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1 하동훈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한 아스팔트를 식혀 주는 비가 이틀째 내리고 있다. 한층 산뜻해진 공기가 아침 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고 반가워하는 순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비 오는 날 기름 냄새라니… 눈을 돌려 보니 아침 일찍부터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사방에 울리고 있었다.
여름철을 맞아 무성히 자랐던 풀들을 정돈해 주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온몸으로 비를 맞으면서까지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하는 생각도 겹쳐 온다.
오전 내내 들리던 예초기 소리는 점심 때쯤 되니 자연스레 멈추었고, 비에 젖은 세상엔 풀 내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예사롭지 않은 더 큰 소리가 들린다.
여러 대가 돌던 예초기 소리가 아니라 큰 기계 한 대가 돌아가는 소리는 더 험악하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소방 호스보다 서너 배나 큰 파이프 하나에 세 사람이 달라붙어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무엇인가 뿜어 대고 있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풀숲 사이로 촉촉하게 드러내며 존재를 알리던 흙더미를 마르디 마른 회색빛 무엇이 덮어 대고 있다. 캔버스를 빠짐없이 채우려는 듯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왔다 갔다 칠하고 또 칠한다. 거친 회색 물감이 한 겹 한 겹 쌓여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낀다.
여름철 폭우로 쓸려 내려갈지도 모르는 토사를 단단하게 잡아 주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비가 여러 날 이어지고 있음에도 젖은 흙을 마른 무엇으로 덮고 또 덮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작업을 끝내기로 한 일정 안에는 깨끗하게 덮어 두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다가오는 겨울에도 작업을 하고 내년에 다른 계약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머금어 붉은빛이 돌던 살아있는 땅을 생명력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잿빛으로 덮어야만, 나의 일과 가정을 보듬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매캐한 회색 가루 냄새보다도 묵직한 그 무엇이 숨을 답답하게 했다.
촉촉해진 날씨와는 너무도 다른 메마르고 매정한 마음이 느껴졌다.
가끔,
일이 사람을 막는다.
사람이 다른 생명을 막는다.
며칠 후, 회색빛 가루가 묻어버렸던 수풀들은 모두 말끔히 베어져 버렸다.
사진 & 글: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donghoon.ha.michael@gmail.com
ⓒ 2021 하동훈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한 아스팔트를 식혀 주는 비가 이틀째 내리고 있다. 한층 산뜻해진 공기가 아침 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고 반가워하는 순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비 오는 날 기름 냄새라니… 눈을 돌려 보니 아침 일찍부터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사방에 울리고 있었다.
여름철을 맞아 무성히 자랐던 풀들을 정돈해 주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온몸으로 비를 맞으면서까지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하는 생각도 겹쳐 온다.
오전 내내 들리던 예초기 소리는 점심 때쯤 되니 자연스레 멈추었고, 비에 젖은 세상엔 풀 내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예사롭지 않은 더 큰 소리가 들린다.
여러 대가 돌던 예초기 소리가 아니라 큰 기계 한 대가 돌아가는 소리는 더 험악하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소방 호스보다 서너 배나 큰 파이프 하나에 세 사람이 달라붙어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무엇인가 뿜어 대고 있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풀숲 사이로 촉촉하게 드러내며 존재를 알리던 흙더미를 마르디 마른 회색빛 무엇이 덮어 대고 있다. 캔버스를 빠짐없이 채우려는 듯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왔다 갔다 칠하고 또 칠한다. 거친 회색 물감이 한 겹 한 겹 쌓여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낀다.
여름철 폭우로 쓸려 내려갈지도 모르는 토사를 단단하게 잡아 주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비가 여러 날 이어지고 있음에도 젖은 흙을 마른 무엇으로 덮고 또 덮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작업을 끝내기로 한 일정 안에는 깨끗하게 덮어 두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다가오는 겨울에도 작업을 하고 내년에 다른 계약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머금어 붉은빛이 돌던 살아있는 땅을 생명력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잿빛으로 덮어야만, 나의 일과 가정을 보듬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매캐한 회색 가루 냄새보다도 묵직한 그 무엇이 숨을 답답하게 했다.
촉촉해진 날씨와는 너무도 다른 메마르고 매정한 마음이 느껴졌다.
가끔,
일이 사람을 막는다.
사람이 다른 생명을 막는다.
며칠 후, 회색빛 가루가 묻어버렸던 수풀들은 모두 말끔히 베어져 버렸다.
사진 & 글: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donghoon.ha.micha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