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야기[7호]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적폐청산’은 가능할까?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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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적폐청산’은 가능할까?


‘촛불 민심’이 만들어 낸 이번 19대 장미대선은 국민들의 관심과 열망을 반영하듯 투표율 77.2%로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조기대선의 특성상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당선 후 곧바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연일 이어진 파격 인사와 탈권위적인 소통 행보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검찰개혁 문제를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재조사, 4대강 사업 정책감사, 국정교과서 폐지 등 본격적으로 ‘적폐청산’에 시동을 걸면서 여러 부문에서 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대선 기간에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여전히 개혁 대상에 들지 못한 가운데 ‘적폐’만 늘어가는 상황이다. 감사원은 지난 5월 24일, 「공적개발원조(ODA) 추진실태」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한국수출입은행, 한국국제협력단 등 ODA 시행기관을 대상으로 총 95건의 위법· 부당 및 제도개선 사항을 적발했다. 코리아에이드, 미얀마 K-타운 등 ‘최순실 ODA 이권개입’ 사태에 이어 ODA 사업 추진체계와 집행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과연 문재인 정부는 국제개발협력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당시 발표한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KoFID, 이하 코피드)의 질의서 답변과 초청토론회 발표자료, 정책공약집 내용을 토대로 그 가능성을 점쳐본다.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공약은?


<표 1> 제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문재인 후보) 정책공약집 중 국제개발협력 정책

4대 비전
12대 약속
세부 내용
평화로운
한반도
 
안전한
대한민국 

9. 강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
1) 책임국방
2) 국익우선 협력외교
  ① 국민외교를 통해 국익을 관철
  ② 주변 4국과의 협력외교 강화
  ③ 보호무역주의 대응통상외교
      역량 강화
  ④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
      공공외교 강화
   ⑤ 재외동포 적극 지원
3) 평화통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우리나라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공공외교를 전략적으로 강화

-민주주의와 평화를 선도하는 책임있는 국가로서의 역할 강화
-공공외교를 위한 정부 내외 통합조정체계 구축
-청년일자리와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개발원조 사업 추진
-개발원조사업의 체계성투명성효율성 제고




문재인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공약은 위의 <표 1>과 같이 공약집의 4대 비전 중 <평화로운 한반도, 안전한 대한민국>, 12대 약속 중 <강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 하위의 ‘국익우선 협력외교’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과 공공외교 강화’로 분류되어 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청년일자리와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관점에서 개발협력을 접근하고 있으며, ODA 사업의 체계성, 투명성, 효율성 제고를 강조했다.
 


●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협력외교,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ODA 추진
 지난 4월, 코피드가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이하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 측은 국제개발협력 정책을 우리 외교의 대표 브랜드로 발전시켜 전략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한국의 독특한 경제개발 모델을 국제사회에 전수하여 ‘소프트 파워’를 증진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공약집에서도 ‘국익’과 ‘공공외교’의 키워드로 나타난다. ‘국익우선 협력외교’를 전면에 내세워 외교 전략은 철저하게 국익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외교 하위의 국제개발협력 정책에서도 청년일자리와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특히 원조사업과 국내기업의 연계를 강화해 민간기업의 협력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또, ‘공공외교’를 전략적으로 강화함에 따라 ODA도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공공외교란 정부 간 소통과 협상을 뜻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외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원조를 포함하여 문화·예술, 미디어, 홍보 등 다양한 소프트파워 기제를 활용해 외국 대중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외교관계를 증진하고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외교활동을 의미한다. 공약집에서는 공공외교를 위한 정부 통합조정체계를 구축하여 각 부처, 위원회 등이 별도로 진행한 공공외교 사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수행기관 간 전략적 역할분담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국제개발협력 정책을 독자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공공외교 측면에서 다른 외교정책과 연계하는 방안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공공외교 또한 여러 대외정책 중 하나이므로 국제개발협력은 공공외교의 범위를 넘어 무역, 투자, 이주 등 상위의 다른 대외정책과도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또, 외교의 최상위 가치가 ‘국익’에 국한되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물론 외교의 특성상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정작 공약에서 내세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방안은 찾아볼 수가 없다.  
 


● 분절화 문제의 심각성은 인지, 그러나 통합은 ‘글쎄…’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 측은 국제개발협력의 시급하고 중요한 현안으로 ‘분절화 극복’을 꼽으며 유무상 원조통합을 중기적 과제로 검토하고, 사후관리가 부실한 소규모 지자체 추진사업 등은 퇴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약집에서도 ‘원조사업의 통합관리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이것이 단순히 사업 간의 조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조직개편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무조정실 산하의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각 부처, 기관별 ODA 사업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현재의 추진체계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크다는 것이 이번 감사원 감사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원조분절화 문제를 중심으로 한 이번 감사는 국조실 등 ODA 관계기관의 원조분절화 개선이 미흡하고, 분절화로 인해 ODA 사업 효과성이 저하되었으며, 사업 간 연계나 유사사업 간의 조정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다양한 문제들이 산재해있지만, 크게는 유·무상으로 분리되고 무상 내에서도 40개가 넘는 기관으로 분절화된 체계 자체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하다. 단순히 유사사업의 조정 차원이 아니라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도 모두 추진체계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조통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 무엇일지는 차차 논의하고 합의해가더라도 무엇보다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 청년일자리 창출과 개발협력의 연계, 아직도 유효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당시 가장 첫 번째로 내세운 핵심 공약은 공공 일자리 81만 개 증가를 포함한 ‘일자리 창출’이었다. 이를 위해 취임 직후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를 신설했고, 오는 하반기 공무원 추가 충원을 위한 추경도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글로벌 인재 양성’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였을지 모른다. 토론회에서는 청년해외봉사단 파견 사업의 단계적 확대를 언급했고, 공약집에는 개발원조사업과 청년 지역전문가 양성 및 일자리 창출을 연계하는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겠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노동환경을 생각하면 청년일자리 창출 공약을 마냥 두 팔 벌려 환영하기는 어렵다. 일자리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질 낮은’ 일자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자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일자리가 ‘지속성’을 담보하고 있지 않은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지난 두 정권에서도 일자리 창출과 개발협력을 연계하는 공약을 제시하고 정권 내내 강조해왔으나, 기존의 접근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 실제로 열악한 노동환경이 많은 청년들이 국제개발협력 분야로 유입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앞서 현재의 일자리 현황을 점검하고, 노동환경을 비롯한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 체계성, 투명성, 효율성 제고, 구체적인 방안 제시돼야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개발원조사업의 체계성, 투명성, 효율성 제고’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먼저 ‘국가개발협력전략회의(가칭)’를 정례적으로 개최하여 개발협력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상은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공약집에서 제시한 ‘국가개발협력전략회의’는 기존 국무조정실 산하의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이하 국개위)’와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이 회의가 국개위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고, 기존 체제와는 어떻게 연계되는 것인지를 알아야 의도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사업의 투명성,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리, 감독체계도 구축하겠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앞서 언급한 분절화된 체계와도 관련된다. 아무래도 시행기관이 나뉘어 있다 보니 효과적으로 관리하기가 쉽지 않고, 기관의 자체적인 모니터링과 평가 이외에는 뚜렷한 감독체계도 마련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업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새로운 관리, 감독체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 코리아에이드, 새마을운동 ODA의 향방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문제사업으로 지적되는 ‘코리아에이드’와 ‘새마을운동 ODA’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주요 관심사다. 지난 3월, 코피드가 보낸 질의서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는 코리아에이드 사업에 대해 투명성과 공정성, 상호의존성 등 ODA 사업의 핵심원칙에 위배된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많다며 향후 사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추진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코리아에이드 사업시행기관인 코이카는 코리아에이드 명칭을 ‘모자보건 아웃리치 사업’으로 바꾸고, 사업분야도 보건에 초점을 맞추는 등 사업추진 방향을 전체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러나 전 정부의 비선실세가 주도하고 개입한 사업을 이름과 내용만 일부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권력에 동조해 코리아에이드를 추진한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특히 코리아에이드 정부 합동 TF에서 미르재단 개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정부 관계자는 아직 건재하게 자리에 있다. 코리아에이드 사업이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미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새 정부는 추진경위를 상세하게 파악하여 책임자를 처벌하고, 향후 사업 추진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에서 예산이 세 배 이상 급증한 ‘새마을운동 ODA’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업을 해외에서 ODA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지속성’ 측면에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코리아에이드와 마찬가지로 원칙에 부합하고 적합한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우선 과거 ‘새마을운동 ODA’로 묶여 분류되었던 기존의 농촌개발사업은 다시 분리하고, 지금까지 추진된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업의 효과성 측면만이 아니라 한국의 발전경험 전수 측면에서도 이 사업이 과연 적절한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당시 두 사업 모두에 대해 ‘재검토’를 약속한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정 사업의 재검토에서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개혁방안 마련해야  
 
국제개발협력의 적폐는 ‘코리아에이드’나 ‘새마을운동 ODA’와 같이 특정 사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이러한 사업들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도 구조와 체계, 정책 등에서 허점이 있었고, 그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국제개발협력의 적폐청산이란 비단 특정 문제사업들을 재검토하거나 폐기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되며,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개혁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국제개발협력 공약은 철학과 관점, 방향성, 완성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난 보수정권들과 비교해도 사실 그다지 새롭게 느껴질 만한 것이 없다. 다른 부문의 공약들이 진보적이고 때로는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 비하면 많이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고,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벌써부터 낙담하기는 이르다.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도 적폐를 청산하고, 시원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5-31

작성: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