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곁지기 사진가 하동훈의 시선] 16. 물을 대는 마음

20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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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는 아직 달콤한 잠에 빠져 있고, 그래서인지 유달리 새소리가 크게 들리던 일요일 아침.

문득, 상쾌함이 아직 남아있는 아침 바람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나를 확 깨워 일으켰다. 누구라도 마주칠까 고양이 세수만 하고 후다닥 현관을 나서는데, 살갗에 닿는 청량한 바람이 지난 일주일의 피곤함까지 시원하게 만져 주는 듯하다.


살짝 들뜬 마음으로 단지를 한 바퀴 도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공동 텃밭에 물을 주고 계신다.

이제 막 여섯 시가 되었는데, 벌써 텃밭의 반은 촉촉해져 있다.


‘안녕하세요’ 말끝을 살짝 올려 인사를 드렸다. 물을 주시면서도 얼굴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맞아주시는 아주머니. 어제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드렸던 것이 떠올라 그 인사가 더욱 반갑다.


아직 햇살이 그리 뜨겁지는 않아도, 잎에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해서 주어야 한다며 말문을 여시던 아주머니. 그러고 보니 호스 끝에 차분하고도 곱게 손을 대어 물이 졸졸졸 흐르게 하고 계시다.

나는 거기에다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물소리를 줄이려고 그러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더해 본다.


“마음 같아서는 옆에 놓아둔 주민 화분들에도 물을 한번 싸악 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예전에 우리 살 땐, 서로 말은 안 해도 옆집 텃밭에 같이 물을 대어 주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마음을 내기도 조심스럽더라고요.

나는 좋은 마음으로 한다지만,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아쉽기도 하지만, 다른 이의 생활 방식과 마음도 존중해야겠지요.”


내년이면 은퇴를 앞두고 계시다는 아주머니는 여태 참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고, 그럴 수 있었던 게 참 감사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요즘 젊은 부부들 사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르게 잘 살아가는 것 같아서 다시 보고 배우고 계시다고 덧붙이신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작은 수고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 무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들은 그렇게 바람처럼 일어서 흔적도 없이 흘러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의도라도 ‘나’의 ‘순수한’ 마음을 바로 따르지 않고, 받아들일 이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마음이 참 포근하고도 촉촉하다.

 


텃밭 한 쪽 가장자리에 이르러서야 허리를 펴고 주욱 둘러보신다.

“이제 다 되었네요”


옆에서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나는 얼른 수돗가로 뛰어가서 호스를 돌돌 말았다.


“고마워요, 실은 지난달에 수술 받았던 어깨가 살짝 뻐근해지던 참이었어요…”



물인 듯 바람인 듯 시원하게 닿아 오는 그 진한 마음 씀이 아직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사진 & 글: 하동훈 

‘사진하는 공감아이’ 사진치유자, 곁지가 사진가

donghoon.ha.michae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