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할 때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들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 5회차 강의 리뷰
지난 8월 10일 발전 대안 세미나 시리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의 마지막 회차가 진행되었다. 마지막 강의에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활동해 온 발전대안 피다 양동화 운영위원을 초대했다. “답은 현장에 있다? 현장 사례로 돌아보는 개발협력”이라는 제목으로, 현장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많은 활동가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답을 함께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양동화 운영위원은 2010년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서 발간한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원칙과 절차 - 해외사업 실무자를 위한 가이드>를 소개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OXFAM, UNDP 등의 국제기관들에서 정리한 개발협력 사업의 규범원칙 5가지와 수행원칙을 7가지를 제시한다. 양동화 운영위원은 이 원칙들이 어떻게 현장에 적용되는지 강의 전반에 걸쳐 설명해주었다.
*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원칙과 절차 - 해외사업 실무자를 위한 가이드> 바로가기 (링크)
5가지 규범원칙
- 인간 중심 (People Centered)
- 자력화 (Empowerment)
- 참여 (Participation)
-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 비차별 (Non-discrimination) / 비폭력 (Non-violence)
7가지 수행원칙
- 책무성 (Accountabiility)
- 효과성 (Effectiveness)
- 상호관계(Interdependece)에 대한 고려
- 협력 (Partnership)
- 총체적/다층적 (Holistic/Mutli-level)
- 장기적/역동적(Long-term/Dynamic)
- 개별적 (Individual)
양동화 운영위원은 이어 사례로 돌아보는 개발협력을 주제로 동티모르에서의 현장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6년 동티모르의 지역갈등 이후 평화 운동을 위해 그곳으로 파견된 양동화 운영위원은 커피를 통한 마을의 소득 증대 경험을 바탕으로 피스빌딩을 이루기 위한 <피스커피> 사업을 운영했다.
피스커피 사업은 2개의 마을에서 11명의 청년 대표와 4명의 마을 리더들이 커피 가공에 참여했던 카브라키 가공장과 6개 마을에서 16명의 청년 대표와 11명의 마을 리더들이 참여했던 로뚜뚜 가공장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커피 공동 가공장을 운영한 것은 지역의 리더십을 기르고 민주적 의사소통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혈통으로 리더십과 지도자가 정해져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공동 가공장에서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스로 리더십을 세우고 혈통이 아닌 리더의 역량이 리더십의 바탕이 되는 경험을 이뤄 보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자립 기반을 위한 소득 증대 뿐만 아니라 평화적 갈등 해결의 피스빌딩의 기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양동화 운영위원은 설명했다.
사업을 실행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사업을 돌아보면서 앞서 설명한 규범원칙 5가지와 비교해 보면, 공동가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주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며, 리더십 세우기는 인간 중심의 규범을, 민주적 의사소통은 자력화를, 자립 기반 마련은 지속가능성을, 그리고 최종 목적인 평화적 갈등 해결은 비폭력/비차별에 해당함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 세우는 마을 공동체
피스커피 활동의 결과는 마을 공동체를 회복시킨 것이었다. 마을에서는 나이와 신분으로 의사결정권의 크기가 다르게 주어졌다. 동티모르는 식민지와 지역 갈등(내전)을 겪고 난 이후 사람들에게는 분쟁의 트라우마가 있었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매우 폭력적이었다. 예를 들어 사과를 하더라도 마음 속의 상처와 분노는 치유되지 못한 채로 다른 사건이 일어나면 과거의 상처가 다시 반추되는 상황이 생겨나면서, 갈등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폭력으로 번지는 악순환의 구조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티모르 언어로는 “뚜르하무뚝”, 즉 “함께 앉자”는 말로써 이야기를 나눌 때 앉는 구조부터 바꾸었다. 위대한 지도자를 향해 한 방향으로 앉는 것이 아니라, 누가 리더인지 표가 나지 않도록 원탁 형식으로 둘러앉기 시작했다.
다른 예로, 7개 마을과 학교 짓기 사업을 했는데 학교의 위치를 선정하는 데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반대가 있었다. KOICA의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협의와 동의가 있지 않으면 학교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기도 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을 모두 설득한 끝에 학교는 지어졌지만, 양동화 위원은 이 과정에서 당시 직접 겪었던 현장의 고민을 소개했다. 주민들의 협의와 합의가 없는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는 프로젝트의 문서적인 성과보다 마을의 발전과 평화를 더 중요하게 여긴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를 보고받은 도너들은 단체의 현지조사가 부족함과 능력을 비판할 것 역시 분명하다. 하지만 현지조사와 별개로 현장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현지의 유동성을 도너기관에서 얼마나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청년 중심의 리더십을 세우는 과정에서 기존의 혈통 중심의 리더십과 충돌이 있기도 했다. 기존의 저울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노동력이 투입되고 수입을 해야 하는 포대를 지나치게 상하게 했기 때문에, 저울을 새로 들여왔다. 특별할 것 없는 단순한 저울이었지만 새로운 저울이 신뢰성이 있는지의 여부로 갈등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의사 결정 시 지역의 리더를 배제하거나 새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험했다.
한편, 가공장 운영에 투입되는 60명의 인력은 모두 남자였는데, 이는 고강도의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사업의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마을 주민들에게는 개발과 발전 주체의 개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노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여성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았다. 또한 학교 개보수에도 학교의 주인이자 주체가 학생이므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본인의 노력을 통해 학교가 나아지는 모습을 직접 관찰했다.
마을이 살아난다
당시 양동화 운영위원이 소속되어 활동하던 조직은 청년 중심의 활동을 하는 단체이기에 청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전기도, 인프라도 없는 마을이었기에 많은 청년들이 도시로 떠났던 상황이었다. 도시로 떠난 청년들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부족했기 때문에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 살고 있었다. 청년들을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했고, 공동가공장이라는 일자리로 청년들이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온 청년들과 <묘목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역량을 성장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즉 묘목장이 오래가지 못하더라도 도전을 경험해보고자 했다. 청년들은 가공장과는 별개로 ‘하우바(Hau-ba)’이라는 그들만의 소그룹을 만들었다. 이 청년 소그룹은 확실한 비즈니스의 정체성을 띄었다. 양동화 운영위원은 이 점을 몹시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당시의 본인과 거래를 하려고 시도한 소그룹과 신뢰가 깨졌거나 그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 아닌, 그들이 훌륭한 비즈니스 수단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공동체가 회복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무엇보다 청년들에게는 주체성과 마을에 대한 소속감이 생겨났다. 모든 사람이 가공장에서 일자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그들의 일자리를 특별하게 받는 수혜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그 수혜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독거 노인의 집을 수리해 주거나 일손이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었다.
한편 양동화 위원은 자신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던 사업도 소개했다. 그린 ODA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태양광 패널 사업을 위해 무거운 자재들을 마을 청년들이 직접 나르고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마을 청년들을 그 일을 몹시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양동화 위원이 한 마을 청년한테 그 이유를 물어 보았을 때, 그 마을 청년은 마을 사람들이 양동화 위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친절을 보이는 것처럼, 그가 일을 했을 때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그러한 친절을 받는다고 말했다. 양동화 위원은 이 대답을 통해서 겉으로는 파트너라고 칭하면서도 마을사람들을 가난하고 역량이 부족해서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무의식적인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마을의 변화를 다른 지역사회 주민들과 나누기 위해서 수익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조항으로 규정하고 수도 딜리의 국립대 학생들이 농촌 봉사를 오도록 초청해 동화책 번역 활동을 하면서 도시 청년들과 교류 봉사를 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활동들은 7개의 수행원칙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상호 책무성: 원조가 아닌 공정한 거래를 통한 자립 기반 마련
- 협력: 커피생산이 목적이 아닌 주민 역량 강화를 위한 수단
- 장기적/역동적: 문화와 관습의 이해로 접근하여 급작스런 변화가 아닌 점진적 과정으로 개발에 대한 충격 완화
- 상호관계 고려: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로 인해 도시로 나간 청년들이 마을로 돌아와 지역에 기반한 개발에 관심을 갖고 소그룹 창업의 주체가 됨
- 효과성: 마을의 소득증대 커피농가의 소득이 $100미만에서 평균 $500으로 증가 했으며 활발한 주민참여, 사업 방향과 의사결정권 확대
- 개별적: 마을의 개발 활동에 자원봉사와 공헌 활동에 대한 관심 유도 및 작은 실천을 시작함
- 총체적/다층적: 보건의료, 교육, 전기 시설 등의 인프라 구축으로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가능케 함으로써 경제적 소외감 극복 및 자립적 생활경제 마련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이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내수 시장은 협소했고, 그동안 식민지를 경험하고 원조가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자립과 NGO, 그리고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지리적 한계로 사업이 빈번히 지연되었다.
그래서 양동화 운영위원은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출구전략을 마련했다. 먼저 가공장을 기능적으로 분산해서 단체의 권한을 줄이고 마을 주민들이 더 깊이 관여해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9개의 생산자 소그룹으로 분산하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가공장 건축 지원과 농업 교육 지원 및 운영 지원을 제공했다.
양동화 운영위원은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피스커피가 활동했던 내용과 도전 과제 그리고 고민들을 정리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했다. 우선 공정무역이 비즈니스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에 시장의 운영 지속가능성과 자립의 지속가능성 사이에 딜레마를 겪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립의 지속성을 선택했지만 시장의 축소가 미치는 영향 역시 컸다. 또한 사업의 결과로 2만 달러 이상 모였지만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과 사용 원칙에 대한 합의가 부족했다고 회고했다.
가난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 활동하는 조직은 지속가능한가? 형태와 경험 가치 중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가? 발전에 대한 그림이 있는가? 파견 인력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현장과 본부가 함께하고 있는가? 현지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인가? 현지 주민들이 사업을 중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연대와 협력, 참여의 경험이 있는가? 성공 사례를 하나의 툴로 만들 수 있는가? 성과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성과 측정 그 자체만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장이란 어디인가? … 8년이라는 현장의 경험만큼 현장에서 진심으로 사업을 진행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풍부한 고찰과 고민을 알 수 있었다. 이어지는 토론 시간에서도 현장에서 겪은 많은 고민들로 가득했다.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는 질적 지표가 무엇일지, 그리고 애드보커시와 지역 정부와의 협력을 어떻게 이뤄냈는지 등의 질문으로 생각을 나누었다.
지난 7월 13일부터 5주간 진행되었던 발전 대안 세미나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번 세미나 시리즈는 발전의 역사와 의미 찾기를 시작으로 탈식민주의와 대안 발전의 담론을 살펴보고, 국제개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검토하고, 이러한 개념을 실현하는 주체인 시민사회와 그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양적,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하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이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철학적 고민과 학술적 토의로서, 이러한 의미 찾기에 갈증을 느낀 실무자와 활동가들에게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글쓴이: 피움 기자단 3기
문소연(msy13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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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할 때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들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 5회차 강의 리뷰
지난 8월 10일 발전 대안 세미나 시리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의 마지막 회차가 진행되었다. 마지막 강의에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활동해 온 발전대안 피다 양동화 운영위원을 초대했다. “답은 현장에 있다? 현장 사례로 돌아보는 개발협력”이라는 제목으로, 현장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많은 활동가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답을 함께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양동화 운영위원은 2010년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서 발간한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원칙과 절차 - 해외사업 실무자를 위한 가이드>를 소개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OXFAM, UNDP 등의 국제기관들에서 정리한 개발협력 사업의 규범원칙 5가지와 수행원칙을 7가지를 제시한다. 양동화 운영위원은 이 원칙들이 어떻게 현장에 적용되는지 강의 전반에 걸쳐 설명해주었다.
* <국제개발협력사업의 원칙과 절차 - 해외사업 실무자를 위한 가이드> 바로가기 (링크)
양동화 운영위원은 이어 사례로 돌아보는 개발협력을 주제로 동티모르에서의 현장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6년 동티모르의 지역갈등 이후 평화 운동을 위해 그곳으로 파견된 양동화 운영위원은 커피를 통한 마을의 소득 증대 경험을 바탕으로 피스빌딩을 이루기 위한 <피스커피> 사업을 운영했다.
피스커피 사업은 2개의 마을에서 11명의 청년 대표와 4명의 마을 리더들이 커피 가공에 참여했던 카브라키 가공장과 6개 마을에서 16명의 청년 대표와 11명의 마을 리더들이 참여했던 로뚜뚜 가공장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커피 공동 가공장을 운영한 것은 지역의 리더십을 기르고 민주적 의사소통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혈통으로 리더십과 지도자가 정해져왔기 때문에 주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공동 가공장에서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스로 리더십을 세우고 혈통이 아닌 리더의 역량이 리더십의 바탕이 되는 경험을 이뤄 보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자립 기반을 위한 소득 증대 뿐만 아니라 평화적 갈등 해결의 피스빌딩의 기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양동화 운영위원은 설명했다.
사업을 실행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사업을 돌아보면서 앞서 설명한 규범원칙 5가지와 비교해 보면, 공동가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주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며, 리더십 세우기는 인간 중심의 규범을, 민주적 의사소통은 자력화를, 자립 기반 마련은 지속가능성을, 그리고 최종 목적인 평화적 갈등 해결은 비폭력/비차별에 해당함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 세우는 마을 공동체
피스커피 활동의 결과는 마을 공동체를 회복시킨 것이었다. 마을에서는 나이와 신분으로 의사결정권의 크기가 다르게 주어졌다. 동티모르는 식민지와 지역 갈등(내전)을 겪고 난 이후 사람들에게는 분쟁의 트라우마가 있었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매우 폭력적이었다. 예를 들어 사과를 하더라도 마음 속의 상처와 분노는 치유되지 못한 채로 다른 사건이 일어나면 과거의 상처가 다시 반추되는 상황이 생겨나면서, 갈등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폭력으로 번지는 악순환의 구조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티모르 언어로는 “뚜르하무뚝”, 즉 “함께 앉자”는 말로써 이야기를 나눌 때 앉는 구조부터 바꾸었다. 위대한 지도자를 향해 한 방향으로 앉는 것이 아니라, 누가 리더인지 표가 나지 않도록 원탁 형식으로 둘러앉기 시작했다.
다른 예로, 7개 마을과 학교 짓기 사업을 했는데 학교의 위치를 선정하는 데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반대가 있었다. KOICA의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협의와 동의가 있지 않으면 학교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을 하기도 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을 모두 설득한 끝에 학교는 지어졌지만, 양동화 위원은 이 과정에서 당시 직접 겪었던 현장의 고민을 소개했다. 주민들의 협의와 합의가 없는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는 프로젝트의 문서적인 성과보다 마을의 발전과 평화를 더 중요하게 여긴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를 보고받은 도너들은 단체의 현지조사가 부족함과 능력을 비판할 것 역시 분명하다. 하지만 현지조사와 별개로 현장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현지의 유동성을 도너기관에서 얼마나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청년 중심의 리더십을 세우는 과정에서 기존의 혈통 중심의 리더십과 충돌이 있기도 했다. 기존의 저울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노동력이 투입되고 수입을 해야 하는 포대를 지나치게 상하게 했기 때문에, 저울을 새로 들여왔다. 특별할 것 없는 단순한 저울이었지만 새로운 저울이 신뢰성이 있는지의 여부로 갈등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의사 결정 시 지역의 리더를 배제하거나 새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험했다.
한편, 가공장 운영에 투입되는 60명의 인력은 모두 남자였는데, 이는 고강도의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사업의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마을 주민들에게는 개발과 발전 주체의 개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노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여성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았다. 또한 학교 개보수에도 학교의 주인이자 주체가 학생이므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본인의 노력을 통해 학교가 나아지는 모습을 직접 관찰했다.
마을이 살아난다
당시 양동화 운영위원이 소속되어 활동하던 조직은 청년 중심의 활동을 하는 단체이기에 청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전기도, 인프라도 없는 마을이었기에 많은 청년들이 도시로 떠났던 상황이었다. 도시로 떠난 청년들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부족했기 때문에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 살고 있었다. 청년들을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했고, 공동가공장이라는 일자리로 청년들이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온 청년들과 <묘목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역량을 성장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즉 묘목장이 오래가지 못하더라도 도전을 경험해보고자 했다. 청년들은 가공장과는 별개로 ‘하우바(Hau-ba)’이라는 그들만의 소그룹을 만들었다. 이 청년 소그룹은 확실한 비즈니스의 정체성을 띄었다. 양동화 운영위원은 이 점을 몹시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당시의 본인과 거래를 하려고 시도한 소그룹과 신뢰가 깨졌거나 그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 아닌, 그들이 훌륭한 비즈니스 수단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공동체가 회복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무엇보다 청년들에게는 주체성과 마을에 대한 소속감이 생겨났다. 모든 사람이 가공장에서 일자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그들의 일자리를 특별하게 받는 수혜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그 수혜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독거 노인의 집을 수리해 주거나 일손이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었다.
한편 양동화 위원은 자신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던 사업도 소개했다. 그린 ODA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태양광 패널 사업을 위해 무거운 자재들을 마을 청년들이 직접 나르고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하지만 마을 청년들을 그 일을 몹시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양동화 위원이 한 마을 청년한테 그 이유를 물어 보았을 때, 그 마을 청년은 마을 사람들이 양동화 위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친절을 보이는 것처럼, 그가 일을 했을 때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그러한 친절을 받는다고 말했다. 양동화 위원은 이 대답을 통해서 겉으로는 파트너라고 칭하면서도 마을사람들을 가난하고 역량이 부족해서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무의식적인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마을의 변화를 다른 지역사회 주민들과 나누기 위해서 수익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조항으로 규정하고 수도 딜리의 국립대 학생들이 농촌 봉사를 오도록 초청해 동화책 번역 활동을 하면서 도시 청년들과 교류 봉사를 하기도 했다.
위와 같은 활동들은 7개의 수행원칙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이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내수 시장은 협소했고, 그동안 식민지를 경험하고 원조가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자립과 NGO, 그리고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지리적 한계로 사업이 빈번히 지연되었다.
그래서 양동화 운영위원은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출구전략을 마련했다. 먼저 가공장을 기능적으로 분산해서 단체의 권한을 줄이고 마을 주민들이 더 깊이 관여해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9개의 생산자 소그룹으로 분산하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가공장 건축 지원과 농업 교육 지원 및 운영 지원을 제공했다.
양동화 운영위원은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피스커피가 활동했던 내용과 도전 과제 그리고 고민들을 정리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했다. 우선 공정무역이 비즈니스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에 시장의 운영 지속가능성과 자립의 지속가능성 사이에 딜레마를 겪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립의 지속성을 선택했지만 시장의 축소가 미치는 영향 역시 컸다. 또한 사업의 결과로 2만 달러 이상 모였지만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과 사용 원칙에 대한 합의가 부족했다고 회고했다.
가난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 활동하는 조직은 지속가능한가? 형태와 경험 가치 중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가? 발전에 대한 그림이 있는가? 파견 인력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현장과 본부가 함께하고 있는가? 현지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인가? 현지 주민들이 사업을 중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연대와 협력, 참여의 경험이 있는가? 성공 사례를 하나의 툴로 만들 수 있는가? 성과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성과 측정 그 자체만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장이란 어디인가? … 8년이라는 현장의 경험만큼 현장에서 진심으로 사업을 진행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풍부한 고찰과 고민을 알 수 있었다. 이어지는 토론 시간에서도 현장에서 겪은 많은 고민들로 가득했다.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는 질적 지표가 무엇일지, 그리고 애드보커시와 지역 정부와의 협력을 어떻게 이뤄냈는지 등의 질문으로 생각을 나누었다.
지난 7월 13일부터 5주간 진행되었던 발전 대안 세미나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번 세미나 시리즈는 발전의 역사와 의미 찾기를 시작으로 탈식민주의와 대안 발전의 담론을 살펴보고, 국제개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검토하고, 이러한 개념을 실현하는 주체인 시민사회와 그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양적,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하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이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철학적 고민과 학술적 토의로서, 이러한 의미 찾기에 갈증을 느낀 실무자와 활동가들에게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글쓴이: 피움 기자단 3기
문소연(msy133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