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다뷰[4호] 지금의 한국 ODA, 죽고자 해야 살아난다

201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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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ODA, 죽고자 해야 살아난다


누구를 위한 ODA인가? 최순실이 한국 사회에 뜨거운 질문을 던졌다. 최순실의 ODA를 통한 사적이익 추구가 지난해 5월 '코리아에이드'에 이어 이번 미얀마 K-타운 스캔들로 그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서 선보였던 보건과 음식, 문화를 결합한 이벤트 ODA인 '코리아에이드'는 결국 최순실의 실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재단이 개입했다. 또, 최순실은 미얀마 K타운이란 이름의 타당성 없는 컨벤션센터 건설사업을 ODA로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사적이익을 추구한 것이 드러났다. 이 사건들로 그 동안 ODA에 대해 잘 몰랐던 시민들에게 ODA는 개도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한 지원이 아닌 눈먼 돈이자 비리의 수단이며 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순실의 사적이익 추구형 ODA 외에도 연이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던 ODA의 문제가 드러났다. 지난 2월 22일 한국 ODA의 실태를 다룬 KBS '추적 60분'은 미얀마에서 추진된 새마을운동 ODA 사업 현장을 소개했다. 소득증대 대신 빛을 안겨준 무너진 양계장, 돼지 한 마리가 외로이 서 있는 양돈축사, 그물이 찢어져 제 기능을 못하는 양어장,현지실정에 맞지 않아 무용지물이 된 4,700만 원짜리 콤바인이 방송됐다. 사업을 시행한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엉망이 되어버린 사업에 대해 "사업이 끝나고 적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비단 이런 현상이 미얀마에만 있을까? 발전대안 피다가 지난해 방문했던 르완다에서도 거의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 ODA가 현지 주민들의 삶을 더욱 괴롭게 만들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 ODA는 이대로 비리와 무능의 상징으로 남을 것인가? 다른 국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대응을 했을까?  
 
1994년 영국 원조역사에 길이 남을 큰 스캔들이 발생했다. 영국이 말레이시아에 유상원조(soft loan)로 페르가우(Pergau) 댐 건설을 지원했고, 그 대가로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무기를 구매했다. 원조 제공과 무기수출의 교환이 이루어진 이른바 '페르가우 사건'이다. 1986년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 당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일본 ODA를 집행하는 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1987년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에서는 일본 ODA 사업으로 열대우림이 벌채되어 생활기반이 파괴된 주민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항의하는 사건이 터졌다. 일본 의회가 파견한 진상 조사단은 환경문제나 원주민에 대한 전문가가 없는 사업 사전조사팀이 단 2일간 현장에 머물렀고, 그마저도 현지정부의 의견만 듣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들의 사전조사보고서에는 밀림 내 도로개설이 현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서술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영국의 페르가우 사건과 일본의 마르코스 리베이트 및 사라왁 사건으로 양국의 ODA는 쇠퇴했을까? 도리어 양국 사회가 ODA에 대해 성찰하고 조금이나마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페르가우 사건은 그 당시 영국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원조에 상업적이고 전략적인 고려를 적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노동당은 1997년 정권을 잡은 뒤 해외원조에 '도덕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영국 ODA의 본격적인 발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마르코스 리베이트 사건은 일본 내 ODA 정책 개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제공했다. 사라왁 사건으로는 일본 사회 내에서 ODA가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개발 사업에 대한 사전조사는 제대로 실행되었는지, 정부는 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지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스캔들이 ODA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개혁의 실마리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최순실의 사익추구를 위해 실행된 이벤트성 ODA인 '코리아에이드'와 ODA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미얀마 K타운' 그리고 현지 주민들에게 부담만 안겨주고 방치된 미얀마 새마을운동 ODA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다 잘하고 있는데 일부 문제가 있는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인가? 문제 있는 부분만 고치면 해결되는 것인가?
 
2010년 OECD DAC 가입을 위해 한국 개발협력의 철학과 이념도 정립하지 못하고, 분절화된 시스템을 건드리지도 못한 가운데 무리하게 양만 키웠던 결과가 이제 나오고 있다. 부처별로 남발되는 사업들, 부실한 사전타당성 조사들, 정권의 이해에 따라 피었다 사라지는 정책들, ODA에 대해 문외한인 채로 왔다가 불과 2년도 못 채우고 타 부서로 가버리는 당국자들, 근본적 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주요 부처 고위직 관료들, ODA에 관심이 없는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 이것이 권력의 사적 이익 추구에 취약하고, 현지에서 주민들에게 외면받는 한국 ODA를 만든 범인들이다. 문제가 있을 때만 반짝이는 언론들도 잘한 것은 없다.
 
여러 문제가 드러난 현재의 한국 ODA는 죽어야 산다. 이참에 한국 ODA의 고질적 문제를 모두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그리고 근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이 왜 ODA를 해야 하는지 그 철학과 이념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토론해야 한다. 42개로 나뉘어 갈기갈기 찢긴 원조 집행체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합할 것인지 의견을 모아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사라지는 녹색 ODA, 새마을운동 ODA를 어떻게 할 것이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한국 ODA가 가장 가난한 국가와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해 쓰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선 이 같은 한국 ODA의 문제들에 대해 유력 대선 주자들에게 대책을 묻고 답변을 받아야 한다. 정치권이 책임을 가지고 개입하도록 해야 한다. 관료들로는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오랜 기간의 교훈이다. ODA는 개도국의 사회, 경제적 발전을 지원한다는 '착한' 명분을 가진 정책이다. 동시에 ODA는 국가의 대외정책의 하부수단 중 하나이다. 기업과 공공기관은 냉정하게 이익과 실적을 보고 ODA 사업에 참여한다. ODA를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선한 도구로만 생각하는 순진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언제라도 사익추구의 수단이 될 수 있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국가정책 실현의 은밀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돕는다는 명분으로 ODA가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칼이 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나아가 시민들은 정부가 ODA의 기획과 집행 그리고 평가 결과를 더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촉구해야 한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는 달콤한 식언에 자아 도취하지 말고, 내 세금이 남의 인생에 불행을 주지는 않는지, 권력층의 사익 추구에 사용되지는 않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발전대안 피다는 지난 11년간 한국 ODA를 감시해 온 눈을 한층 더 부릅뜰 것이다. 시민들과 함께 한국 ODA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개선방안을 요구할 것이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2-28

작성: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