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 [2호] 재난 불평등: 왜 재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가혹할까

2018-02-08
조회수 18737


재난 불평등: 왜 재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가혹할까


5a7c12c4ce8d9.jpg
▲ 책 '재난 불평등' 표지 ⓒ연합뉴스


21세기 최악의 재앙 : 아이티 지진
 
2010년 1월 12일 31만명(정부추산)의 생명을 한번에 앗아간 아이티 지진의 피해지역 재건복구 사업을 위해 긴급파견 되었다. 현장에 도착해 이재민 밀집지역과 피해재건지역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2년 가량 진행하며 수도 빈민지역의 주민의 삶과 피해주민의 삶의 온몸으로 체험했다. 긴급구호사업을 시작하고 몇 개월 후 처음으로 수도 내 사업지역이 아닌 대사관, UN과 국제기구 직원들 그리고 아이티 부자들이 거주하는 페티옹빌이라는 동네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명예한국 대사직을 수행하는 아이티분이 지금까지 재건활동에 대한 감사와 격려 차 본인 집에 초대한 것이다. 무장한 경비원을 지나 높은 담장 너머에는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 시설과 빗물을 정화하여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저택이 숨어있었다. 테라스에서는 수도 포트프랭스와 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전경(물론 방문 당시에는 지진피해가 한눈에 보이는 참혹한 전경이었지만)이 펼쳐졌다. 신기하게도 수도의 대부분을 파괴시킨 지진은 백인계 아이티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페티옹빌의 수많은 저택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시티솔레이 빈민가의 시궁창 냄새에도 아무 반응이 없던 나의 감각이 페티옹빌의 냄새 없는 악취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5a7c18e8caca6.jpg

▲아이티 시티솔레이 빈민가(왼쪽)와 페티옹빌의 한 저택(오른쪽) ⓒ권기정


가난한 이들에게 가혹한 재난

아이티, 칠레, 스리랑카, 미얀마, 중국,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의 뉴올리언스 등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에서 왜 유독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인재(人災)의 결과로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각국의 정부가 자연재해에 대한 예방이나 재해 발생 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혹은 부패)하여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재난이 자연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에는, 재난은 자연적이다. 그 순간은 자연의 탓이다. 그러나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다(p272).
 
중국에서 혹은 아이티에서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대부분의 사례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우선 건축업자들이 학교나 상가를 지을 때 설계 규정과 달리 시멘트 대신 값싼 모래의 함량을 높이거나 건축물의 뼈대가 되는 철근을 빼돌려 부당한 이익을 취득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감시하고 적발해야 할 공무원들은 건축업자들에게 뇌물을 받고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어 건축물은 아무런 문제(?) 없이 완공된다. 이렇게 완공된 건축물들은 크고 작은 자연재해에 쉽게 무너진다. 부패한 정부관리들(정치인)과 탐욕스런 기업가들이 결탁하여 부정한 재물을 축적하고 그 피해는 대부분 일반 시민이나 특히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가된다.


재난을 기회로 삼는 이들
 

쓰촨성, 아이티 지진 발생 후 정부와 언론은 자국 국민들의 절실하고 긴급한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며 재건복구를 위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여러 나라를 통하여 대규모 복구 비용을 지원 받는다. 그러나 큰 문제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부도덕한 자의 눈에는 급속히 투여된 복구비용이 돈벌이의 기회를 가져다 줄,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manna로 보였을 것이다.(p120)
 
대중들은 대규모 재난 발생 후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한 관심보다는 재난으로 발생한 피해자들의 참담한 모습과 절망적 상황에 대응하는 영웅적인 단체와 개인들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쓰촨성에서 부실 건축물을 지었던 건축업자들이나 혹은 그와 유사한 부류의 건축업자들은 정부관료와 유착 관계를 강화하며 재건복구를 시작하게 된다. 페티옹빌의 백인계 아이티인들이 빈민가 흑인지역의 재건복구 사업을 맡아서 진행하고 이들은  화려하고 안전한 저택의 수를 더욱 늘려나간다.
 

재난, 끝이 아닌 시작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문제 예방을 못하고 사후에 뒤 늦은 대책을 마련한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에 발생할 문제를 미리 대비하여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이룰 수 있다면 소를 잃은 사건은 재난의 긍정적 효과를 뜻하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해당할 것이다.
 
점점 더 커져 가는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은 셀 수 없이 많은 사회적 병폐와 경제적 재난이 발생하는 원천이다. 이는 우리 시대가 맞닥뜨린 거대한 도전 과제다. 재난으로 이익을 챙길 기회를 제거하는 것은 부정의를 바로잡는 이일 뿐 아니라 멀어져 가는 우리 서로를 좀 더 가까이 끌어 당겨 주는 일이 될 것이다.(p273)
 

재난피해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지난 10월 초 케냐 출장 중 재난과 관련한 두 가지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스마트폰을 통해 본 태풍 차바가 한반도에 상륙하여 경남지역에서 사상자 10명과 재산상의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국내 소식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알자리라 방송을 통해 본 강력한 허리케인 매튜가 아이티를 강타할 예정이며 그 피해가 엄청 날 것이라는 해외 소식이었다. 국내 언론은 태풍관련 소식만 전할 뿐 허리케인 매튜에 대한 보도는 거의 하지 않았다.

언론이 재난관련 소식을 시민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시민들은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현실적으로 시민들이 재난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는 무척 어렵다. 지난 해 4월 네팔 지진피해 당시 한국인들은 네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이번 아이티의 허리케인 피해에는 한국인들이 아무런 관심도, 지원도 없었다. 그 차이를 알고 싶어 네팔 지진피해와 아이티 지진피해를 내용을 비교해 보았다. 지난해 네팔 지진으로 인해 8600명의 사망자와 10만 명 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올해 허리케인 매튜로 아이티는 1000명의 사망자와 150만의 피해자 중 7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네팔은 사망자 부분에서 아이티 보다 8~9배 큰 인명피해가 있었으며 아이티는 네팔보다 10배 이상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 외부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구호의 손길은 죽은 사람이 아닌 피해 속에 살아남은 사람에게 필요하다. 네팔보다 아이티에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아이티 피해에 관심을 갖지 않아 대부분의 시민들은 피해에 관한 정보를 접하지 못한다.  결국 재난 발생지역의 지원 여부는 재난 피해 규모나 정책에 결정되는 것이 아닌 언론의 관심 여부에 달려있다. 예멘, 시리아, 브룬디, 남수단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재난과 분쟁으로 수 십만 명의 피란민과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지만 한국 언론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국내 개발협력단체(NGO)들 역시 지원 사업을 거의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한국 사회의 재난 대응은
 
1장에서 저자는 한국에서 여객선 사고로 300명 이상의 학생이 사망한 세월호 사고도 재난이다.(p27) 라고 세월호 참사를 간략히 언급한다. 사고 이후 세월호 침몰의 다양한 원인 중 현재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여객선 증축, 개축’, ‘화물과적 부실 심사’, ‘평형수 조작’과 같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확실히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진 부분에 있어 책임자 적발 및 처벌 그리고 법 제정과 같은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7시간 컨트롤 타워 부재’와 관련하여 정확한 이유와 해명을 여전히 찾지 못하는 상황은 마치 쓰촨성 지진 후 건축붕괴의 원인 제공자를 찾지 않고 또 다시 범죄자들에게 재건 사업을 맡기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부자들이 재난을 통한 부를 획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시민과 시민단체의 연대와 참여가 필요하다. 시민과 시민단체가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를 시행하여 민주적 통치구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부패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 독재권력을 가진 미얀마 군부 정권에서부터 가장 개방적 민주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에 이르기까지 시민과 시민단체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지역은 예외 없이 재난은 ‘창조적 파괴’가 아닌 ‘기득권 자들을 위한 기회’가 되었다.

최근 한국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 처해 있다. 지금의 위기가 한국사회를 발전시키는 ‘창조적 파괴’가 될지 기득권 자들이 더 큰 부와 권력을 갖는 기회가 될지는 시민과 시민사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현재의 재난 상황에 시민과 시민단체 모두 긴급구호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6-12-15


작성: 권기정 개발협력 협동조합 빙고(BINGO) 대표 / logosis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