뉴스룸 같았다. 이 뉴스룸 한복판에는 한국사회의 주요한 이슈들을 말하는 사람들로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다. 한 편, 중심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서, 몇몇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피에 젖은 천으로 덮인 채 차가운 길 위에 누운 인형 3구를 지키며 서 있었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알리는 페이퍼는 시민들의 손에 쥐어진 몇 장의 전단들 속으로 무심히 섞일 뿐이었지만, 6년 동안 끊이지 않은 이 전쟁으로 약 3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리아 내전의 완전한 종식과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진행 중인 퍼포먼스 ⓒ권희설
내전 발발과 현재까지의 시리아 상황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시민들이 40년 째 독재 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정부가 이를 유혈 진압하면서 시작되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이 전쟁으로 민간인 9만명과 어린이 1만 6000명을 포함해 총 31만 200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리아 내 피란민의 규모는 660만명이며,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은 480여만명에 이른다. 이슬람 시아파 세력인 정부군과 수니파 세력인 반군, 그리고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시킨 IS, 정부군을 지원하는 이란, 이라크, 러시아와 반군을 지원하는 터키와 미국이 각국의 이해관계로 얽히면서 이 내전은 국제전의 형국을 띄며 장기화되었다. 초기에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은 이제 하루하루 생존만을 절실하게 바라는 상태가 되었다.

▲전쟁 전 평화롭고 번영했던 알레포(왼쪽)과 알레포 전투 후 폐허가 된 거리(오른쪽)
ⓒUNESCO Author: Ron Van Oers ⓒ연합뉴스
한국 시민사회의 ACT!
평화·인권 분야의 한국 시민사회단체는 시리아 난민 돕기 모금, 동시다발 1인 시위, 기자회견 등 직접행동을 통해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에 고립되어 있는 주민들의 안전한 대피를 보장할 것, 주변국들이 군사적 개입과 무기수출을 중단할 것, 전쟁 종식을 위해 정부군과 반군이 대화에 나설 것,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외교적인 노력을 다할 것, 그리고 한국정부가 시리아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을 요구해 왔다.
12월 16일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시리아인을 포함한 아랍인, 한국인이 모여 러시아의 공습을 규탄하는 자유발언을 시작으로, 12월 20일에는 20개 시민사회단체가 광화문 광장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내전 피해자를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1] 23일에는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대사관 및 인천공항, 광화문 일대에서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이어갔고, 다시 24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열었다.
1월 7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4회 째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민들은 바닥에 누운 인형을 흘끗 쳐다보고 지나갈 뿐 오랜 시간 시선이 머물지는 않았다. 그들은 조금 한산한 편이던 교보생명 건물 앞에서 광장 옆 넓게 트인 도로 가운데로 자리를 옮기고 인형들 주위로 초를 밝혔다. 그러자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함께 초를 밝히는 사람들, 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들, 모금함에 모금액을 넣고 가는 이도 있었다.

▲퍼포먼스에 참여한 활동가가 인형 주변으로 초를 밝히고 있다. ©권희설
훗날 시리아에게 한국은 어떻게 기억될까?
활동가들 중 유일한 시리아인이었던 헬프시리아의 압둘 와합 국장에게 퍼포먼스를 하면서 어려운 점,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점은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전이 발발한 2011년부터 개인적으로 시리아 뉴스 등을 번역해 시리아의 상황을 한국에 알려왔다. 그러다 2013년에는 시리아 난민과 관련해 보다 전문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헬프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어 일하고 있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열의를 가지고 말했다.
“광장에서 이렇게 퍼포먼스를 하는데, 어떤 시민 분들은 지금 한국 상황도 이런데 시리아는 웬 말이냐고 말씀하시고 가시는 분들도 가끔 계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 안타까워요. 국제문제에 관심이 없는 모습이요. 또, 시리아 사람들은 무조건 테러리스트라고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서 무슬림끼리 싸우는데 왜 우리가 도와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시리아 내전은 종교 문제가 아니고 더군다나 이것은 단지 ‘시리아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국제문제입니다. 미국, 러시아, 터키, 이란 등 주변 모든 나라들이 이 전쟁에 개입해서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있어요. 제가 예전에 한국사를 공부할 때, 6.25전쟁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고생했지만 사실 한국과 북한만의 전쟁이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 시리아가 겪고 있는 상황을 한국은 60년 전에 겪었던 것이죠.”
뜻밖에 튀어나온 한국전쟁 이야기에 놀라면서도 왜 진작 이렇게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한국과 시리아가 가진 역사적인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들이 여전히 시리아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러한 공통점뿐만 아니라 시리아는 한국전쟁 당시 보급 및 구호 물품을 지원해준 39개국 중 한 나라였고. 이때 지원받은 물품은 방어전을 치르던 군인들과 피란민들의 생필품으로 쓰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며 말했다.
“그때 시리아가 한국을 도운 것이 한국을 너무 잘 알아서는 아니에요. 그냥 같은 사람으로서 도와준 거에요. 훗날에 시리아 역사에도 한국 이름이 남고,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가 이렇게 어려울 때 도와줬다는 역사가 남았으면 좋겠어요.”
길지 않은 대화였지만 압둘 와합 국장의 말은 일종의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 내전에 대해 어떤 점을 알았으면 좋겠느냐”고 묻던 필자의 질문에는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관심을 덜 가지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지구촌의 일을 잘 모를 수 없는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부모님과 함께 지나가던 쌍둥이 형제가 초를 세우고 있다. ©권희설
좀 더 넓고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한국사회를 꿈꾸며
휴전 협정 발효로 1월 7일 이후에 퍼포먼스를 계속하지는 않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에 온 시리아인들의 난민 지위 인정 문제가 남아 있다. 2016년 10월 기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시리아인은 4명, 난민 심사를 신청했지만 계속 길어지는 심사에 인도적 체류 자격(G-1)만 받은 시리아인은 1053명이다.[2] 새해에는 모든 시리아인과 한국 시민사회의 바람처럼 한국 정부가 더 많은 난민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길 바란다. 사실 한국 정부의 난민에 대한 태도, 한국 상황이 이런데 지금 남의 나라 일이 문제냐는 일부 시민들의 태도는 ‘다른 중요한 일들로 꽉 차있는 광장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이날 평화 퍼포먼스의 물리적인 위치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필자도 한국 시민으로서 현 시국에 분노(!)를 느끼지만, 부디 그 분노가 우리 눈과 마음을 가리지 않고 다른 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좀 더 넓고,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시리아 난민 지원 활동에 참여하고 싶거나 시민사회 활동에 관해 더 궁금한 독자들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보길 권한다.
* 캠페인 참여 및 후원: 헬프시리아 페이스북(http://facebook.com./helpsyriaplease)
또는 블로그(http://blog.naver.com/helpsyria)
* 시리아 평화 퍼포먼스 참여 후기: 외발로 선 21세기 디아스포라, 시리아 (http://www.withoutwar.org/?p=12975)
기사 입력 일자: 2017-01-24
작성: 권희설 피움 기자단 hee-_-seol@hanmail.net
<참고자료>
[1] 시리아 내전에 대한 평화적 해결 촉구 기자회견(2016.12.21)
http://pida.or.kr/220891335707
[2]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은 외국인의 권리의 폭은 난민 인정자에 비해 매우 좁다. 난민 인정자는 거주비자(F-2)를 받고, 3년마다 거주 연장이 자유롭다. 취업도 자유롭고 사회보장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또한, 가족들도 방문동거(F-1)라는 체류자격을 줘 함께 지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임시 체류형의 G-1비자를 받은 인도적 체류자들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취업을 할 수 있고, 사회보장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직업훈련 등도 지원받지 못한다. (출처: 2015.09.13. 연합뉴스)
“이것은 시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DropPeaceNotBomb #평화 #EndTheWarOnSyria #광화문광장
정유년 새해 첫 주 토요일, 조금씩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하는 오후 5시경 광화문 광장은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광장으로 바로 연결된 9번 출구의 경사진 보도 위에는 세월호 사건 1000일을 추모하며,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구명조끼 304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외에도 각자의 사연을 써내려 간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수많은 개인, 모임, 단체들로 가득한 광장은 거대한 토요판 뉴스룸 같았다. 이 뉴스룸 한복판에는 한국사회의 주요한 이슈들을 말하는 사람들로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다. 한 편, 중심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서, 몇몇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피에 젖은 천으로 덮인 채 차가운 길 위에 누운 인형 3구를 지키며 서 있었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알리는 페이퍼는 시민들의 손에 쥐어진 몇 장의 전단들 속으로 무심히 섞일 뿐이었지만, 6년 동안 끊이지 않은 이 전쟁으로 약 3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리아 내전의 완전한 종식과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진행 중인 퍼포먼스 ⓒ권희설
내전 발발과 현재까지의 시리아 상황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시민들이 40년 째 독재 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정부가 이를 유혈 진압하면서 시작되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이 전쟁으로 민간인 9만명과 어린이 1만 6000명을 포함해 총 31만 200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리아 내 피란민의 규모는 660만명이며,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은 480여만명에 이른다. 이슬람 시아파 세력인 정부군과 수니파 세력인 반군, 그리고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시킨 IS, 정부군을 지원하는 이란, 이라크, 러시아와 반군을 지원하는 터키와 미국이 각국의 이해관계로 얽히면서 이 내전은 국제전의 형국을 띄며 장기화되었다. 초기에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은 이제 하루하루 생존만을 절실하게 바라는 상태가 되었다.
▲전쟁 전 평화롭고 번영했던 알레포(왼쪽)과 알레포 전투 후 폐허가 된 거리(오른쪽)
ⓒUNESCO Author: Ron Van Oers ⓒ연합뉴스
한국 시민사회의 ACT!
평화·인권 분야의 한국 시민사회단체는 시리아 난민 돕기 모금, 동시다발 1인 시위, 기자회견 등 직접행동을 통해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에 고립되어 있는 주민들의 안전한 대피를 보장할 것, 주변국들이 군사적 개입과 무기수출을 중단할 것, 전쟁 종식을 위해 정부군과 반군이 대화에 나설 것,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외교적인 노력을 다할 것, 그리고 한국정부가 시리아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을 요구해 왔다.
12월 16일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시리아인을 포함한 아랍인, 한국인이 모여 러시아의 공습을 규탄하는 자유발언을 시작으로, 12월 20일에는 20개 시민사회단체가 광화문 광장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내전 피해자를 형상화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1] 23일에는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대사관 및 인천공항, 광화문 일대에서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이어갔고, 다시 24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열었다.
1월 7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4회 째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민들은 바닥에 누운 인형을 흘끗 쳐다보고 지나갈 뿐 오랜 시간 시선이 머물지는 않았다. 그들은 조금 한산한 편이던 교보생명 건물 앞에서 광장 옆 넓게 트인 도로 가운데로 자리를 옮기고 인형들 주위로 초를 밝혔다. 그러자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함께 초를 밝히는 사람들, 사진을 찍고 가는 사람들, 모금함에 모금액을 넣고 가는 이도 있었다.
▲퍼포먼스에 참여한 활동가가 인형 주변으로 초를 밝히고 있다. ©권희설
훗날 시리아에게 한국은 어떻게 기억될까?
활동가들 중 유일한 시리아인이었던 헬프시리아의 압둘 와합 국장에게 퍼포먼스를 하면서 어려운 점,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점은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전이 발발한 2011년부터 개인적으로 시리아 뉴스 등을 번역해 시리아의 상황을 한국에 알려왔다. 그러다 2013년에는 시리아 난민과 관련해 보다 전문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헬프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어 일하고 있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열의를 가지고 말했다.
“광장에서 이렇게 퍼포먼스를 하는데, 어떤 시민 분들은 지금 한국 상황도 이런데 시리아는 웬 말이냐고 말씀하시고 가시는 분들도 가끔 계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 안타까워요. 국제문제에 관심이 없는 모습이요. 또, 시리아 사람들은 무조건 테러리스트라고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서 무슬림끼리 싸우는데 왜 우리가 도와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시리아 내전은 종교 문제가 아니고 더군다나 이것은 단지 ‘시리아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국제문제입니다. 미국, 러시아, 터키, 이란 등 주변 모든 나라들이 이 전쟁에 개입해서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있어요. 제가 예전에 한국사를 공부할 때, 6.25전쟁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고생했지만 사실 한국과 북한만의 전쟁이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 시리아가 겪고 있는 상황을 한국은 60년 전에 겪었던 것이죠.”
뜻밖에 튀어나온 한국전쟁 이야기에 놀라면서도 왜 진작 이렇게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한국과 시리아가 가진 역사적인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들이 여전히 시리아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러한 공통점뿐만 아니라 시리아는 한국전쟁 당시 보급 및 구호 물품을 지원해준 39개국 중 한 나라였고. 이때 지원받은 물품은 방어전을 치르던 군인들과 피란민들의 생필품으로 쓰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며 말했다.
“그때 시리아가 한국을 도운 것이 한국을 너무 잘 알아서는 아니에요. 그냥 같은 사람으로서 도와준 거에요. 훗날에 시리아 역사에도 한국 이름이 남고,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가 이렇게 어려울 때 도와줬다는 역사가 남았으면 좋겠어요.”
길지 않은 대화였지만 압둘 와합 국장의 말은 일종의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 내전에 대해 어떤 점을 알았으면 좋겠느냐”고 묻던 필자의 질문에는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관심을 덜 가지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지구촌의 일을 잘 모를 수 없는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좀 더 넓고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한국사회를 꿈꾸며
휴전 협정 발효로 1월 7일 이후에 퍼포먼스를 계속하지는 않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에 온 시리아인들의 난민 지위 인정 문제가 남아 있다. 2016년 10월 기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시리아인은 4명, 난민 심사를 신청했지만 계속 길어지는 심사에 인도적 체류 자격(G-1)만 받은 시리아인은 1053명이다.[2] 새해에는 모든 시리아인과 한국 시민사회의 바람처럼 한국 정부가 더 많은 난민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길 바란다. 사실 한국 정부의 난민에 대한 태도, 한국 상황이 이런데 지금 남의 나라 일이 문제냐는 일부 시민들의 태도는 ‘다른 중요한 일들로 꽉 차있는 광장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이날 평화 퍼포먼스의 물리적인 위치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필자도 한국 시민으로서 현 시국에 분노(!)를 느끼지만, 부디 그 분노가 우리 눈과 마음을 가리지 않고 다른 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좀 더 넓고,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시리아 난민 지원 활동에 참여하고 싶거나 시민사회 활동에 관해 더 궁금한 독자들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보길 권한다.
* 캠페인 참여 및 후원: 헬프시리아 페이스북(http://facebook.com./helpsyriaplease)
또는 블로그(http://blog.naver.com/helpsyria)
* 시리아 평화 퍼포먼스 참여 후기: 외발로 선 21세기 디아스포라, 시리아 (http://www.withoutwar.org/?p=12975)
기사 입력 일자: 2017-01-24
작성: 권희설 피움 기자단 hee-_-seol@hanmail.net
<참고자료>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9/12/0200000000AKR20150912052400004.HTML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07062&oaid=N1003207418&plink=TEXT&cooper=SBSNEWSEND&oaid=N1003207418&plink=TEXT&cooper=SBSNEWSEND&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207418&oaid=N1003207062&plink=TEXT&cooper=SBSNEWSEND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6/0200000000AKR20160926034151009.HTML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774806.html#csidx0f54bf3ecc5b3858819e423a5d2190f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221022017#csidx5c743b69f095f2e89c9f0f8b7d89cd1
http://news1.kr/articles/?286646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10800001&code=970209#csidx722993682a1586bb36c38c0491d0f54
http://pida.or.kr/220891335707
http://www.withoutwar.org/?p=12975
http://www.unicef.or.kr/news/story_view.asp?sKey=&sWord=%EC%8B%9C%EB%A6%AC%EC%95%84&sType=l&page=3&idx=40241
[1] 시리아 내전에 대한 평화적 해결 촉구 기자회견(2016.12.21)
http://pida.or.kr/220891335707
[2]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은 외국인의 권리의 폭은 난민 인정자에 비해 매우 좁다. 난민 인정자는 거주비자(F-2)를 받고, 3년마다 거주 연장이 자유롭다. 취업도 자유롭고 사회보장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또한, 가족들도 방문동거(F-1)라는 체류자격을 줘 함께 지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임시 체류형의 G-1비자를 받은 인도적 체류자들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취업을 할 수 있고, 사회보장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직업훈련 등도 지원받지 못한다. (출처: 2015.09.13.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