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리고 함께 걷는 생태적 ‘발전’을 고민하다
: 태국 농생태학 운동 현장 방문기
지난 1월 중순부터 4주 간 필자는 소속학교의 지원을 통해 ‘태국 농생태학(agroecology) 운동과 농민학습’을 주제로 태국 현지에서 박사학위 논문 예비연구를 다녀왔다. 처음 태국의 사례를 접하게 된 것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태국 북동부의 수린 주(Surin province) 농생태학 현장을 다녀온 김신효정 연구활동가의 기고문을 통해서였다.[1] 관행농업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농업수출국으로 알고 있던 태국에서 지속가능성과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강조하는 농생태학적 접근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이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무엇이 전 세계 농업과 농촌 분야 활동가들을 농생태학을 구심점으로 하여 태국에 모이게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례로 필자가 방문한 수린 주에서는 2012년 전지구적 농민조직 비아 캄페시나의 주최로 ‘농생태학과 농민의 씨앗에 관한 제1차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렇다면 현장에 가보자. 현장에서 실제로 농생태학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농민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농생태학과 발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러한 마음과 함께 태국으로의 한 달간의 ‘연구여행’의 첫 발을 내디뎠다. 주요 연구지역은 북동부 수린 주 일대와 북부 람빵 주(Lampang province)에 위치한 나꽈우끼우(Nakwaokiew) 마을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살리면, 그것은 당신 자신도 살리게 됩니다”
농생태학에 대해서는 다양한 개념적 논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윤을 위한 생산 증대에 주된 관심을 두는 농업근대화 전략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계를 기획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농촌발전의 패러다임이자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강조하는 내생적 발전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2] 또한 초기에 농학과 생태학의 결합을 의미하던 농생태학은 오늘날 과학(science), 운동(movement), 실천(practice)적 성격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3] 따라서 지속가능한 농업, 외부 투입이 없는 유기농 또한 농생태학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현장인 수린 주를 방문하기에 앞서 필자는 수도 방콕에서 전국적 농민 네트워크단체인 대안농업네트워크(Alternative Agriculture Network, AAN)와 이 네트워크에서 파생된 시민사회단체인 지속가능한 농업재단(Sustainable Agriculture Foundation Thailand, 이하 SAFT)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두 단체가 설립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농민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하며 목표와 활동을 구성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을 만났을 때 카셋삿 대학에서 개최된 연구자, 농민, 시민사회 관계자가 참여한 지속가능한 농업 관련 세미나를 마친 직후여서 행사에 참석한 수린 주의 농민도 면담 자리에 함께 배석하기도 했다. ‘단체의 설립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농민들로부터 여전히 많이 배우고 있다’는 SAFT의 수파 야이무앙(Supa Yaimaung)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발전 논의에 있어 협력 파트너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태국 내 농생태학 혹은 지속가능한 농업 네트워크가 비교적 촘촘하고 유기적인 것의 기저에는 ‘소위’ 개발 전문가와 대상자가 구분되지 않는 상호 참여의 공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드디어 방콕에서 시외버스로 여섯 시간을 이동하여 수린 주에 도착했다. 수린 주에 위치한 공동체 농생태학 재단(Community Agroecology Foundation, 이하 CAEF)은 1983년에 지역 농민들이 직면한 경제와 건강상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지역에서 농생태학 운동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이 재단은 군(district) 단위의 농민그룹들과 촘촘하게 연대하여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주요 활동으로는 농생태학 확산, 농생태학을 적용한 농업기술 전수, 농민학교(farmers’ school) 운영, 주 2회 열리는 그린마켓과 상설매장 운영을 통한 농산물 판매 지원이 있다.

▲ 토요일 그린마켓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식품을 판매하는 농민 ⓒ 정다정
이 중 농민학교는 정부의 정식인가를 받은 유형의 학교는 아니지만, 농민이 주체가 되어 ‘교사’이자 ‘학생’이 될 수 있는 비형식 학습의 장이다. 주 지역 단위의 농생태학 실천과 운동에서도 농민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CAEF의 아랏 생우본(Arat Saeng-ubon) 사무국장에 의하면 농민학교는 군 단위에서 농민들의 수요를 반영하여 개설되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비판적 분석을 하는 것을 주요 교수-학습방법으로 한다. 또한, 물, 토지 등 생태환경과의 연계 속에서 농생태학의 작동원리부터 구체적인 농업기술 전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그렇다면 농민들은 어떤 계기로 농생태학을 실천하게 되었으며, 농생태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CAEF를 방문한 이후 3일 동안 프라삿(Prasart), 타툼(Thatoom), 좀프라(Jompra) 등 총 3개 군을 방문하여 농생태학적 영농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그룹의 구성원들과 초점그룹 및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대상자 중 과반의 농민은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화학 투입재 중심의 관행농업을 행하다가 건강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생태적인 방식의 영농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즉 농민들은 경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방식의 농업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농생태학적 농법을 실천하고,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해야 할지에 대해 막연함이 있었는데 CAEF의 도움으로 농민학교를 통해 농생태학을 실천하고 있던 다른 지역 그룹이 주도하는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린마켓을 통해 새로운 판로를 모색할 수 있었다.

▲ 프라삿 군 협동조합의 자연농업 그룹과 함께 ⓒ 정다정
생태적 방식의 영농을 하는 농민들로부터 농생태학의 정의를 직접 전해 듣는 것은 생생하고도 따듯한 경험이었다. 프라삿 군 협동조합의 자연농업 그룹 회원들은, 농생태학이 농업뿐 아니라 소득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며(농민 C), 자연을 회복하는 것(농민 D), 다른 사람을 살림으로써 자신도 살리게 되는 것(농민 P)이라는 자신만의 정의를 들려주었다. 좀프라 군의 반논뉴(Baan Non Ngew) 여성그룹 구성원들은, 농생태학은 숫자가 아닌 질적 측면(quality)에 초점을 두는 것이며(농민 R), 먹고 사는 데 있어 안심할 수 있으며 농민으로서의 자신감 또한 높여주는 것(농민 S)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수린에서 만난 농민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농생태학은 소득과 농업활동에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공동체와 생태계를 고려하는 질적 발전과 연관되는 원리이자 실천이다. 또한, 면담을 통해 자연적인 방식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나와 이웃, 나아가 자연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농민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룹은 개인보다 강할 수 있지요”
수린 주 농생태학 현장에 이어 방문한 지역은 북부 람빵 주 매타 군에 위치한 나꽈우끼우 마을이었다. 나꽈우끼우 마을은 한국의 사회적기업인 ㈜공감만세와 협력하여 지역사회기반관광(CB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에, 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마을에 머무르면서 생태적 영농을 하는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4] 수린에서는 주 단위에서 농생태학 운동 현장을 살펴보았다면, 이곳에서는 마을 단위의 자생적인 농생태학의 실천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사실 나꽈우끼우 마을에서 농생태학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들은 농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유기농(organic farm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외부 투입물을 사용하지 않는 농업방식을 택하고 그룹을 형성하여 지역 내에서 생산물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수린에서 만난 농민들과 유사했다.
마을의 유기농민 그룹인 ‘학남장(Hug Nam Jang)’은 생각보다도 더 역동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이었다. 총 200여 가구 규모의 마을에서 약 50가구가 학남장을 구성하고 있으며, 마을 이장을 역임했던 반종 수리웡야이(Banjong Suriwongyai) 농민과 동료들의 주도로 11년 전에 처음 만들어졌다. 수리웡야이 농민은 유기농 실천을 위해 그룹으로 활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왔으며, 다른 군에서 열린 세미나와 훈련 과정에 동료들과 함께 참석하면서 학남장 구성을 준비했다고 한다. 농민은 그룹으로 활동함으로써 정부, 북부유기농민회(Northern Organic Standard Association)와 대학 등과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때에 따라 프로젝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그룹의 내부 규칙을 세움으로써 유기농법을 엄격히 실천하고, 다른 농민들에게도 생태적 농업의 원리와 기술을 전달하여 그룹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 학남장 그룹 구성원들이 아침 일찍 유기농 생산물을 수집하는 과정 ⓒ 정다정
학남장 회원들은 개인 토지에서도 영농활동을 하지만, 출자금을 통해 마련한 공유지에서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고 기술을 공유하며 공동 출하와 판매를 한다. 또한, 월례회의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 행위와 논의를 하며, 상시로 열리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이웃 지역의 농민들에게 기술 제공자가 되기도 한다. 마을에 머무르며 살핀바, 학남장 회원들은 매일 아침 공동 집하장소에서 생산물을 수집했으며 순번에 의해 선정된 2인의 대표자가 지역 시장에서 공동으로 생산물을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부 생산물은 람빵 주도의 대형마트에 ‘학남장’의 이름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학남장을 보다 즐거운 공동체로 만드는 것은 학남장 내 청년 조직 학그린(Hug Green)이었다. 2년 전 만들어진 학그린은 지역 출신의 청년들로 구성되어 온오프라인 홍보, 제품 포장과 가공, 이벤트 기획 등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어르신 농민들을 마을 바깥세상과 연결해 드리고 싶다는 지향점과 더불어 돈이 전부가 아닌, 단순하고 느린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청년들, 지금 이 순간도 그들은 학남장 그룹과 학남장의 ‘작품’들을 알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발전’을 다시 생각하며
면담을 준비하며 만든, ‘발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끝내 묻지 못한 질문이 되었다. 이 질문이 면담 참여자인 농민들에게 발전에 대한 정형적 대답을 전제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막상 묻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하지만 면담과 그들의 삶에 대한 짧은 관찰을 통해, 농생태학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발전은 ‘스스로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가능성과 다채로움과 관련된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해석해본다. 농민 한 분 한 분이 이야기하는 농생태학은 조금씩 달랐지만, 함께 모여 만들어가는 실천과 운동의 현장에서는 분명히 공동의 방향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2-28
작성: 정다정 서울대 글로벌교육협력 전공 박사과정 / djdj1126@hanmail.net
[1] 김신효정. (2016.3.18). 생태과학이자 전환운동인 ‘농생태학’ 이야기.
미디어 일다 (웹사이트: http://blogs.ildaro.com/2541).
[2] 김소연. 2015. 농생태학적 농촌개발을 위한 네스티드 마켓의 생성과 발전: 홍동사례 연구. 농촌사회, 25(2), 7-55.
[3] Wezel et al. 2009. Agroecology as a science, a movement and a practice. A review. Agron. Sustain. Dev., 29, 503-515.
[4] 나꽈우끼우 마을에 대한 관련 이야기는 고두환. 2015.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 서울: 선율을 참조할 수 있다.
천천히 그리고 함께 걷는 생태적 ‘발전’을 고민하다
: 태국 농생태학 운동 현장 방문기
지난 1월 중순부터 4주 간 필자는 소속학교의 지원을 통해 ‘태국 농생태학(agroecology) 운동과 농민학습’을 주제로 태국 현지에서 박사학위 논문 예비연구를 다녀왔다. 처음 태국의 사례를 접하게 된 것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태국 북동부의 수린 주(Surin province) 농생태학 현장을 다녀온 김신효정 연구활동가의 기고문을 통해서였다.[1] 관행농업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농업수출국으로 알고 있던 태국에서 지속가능성과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강조하는 농생태학적 접근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이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무엇이 전 세계 농업과 농촌 분야 활동가들을 농생태학을 구심점으로 하여 태국에 모이게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례로 필자가 방문한 수린 주에서는 2012년 전지구적 농민조직 비아 캄페시나의 주최로 ‘농생태학과 농민의 씨앗에 관한 제1차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렇다면 현장에 가보자. 현장에서 실제로 농생태학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농민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농생태학과 발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러한 마음과 함께 태국으로의 한 달간의 ‘연구여행’의 첫 발을 내디뎠다. 주요 연구지역은 북동부 수린 주 일대와 북부 람빵 주(Lampang province)에 위치한 나꽈우끼우(Nakwaokiew) 마을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살리면, 그것은 당신 자신도 살리게 됩니다”
농생태학에 대해서는 다양한 개념적 논의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윤을 위한 생산 증대에 주된 관심을 두는 농업근대화 전략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농업 생태계를 기획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농촌발전의 패러다임이자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강조하는 내생적 발전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2] 또한 초기에 농학과 생태학의 결합을 의미하던 농생태학은 오늘날 과학(science), 운동(movement), 실천(practice)적 성격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3] 따라서 지속가능한 농업, 외부 투입이 없는 유기농 또한 농생태학과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현장인 수린 주를 방문하기에 앞서 필자는 수도 방콕에서 전국적 농민 네트워크단체인 대안농업네트워크(Alternative Agriculture Network, AAN)와 이 네트워크에서 파생된 시민사회단체인 지속가능한 농업재단(Sustainable Agriculture Foundation Thailand, 이하 SAFT)의 관계자들을 만났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두 단체가 설립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농민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하며 목표와 활동을 구성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을 만났을 때 카셋삿 대학에서 개최된 연구자, 농민, 시민사회 관계자가 참여한 지속가능한 농업 관련 세미나를 마친 직후여서 행사에 참석한 수린 주의 농민도 면담 자리에 함께 배석하기도 했다. ‘단체의 설립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농민들로부터 여전히 많이 배우고 있다’는 SAFT의 수파 야이무앙(Supa Yaimaung)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발전 논의에 있어 협력 파트너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태국 내 농생태학 혹은 지속가능한 농업 네트워크가 비교적 촘촘하고 유기적인 것의 기저에는 ‘소위’ 개발 전문가와 대상자가 구분되지 않는 상호 참여의 공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드디어 방콕에서 시외버스로 여섯 시간을 이동하여 수린 주에 도착했다. 수린 주에 위치한 공동체 농생태학 재단(Community Agroecology Foundation, 이하 CAEF)은 1983년에 지역 농민들이 직면한 경제와 건강상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지역에서 농생태학 운동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이 재단은 군(district) 단위의 농민그룹들과 촘촘하게 연대하여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주요 활동으로는 농생태학 확산, 농생태학을 적용한 농업기술 전수, 농민학교(farmers’ school) 운영, 주 2회 열리는 그린마켓과 상설매장 운영을 통한 농산물 판매 지원이 있다.
▲ 토요일 그린마켓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식품을 판매하는 농민 ⓒ 정다정
이 중 농민학교는 정부의 정식인가를 받은 유형의 학교는 아니지만, 농민이 주체가 되어 ‘교사’이자 ‘학생’이 될 수 있는 비형식 학습의 장이다. 주 지역 단위의 농생태학 실천과 운동에서도 농민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CAEF의 아랏 생우본(Arat Saeng-ubon) 사무국장에 의하면 농민학교는 군 단위에서 농민들의 수요를 반영하여 개설되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비판적 분석을 하는 것을 주요 교수-학습방법으로 한다. 또한, 물, 토지 등 생태환경과의 연계 속에서 농생태학의 작동원리부터 구체적인 농업기술 전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그렇다면 농민들은 어떤 계기로 농생태학을 실천하게 되었으며, 농생태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CAEF를 방문한 이후 3일 동안 프라삿(Prasart), 타툼(Thatoom), 좀프라(Jompra) 등 총 3개 군을 방문하여 농생태학적 영농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그룹의 구성원들과 초점그룹 및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대상자 중 과반의 농민은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화학 투입재 중심의 관행농업을 행하다가 건강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생태적인 방식의 영농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즉 농민들은 경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방식의 농업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농생태학적 농법을 실천하고,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해야 할지에 대해 막연함이 있었는데 CAEF의 도움으로 농민학교를 통해 농생태학을 실천하고 있던 다른 지역 그룹이 주도하는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린마켓을 통해 새로운 판로를 모색할 수 있었다.
▲ 프라삿 군 협동조합의 자연농업 그룹과 함께 ⓒ 정다정
생태적 방식의 영농을 하는 농민들로부터 농생태학의 정의를 직접 전해 듣는 것은 생생하고도 따듯한 경험이었다. 프라삿 군 협동조합의 자연농업 그룹 회원들은, 농생태학이 농업뿐 아니라 소득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며(농민 C), 자연을 회복하는 것(농민 D), 다른 사람을 살림으로써 자신도 살리게 되는 것(농민 P)이라는 자신만의 정의를 들려주었다. 좀프라 군의 반논뉴(Baan Non Ngew) 여성그룹 구성원들은, 농생태학은 숫자가 아닌 질적 측면(quality)에 초점을 두는 것이며(농민 R), 먹고 사는 데 있어 안심할 수 있으며 농민으로서의 자신감 또한 높여주는 것(농민 S)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수린에서 만난 농민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농생태학은 소득과 농업활동에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공동체와 생태계를 고려하는 질적 발전과 연관되는 원리이자 실천이다. 또한, 면담을 통해 자연적인 방식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나와 이웃, 나아가 자연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농민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룹은 개인보다 강할 수 있지요”
수린 주 농생태학 현장에 이어 방문한 지역은 북부 람빵 주 매타 군에 위치한 나꽈우끼우 마을이었다. 나꽈우끼우 마을은 한국의 사회적기업인 ㈜공감만세와 협력하여 지역사회기반관광(CB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에, 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마을에 머무르면서 생태적 영농을 하는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4] 수린에서는 주 단위에서 농생태학 운동 현장을 살펴보았다면, 이곳에서는 마을 단위의 자생적인 농생태학의 실천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사실 나꽈우끼우 마을에서 농생태학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들은 농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유기농(organic farm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외부 투입물을 사용하지 않는 농업방식을 택하고 그룹을 형성하여 지역 내에서 생산물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수린에서 만난 농민들과 유사했다.
마을의 유기농민 그룹인 ‘학남장(Hug Nam Jang)’은 생각보다도 더 역동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이었다. 총 200여 가구 규모의 마을에서 약 50가구가 학남장을 구성하고 있으며, 마을 이장을 역임했던 반종 수리웡야이(Banjong Suriwongyai) 농민과 동료들의 주도로 11년 전에 처음 만들어졌다. 수리웡야이 농민은 유기농 실천을 위해 그룹으로 활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왔으며, 다른 군에서 열린 세미나와 훈련 과정에 동료들과 함께 참석하면서 학남장 구성을 준비했다고 한다. 농민은 그룹으로 활동함으로써 정부, 북부유기농민회(Northern Organic Standard Association)와 대학 등과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때에 따라 프로젝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그룹의 내부 규칙을 세움으로써 유기농법을 엄격히 실천하고, 다른 농민들에게도 생태적 농업의 원리와 기술을 전달하여 그룹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 학남장 그룹 구성원들이 아침 일찍 유기농 생산물을 수집하는 과정 ⓒ 정다정
학남장 회원들은 개인 토지에서도 영농활동을 하지만, 출자금을 통해 마련한 공유지에서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고 기술을 공유하며 공동 출하와 판매를 한다. 또한, 월례회의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 행위와 논의를 하며, 상시로 열리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이웃 지역의 농민들에게 기술 제공자가 되기도 한다. 마을에 머무르며 살핀바, 학남장 회원들은 매일 아침 공동 집하장소에서 생산물을 수집했으며 순번에 의해 선정된 2인의 대표자가 지역 시장에서 공동으로 생산물을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부 생산물은 람빵 주도의 대형마트에 ‘학남장’의 이름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학남장을 보다 즐거운 공동체로 만드는 것은 학남장 내 청년 조직 학그린(Hug Green)이었다. 2년 전 만들어진 학그린은 지역 출신의 청년들로 구성되어 온오프라인 홍보, 제품 포장과 가공, 이벤트 기획 등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어르신 농민들을 마을 바깥세상과 연결해 드리고 싶다는 지향점과 더불어 돈이 전부가 아닌, 단순하고 느린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청년들, 지금 이 순간도 그들은 학남장 그룹과 학남장의 ‘작품’들을 알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발전’을 다시 생각하며
면담을 준비하며 만든, ‘발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끝내 묻지 못한 질문이 되었다. 이 질문이 면담 참여자인 농민들에게 발전에 대한 정형적 대답을 전제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막상 묻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하지만 면담과 그들의 삶에 대한 짧은 관찰을 통해, 농생태학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발전은 ‘스스로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가능성과 다채로움과 관련된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해석해본다. 농민 한 분 한 분이 이야기하는 농생태학은 조금씩 달랐지만, 함께 모여 만들어가는 실천과 운동의 현장에서는 분명히 공동의 방향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2-28
작성: 정다정 서울대 글로벌교육협력 전공 박사과정 / djdj1126@hanmail.net
[1] 김신효정. (2016.3.18). 생태과학이자 전환운동인 ‘농생태학’ 이야기.
미디어 일다 (웹사이트: http://blogs.ildaro.com/2541).
[2] 김소연. 2015. 농생태학적 농촌개발을 위한 네스티드 마켓의 생성과 발전: 홍동사례 연구. 농촌사회, 25(2), 7-55.
[3] Wezel et al. 2009. Agroecology as a science, a movement and a practice. A review. Agron. Sustain. Dev., 29, 503-515.
[4] 나꽈우끼우 마을에 대한 관련 이야기는 고두환. 2015. 우리의 여행이 세상을 바꿀까. 서울: 선율을 참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