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12. 내어주는 마음, 들어차는 마음

2021-09-30
조회수 3394

ⓒ 2021 하동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옛 흔적들이 남아있는 담벼락을 쉬이 만날 수 있다.


긴 연휴를 앞둔 주말 아침 산책길. 

오래된 담벼락의 한 모퉁이를 돌아드는데, 하얀 식빵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풍경이 보인다. 오래된 것이 많은 동네여서 버려진 것들이 많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 식빵은 누군가 일부러 ‘놓아둔’ 듯하다.


몇 번을 지나쳤던 이곳은 고양이 사료가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던 자리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늘 채워주던 사료가 떨어져서 집에 있는 무엇이라도 가져다 두고 싶었을까?’

‘명절을 앞두었으니 고양이들에게도 특별한 무엇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연휴로 한동안 들르지 못하니, 며칠 치 끼니를 미리 챙기고 싶었을까?’


누구인지,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어도 길거리에 있는 이름 모를 생명에게 일부러 마음을 내준 것이라 생각하니 내 마음도 폭신폭신해지는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아침마다 손수레에 사료 포대를 싣고 다니시며 골목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시던 어르신 한 분과 고양이들 배설물과 울음소리 때문에 못 살겠다 하시는 중년 여성 한 분이 실랑이를 하던 끝에 경찰까지 출동하여 중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자리를 지나오면서 들었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

“저것들이 다 생명이고, 갈 곳이 없는 그리 지내는 녀석들이니 내 돈을 들여서라도 먹이고 싶어서 그래요.”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여기저기 들려오는 세상에서

나의 것이 아니라도,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것에라도, 생명이라면 마음을 쏟는 분이 있다고 생각하니 시원하고 풍성해진 가을 산책길 바람이 더욱 푹신하고 구수하다.



사진 & 글: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기 사진가

donghoon.ha.micha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