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국제개발협력 수혜자는 당신의 윤리적 가치입니다
들어가며: 수혜자 선정과 윤리적 선택
당신이 비정부기구의 국제개발협력 사업 기획 담당자라고 가정하자. 당신이 일하는 비정부기구는 전 세계에 만연한 빈곤을 해소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으며, 개량된 슈퍼 바나나 종자를 활용한 농업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 당신은 신규 사업을 기획 중이며, 한정된 예산과 시간, 전문가 동원 가능성 등을 고려했을 때 사업은 농촌 마을 한곳을 대상 지역으로 추진 가능하다. 이제 당신은 수혜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 가급적 가장 윤리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당신은 사업 참여 마을 공모를 실시했다. 공모 결과, 아래와 같이 세 개의 아프리카 농촌 마을이 수혜를 신청했다. 세 마을은 모두 빈곤하며, 각자 그럴듯한 수혜 적격 이유를 지닌다.
첫째 마을은 바나나 농업에 가장 준비된 마을이라고 주장했다. 이 마을은 예부터 바나나를 활용한 식음료, 의상, 건축, 공예 등을 전통으로 유지해 왔다. 이들은 어느 정도 빈곤하지만, 기초적인 바나나 농업 기술과 협동력을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 바나나 농업을 확장하고 새로운 종자를 도입하며 고도의 농업 역량을 습득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도 지니고 있다. 타당성 조사 결과, 당신은 이들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당신은 이 마을에서 사업을 추진했을 때, 세 마을 중 가장 많은 수혜자가 빈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둘째 마을은 그 어떤 지역보다 가장 빈곤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마을은 말 그대로 오랫동안 버려진 곳이었다. 변변한 학교나 보건소도 없다. 전기나 도로도 열악할 뿐이다. 농민들은 각자 조그마한 텃밭을 활용하여 생계형 농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에게 당신의 지원은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당신은 타당성 조사를 통해 이 마을에서의 사업 추진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척박한 마을에 농지 개간, 관개 시설 구축, 농사 기술 전수 등을 진행하려면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 마을에서 사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을주민 수는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셋째 마을은 한마디로 평범하다. 이 마을은 사업을 추진하는 데 첫째 마을처럼 잘 준비되어 있지 않으며, 둘째 마을처럼 극도로 열악하지도 않다. 그래서 당신은 이 마을에서의 사업 추진 성과(빈곤을 극복하는 수혜자 수)가 크지도 작지도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이 마을은 잠재력과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에 호소했다. 이곳은 점차 교통의 요지가 되고 있으며 향후 유동 인구와 유입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마을 위원회는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업을 발전시켜 교통의 요지에서 바나나 유통과 판매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나아가 마을 공동체는 바나나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개량된 슈퍼 바나나 종자와 고도의 농업 역량 등을 주변의 매우 빈곤한 마을을 중심으로 전파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당신은 타당성 조사를 통해 마을 공동체의 주장과 바람이 사업 기간 내에는 불가능하지만, 이후에는 일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록 그 기대는 다소 불확실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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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은 사람을 위한 활동입니다. 개발도상국이 올바르게 발전하도록 지원하여 사람들이 빈곤을 극복하고 주체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제개발협력의 목적이니까요. 그런데 통상 국제개발협력이 개발도상국의 모든 사람을 지원하기는 어렵습니다. 설령 모든 사람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올바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개발협력은 수혜자가 누구여야 하는지 선택해야 합니다1. 이는 윤리적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국제개발협력에서 누가 수혜를 받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누가 우선적으로 빈곤을 극복해야 하는지, 나아가 누가 우선적으로 주체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에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제개발협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반드시 포함합니다2.
다시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로 돌아와 보죠.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세 마을은 모두 빈곤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국제개발협력의 수혜를 받기 일정 수준 적합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세 마을 중 하나만을 수혜 대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윤리적 우선순위를 나타냅니다. 첫째 마을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가장 많은 사람이 빈곤을 극복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우선시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정된 사업 예산과 기간 안에서 가장 많은 수의 사람이 빈곤을 탈출할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역량 있는 사람들(바나나 농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할 것입니다. 둘째 마을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합니다. 당신에게 있어, 더 빈곤한 소수의 사람을 지원하는 것은 덜 빈곤한 다수의 사람을 지원하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입니다. 셋째 마을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미래지향적인 파급 효과를 윤리적 우선순위로 고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혹은 사업 기간 내) 빈곤을 극복하는 사람 수를 최대화하거나 가장 절박한 사람을 시급하게 지원하는 일은 당신의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업 비수혜자의 빈곤 극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개발도상국의 빈곤 극복 성과가 지속되거나 확산될 것이니까요.
이제부터 저는 당신의 세 가지 선택지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이유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를 선택하는 당신의 윤리적 판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물론 실제 국제개발협력의 세계는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사실 수혜 후보자를 가려내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입니다. 후보자를 가려냈더라도, 그들의 특성은 더 다양하고 복잡하겠죠. 여러 특성들이 서로 중첩되거나 흩어져 있을 수도 있고요. 나아가 수혜자 선정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전략적, 기술적, 행정적 사항도 아주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실제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고려되는 윤리적 선택지를 단순화하면 주로 세 가지로 압축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세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윤리적 판단 근거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가치 1. 양적 성과와 비용 대비 효과성
국제사회는 바람직한 국제개발협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규정해 놓았습니다. 바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개발원조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의 개발원조 평가 원칙과 기준(Principles and Criteria for Evaluation of Development Assistance)으로 말이죠3. 이는 바람직한 국제개발협력이 갖추어야 하는 규범적 원칙과 기준입니다. 이에 따르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적절(Relevance)해야 하고, 일관적(Coherence)이어야 하며, 효과적(Effectiveness)이어야 하고, 효율적(Efficiency)이어야 하며, 영향력(Impact)을 발생시켜야 하고, 지속가능(Sustainability)해야 합니다. 국제사회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이러한 규범적 원칙과 기준을 지키는지 상시 평가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칙과 기준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여섯 가지의 기준 중 수혜자 선정에 특히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 수혜자는 국제개발협력이 필요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적절성). 둘째,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목표하고 있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을 수혜자로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효과성). 사업이 목표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국제개발협력의 의미가 크게 퇴색할 것이니까요. 셋째,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목표한 성과를 경제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혜자를 선택해야 합니다(효율성). 그래야만 국제개발협력이 한정된 예산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하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수혜자 선정 기준은 ‘비용 대비 효과성(Cost-Effectiveness)’입니다.
문제는 비용 대비 효과성을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하더라도, ‘국제개발협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여야 하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해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해설은 아마도 철학자 토마스 포기(Thomas Pogge)의 주장일 것입니다. 토마스 포기는 인간의 일반적인 욕구와 필요와 관련된 최소한의 생활 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합니다4. 그리고 그는 인간의 최소 생활 수준을 정의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세계은행은 절대빈곤선(하루 미화 2.15불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의해 놓은 것입니다. 유엔(UN, United Nations)의 지속가능 개발목표(SDG,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도 최소한의 생활 표준 경계를 지표를 통해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고요. 그 외 비정부기구, 민간재단, 정부기구, 국제기구 등도 경제, 사회, 교육, 보건 등의 영역에서 유사한 경계를 지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제개발협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령 빈곤선 이하의 경제 수준을 지닌 성인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 등 말이죠.
정리하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바는 국제개발협력은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용 대비 효과성에 따라 수혜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선정해야 하는 수혜자는 명확합니다. 바로 첫째 마을이죠. 이들은 빈곤하여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은 다른 마을과 중대한 차이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나나 농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비용 대비 효과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입니다. 즉, 첫째 마을의 개개인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를 가장 잘 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첫째 마을을 선택한다면 한정된 예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르면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가장 윤리적인 판단은 첫째 마을을 수혜자로 선정하는 것입니다.
가치 2. 질적 성과와 국제개발협력의 필요성
비용 대비 효과성에 따른 수혜자를 선정하는 방식은 비교적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는 판단입니다. 이는 무언가 이상합니다. ‘국제개발협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비교적 더 나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니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 동일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죠. 그런데 비용 대비 효과성에 따라 수혜자를 선정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일수록 국제개발협력의 도덕적 우선순위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은 사실상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수혜자가 되더라도 가장 마지막에나 가능하겠죠. 이는 대단히 불공정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공정한 방법은 절박한 사람일수록 국제개발협력의 우선순위가 높다고 판단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이러한 도덕적 직관은 개발철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에 의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는 개발의 핵심이 사람들의 실질적 기회(Substantial Opportunity)에 집중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5. 사람들이 주체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럴 만한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빈곤에 허덕이는 이유도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기회(기초 교육, 기초 보건, 경제적 참여 기회 등)조차 박탈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아마티아 센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국제개발협력의 우선순위 수혜자는 실질적 기회가 박탈된 사람일 것입니다.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국제개발협력이 시급한 사람들은 가장 빈곤한 둘째 마을이지 더 잘할 수 있는 첫째 마을이 아닙니다. 국제개발협력이 없더라도 첫째 마을은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와 능력을 일정 수준 지니고 있어요. 그러나 둘째 마을은 그럴 기회가 완전히 박탈되어 있지요. 그래서 국제개발협력이 없다면 둘째 마을은 빈곤이 더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첫째 마을은 상대적으로 훨씬 낫죠. 그렇다면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업의 수혜자는 가장 절박하고 도움이 시급한 둘째 마을로 선택하는 것이 더 윤리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적 판단은 곧장 강력한 반대에 직면합니다. 이러한 선택은 지극히 이상적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비용 대비 효과성이 얼추 비슷한 상황에서는 더 열악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예상되는 수혜자 수가 비슷한 상황에서는 더 어려운 사람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종종 냉혹합니다. 더 취약한 사람들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수혜자로 선택할수록 한정적인 예산 안에서 지원할 수 있는 사람 수는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하루 미화 2.15불 이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려 7억 명입니다. 열악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아주 기초적인 삶의 질조차 누리지 못하는 절박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비용 대비 효과성을 고려하면 3천 명을 지원할 수 있는데도 이상적인 공정성에 집착하여 1천 명만 지원한다면, 당신은 잘못도 없이 궁핍한 2천 명을 지긋지긋한 빈곤에 방치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개발학자 폴 콜리어(Paul Collier)는 국제개발협력의 수행 방식이 비용대비 효과성을 중심으로 바뀌었을 때, 지금보다 두 배 가까운 수의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할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6. 따라서 국제개발협력의 우선순위 필요성에 따라 수혜자를 선택하는 방식은 양적 성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다시 비용 대비 효과성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합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용 대비 효과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을 때, 당신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실제로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방치하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지원이 더 필요한 사람들을 수혜자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빈곤에서 당장 구할 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외면하는 꼴이지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번외. 기회의 평등과 무작위 선정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윤리적 문제는 양적 성과(최대 다수의 빈민을 지원)와 질적 성과(가장 열악한 빈민을 지원)에 대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비용 대비 효과성과 국제개발협력 필요성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대립하는 두 가지 가치를 어느정도 중재할 수는 없을까요? 비용 대비 효과성과 국제개발협력 필요성 가치들을 완벽하게 실현하지는 못하더라도 둘 다 고려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방식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를 받기에 적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동등한 사업 참여 기회를 주자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수혜자를 ‘무작위로 선정’하자는 것입니다(Randomised Assignment to Eligible Beneficiaries)7. 예를 들어, 사업 대상지에 절대빈곤선 이하에 놓인 사람들이 1천 명이 있고, 한정된 사업 예산에서 1백 명만을 수혜자로 선정할 수 있다면, 1천 명을 대상으로 1백 명을 뽑는 제비뽑기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이랬을 때, 절대빈곤선 이하에 놓인 1천명은 모두 확률적으로 동일한 사업 참여 기회(확률1/10)를 보장받습니다. 따라서 사업의 수혜자는 형식적으로 공정하게 선발될 수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방식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동등한 사업 참여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나아가 확률적으로 무작위로 선발된 수혜자들은 절대빈곤에 놓인 사람들의 다양한 특성을 통계적으로 대표할 것입니다. 즉, 제비뽑기로 선발된 1백 명은 전체 1천 명이 지닌 대표적인 속성(성별, 학력, 건강, 경제 활동, 취약성, 빈곤 정도 등)을 평균적으로 반영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절대빈곤에 놓인 사람들의 평균적인 속성을 지닌 수혜자를 대상으로 추진하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적정한 비용 대비 효과성을 산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것이 절대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적정한 숫자를 어느 정도 보장해 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국제개발협력이 수혜자를 무작위로 선정했을 때, 적정 수준의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만족하시나요? 수혜자를 무작위로 선정하는 방식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를 가장 윤리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인가요? 무언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인생을 제비뽑기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수혜자로 뽑히지 않았을 때, 당신은 그들에게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지 기회의 평등은 보장되었으니 체념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당신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최대 다수의 사람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데도 통계적 대표성과 확률을 들먹이며 그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당신은 이러한 방식을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는 있지만 가장 윤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치 3. 잠재적 파급 효과와 불확실성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죠. 우리가 국제개발협력의 양적이고 질적인 성과를 고려할 때에는 사업의 제약 조건(예산, 기간, 대상 지역 등)을 기준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업 내에 빈곤을 극복하는 사람의 수를 최대화할 것인지, 아니면 그 수는 적더라도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용 대비 효과성 원칙과 공정성 원칙을 그렇게 엄밀하게 적용해야 하나요? 이 원칙을 조금 유연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선택지를 좀더 확장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확장된 선택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 혹은 비용 대비 효과성과 국제개발협력 필요성 원칙들을 중재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당신은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셋째 마을이 지닌 미래지향적 파급효과에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업 내에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이상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업의 제약 조건(예산, 기간, 대상 지역 등)을 넘어서 넓은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을 지원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양적 성과는 첫째 마을보다 좋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의 수혜자들이 매우 빈곤한 이웃 마을들을 향후 지원한다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질적 성과도 둘째 마을을 지원했을 때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업의 제약 조건에 집착하지 말고 과감하게 셋째 마을을 수혜자로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미래지향적인 파급효과를 기대하는 방식은 다소 이상적이기는 합니다. 실제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은 아주 복잡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보여지는 셋째 마을은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모두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겠죠. 설령 그런 사람들을 어렵게 찾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파급 효과가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 중 하나뿐인 경우가 다반사일 것입니다. 그때에는 목표하고 있는 파급 효과가 양적 성과인지 질적 성과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대할 수 있는 파급효과가 실제 발생할 것인지조차 불확실합니다. 발생할지 확실치도 않은 미래 상황 때문에 확실하게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합니다. 결국, 잠재력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윤리적 파급 효과를 기대하는 방식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업의 제약 조건(예산, 기간, 대상 지역 등)을 넘어서는 파급 효과에 주목하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 판단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첫째는 기대할 수 있는 파급 효과를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대할 수 있는 양적 성과나 질적 성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인지 말입니다. 둘째는 불확실성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죠.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첫째 마을과 둘째 마을에서도 기대할 수 있는 파급 효과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면밀히 조사한다면 세 마을 중 누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여야 하는지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를 판단할 때, 사업 내의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 외에도 사업 외 파급 효과에 대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8.
나오면서: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수혜자 선정
당신은 바나나 농업 사업의 수혜자를 보다 정교하게 선정하기 위해 추가 조사와 내부 회의를 실시했다.
내부 회의를 통해, 당신은 동료들과 적격 수혜자들의 국제개발협력 우선순위를 임의적으로 합의했다. 그리고 수혜자별 우선순위에 확률 가중치를 부여했다. 그 결과, 첫째 마을에는 20%, 둘째 마을은 50%, 셋째 마을은 30%의 우선순위 가중치를 부여했다.
추가 조사를 통해, 당신은 사업 기간 내에 지원할 수 있는 수혜자의 수(빈곤을 극복하는 사람 수)를 추산했다. 그에 따르면, 첫째 마을은 1,000가구, 둘째 마을은 300가구, 셋째 마을은 500가구가 사업 내에 성과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당신은 마을별로 사업의 결과로 발생시킬 수 있는 파급 효과와 불확실성을 추가로 조사했다. 첫째 마을은 사업 이후 그들과 아주 유사한 주변 마을 약 200가구에 바나나 농업을 전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그 확률은 50% 정도이다. 둘째 마을은 사업의 수혜를 받지 못한 약 100가구를 대상으로 바나나 농업을 전파할 것으로 기대되나, 그 확률은 20% 정도로 다소 희박하다. 셋째 마을은 사업의 수혜를 받지 못한 약 300가구뿐 아니라 주변의 극빈 마을 약 100가구를 대상으로 파급효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그 확률은 60% 이상이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다. 당신은 누구를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로 선정할 것인가?
이제 우리의 논의를 종합해 보죠. 당신은 국제개발협력에서 수혜자를 반드시 선정해야 합니다. 윤리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 사이에 충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비용 대비 효과성 원칙에 따라 다수의 사람들이 수혜를 받도록 해야 하며, 동시에 국제개발협력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수혜 받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기회의 평등을 고려하여 무작위로 수혜자를 선정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또 다른 실천적인 방법은 국제개발협력 수혜자 선정에 따른 윤리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산출하는 것입니다.
국제개발협력의 윤리 가치 =
적격 수혜자 수(양적 성과) X 적격 수혜자의 우선순위(질적 성과)
이를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 적용을 해 보죠. 당신은 사업 내에서 달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수혜자 수(양적 성과)를 마을별로 산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을별로 적격 수혜자가 국제개발협력을 필요로 하는 우선순위(질적 성과)를 임의적으로 결정했지요. 그 방식은 도덕적 우선순위를 가중치(%)로 부여하는 것이었고요. 이를 위 공식에 적용하여 선택지별 국제개발협력의 윤리적 가치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종합적 판단을 통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9. 종합적인 윤리적 가치가 가장 높은 마을을 수혜자로 선정하는 것이죠. 이 경우, 우리는 첫째 마을을 수혜자로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마을 선택 = 1,000 X 20% = 200
둘째 마을 선택 = 300 X 50% = 150
셋째 마을 선택 = 500 X 30% = 150
그렇지만 저는 이 글에서 잠재적인 파급 효과를 윤리적으로 고려해야 할 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사업의 제약 조건(예산, 기간, 대상 지역 등)을 넘어서 윤리적 판단을 한다면, 우리의 고려 사항은 단순히 사업 내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업 외에 발생할 수 있는 양질의 성과에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파급 효과를 포함하여 국제개발협력의 윤리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개발협력의 확장된 윤리가치 =
(적격 수혜자 수(양적 성과) X 적격 수혜자의 우선순위(질적 성과))
+ (파급 효과 X 불확실성)
이를 다시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파급 효과의 윤리적 가치는 사업의 제약 조건을 넘어서 잠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양적∙질적 성과의 가치입니다. 그러니까 사업 외에 발생할 수 있는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곱한 값에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발생 확률을 (임의적인 수준일지라도) 적용합니다. 이를 통해, 당신은 바나나 농업 사례 국제개발협력의 확장된 윤리적 가치를 산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아래와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셋째마을을 수혜자로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마을 선택 = (1,000 X 20%) + (200 X 20% X 50%) = 220
둘째 마을 선택 = (300 X 50%) + (100 X 50% X 20%) = 160
셋째 마을 선택 = (500 X 30%) + ((300 X 30% + 100 X 50%) X 60%) = 234
결국, 저는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를 선정할 때 어느 한가지 가치에만 몰두하기 보다는 다양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혜자 선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도덕적 가치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비용 대비 효과성, 국제개발협력 필요성, 잠재적 파급 효과 가치들을 다루었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상황에 따라 추가될 수도, 삭제될 수도, 대체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가치들을 고려해야 하는 윤리적 판단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들이 서로 상충하는지, 보완하는지 등에 대한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그 가치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저는 그때 우리가 최선의 윤리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국제개발협력이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 말이죠.
글쓴이: 윤영준
발전대안 피다 전문위원
캔들 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pjoon882@gmail.com
[주석] (1) 국제개발협력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수혜자(Beneficiary)’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수혜자라는 표현에는 누군가의 시혜를 수동적으로 받는 사람들이라는 어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들을 권리보유자(Rights Holder)나 능동적인 참여자(Agent) 등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는 철학의 개념윤리학(Conceptual Ethics)과 관련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에서는 그 문제를 다루지 않고, 수혜자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겠습니다. (2) 저는 이 글에서 ‘윤리’라는 개념을 어떤 행위나 상태가 더 좋거나 올바른 것인지에 관한 것으로 간주하며, 규범 윤리(Normative Ethics)보다 실천 윤리(Practical Ethics 혹은 Applied Ethics)적 관점으로 다루었습니다. 국제개발협력에 적용되는 선택, 행위, 상태 등 중에서 무엇이 더 올바른 것인지 말이죠. 제가 이 글에서 다루는 국제개발협력의 실천 윤리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지닙니다. 첫째, 국제개발협력에는 규범윤리학적 관점인 결과론(Consequentialism), 의무론(Deontology), 덕 윤리(Virtue Ethics) 등을 적용했을 때에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국제개발협력의 윤리적 선택, 행위, 상태에는 올바르거나 그른 양자택일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올바르거나 덜 올바르고, 더 나쁘거나 덜 나쁜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글에서 국제개발협력의 실천 윤리는 다양한 배경과 상황, 가치 등을 고려하여 최선의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간주했습니다. (3) 참조: OECD DAC (2019), “Evaluation Criteria: Adapted Definitions and Principles for Use”, https://www.oecd.org/officialdocuments/publicdisplaydocumentpdf/?cote=DCD/DAC(2019)58/FINAL&docLanguage=En (2022년 8월 15일 접속), OECD. 저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ECD-DAC)의 여섯 가지 개발원조 평가 기준을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에 적용하면 적절성, 효과성, 효율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기준인 일관성, 영향력, 지속가능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가치들은 의존적인 것 같습니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다른 사업과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가치는 수혜자 선정이 적절할 때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부적절하게 선정된 수혜자를 일관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려우니까요. 나아가 사업의 수혜자가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수혜자에 대한 편익이 지속 가능하면 더욱 좋겠지만, 이는 사업이 효과를 냈을 때에만 발생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따라서 저는 여섯 가지 원칙과 기준 중 수혜자 선정의 판단 근거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가치는 적절성, 효과성, 효율성이라고 간주합니다. (4) 참조: 퍼트리샤 일링워스, 토머스 포기, 레이프위나 엮음 (2017), <기빙웰: 잘 받고 잘 주는 나눔의 윤리> (이매진 출판사) 내 3장. “국제 비정부 기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80쪽~81쪽. (5) 참조: 아마티아 센 (2013), 자유로서의 발전, 갈라파고스 출판사 아마티아 센은 국제개발협력을 포함하는 모든 개발 사업이 실질적 기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마티아 센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 방식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습니다. 그의 주장이 함축하는 바를 그저 수혜자 선정방식에 대입해 볼 수 있을 뿐이죠.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저는 아마티아 센이 첫째 마을보다 둘째 마을이 수혜자로 선택하는 것을 더 윤리적이라고 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첫째 마을은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나 잠재 역량(Capabilities)이 완전히 박탈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마을이 모두 실질적 기회가 박탈되어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둘째 마을이 더 열악하다고 하더라도 아마티아 센은 비용대비 효과성을 고려하여 첫째 마을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6) 참조: Paul Collier and David Dollar (2002), “Aid Allocation and Poverty Reduction”, European Economic Review 46, 1,497쪽. (7) 참조: Gertler, Martinez, Premand, Rawlings and Vermeersch (2016), Impact Evaluation in Practice, 2nd Edition, World Bank, http://www.worldbank.org/ieinpractice, (2022년 8월 15일 접속), 21쪽. 이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대한 효과성을 평가(Impact Evaluation)하는 방법 중 황금률이라고 알려진 무작위 통제 방식(Randomised Control Trial)을 수혜자 선정 원칙으로 적용하자는 제안입니다. 이런 생각은 일견 엉뚱해 보입니다. 빈곤이 만연한 엄중한 현실에서 수혜자를 무작위로 뽑겠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의외로 이러한 방식은 수많은 국제개발협력 평가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의외로 그들의 논증은 꽤 강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작위 선정 방식에 대해 보다 진지한 윤리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 제 주변에 있는 국제개발협력 동료들은 저의 이러한 생각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ECD-DAC)의 여섯 가지 개발원조 평가 기준 중 일관성, 영향력, 지속가능성과 연관된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이 개발원조 평가기준이 정의하는 일관성, 영향력, 지속가능성과 엄밀히 일치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에서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자 합니다. (9) 제가 제시하는 공식이 국제개발협력의 윤리적 가치를 종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여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게 양적 방식이든 질적 방식이든 말이죠. 이는 철학의 합리적 선택 이론에 관련한 것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윤리적 가치를 종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무엇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달리 말해, 제가 이 글에서 제시한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단지 이 글에서 윤리적 가치를 종합할 수 있음을 한 가지 방법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
당신의 국제개발협력 수혜자는 당신의 윤리적 가치입니다
들어가며: 수혜자 선정과 윤리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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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은 사람을 위한 활동입니다. 개발도상국이 올바르게 발전하도록 지원하여 사람들이 빈곤을 극복하고 주체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제개발협력의 목적이니까요. 그런데 통상 국제개발협력이 개발도상국의 모든 사람을 지원하기는 어렵습니다. 설령 모든 사람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올바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개발협력은 수혜자가 누구여야 하는지 선택해야 합니다1. 이는 윤리적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국제개발협력에서 누가 수혜를 받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누가 우선적으로 빈곤을 극복해야 하는지, 나아가 누가 우선적으로 주체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에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제개발협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반드시 포함합니다2.
다시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로 돌아와 보죠.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세 마을은 모두 빈곤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국제개발협력의 수혜를 받기 일정 수준 적합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세 마을 중 하나만을 수혜 대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윤리적 우선순위를 나타냅니다. 첫째 마을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가장 많은 사람이 빈곤을 극복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우선시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정된 사업 예산과 기간 안에서 가장 많은 수의 사람이 빈곤을 탈출할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역량 있는 사람들(바나나 농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할 것입니다. 둘째 마을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합니다. 당신에게 있어, 더 빈곤한 소수의 사람을 지원하는 것은 덜 빈곤한 다수의 사람을 지원하는 것보다 중요한 가치입니다. 셋째 마을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미래지향적인 파급 효과를 윤리적 우선순위로 고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혹은 사업 기간 내) 빈곤을 극복하는 사람 수를 최대화하거나 가장 절박한 사람을 시급하게 지원하는 일은 당신의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업 비수혜자의 빈곤 극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개발도상국의 빈곤 극복 성과가 지속되거나 확산될 것이니까요.
이제부터 저는 당신의 세 가지 선택지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이유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를 선택하는 당신의 윤리적 판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물론 실제 국제개발협력의 세계는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사실 수혜 후보자를 가려내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입니다. 후보자를 가려냈더라도, 그들의 특성은 더 다양하고 복잡하겠죠. 여러 특성들이 서로 중첩되거나 흩어져 있을 수도 있고요. 나아가 수혜자 선정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전략적, 기술적, 행정적 사항도 아주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실제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고려되는 윤리적 선택지를 단순화하면 주로 세 가지로 압축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세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윤리적 판단 근거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가치 1. 양적 성과와 비용 대비 효과성
국제사회는 바람직한 국제개발협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규정해 놓았습니다. 바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개발원조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의 개발원조 평가 원칙과 기준(Principles and Criteria for Evaluation of Development Assistance)으로 말이죠3. 이는 바람직한 국제개발협력이 갖추어야 하는 규범적 원칙과 기준입니다. 이에 따르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적절(Relevance)해야 하고, 일관적(Coherence)이어야 하며, 효과적(Effectiveness)이어야 하고, 효율적(Efficiency)이어야 하며, 영향력(Impact)을 발생시켜야 하고, 지속가능(Sustainability)해야 합니다. 국제사회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이러한 규범적 원칙과 기준을 지키는지 상시 평가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칙과 기준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여섯 가지의 기준 중 수혜자 선정에 특히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 수혜자는 국제개발협력이 필요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적절성). 둘째,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목표하고 있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을 수혜자로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효과성). 사업이 목표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국제개발협력의 의미가 크게 퇴색할 것이니까요. 셋째,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목표한 성과를 경제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혜자를 선택해야 합니다(효율성). 그래야만 국제개발협력이 한정된 예산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하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수혜자 선정 기준은 ‘비용 대비 효과성(Cost-Effectiveness)’입니다.
문제는 비용 대비 효과성을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하더라도, ‘국제개발협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여야 하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해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해설은 아마도 철학자 토마스 포기(Thomas Pogge)의 주장일 것입니다. 토마스 포기는 인간의 일반적인 욕구와 필요와 관련된 최소한의 생활 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합니다4. 그리고 그는 인간의 최소 생활 수준을 정의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세계은행은 절대빈곤선(하루 미화 2.15불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정의해 놓은 것입니다. 유엔(UN, United Nations)의 지속가능 개발목표(SDG,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도 최소한의 생활 표준 경계를 지표를 통해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고요. 그 외 비정부기구, 민간재단, 정부기구, 국제기구 등도 경제, 사회, 교육, 보건 등의 영역에서 유사한 경계를 지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제개발협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령 빈곤선 이하의 경제 수준을 지닌 성인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 등 말이죠.
정리하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바는 국제개발협력은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용 대비 효과성에 따라 수혜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선정해야 하는 수혜자는 명확합니다. 바로 첫째 마을이죠. 이들은 빈곤하여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은 다른 마을과 중대한 차이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나나 농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비용 대비 효과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입니다. 즉, 첫째 마을의 개개인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를 가장 잘 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첫째 마을을 선택한다면 한정된 예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르면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가장 윤리적인 판단은 첫째 마을을 수혜자로 선정하는 것입니다.
가치 2. 질적 성과와 국제개발협력의 필요성
비용 대비 효과성에 따른 수혜자를 선정하는 방식은 비교적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는 판단입니다. 이는 무언가 이상합니다. ‘국제개발협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비교적 더 나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니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 동일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죠. 그런데 비용 대비 효과성에 따라 수혜자를 선정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일수록 국제개발협력의 도덕적 우선순위가 떨어진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은 사실상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수혜자가 되더라도 가장 마지막에나 가능하겠죠. 이는 대단히 불공정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공정한 방법은 절박한 사람일수록 국제개발협력의 우선순위가 높다고 판단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이러한 도덕적 직관은 개발철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에 의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는 개발의 핵심이 사람들의 실질적 기회(Substantial Opportunity)에 집중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5. 사람들이 주체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럴 만한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빈곤에 허덕이는 이유도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기회(기초 교육, 기초 보건, 경제적 참여 기회 등)조차 박탈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아마티아 센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국제개발협력의 우선순위 수혜자는 실질적 기회가 박탈된 사람일 것입니다.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국제개발협력이 시급한 사람들은 가장 빈곤한 둘째 마을이지 더 잘할 수 있는 첫째 마을이 아닙니다. 국제개발협력이 없더라도 첫째 마을은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와 능력을 일정 수준 지니고 있어요. 그러나 둘째 마을은 그럴 기회가 완전히 박탈되어 있지요. 그래서 국제개발협력이 없다면 둘째 마을은 빈곤이 더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첫째 마을은 상대적으로 훨씬 낫죠. 그렇다면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업의 수혜자는 가장 절박하고 도움이 시급한 둘째 마을로 선택하는 것이 더 윤리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적 판단은 곧장 강력한 반대에 직면합니다. 이러한 선택은 지극히 이상적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비용 대비 효과성이 얼추 비슷한 상황에서는 더 열악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예상되는 수혜자 수가 비슷한 상황에서는 더 어려운 사람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종종 냉혹합니다. 더 취약한 사람들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수혜자로 선택할수록 한정적인 예산 안에서 지원할 수 있는 사람 수는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하루 미화 2.15불 이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려 7억 명입니다. 열악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아주 기초적인 삶의 질조차 누리지 못하는 절박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비용 대비 효과성을 고려하면 3천 명을 지원할 수 있는데도 이상적인 공정성에 집착하여 1천 명만 지원한다면, 당신은 잘못도 없이 궁핍한 2천 명을 지긋지긋한 빈곤에 방치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개발학자 폴 콜리어(Paul Collier)는 국제개발협력의 수행 방식이 비용대비 효과성을 중심으로 바뀌었을 때, 지금보다 두 배 가까운 수의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할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6. 따라서 국제개발협력의 우선순위 필요성에 따라 수혜자를 선택하는 방식은 양적 성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다시 비용 대비 효과성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합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용 대비 효과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을 때, 당신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실제로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방치하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지원이 더 필요한 사람들을 수혜자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빈곤에서 당장 구할 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외면하는 꼴이지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번외. 기회의 평등과 무작위 선정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윤리적 문제는 양적 성과(최대 다수의 빈민을 지원)와 질적 성과(가장 열악한 빈민을 지원)에 대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비용 대비 효과성과 국제개발협력 필요성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대립하는 두 가지 가치를 어느정도 중재할 수는 없을까요? 비용 대비 효과성과 국제개발협력 필요성 가치들을 완벽하게 실현하지는 못하더라도 둘 다 고려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방식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를 받기에 적격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동등한 사업 참여 기회를 주자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수혜자를 ‘무작위로 선정’하자는 것입니다(Randomised Assignment to Eligible Beneficiaries)7. 예를 들어, 사업 대상지에 절대빈곤선 이하에 놓인 사람들이 1천 명이 있고, 한정된 사업 예산에서 1백 명만을 수혜자로 선정할 수 있다면, 1천 명을 대상으로 1백 명을 뽑는 제비뽑기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이랬을 때, 절대빈곤선 이하에 놓인 1천명은 모두 확률적으로 동일한 사업 참여 기회(확률1/10)를 보장받습니다. 따라서 사업의 수혜자는 형식적으로 공정하게 선발될 수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방식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동등한 사업 참여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나아가 확률적으로 무작위로 선발된 수혜자들은 절대빈곤에 놓인 사람들의 다양한 특성을 통계적으로 대표할 것입니다. 즉, 제비뽑기로 선발된 1백 명은 전체 1천 명이 지닌 대표적인 속성(성별, 학력, 건강, 경제 활동, 취약성, 빈곤 정도 등)을 평균적으로 반영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절대빈곤에 놓인 사람들의 평균적인 속성을 지닌 수혜자를 대상으로 추진하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적정한 비용 대비 효과성을 산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것이 절대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적정한 숫자를 어느 정도 보장해 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국제개발협력이 수혜자를 무작위로 선정했을 때, 적정 수준의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만족하시나요? 수혜자를 무작위로 선정하는 방식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를 가장 윤리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인가요? 무언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인생을 제비뽑기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수혜자로 뽑히지 않았을 때, 당신은 그들에게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지 기회의 평등은 보장되었으니 체념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당신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최대 다수의 사람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데도 통계적 대표성과 확률을 들먹이며 그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당신은 이러한 방식을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는 있지만 가장 윤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치 3. 잠재적 파급 효과와 불확실성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죠. 우리가 국제개발협력의 양적이고 질적인 성과를 고려할 때에는 사업의 제약 조건(예산, 기간, 대상 지역 등)을 기준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업 내에 빈곤을 극복하는 사람의 수를 최대화할 것인지, 아니면 그 수는 적더라도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용 대비 효과성 원칙과 공정성 원칙을 그렇게 엄밀하게 적용해야 하나요? 이 원칙을 조금 유연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선택지를 좀더 확장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확장된 선택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 혹은 비용 대비 효과성과 국제개발협력 필요성 원칙들을 중재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당신은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셋째 마을이 지닌 미래지향적 파급효과에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업 내에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이상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업의 제약 조건(예산, 기간, 대상 지역 등)을 넘어서 넓은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을 지원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양적 성과는 첫째 마을보다 좋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의 수혜자들이 매우 빈곤한 이웃 마을들을 향후 지원한다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질적 성과도 둘째 마을을 지원했을 때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업의 제약 조건에 집착하지 말고 과감하게 셋째 마을을 수혜자로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미래지향적인 파급효과를 기대하는 방식은 다소 이상적이기는 합니다. 실제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은 아주 복잡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보여지는 셋째 마을은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모두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사람들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겠죠. 설령 그런 사람들을 어렵게 찾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파급 효과가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 중 하나뿐인 경우가 다반사일 것입니다. 그때에는 목표하고 있는 파급 효과가 양적 성과인지 질적 성과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대할 수 있는 파급효과가 실제 발생할 것인지조차 불확실합니다. 발생할지 확실치도 않은 미래 상황 때문에 확실하게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합니다. 결국, 잠재력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윤리적 파급 효과를 기대하는 방식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업의 제약 조건(예산, 기간, 대상 지역 등)을 넘어서는 파급 효과에 주목하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 판단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첫째는 기대할 수 있는 파급 효과를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대할 수 있는 양적 성과나 질적 성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인지 말입니다. 둘째는 불확실성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죠.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첫째 마을과 둘째 마을에서도 기대할 수 있는 파급 효과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면밀히 조사한다면 세 마을 중 누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여야 하는지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를 판단할 때, 사업 내의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 외에도 사업 외 파급 효과에 대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8.
나오면서: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수혜자 선정
이제 우리의 논의를 종합해 보죠. 당신은 국제개발협력에서 수혜자를 반드시 선정해야 합니다. 윤리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 사이에 충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비용 대비 효과성 원칙에 따라 다수의 사람들이 수혜를 받도록 해야 하며, 동시에 국제개발협력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수혜 받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기회의 평등을 고려하여 무작위로 수혜자를 선정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또 다른 실천적인 방법은 국제개발협력 수혜자 선정에 따른 윤리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산출하는 것입니다.
국제개발협력의 윤리 가치 =
적격 수혜자 수(양적 성과) X 적격 수혜자의 우선순위(질적 성과)
이를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 적용을 해 보죠. 당신은 사업 내에서 달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수혜자 수(양적 성과)를 마을별로 산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을별로 적격 수혜자가 국제개발협력을 필요로 하는 우선순위(질적 성과)를 임의적으로 결정했지요. 그 방식은 도덕적 우선순위를 가중치(%)로 부여하는 것이었고요. 이를 위 공식에 적용하여 선택지별 국제개발협력의 윤리적 가치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종합적 판단을 통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9. 종합적인 윤리적 가치가 가장 높은 마을을 수혜자로 선정하는 것이죠. 이 경우, 우리는 첫째 마을을 수혜자로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마을 선택 = 1,000 X 20% = 200
둘째 마을 선택 = 300 X 50% = 150
셋째 마을 선택 = 500 X 30% = 150
그렇지만 저는 이 글에서 잠재적인 파급 효과를 윤리적으로 고려해야 할 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사업의 제약 조건(예산, 기간, 대상 지역 등)을 넘어서 윤리적 판단을 한다면, 우리의 고려 사항은 단순히 사업 내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업 외에 발생할 수 있는 양질의 성과에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파급 효과를 포함하여 국제개발협력의 윤리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개발협력의 확장된 윤리가치 =
(적격 수혜자 수(양적 성과) X 적격 수혜자의 우선순위(질적 성과))
+ (파급 효과 X 불확실성)
이를 다시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파급 효과의 윤리적 가치는 사업의 제약 조건을 넘어서 잠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양적∙질적 성과의 가치입니다. 그러니까 사업 외에 발생할 수 있는 양적 성과와 질적 성과를 곱한 값에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발생 확률을 (임의적인 수준일지라도) 적용합니다. 이를 통해, 당신은 바나나 농업 사례 국제개발협력의 확장된 윤리적 가치를 산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아래와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셋째마을을 수혜자로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마을 선택 = (1,000 X 20%) + (200 X 20% X 50%) = 220
둘째 마을 선택 = (300 X 50%) + (100 X 50% X 20%) = 160
셋째 마을 선택 = (500 X 30%) + ((300 X 30% + 100 X 50%) X 60%) = 234
결국, 저는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를 선정할 때 어느 한가지 가치에만 몰두하기 보다는 다양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혜자 선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도덕적 가치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비용 대비 효과성, 국제개발협력 필요성, 잠재적 파급 효과 가치들을 다루었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상황에 따라 추가될 수도, 삭제될 수도, 대체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가치들을 고려해야 하는 윤리적 판단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들이 서로 상충하는지, 보완하는지 등에 대한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그 가치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저는 그때 우리가 최선의 윤리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국제개발협력이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지 말이죠.
글쓴이: 윤영준
발전대안 피다 전문위원
캔들 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pjoon882@gmail.com
[주석]
(1) 국제개발협력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수혜자(Beneficiary)’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수혜자라는 표현에는 누군가의 시혜를 수동적으로 받는 사람들이라는 어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들을 권리보유자(Rights Holder)나 능동적인 참여자(Agent) 등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는 철학의 개념윤리학(Conceptual Ethics)과 관련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에서는 그 문제를 다루지 않고, 수혜자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겠습니다.
(2) 저는 이 글에서 ‘윤리’라는 개념을 어떤 행위나 상태가 더 좋거나 올바른 것인지에 관한 것으로 간주하며, 규범 윤리(Normative Ethics)보다 실천 윤리(Practical Ethics 혹은 Applied Ethics)적 관점으로 다루었습니다. 국제개발협력에 적용되는 선택, 행위, 상태 등 중에서 무엇이 더 올바른 것인지 말이죠. 제가 이 글에서 다루는 국제개발협력의 실천 윤리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지닙니다. 첫째, 국제개발협력에는 규범윤리학적 관점인 결과론(Consequentialism), 의무론(Deontology), 덕 윤리(Virtue Ethics) 등을 적용했을 때에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국제개발협력의 윤리적 선택, 행위, 상태에는 올바르거나 그른 양자택일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올바르거나 덜 올바르고, 더 나쁘거나 덜 나쁜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글에서 국제개발협력의 실천 윤리는 다양한 배경과 상황, 가치 등을 고려하여 최선의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것이라고 간주했습니다.
(3) 참조: OECD DAC (2019), “Evaluation Criteria: Adapted Definitions and Principles for Use”, https://www.oecd.org/officialdocuments/publicdisplaydocumentpdf/?cote=DCD/DAC(2019)58/FINAL&docLanguage=En (2022년 8월 15일 접속), OECD.
저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ECD-DAC)의 여섯 가지 개발원조 평가 기준을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에 적용하면 적절성, 효과성, 효율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기준인 일관성, 영향력, 지속가능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가치들은 의존적인 것 같습니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다른 사업과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가치는 수혜자 선정이 적절할 때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부적절하게 선정된 수혜자를 일관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려우니까요. 나아가 사업의 수혜자가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수혜자에 대한 편익이 지속 가능하면 더욱 좋겠지만, 이는 사업이 효과를 냈을 때에만 발생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따라서 저는 여섯 가지 원칙과 기준 중 수혜자 선정의 판단 근거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가치는 적절성, 효과성, 효율성이라고 간주합니다.
(4) 참조: 퍼트리샤 일링워스, 토머스 포기, 레이프위나 엮음 (2017), <기빙웰: 잘 받고 잘 주는 나눔의 윤리> (이매진 출판사) 내 3장. “국제 비정부 기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80쪽~81쪽.
(5) 참조: 아마티아 센 (2013), 자유로서의 발전, 갈라파고스 출판사
아마티아 센은 국제개발협력을 포함하는 모든 개발 사업이 실질적 기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마티아 센은 국제개발협력의 수혜자 선정 방식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습니다. 그의 주장이 함축하는 바를 그저 수혜자 선정방식에 대입해 볼 수 있을 뿐이죠. 당신의 바나나 농업 사례에서 저는 아마티아 센이 첫째 마을보다 둘째 마을이 수혜자로 선택하는 것을 더 윤리적이라고 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첫째 마을은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나 잠재 역량(Capabilities)이 완전히 박탈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마을이 모두 실질적 기회가 박탈되어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둘째 마을이 더 열악하다고 하더라도 아마티아 센은 비용대비 효과성을 고려하여 첫째 마을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6) 참조: Paul Collier and David Dollar (2002), “Aid Allocation and Poverty Reduction”, European Economic Review 46, 1,497쪽.
(7) 참조: Gertler, Martinez, Premand, Rawlings and Vermeersch (2016), Impact Evaluation in Practice, 2nd Edition, World Bank, http://www.worldbank.org/ieinpractice, (2022년 8월 15일 접속), 21쪽.
이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대한 효과성을 평가(Impact Evaluation)하는 방법 중 황금률이라고 알려진 무작위 통제 방식(Randomised Control Trial)을 수혜자 선정 원칙으로 적용하자는 제안입니다. 이런 생각은 일견 엉뚱해 보입니다. 빈곤이 만연한 엄중한 현실에서 수혜자를 무작위로 뽑겠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의외로 이러한 방식은 수많은 국제개발협력 평가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의외로 그들의 논증은 꽤 강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무작위 선정 방식에 대해 보다 진지한 윤리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 제 주변에 있는 국제개발협력 동료들은 저의 이러한 생각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ECD-DAC)의 여섯 가지 개발원조 평가 기준 중 일관성, 영향력, 지속가능성과 연관된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이 개발원조 평가기준이 정의하는 일관성, 영향력, 지속가능성과 엄밀히 일치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에서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자 합니다.
(9) 제가 제시하는 공식이 국제개발협력의 윤리적 가치를 종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여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게 양적 방식이든 질적 방식이든 말이죠. 이는 철학의 합리적 선택 이론에 관련한 것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윤리적 가치를 종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무엇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달리 말해, 제가 이 글에서 제시한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단지 이 글에서 윤리적 가치를 종합할 수 있음을 한 가지 방법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