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청사진, 과연 장밋빛인가?
지난 7월 19일,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공개됐다.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을 국정운영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국민의 나라”와 대한민국의 제도를 ‘정의’의 원칙에 따라 재구성하겠다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크게 국가비전으로 내세우고,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5대 국정목표와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를 담고 있다. 이 중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99번째 국정과제인 ‘국익을 증진하는 경제외교 및 개발협력 강화’ 항목에 포함되었다. 앞서 6월 30일에는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 주재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개최해 「’18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을 의결하고, 새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국정과제가 정권의 장기적인 로드맵이라면, ‘18년 시행계획은 실행 단계의 구체적인 정책인 셈이다. 정권 초기 공개된 두 문서를 바탕으로 향후 5년 간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어떻게 추진될 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막판에 ‘무상원조 통합’ 제외하고, 국익·일자리만 강조한 국정과제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당시 발표한 국제개발협력 공약은 국익과 청년 일자리 창출만을 강조하고, 원조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 역시 공약 수준에서 한 단계도 진전하지 못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 국정과제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국정목표 하위의 국정전략인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외교’ 중 ‘국익을 증진하는 경제외교 및 개발협력 강화’에 명시되어 있다(표 1 참조). 주요 내용으로 제시된 ‘일자리ž국익 기여 개발원조’와 ‘체계ž통합ž효율적 개발원조’는 기존 공약을 반복하는 데 그쳤고, 내용으로도 한계가 많았다.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이하 코피드)도 국정과제 발표 이후인 지난 26일 논평을 발표해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ODA 국정농단으로 야기된 국제개발협력 개혁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고질적 문제인 ‘원조분절화’ 해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번 국정과제 선정을 크게 비판했다.[1]
[표 1]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분야 국정과제
항목
| 내용
|
국정목표(5대)
|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
국정전략(20대)
|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외교
|
국정과제(100대)
| 국익을 증진하는 경제외교 및 개발협력 강화
|
과제목표
|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상생의 개발협력 및 체계적ㆍ통합적ㆍ효율적 개발협력 추진체계 강화
|
주요 내용
| (일자리ㆍ국익 기여 개발원조) 기업 등과의 협력사업 및 글로벌 인재양성 확대를 통한 민간 일자리 창출 기여, ODA 분야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인프라 사업 등 우리나라의 해외진출을 통한 국익 기여 |
(체계ㆍ통합ㆍ효율적 개발원조) 유ㆍ무상간 전략적 연계, 무상원조의 통합적 추진 및 연계성 강화를 통해 국익을 증진하는 전략적 국제개발협력 이행 - 국제개발협력위원회(총리실) 및 무상개발협력전략회의 (외교부) 등 적극 활용 |
기대효과
| 효율적 원조사업 수행 등을 통해 국제사회 기여 강화 및 국익 제고 |
* 출처: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2017.07)
‘체계·통합·효율적 개발원조’의 하위 내용인 ‘유무상간 전략적 연계’, ‘무상원조의 통합적 추진 및 연계성 강화’는 이전 정권에서도 계속 추진해왔던 것이고, 당초 공약에 포함된 ‘국가개발협력전략회의’가 외교부 주도의 ‘무상개발협력전략회의’로 변경되었으나, 이 역시 기존의 ‘무상원조관계기관협의회’와 어떻게 다른지 아직은 알려진 바가 없다. 특히 ‘무상원조 통합’은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초 국정과제에 포함되었다가 막판에 제외된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부 산하 무상원조 주관기관인 코이카로 통합하는 방안이 유력했지만 유상원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무상원조를 실행하는 타 부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것이다.[2] 분절화된 ODA 추진체계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는 이미 지난 5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데다, 대선을 앞두고 개최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유·무상 통합을 중기적 과제로 검토하겠다며 임기 내에 통합기구 설립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유무상 통합기구 설치를 위한 첫번째 단계가 될 수도 있었던 무상원조 통합은 부처들의 이기주의에 가로막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 10여년 간 시민사회와 학계 등에서 분절화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해서 원조 통합을 주장해 왔지만, 다시 5년 후를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해외진출을 통한 국익 추구를 전면에 강조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코피드는 국정과제가 단기적이고 협소한 의미의 ‘국익’에 집중하고 있다며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명시된 지구촌의 빈곤퇴치와 인권개선, 인도주의 실현이라는 국제개발협력의 기본정신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에 따라 100대 국정과제에도 관련 전략이 대거 포함되면서 국제개발협력 국정과제에도 공공부문과 민간의 일자리 창출이 명시되었다. 이 부분이 공약에 포함되었을 당시에도 국제개발협력 일자리의 질적 수준과 노동권 존중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는 비단 국제개발협력 분야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국정과제 발표 후 노동계에서도 ‘노동권 보장’이 없는 일자리 창출 정책에 유감을 나타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국정과제는 원조통합과 같이 국제개발협력의 핵심적인 문제에는 되려 한 발 물러나면서 국익, 일자리와 같이 자국의 이해와 결부된 이슈만을 강조하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2차 기본계획’이 아닌 정권의 새 추진방향을 따른 「’18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추진전략은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하는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과 매년 수립하는 '연간 국제개발협력 시행계획'이 있다. 둘 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이하 국개위)의 의결을 거치는 것으로, 연간 시행계획은 장기 전략인 기본계획의 큰 기조에 맞춰 매년 세부 방향과 과제를 선정하게 된다. 지난 6월 말,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제29차 국개위에서는 새 정부 국제개발협력 추진방향을 포함한 「’18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을 의결했다.

▲ 제29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진행 장면 ©뉴스1
문제는 2016년에서 2020년까지의 5개년 전략인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의 추진방향이 ‘통합적인 ODA’, ‘내실있는 ODA’, ‘함께하는 ODA’였던 것과 달리, 2018년 시행계획에서는 항목이 ‘효과적 ODA’, ‘투명한 ODA’, ‘함께하는 ODA’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추진방향 상위의 비전인 ‘인류의 공동번영과 세계평화에 기여’, 상위 추진방향인 ‘SDGs 이행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원칙있는 ODA’는 모두 2차 기본계획과 동일하다. 이에 대해 국개위 운영 실무를 담당하는 국무조정실 개발협력정책관실은 투명성 등 정부의 강조점이 바뀌면서 새롭게 분류한 것일 뿐 방향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며, 2차 기본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상위 분류가 바뀐 것이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2016년, 2017년 시행계획이 모두 2차 기본계획의 세 가지 추진방향에 따라 하위 과제를 선정한 것과 비교하면 2018년 시행계획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서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하위 정책방향도 어느 정도 변경될 수는 있겠지만, 국무조정실의 주장대로 크게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면 세부과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령,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이 강조하는 ‘투명성’도 2차 기본계획에서 이미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정권의 강조점에 따라 국제개발협력의 큰 기조를 수정할 것이라면 굳이 5년에 한 번씩 기본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박근혜표 ODA”의 향방은? ‘폐지’를 넘어 ‘책임’을 고민해야
2018년 시행계획의 ‘효과적 ODA’ 항목에서는 첫번째로 핵심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부 사업들을 정비하겠다며 박근혜 정부의 대표 사업인 ‘코리아에이드’, ‘새마을 ODA’, ‘개발협력 구상’의 폐지를 밝혔다. 지난해 국개위에서 「개발협력 4대 구상 이행 마스터플랜(안)」,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 등 각 사업의 추진전략을 승인하고 중점 사업으로 추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폐지된 것이다. 세 사업은 타당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았던 만큼 폐지 결정은 마땅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정권에 따라 바뀌는 한국 ODA로 인해 현지 파트너국이 피해를 입는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단순한 폐지를 넘어 구체적인 개편 계획을 함께 논의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발전대안 피다는 지난 6월, 외교부와 코이카에 공개질의서를 발송해 각 사업의 상세한 개편 방안을 질의했다. 먼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출범한 ‘코리아에이드’는 출범 당시 보건·음식·문화가 결합된 사업이었다가 비선실세의 개입이 드러나면서 ‘보건’ 사업으로 축소되었고, 이제는 ‘모자보건 아웃리치’ 사업으로 명칭과 사업내용이 모두 바뀌었다. 외교부와 코이카의 답변에 따르면 코리아에이드의 보건사업이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이동진료를 강조한 것과 달리 모자보건 아웃리치는 여성, 아동 등 특정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1차 보건의료체계 내 서비스 접근성을 제고하는 것이며, 해당 지역의 병원과 보건소가 이미 시행중인 기능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실시하게 된다. 또, 기존 3개국(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은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사업기간도 당초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며,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신규 3개국(캄보디아, 라오스, 탄자니아)은 아예 사업을 취소했다. 이에 따라 코리아에이드 사업 운영을 위해 코이카 본부 내부에 설치했던 조직인 ‘정책사업추진단’도 해체하고, 각 지역실에서 담당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사업 명칭부터 예산, 기간, 구체적인 내용까지 모두 파트너국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한국 입장에 따라 계속 뒤바뀐 것이다. 특히 신규 3개국은 이미 상대 국가와 사업 약정까지 끝난 상황에서 취소하게 됐는데도 “필요시 상대 정부와의 협의 하에 대체 보건사업을 추진하겠다”고만 밝혀 사실상 별다른 후속대책이 없어 보인다.
‘새마을 ODA’는 새마을 브랜드를 전면에 강조하지 않고 농촌지역개발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오히려 기존의 농촌개발사업들까지 모두 무리하게 ‘새마을 ODA’로 분류해 비판을 받았는데, 개편이랍시고 꼬리표만 떼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외교부는 해당 개편방안이 외교부 산하 코이카의 사업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며, 행정자치부와 경상북도 등 타 기관에서 실시중인 새마을 ODA 사업은 자체적으로 검토 후 결정할 사안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실제로 외교부와 달리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새마을운동세계화 사업, 새마을운동 아카이브 구축, 지구촌 새마을지도자대화 등의 새마을 ODA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20여개국에서 여러 부처와 지자체 등이 수십 개의 새마을 ODA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시행기관에 따라 추진여부가 달라진다면 파트너국의 일관된 정책 수립을 방해할 뿐 아니라 기존 사업계획의 변경으로 거래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개발협력 구상’은 개도국의 SDGs 이행에 기여할 구체적인 주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UN 총회 등에서 국제사회에 선언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 구상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 모두를 위한 안전한 삶,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과학기술혁신, 아프리카 직업기술교육 지원사업, 신 농촌개발 패러다임(새마을 ODA)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감사원은 부처 간 사업 선정기준이 다르고, 일부 사업은 파트너국의 요청 없이 추진했다며 개발협력 구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는 구상의 명칭과 추진체계를 폐지하고 관련 사업은 SDGs 이행 지원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애초에 각 구상의 선정기준도 모호했고, 구상 내용도 부처에 따라 달라지는 등 불분명한 지점이 많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결국 폐지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왜 국제개발협력은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지 못했나
발전대안 피다를 비롯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대선 전후로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대선이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정치적 모멘텀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코리아에이드’를 시작으로 최순실 ODA 이권개입 사태를 겪으면서 국제개발협력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대선 전부터 각 후보들에게 정책제안서를 발송하고 캠프 관계자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분절화 문제의 대안으로 국제개발협력위원회 개편에 관한 의견서도 발표했다. 시민사회의 주장도 분명 미흡한 부분들이 있는데다 모두 반영하는건 현실적으로도 어렵지만, 결국 기대했던 큰 변화는 없었다. 이번 정권은 적폐청산을 중요하게 내세우면서도 정작 국정농단에 크게 연루된 분야 중 하나인 국제개발협력은 정부의 무관심과 부처 이기주의에 떠밀려 개혁에서 멀어졌다. 한국 ODA 역사상 가장 큰 부정 스캔들과 10년 만의 정권교체에도 끄떡없는 국제개발협력은 과연 어떤 계기로 다시 개혁의 단초를 찾을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지금의 청사진으로는 결코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 없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7-31
작성: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
[1]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논평 "원조통합 제외하고 국익·일자리 창출 강조한 문재인 정부 국제개발협력 국정과제 매우 실망스럽다", 2017.07.26
http://www.kofid.org/ko/bbs_view.php?no=60800&code=kofid
[2] 파이낸셜뉴스, 외교·안보·통일 분야는 공약 거의 반영…ODA 통폐합만 무산, 2017.07.19
http://www.fnnews.com/news/201707191554366662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청사진, 과연 장밋빛인가?
지난 7월 19일,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공개됐다.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을 국정운영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국민의 나라”와 대한민국의 제도를 ‘정의’의 원칙에 따라 재구성하겠다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크게 국가비전으로 내세우고,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5대 국정목표와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를 담고 있다. 이 중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99번째 국정과제인 ‘국익을 증진하는 경제외교 및 개발협력 강화’ 항목에 포함되었다. 앞서 6월 30일에는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 주재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개최해 「’18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을 의결하고, 새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국정과제가 정권의 장기적인 로드맵이라면, ‘18년 시행계획은 실행 단계의 구체적인 정책인 셈이다. 정권 초기 공개된 두 문서를 바탕으로 향후 5년 간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어떻게 추진될 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막판에 ‘무상원조 통합’ 제외하고, 국익·일자리만 강조한 국정과제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당시 발표한 국제개발협력 공약은 국익과 청년 일자리 창출만을 강조하고, 원조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 역시 공약 수준에서 한 단계도 진전하지 못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 국정과제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국정목표 하위의 국정전략인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외교’ 중 ‘국익을 증진하는 경제외교 및 개발협력 강화’에 명시되어 있다(표 1 참조). 주요 내용으로 제시된 ‘일자리ž국익 기여 개발원조’와 ‘체계ž통합ž효율적 개발원조’는 기존 공약을 반복하는 데 그쳤고, 내용으로도 한계가 많았다.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이하 코피드)도 국정과제 발표 이후인 지난 26일 논평을 발표해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ODA 국정농단으로 야기된 국제개발협력 개혁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고질적 문제인 ‘원조분절화’ 해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번 국정과제 선정을 크게 비판했다.[1]
[표 1]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분야 국정과제
체계적ㆍ통합적ㆍ효율적 개발협력 추진체계 강화
* 출처: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2017.07)
‘체계·통합·효율적 개발원조’의 하위 내용인 ‘유무상간 전략적 연계’, ‘무상원조의 통합적 추진 및 연계성 강화’는 이전 정권에서도 계속 추진해왔던 것이고, 당초 공약에 포함된 ‘국가개발협력전략회의’가 외교부 주도의 ‘무상개발협력전략회의’로 변경되었으나, 이 역시 기존의 ‘무상원조관계기관협의회’와 어떻게 다른지 아직은 알려진 바가 없다. 특히 ‘무상원조 통합’은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초 국정과제에 포함되었다가 막판에 제외된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부 산하 무상원조 주관기관인 코이카로 통합하는 방안이 유력했지만 유상원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무상원조를 실행하는 타 부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것이다.[2] 분절화된 ODA 추진체계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는 이미 지난 5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데다, 대선을 앞두고 개최한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유·무상 통합을 중기적 과제로 검토하겠다며 임기 내에 통합기구 설립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유무상 통합기구 설치를 위한 첫번째 단계가 될 수도 있었던 무상원조 통합은 부처들의 이기주의에 가로막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 10여년 간 시민사회와 학계 등에서 분절화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해서 원조 통합을 주장해 왔지만, 다시 5년 후를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해외진출을 통한 국익 추구를 전면에 강조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코피드는 국정과제가 단기적이고 협소한 의미의 ‘국익’에 집중하고 있다며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명시된 지구촌의 빈곤퇴치와 인권개선, 인도주의 실현이라는 국제개발협력의 기본정신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조에 따라 100대 국정과제에도 관련 전략이 대거 포함되면서 국제개발협력 국정과제에도 공공부문과 민간의 일자리 창출이 명시되었다. 이 부분이 공약에 포함되었을 당시에도 국제개발협력 일자리의 질적 수준과 노동권 존중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는 비단 국제개발협력 분야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국정과제 발표 후 노동계에서도 ‘노동권 보장’이 없는 일자리 창출 정책에 유감을 나타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국정과제는 원조통합과 같이 국제개발협력의 핵심적인 문제에는 되려 한 발 물러나면서 국익, 일자리와 같이 자국의 이해와 결부된 이슈만을 강조하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2차 기본계획’이 아닌 정권의 새 추진방향을 따른 「’18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추진전략은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하는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과 매년 수립하는 '연간 국제개발협력 시행계획'이 있다. 둘 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이하 국개위)의 의결을 거치는 것으로, 연간 시행계획은 장기 전략인 기본계획의 큰 기조에 맞춰 매년 세부 방향과 과제를 선정하게 된다. 지난 6월 말,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제29차 국개위에서는 새 정부 국제개발협력 추진방향을 포함한 「’18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을 의결했다.
▲ 제29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진행 장면 ©뉴스1
문제는 2016년에서 2020년까지의 5개년 전략인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의 추진방향이 ‘통합적인 ODA’, ‘내실있는 ODA’, ‘함께하는 ODA’였던 것과 달리, 2018년 시행계획에서는 항목이 ‘효과적 ODA’, ‘투명한 ODA’, ‘함께하는 ODA’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추진방향 상위의 비전인 ‘인류의 공동번영과 세계평화에 기여’, 상위 추진방향인 ‘SDGs 이행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원칙있는 ODA’는 모두 2차 기본계획과 동일하다. 이에 대해 국개위 운영 실무를 담당하는 국무조정실 개발협력정책관실은 투명성 등 정부의 강조점이 바뀌면서 새롭게 분류한 것일 뿐 방향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며, 2차 기본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상위 분류가 바뀐 것이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2016년, 2017년 시행계획이 모두 2차 기본계획의 세 가지 추진방향에 따라 하위 과제를 선정한 것과 비교하면 2018년 시행계획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서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하위 정책방향도 어느 정도 변경될 수는 있겠지만, 국무조정실의 주장대로 크게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면 세부과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령,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이 강조하는 ‘투명성’도 2차 기본계획에서 이미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정권의 강조점에 따라 국제개발협력의 큰 기조를 수정할 것이라면 굳이 5년에 한 번씩 기본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박근혜표 ODA”의 향방은? ‘폐지’를 넘어 ‘책임’을 고민해야
2018년 시행계획의 ‘효과적 ODA’ 항목에서는 첫번째로 핵심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부 사업들을 정비하겠다며 박근혜 정부의 대표 사업인 ‘코리아에이드’, ‘새마을 ODA’, ‘개발협력 구상’의 폐지를 밝혔다. 지난해 국개위에서 「개발협력 4대 구상 이행 마스터플랜(안)」,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 등 각 사업의 추진전략을 승인하고 중점 사업으로 추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폐지된 것이다. 세 사업은 타당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았던 만큼 폐지 결정은 마땅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정권에 따라 바뀌는 한국 ODA로 인해 현지 파트너국이 피해를 입는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단순한 폐지를 넘어 구체적인 개편 계획을 함께 논의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발전대안 피다는 지난 6월, 외교부와 코이카에 공개질의서를 발송해 각 사업의 상세한 개편 방안을 질의했다. 먼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출범한 ‘코리아에이드’는 출범 당시 보건·음식·문화가 결합된 사업이었다가 비선실세의 개입이 드러나면서 ‘보건’ 사업으로 축소되었고, 이제는 ‘모자보건 아웃리치’ 사업으로 명칭과 사업내용이 모두 바뀌었다. 외교부와 코이카의 답변에 따르면 코리아에이드의 보건사업이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이동진료를 강조한 것과 달리 모자보건 아웃리치는 여성, 아동 등 특정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1차 보건의료체계 내 서비스 접근성을 제고하는 것이며, 해당 지역의 병원과 보건소가 이미 시행중인 기능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실시하게 된다. 또, 기존 3개국(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은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사업기간도 당초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며,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신규 3개국(캄보디아, 라오스, 탄자니아)은 아예 사업을 취소했다. 이에 따라 코리아에이드 사업 운영을 위해 코이카 본부 내부에 설치했던 조직인 ‘정책사업추진단’도 해체하고, 각 지역실에서 담당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사업 명칭부터 예산, 기간, 구체적인 내용까지 모두 파트너국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한국 입장에 따라 계속 뒤바뀐 것이다. 특히 신규 3개국은 이미 상대 국가와 사업 약정까지 끝난 상황에서 취소하게 됐는데도 “필요시 상대 정부와의 협의 하에 대체 보건사업을 추진하겠다”고만 밝혀 사실상 별다른 후속대책이 없어 보인다.
‘새마을 ODA’는 새마을 브랜드를 전면에 강조하지 않고 농촌지역개발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오히려 기존의 농촌개발사업들까지 모두 무리하게 ‘새마을 ODA’로 분류해 비판을 받았는데, 개편이랍시고 꼬리표만 떼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외교부는 해당 개편방안이 외교부 산하 코이카의 사업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며, 행정자치부와 경상북도 등 타 기관에서 실시중인 새마을 ODA 사업은 자체적으로 검토 후 결정할 사안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실제로 외교부와 달리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새마을운동세계화 사업, 새마을운동 아카이브 구축, 지구촌 새마을지도자대화 등의 새마을 ODA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20여개국에서 여러 부처와 지자체 등이 수십 개의 새마을 ODA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시행기관에 따라 추진여부가 달라진다면 파트너국의 일관된 정책 수립을 방해할 뿐 아니라 기존 사업계획의 변경으로 거래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개발협력 구상’은 개도국의 SDGs 이행에 기여할 구체적인 주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UN 총회 등에서 국제사회에 선언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 구상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 모두를 위한 안전한 삶,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과학기술혁신, 아프리카 직업기술교육 지원사업, 신 농촌개발 패러다임(새마을 ODA)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감사원은 부처 간 사업 선정기준이 다르고, 일부 사업은 파트너국의 요청 없이 추진했다며 개발협력 구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는 구상의 명칭과 추진체계를 폐지하고 관련 사업은 SDGs 이행 지원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애초에 각 구상의 선정기준도 모호했고, 구상 내용도 부처에 따라 달라지는 등 불분명한 지점이 많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이 결국 폐지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왜 국제개발협력은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지 못했나
발전대안 피다를 비롯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대선 전후로 정책 애드보커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대선이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정치적 모멘텀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코리아에이드’를 시작으로 최순실 ODA 이권개입 사태를 겪으면서 국제개발협력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대선 전부터 각 후보들에게 정책제안서를 발송하고 캠프 관계자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분절화 문제의 대안으로 국제개발협력위원회 개편에 관한 의견서도 발표했다. 시민사회의 주장도 분명 미흡한 부분들이 있는데다 모두 반영하는건 현실적으로도 어렵지만, 결국 기대했던 큰 변화는 없었다. 이번 정권은 적폐청산을 중요하게 내세우면서도 정작 국정농단에 크게 연루된 분야 중 하나인 국제개발협력은 정부의 무관심과 부처 이기주의에 떠밀려 개혁에서 멀어졌다. 한국 ODA 역사상 가장 큰 부정 스캔들과 10년 만의 정권교체에도 끄떡없는 국제개발협력은 과연 어떤 계기로 다시 개혁의 단초를 찾을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지금의 청사진으로는 결코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 없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7-31
작성: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
[1]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 논평 "원조통합 제외하고 국익·일자리 창출 강조한 문재인 정부 국제개발협력 국정과제 매우 실망스럽다", 2017.07.26
http://www.kofid.org/ko/bbs_view.php?no=60800&code=kofid
[2] 파이낸셜뉴스, 외교·안보·통일 분야는 공약 거의 반영…ODA 통폐합만 무산, 2017.07.19
http://www.fnnews.com/news/201707191554366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