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1호] ‘휴먼 프로젝트’가 가능한 10년 후를 기대하며-영화 <칠드런 오브 맨>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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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프로젝트’가 가능한 10년 후를 기대하며
영화 <칠드런 오브 맨>


“무슬림들은 이슬람 사원을 봉쇄한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토안보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영국 국경은 8년 뒤에도 계속 폐쇄될 것입니다. 불법 이민자들의 이송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오늘 지구상 최연소 인류였던 디에고 리카르도가 사망했습니다. 고인은 평생 세계 최연소자라는 유명세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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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칠드런 오브 맨> 포스터  ⓒ네이버 영화


2027년,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속 몰락한 세계에 유일하게 건재한 영국의 뉴스이다. 다른 나라가 무정부 상태가 되고 영국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불법 이민자가 되어 잡혀가는 세상이다. 또한, 18년 동안 불임 문제로 저출산도 넘어선 ‘무(無)출산’에 시달리며, 정부에선 자살 용품과 우울증 약을 무상 배급하는 세상이다. 이런 암울한 세계가 없다고 생각할 즈음, 사건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휴먼 프로젝트’. 실체가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전설처럼 떠도는 유토피아이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꾸려 나가는 프로젝트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어 그 자체로도 ‘비상구’를 상징하며 신기루이자 희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주인공 테오는 어디선가 휴먼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염세적인 얼굴로 대꾸한다.


“너무 늦었어요. 세상은 망했다고요. 불임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세상은 가망이 없었어요.”


영화는 이 ‘가망 없는 세상’을 배경으로 출발한다. 한때는 정치 문제에 민감했던 활동가 테오는 아들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다가 이민자 인권 보호 단체의 대표인 전 부인 줄리언으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는다. 휴먼 프로젝트가 연구 중인 곳까지 임신한 이민자 소녀 ‘키’를 인도하기 위한 통행증이 필요하다는 것. 이민자는 박해받고, 모든 여성이 불임인 세상에서 임신한 가나 출신 소녀 ‘키’는 이름 그대로 잠겨있는 세상의 열쇠가 될 양으로 아기와 함께 ‘미래호’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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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을 출산한 키와 함께 내일호를 찾아 떠나는 테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중. ⓒ네이버 영화



이다지도 익숙한 미래라니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장르는 ‘SF(공상과학 영화)’이다. SF의 정의는 ‘과학 기술적 소재와 공상적 이야기를 통해 인류의 미래상을 그려내는 장르’이다. 많은 영화에서 상상 속 미래를 그리고 즐긴다. 신인류나 외계인이 나오기도 하고, 수퍼히어로나 좀비가 등장하기도 한다. 때로는 각종 그래픽으로 중무장한 얼토당토않은 내용도 있지만, 우리가 아직 맞이하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기꺼이 ‘상상된 미래’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칠드런 오브 맨> 속 2027년은 어떤가. 연도를 알려주는 자막이 없었다면 미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을 정도로 2016년 현재와 닮아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영화 속 영국은 온갖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축약된 세계이다. ‘공상과학’ 영화라기보다 현실을 날카롭게 간파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상과학 영화로 분류되는 이유는 미래를 묘사했다는 점과 비현실적인 현실을 나타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즉, 현실인데도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암울하기 때문에 이 현실이 축적되어 나타날 미래 역시 희망적이지 않으리라 예측한 것이다.

영화 속길거리 전광판에 등장하는 광고 문구, 시위대의 피켓 문구에서 이 세계가 얼마나 어그러졌는지 알 수 있었다. 주로, ‘임신 테스트를 불법입니다.’, ‘수상쩍은 사람(이민자)은 신고합시다.’, ‘고귀한 죽음 스스로 선택합시다(자살약 광고).’와 같은 문구들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영화는 생존하는 것이 더 이상 존엄한 일이 아니라는 냉소적인 전망과 미래에 대한 어두운 진단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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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자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대와 “임신 테스트는 불법이다.”라는 광고 문구.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중 ⓒ네이버 영화



미래가 어두울 수도 있다는 불편한 상상 

영화가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우리의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는 주장은 당연 유쾌하지 않았다. 미래라는 단어는 언제나 꿈과 희망을 상징했지, 이렇게 선혈이 낭자한 세상을 뜻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역사도 있는데 아무리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해도 그것은 왜 꼭 어두웠어야 했는지 반감을 갖기도 했다.

영화가 처음 개봉한 2006년 그 이전부터 유럽은 이주, 저출산, 고령화 등 각종 ‘사람 문제’에 시달렸고 그것은 곧 유럽 이외의 지역으로도 번졌다. 국제 사회는 세계가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다.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래도 ‘더 나은 삶’이라는 테제를 놓지 않았고, 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2016년인 지금, 이주, 종교 갈등, 저출산, 테러 문제로 카오스가 된 세상을 그린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있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2027년은 아직 10년이나 먼 미래인데 벌써 낯설지 않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예지력이나 상상력이 대부분 현실에 기반함을 고려했을 때 이 영화의 가장 큰 ‘참고문헌’ 역시 영화가 제작되던 당시의 현실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결국 지금 우리로 하여금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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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에 갇혀 이송되는 이민자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중. ⓒ네이버 영화


휴먼 프로젝트가 가능한 2027년을 기대하며

<칠드런 오브 맨>은 2006년에 개봉했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다. 완성도 높기로 소문난 전설 같은 이 영화와 10년 만에 조우하고 난 후, 과연 우리의 2027년은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은 영화 속 결말이 새드엔딩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희망을 상징하는 ‘키’가 거대한 범선 ‘내일호’에 탑승해 휴먼 프로젝트에 합류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단 한 명에게라도 희망을 선사하며, 밝은 미래를 예견해 볼 여지를 남긴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와 묘하게 흐름을 같이 하게 된 ’발전대안 피다(이하 피다)’ 의 전신 ODA Watch도 2006년에 출발했다. 그리고 10주년을 맞은 지금, 더 큰 비전과 시각을 갖고 또 다른 10년을 내다보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 개발과 빈곤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부지런히 10년을 보내왔지만 아직 할 일이 많고, 깊이를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발전을 꽃피우겠다는 그야말로 새로운 ‘휴먼 프로젝트’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속 세상에서 볼 수 있듯, 우리의 삶을 해치는 빈곤, 불평등, 전쟁, 재난과 같은 문제는 제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로 얽히고설키며 발생한다. 또한, 영국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국력과 자본을 소유했다 해서 이 같은 국제적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시사한다. 영화 속에서 ‘휴먼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추측하건대 카오스와 같은 현실에서 벗어난, 갈등도, 계급도,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라고 생각된다. ‘발전의 대안을 꽃피운다’는 신조 아래 만들어진 피다와 우리 모두의 이상향은 유토피아, 즉 ‘휴먼 프로젝트’가 일어나는 세상일 것이다. 다만 이 이상적인 세계를 맞이함에 있어 필요한 전제는 ‘나의 세상’과 ‘인류의 세상’이 긴밀하게 상호연결 돼 있음을 인식하고, 총체적인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일 것이다. 결국 ‘발전’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피다의 논점은 빈곤, 불평등 등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개별적으로 모색하는 각론(各論)과 더불어, 모든 문제를 하나의 연결고리로써 포괄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총론(總論)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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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호’에 승선하려 떠나는 키와 테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중. ⓒ마이데일리


아직 발을 떼기 전인 피다가 유일하게 희망적인 존재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모두가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세상의 희망을 품은, <칠드런 오브 맨> 속 ‘키’와 같이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 이상향 그 자체를 상징하는 ‘휴먼 프로젝트’가 되기보다도 그곳으로 이끄는 ‘내일호’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2027년에 오늘을 돌아봤을 때 조금 더 밝은 이야기를 보며 공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6-10-24



작성: 송유림  피움 편집위원, 서강대학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석사과정
/ salamatpo7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