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7호] 아프리카에서의 6년, 삶의 가치를 찾다 -김문주 前유네스코한국위원회 아프리카 브릿지 활동가 인터뷰-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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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의 6년, 삶의 가치를 찾다
-김문주 前유네스코한국위원회 아프리카 브릿지 활동가 인터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관심 있는 청년들은 누구나 한 번쯤 ‘현장활동’을 꿈꾼다. 필자의 경우에도 국내 NGO에서 인턴 기간을 거치면서 실제로 사업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를 통해 아프리카 브릿지 활동가로 1년간 파견을 다녀왔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활동은 그저 장밋빛 세상은 아니었다. 그곳의 NGO나 주민들과의 관계 형성, 계획에 맞춘 사업의 진행, 현지 생활에 대한 적응 등 어려운 과정들의 연속이었다. 이번 피움 7호에서 만난 사람은 이러한 어려움들을 차근차근 풀어내고 적응해나가며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해외 현장과 함께 한 ‘김문주’ 씨다. 오랜 파견 기간 동안 활동가로, 코디네이터로, 또는 공무원으로 다양한 위치에서 현장활동을 한 그녀의 경험과 고민, 그곳에서 찾은 의미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거리 제약상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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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소토 디피링에서 마을 아주머니와 농작물 수확 후 돌아가는 모습(2011년) ©김문주



이화연: 현장활동을 정말 오래 하셨는데 어떻게 처음 가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김문주: 누구나 당연시하는 평범한 안락한 삶에서 벗어나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 20살의 언제부터인가 머릿속으로 붉게 타오르던 미지의 땅, 인도를 강하게 꿈꾸기 시작했고 21살에 용기를 갖고 그곳을 찾았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가난과 더러운 곳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가득했던 인도에서 저는 사람을 만났고 사랑을 배웠고 또 저 자신을 찾아왔어요.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 문화, 종교가 전혀 다른 사람들 속에서 공존하는 법, 그리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그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내 삶의 정해둔 기준과 목표 없이 삶을 배워 나가게 되었어요. 만약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생활에서 찾아오는 결핍이나 불편함 없이 주어진 삶을 당연시 받아들이고 살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떠난 인도에서의 첫 번째 여행이 저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해요. 돈이 가져다 주는 물질적 행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세상의 다양함과 다원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리고 대학 졸업 직전, 다시 인도 여행을 떠났어요. 두 번째 여정에서는 히말라야 등반을 하게 되었는데 산 중턱에서 우연을 가장한 인연처럼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과 방과 후 교실을 직접 운영하는 한 커플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들은 특정한 기관이나 정부의 지원 없이 지인들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말 그대로의 ‘봉사활동’을 삶으로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틀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진정한 나눔의 실천이 있는 삶, 그 ‘봉사’의 길이 제게 뚜렷이 자리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국에 다시 돌아와 보다 뚜렷해진 철학과 가치관으로 남과 다른 나만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국제개발, 봉사활동, NGO로의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한국국제협력단의 인턴십을 지원하게 되었고 인턴을 하면서 현장에 나가 직접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그래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브릿지 사업을 통해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어요.
 

이화연: 브릿지 프로그램은 현지 마을에 들어가서 주민들과 살며 활동한다는 점에서 다른 현장활동과는 좀 차이가 있는데요, 그래서 ‘해외봉사단원’이 아닌 ’활동가’로 불리잖아요. ‘활동가’로서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그곳에서의 삶은 문주 씨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김문주: ‘봉사’를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것에 대해 사실은 고민이 있었어요. ‘봉사’란 남을 도와주는 것, 기꺼이 나를 희생시키는 것. 어쩌면 누구나 칭찬해 줄 수 있는 좋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늘 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무조건 상대를 도와줘야 한다는 ‘봉사의 정신’이 때로는 내가 그들보다 잘났다는 생각을 먼저 가져다주지는 않을까? 나로 인해 그들의 변화 없던 삶에 변화 아닌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아프리카로의 첫 길을 열어 준 유네스코 브릿지사업은 지금까지의 일방적인 봉사에 대한 관념을 벗어나 ‘자원활동’이라는 조금은 다른 이름으로 다가왔어요. 전기도 수도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마을 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등을 발견해나가는 활동을 주민들과 함께 기획하고 참여하였는데, 그런 활동들이 삶으로 이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25살이었던 저는 도시 생활만 하다가 성냥으로 촛불을 밝히는 법부터 시작해서 나무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법, 펌프에서 물을 길어와 생활하는 것 등을 처음 해 봤어요. 그렇게 생활 곳곳에 서툴고 어린 티가 나는 제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이들은 마을의 이웃들이었어요. 특히나 혼자 생활하는 제가 몸이 아프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준 사람들도 이웃들이었어요. 언젠가 마을 내 볼거리에 걸린 한 남동생의 집에 병문안을 갔다가 저도 볼거리에 걸려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파하고 있었는데, 이웃들 중 한 분이 한화 약 3천 원을 들고 찾아와 위로를 해주고 간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저를 아껴주고 찾아주는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가 노력한 점은 바로 현지어를 습득하는 것이었어요. 레소토에서 대부분의 젊은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나 인근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고, 남아있는 마을 내 주민들의 대다수는 노인층과 어린아이들이었는데요. 영어를 학교에서 공용어로 가르치긴 했지만, 나이가 많은 어른들과의 소통에는 문제가 있었지요. 그래서 일상 속에서 틈틈이 현지어를 배우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조그만 공책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알아듣지 못했던 말이나 하고 싶었던 단어, 문장을 적어두고 영어가 가능한 중학교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가며 익히다 보니 하루하루 조금씩 발전해 나갈 수 있었어요. 그로부터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주민들의 대화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새 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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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소토 하떼꼬 마을 지역학습센터 건축현장에서(2014년) ©김문주


이화연: 저도 파견 당시 전기나 수도의 부족을 처음 경험해 보았고, 현지어를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지역주민들의 배려로 적응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반면에 머릿속으로 그렸던 사업을 실제로 진행하면서는 여러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문주씨가 현장활동을 하면서 갖게 된 고민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김문주: 레소토에서 처음 활동가로서 2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나왔을 때 작은 두 국가, 레소토와 한국을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 후, 같은 유네스코 브릿지 소속으로 활동가들을 관리하고 레소토 유네스코국가위원회 조직 속에서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또 다른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일하는 데 있어 직업의 타이틀은 바뀌었지만,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데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욕구는 무엇인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은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지역 내 리더십 구조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리더십을 더 발전시켜 나갈 방법은 없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어요. 하지만 과연 향후 우리가 시작한 사업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사람은 누가 될 것인지에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바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예를 들어 브릿지사업의 목표인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 마을에 들어가 유아교육, 성인문해교실, 기술교육훈련을 위한 지역학습센터를 건축했는데 다 지어지고 나자 과연 누가 학생들을 가르치면 좋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저는 도시에서 교육대학을 졸업 후 전문 교사자격증을 갖춘 교사를 고용하고 이들의 업무를 관리하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라고 판단했어요.

그렇게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게 되었고 레소토 국가 내 관련 정부 기관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결국, 정말 다행스럽게도 레소토 교육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고 그들과의 협력을 통해 저희가 진행한 3개의 지역학습센터 내 유아교육 교사들이 정식으로 정부에 등록이 되면서 교사월급을 정부에서 지급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화연: ‘지속가능발전’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모두가 고민하는 이슈인데 정말 달성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정부, 현지 NGO,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정말 자신의 일로 공감하고 지속해 나가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게 하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김문주:
가장 첫 번째 필요한 부분은 지역 내에서 주민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에요. 우리의 개발 잣대에 맞춰 우리만의 시각으로 주민을 바라본다면 성공하기 어려워요. 주민들의 필요를 알게 되고 난 후에는 그 욕구가 실현 가능 한지 지역 내에서 자원을 찾고 그 일을 함께하기 위해 주민을 조직하고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지역 리더를 찾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지역 리더의 역할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지역을 관리할 수 있는 그 나라 정부 내 관련 부서, 담당자를 연결하는 것,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정부의 협조를 끌어 내는 것이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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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츠와나 지속가능발전(SDG) 자문위원회 회의 참석(2016년) ©김문주


이화연: 레소토에서 오래 계시다가 다시 생소한 곳인 보츠와나로 가셨는데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레소토에서와는 역할이 조금 달랐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에서 런 점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김문주: 레소토에서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내다가 보츠와나에서 마지막 1년을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레소토에서와 정반대로 처음 시작부터 교육부의 공무원 신분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보츠와나국가위원회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고 교육부 내 하나의 부서에 속해 있었는데, 저는 교육부 내 다른 실행부서들과 긴밀히 협조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했어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국가는 달랐지만 보츠와나에서도 레소토에서와 마찬가지로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마을을 찾아 지역학습센터를 건축하는 것이 사업목표였기 때문에 저는 먼저 교육부를 주축으로 교육사업에 연관된 지방정부와 보건복지부를 초청하여 국별위원회를 조직했고, 위원회와의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마을을 선정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관료주의적인 시스템을 맞춰 나가는 것이었어요. 정부의 체계적이고 투명한 조직구조는 이해하겠지만, 그러한 관료적인 시스템을 하나하나 맞춰 나가다 보니 사업 진행 속도가 너무 더뎠어요. 사업지를 선정하고 출장을 위해 마을을 방문하는 데도 중앙정부의 실행부서에서 고위급 간부 승인을 기다려야 했고, 중앙정부 승인 후, 지방정부도 똑같은 구조로 승인절차를 밟아야만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면서 레소토에서 했던 지역을 기반으로 한 Grass-root 사업과 보츠와나에서 경험한 중앙정부의 주도하에 시행하는 Top-down 방식 중 과연 어떤 방식이 더 이상적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해 보게 되었어요. 그런 고민을 겪으면서, 지난 6년 반의 현장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는 7월 개발실무학 대학원 과정 공부를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화연: 오랜 시간 타지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일반적인 한국 청년들과는 조금 다른,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어요?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김문주: 
아프리카에서 지난 6년 반의 삶을 살고 한국에 돌아오니 제 또래의 친구들은 저와 사뭇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치열한 경쟁과정을 뚫고 어렵게 입사하게 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의 대다수는 반복되는 야근과 그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문득궁금해 졌습니다. 과연 그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 한국 사회의 정해진 기준과 잣대에 나를 끼워 맞춰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동시에 제가 중요하게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3가지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에요. 지금 자신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열정으로 꿈을 이루기까지, 주위에서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가진 꿈을 포기하곤 하는데 본인이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시작하기도 전에 현실에 순응하고 포기해 버린다면,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그 무언가를 위한 꿈을 이루지 못해요. 실패를 두려워하기에 앞서서 꿈을 이루려는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서로 다른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피부색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단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의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이상한 음식을 먹거나 소통 불가능한 외계인의 언어를 쓰는 것은 아니에요.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는 세상의 다양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진정한 참모습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각의 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는 살아있는 모든 유기체를 소중히 다루는 삶이에요. 자연의 야생적이고 풍요로운 아름다움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마음, 사람뿐 아니라 살아있는 동물, 식물 모든 유기체와 함께 뒤범벅이 되어 어우러질 수 있는 삶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자연의 관찰자’라 부를 수 있도록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함께 동화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화연: 마지막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관심있는 또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김문주: 우리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인 것 같아요. 빈곤을 당장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기보다는 함께 협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사람들이 현장에 갔을 때 자신이 잘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돈을 가지고 있다고, 도움을 주러 왔다고 스스로 우월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라.'라는 말이 있듯이 겸손한 자세로 그 사회에서 원하는 역할과 위치에 맞는 행동과 언행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오랫동안 근무한 아프리카 보츠와나나 레소토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상하관계가 확실히 나뉘어 있는 사회구조였습니다. 어쩌면 한국보다도 더 보수적이며 전통적으로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잡혀 있지요. 그런데 제가 이러한 문화를 무시하고 사업을 진행하려 했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이 분야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마음가짐과 자세로 대하는지에 따라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말투나 행동이 모여 진심이 전달 되었을 때, 서로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고 사업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요. 결국,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고 현장에 있는 담당자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현장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현장에 직접 가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흔히 가지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그곳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구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진 한국의 국제개발을 꿈꾸는 청년들이 꾸준히 '순환'될 수 있는 구조가 생긴다면 우리가 먼저 시작한 현장의 사업도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문주씨의 이야기를 통해 아프리카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발견한 그녀의 삶의 가치들을 오롯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발견한 삶의 세 가지 가치 중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은 ‘서로 다른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이다. 국제개발 분야에서는 ‘Do no harm’의 원칙이 있다. 현지인들이 본래 누리고 있던 권리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존중하고 그 가운데에서 함께 협력해 나가는 자세, 기억해야 하지만 자꾸만 잊어버리게 되는 그 기본 원칙을 독자들 모두가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5-31

작성: 이화연 피움 편집위원, 글로벌발전연구원 ReDI 지속발전사업팀 연구원
/ lwy0518@gmail.com


* [참고] 김문주씨의 개인 홈페이지: http://cindenella.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