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연대’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직접 전하기’가 주된 흐름이 되어 가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 생태계. 발전대안 피다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해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의 오늘을 말하는 다양한 독립 미디어 채널들을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그 두 번째 순서로 국제개발협력 청년 커뮤니티 플랫폼 ‘공적인사적모임’에서 발행하고 있는 뉴스레터 ‘김칩’을 만드는 러에포님, 레아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김칩은 2022년에 피다와 협업하여 ‘국제개발협력 NGO 활동가 노동 이슈 솔루션 그룹’의 활동 소식을 공동으로 전하기도 했었죠. 2023년 11월 현재 2,500여 명의 구독자 수를 자랑하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종사하거나 입문을 희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실공히 가장 핫한 채널로 꼽히고 있는 김칩의 이야기, 지금 바로 소개합니다.
마음이 젊은 청년의,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한 스피커
- 뉴스레터 ‘김칩’ 러에포, 레아 인터뷰
안녕하세요!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김치앤칩스(김칩) 내에서는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가요?
러에포 | 안녕하세요. 저는 닉네임 ‘러에포’로 활동하고 있고, 본업으로는 르완다에서 농업 사업 담당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칩에서는 팀장을 맡고 있는데, 다른 역할이 빌 때 ‘땜빵’도 자주 하고 있어요.
레아 | 저는 올해 초에 공적인사적모임(공사모) 김칩팀에 합류해 ‘레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발협력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고요. 김칩에서는 ‘국개협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를 기획해서 운영하고 있고, 비정기적으로 에세이와 기획 기사도 쓰고 있어요.
공사모가 처음에는 본래 독서 모임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봤던 것 같아요. 어떻게 뉴스레터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김치앤칩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러에포 | 처음에는 초기 멤버 4명이서 퇴사자 모임으로 시작했어요. 저도 코로나 때 미얀마에 있다가 들어와서 파견 대기를 하다 보니 특별히 할 게 없었고, 핑키(주: 공적인사적모임 대표)님도 프리랜서로 막 일을 시작하셨을 땐데 코로나라 할 게 없었어요. 다들 이러다 보니 ‘뭐 하지?’ 하다가 처음에는 독서 모임을 했어요. 그런데 말이 독서 모임이지 만나서 책은 안 읽고 맨날 수다만 떠니까 좀 건설적인 걸 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요. 건설적인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개발협력 분야의 소식이나 정보를 전하는 채널이 별로 없는 거예요. 우리가 받아 볼 수 있는 소식은 기관에서 발행하는 뉴스 정도고, 언론 기사도 국정감사 때나 잠깐 올라오지 (평소에는)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그나마 그런 것들이라도 모아서 큐레이션(curation: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하고, 책 소개 같은 것도 하면서 풍부한 콘텐츠를 발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당시 핑키님이 긴 글 위주의 기획 기사를 작성하고, 저랑 다른 분이 기사 큐레이션을 담당했는데, 나머지 한 분이 마케터 출신으로 이런 뉴스레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특별한 계기랄 건 없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게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김치앤칩스’라는 이름에도 대단한 의미는 없어요. 다른 분들이 물어보실 때마다 좀 민망해서 이제 이쯤 됐으면 대단한 의미를 하나 넣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웃음). 설명을 붙여 보자면, 국제개발협력 하면 영국이 많이 언급되니까 영국의 대표 음식인 ‘피시 앤 칩스’, 그리고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에서 따서 국내 뉴스와 해외 뉴스를 한 번에 소개한다는 취지가 있었어요. 그리고 너무 기성 언론 같은 느낌이 나지 않게 재치 있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맞물려서 짓게 된 이름입니다.
레아 | 지금은 아예 ‘김칩’으로 리브랜딩을 했어요. ‘김치앤칩스’의 줄임말로서가 아니라, 아예 이름 자체를 ‘김칩’으로 바꾼 거죠. 마치 방탄소년단이 BTS가 된 것처럼요 (웃음).
김칩 소개 페이지 화면 갈무리
다양한 형태의 매체 중에 ‘뉴스레터’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러에포 | 우선 처음 시작할 땐 코로나 시기에 직접 만나지 않고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측면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공사모가 사용하는 메신저에 메시지를 보내면 ‘10개의 시간대에 보내겠습니까’ 하고 확인 문구가 뜨거든요. 그만큼 (비대면으로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 수 있는) 확장성 있는 매체인 거죠. 그리고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모두 10년차 미만의 실무자들이었다 보니 ‘우리가 어디 가서 이야기를 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야기라는 게 물론 말로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글로 남겨서 확산할 수 있는 채널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뉴스레터를 선택했어요. 또 유연한 매체로서 갖는 특징이 있다 보니, 구독하실 분들만 있다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 거죠. 일반적으로 국제개발협력 사업 수행 기관에서 발행하는 홍보성 소식 말고, 우리가 하고 싶고 전하고 싶은 얘기, 주목받지 못한 얘기들을 내보낼 수 있는 좋은 플랫폼으로 뉴스레터를 택했던 게 제일 컸어요.
혹시 추후에는 다른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에도 도전해 보실 계획도 있나요?
레아 | 아예 가능성을 막아 놓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다른 채널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시도해 볼 수도 있고, 언젠가 라이브 방송만 한번 해 본다든지 행동팀(주: 공사모는 김칩팀, 행동팀, IT팀, 홍보팀으로 구성되어 있다)과 연계해서 오프라인 행사를 해 본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들은 조금씩 나오고 있어요. 다만 아직 누군가가 주도해서 대규모로 기획을 할 수 있는 여력은 없는 상황이죠.
앞서 소개해 주신 것처럼 처음에는 4명이 만들던 뉴스레터였는데, 가장 최근 발행호에는 무려 21명이 ‘만드는 사람들' 목록에 이름을 올렸어요. 이 많은 인원들끼리의 역할 분담과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러에포 | 공사모 안에서의 팀 구분이 대단히 뚜렷한 건 아니라서, 21명이 모두 김칩팀 소속은 아니에요. 역할로 보자면 기사를 수집하시는 클리퍼들이 있고, 그걸 큐레이션하시는 분들도 있고, 인터뷰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코너 운영만 하시는 분들도 있는 등 다양한 역할이 있어요. 이렇게 되기까지 시행착오를 좀 거치긴 했는데요. 4명에서 13명, 다시 21명으로 인원이 늘어나면서 역할을 적절히 분배하고 가이드라인을 잡는 등의 표준화 작업이 최근 1년간 저의 가장 큰 이슈였어요. 지금은 역할별로 누가 어떤 걸 봐야 되고 마감 주기는 언제고 하는 것들이 명확히 있어서, 굉장히 과업 중심으로 잘 맞물려서 움직이죠.
레아 | 몇 달치 일정표가 미리 나와 있고, 각 호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코너를 언제까지 마감한다는 게 정해져 있어요. 그 일정에 맞춰서 원고를 제출하면 에디터님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필자의) 의도에 어긋난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피드백 과정을 거치고, 최종본이 나왔을 때 다 같이 보면서 오탈자 등을 확인해서 최종 발행을 하는 방식이죠. 처음에 들어왔을 때도 되게 체계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더욱 체계적으로 바뀌고 있고요. 그러면서 품질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각 코너별로 무엇을 지향점으로 두는지, 어떤 표현을 피하는지 등을 내부 합의를 통해 계속 만들어 주셔서, 헷갈리는 지점이 있을 때 가이드라인을 보면 명확해지죠.
발행 3주년 당시 김칩 149호 화면 갈무리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한 지도 만으로 3년이 넘었는데요. 처음 발행을 시작했을 때의 목표나 방향, 그리고 지금의 지향점에서 바뀐 것이 있나요?
러에포 | 사실 초기 목표는 정말 소소했어요. 뉴스레터는 왠지 한번 시작하면 영원히 해야 될 것만 같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딱 열 번만 해 보자고 했는데, 벌써 160호까지 왔어요. 이제는 주변에 보시는 분들도 많고, 국제개발협력 내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지향점이 특별히 없었는데 생겼다고 할 수 있겠죠. 예전에는 김칩이 먼저 크게 있고 그걸 준비하는 모임으로 공사모가 있었다면, 지금은 공사모가 더 크고 그걸 대변하는 채널이자 스피커로서 김칩이 있는 것 같아요.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에 기여한다는 공사모의 미션과 비전이 있고, 김칩도 그걸 따라가려고 해요. 앞으로도 계속 청년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고, 공사모 활동을 더 촉진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개발협력을 공개된 장으로서 보여주는 것에 지향점이 있습니다.
레아 | 저는 처음의 비전이 똑같이 유지되고 있다고 느꼈어요. 다만 좀 더 공표를 했다는 느낌이에요. ‘우리는 청년들을 더 많이 모아서 느슨한 연대를 더 강화하는 구조로 가져가겠다’는 걸 더 대놓고 표면화하고 있을 뿐, 처음부터 비슷한 색깔을 계속 띄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정체성은 같지만) 더 잘 보여지게 만들고 있는 거죠.
영향력을 언급해 주셨는데, 실제로 김칩이 정말 많이 커졌어요. 말씀하신 대로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나요?
레아 | 최근 들어서 느끼는 게, 저는 김칩 멤버가 아니었을 때도 주니어들을 만나면 김칩을 많이 소개하고 다녔거든요. 예전에는 처음 들어 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와서는 ‘그건 알고 있어요’, ‘그건 이미 받아 보고 있어요’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공사모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참여자가 400명이 넘어갔을 때도 느꼈죠. 물론 모든 참여자들이 김칩을 열심히 읽는 구독자는 아닐 수 있지만, 공사모 활동 소식이 다른 매체에서 많이 소개가 되는 건 아니고 대체로 김칩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보니 아마 그 400명 중 높은 비율이 김칩과 엮여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김칩은 구독자들과의 쌍방 소통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구독자의 의견이라든지, 소통 과정에서 느낀 김칩 구독자들만의 특성 같은 것이 있을까요?
러에포 | 최근에는 안정기로 들어서서인지 초창기에 비해 구독자들의 직접적인 피드백이 많진 않아요. 그런데 확실한 건 주니어분들은 국제개발협력이 폐쇄적인 분야라 정보를 어떻게 얻을지 막막했는데 감사하다는 피드백이 많은 편이에요. 그에 비해 연차가 높은 분들은 힘들고 떠나고 싶을 때 활동 이야기를 통해서 용기를 얻어 간다는 얘기를 해 주세요.
레아 | 그런 특성이 제일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삶과 현업에 너무 찌들어서 피곤해 죽겠지만 김칩을 보면서 환기가 돼서 ‘그래 나도 저랬었지’ 하는 마음에서 읽어 주시는 분들과, 이 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정보를 얻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제일 많은 목소리인 것 같아요.
러에포 | 그러면서 또 비판할 때는 굉장히 명확하게 해 주시기도 하세요. 최근에 발행 3주년을 맞아서 핑키님이 대표로 에세이를 쓰셨는데, ‘일단 무턱대고 시작한 용기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피드백이 있었어요. 이런 따뜻한 피드백이 있는가 하면, 어떤 콘텐츠에 대해서는 객관성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고 피드백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팀장님 같은 느낌이에요 (웃음).
공적인사적모임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게요. 3년간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다양한 개발협력 이슈를 접하고, 그러면서 개발협력 생태계의 트렌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혹시 그 과정에서 느끼거나 목격하신 이 분야의 변화가 있을까요?
러에포 |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요. 변한 것도 물론 있죠. 예를 들어, 처음에는 초기 멤버 4명이 모두 환경 단체 출신이다 보니까 기후에 관한 얘기도 많았고, ODA나 개발협력 정책에 대한 내용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환경 얘기가 너무 많다는 피드백도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기사 10개를 선정하면 그중에 서너 개에는 기후 이야기가 들어가는데 이제는 그런 피드백이 없고, 되게 다양한 기후 얘기가 나와도 다들 이해를 하세요. 넓게는 북반구 전체와 한국 정부의 책임 묻는 기사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래서 개발협력 분야에도 그런 경향이 반영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건 새마을운동과 K-라이스벨트로 이어지는 그런 국익 추구의 기조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DAC 피어리뷰 시민사회 보고서를 봤는데, 그동안 김칩에서 다뤄 왔던 주제들이 다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정말 변하지 않는 흐름들이 있어요. 원조 분절화 얘기나, 지나친 국익 추구라거나, 한국 기업 퍼주기식이라거나, 예산은 늘어났는데 감시 체계는 부족하다거나, 이런 얘기들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레아 | 저는 그래도 좀 변화된 부분이라고 한다면 김칩을 포함해서 목소리를 내는 매체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많아지면서 노동 환경 영역이 주목을 더 받게 된 것 같아요. 우리 업계 젊은이들의 사명감 페이, 열정 페이에 관한 문제들이 10년 전에도 똑같이 있었지만 그때는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선배들도 다 그렇게 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나 보다’ 했다면 최근에는 관련된 연구도 많이 하시고 사람들 간에 담론도 많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의 변화는 분명히 있지 않나 싶어요.
최근에 KOICA에서 인력 등급 체계가 바뀌어서 6급이 생겼어요. 과거에는 가장 낮은 급수인 5급에서 4급으로 넘어가려면 7년이 걸렸거든요. 그 사이에는 받는 돈이 안 바뀐다는 거죠. 7년 동안 근무를 했는데 월급이 안 바뀐다면 누가 그 판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5급에서 4급으로 넘어가는 부분에 한계점이 있었는데, 최근에 6급을 만들면서 기존에 5급이 받던 돈을 6급이 받고, 6급에서 5급으로 넘어가는 데 이제 3년밖에 안 걸려요. 중간 다리가 생기면서 월급이 그래도 조금 올라가는 구조가 된 거죠. 많은 청년들의 애로사항이 계속 발생하고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런 변화도 가능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같이 모여 있는 익명 카톡방도 있고 뉴스레터도 있으니까 ‘내가 당하는 부당함이 진짜 부당한 거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구조도 만들어진 것 같고요. 다만 기존 언론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이 아닐 뿐인 거죠.
콘텐츠를 제작하시는 입장에서 보실 때,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더 많아져야 하는 콘텐츠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러에포 |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얘기를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봐요. 특정 정당들에 대한 얘기는 물론 객관적으로 해야겠죠. 하지만 정책과 관련된 제안 같은 것은 청년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콘텐츠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빈곤포르노 얘기가 나왔을 때도 개발 NGO들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한 내외부의 불만과 질타도 있었잖아요. 불편한 이야기를 했을 때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다들 얘기를 못 하는데, 그래서 안전하게 비판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피다에서는 애드보커시를 하시니까 이런 얘기들을 피움에서도 많이 다루시잖아요. 그런데 그걸 볼 때마다 이쯤 되면 다른 데서도 좀 거들어 주는 콘텐츠가 나올 때가 됐는데 싶지만, 아직 없는 걸 보면서 좀 더 많은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적이거나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건 결국 국내 단체들의 재원이 ODA 예산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일까요?
러에포 | 저는 시민사회에서만 계속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사실 시민사회는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인건비와 맞닿아 있는 예산 문제가 있고, 그걸 알기 때문에 윗분들도 조직 운영에 있어 그런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걸 미얀마 사태 때 좀 실감했어요. 미얀마에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는데 쿠데타에 대해 의견을 쉽게 못 내는 것을 보면서, 어쨌든 개발협력 하는 단체들에서는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결국 재원인 거죠.
레아 | 예산이 많은 걸 제한하는 것 같아요.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돈은 다 정부 ODA 예산에서 나오고 있는 판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는 주니어 양성도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돈을 더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콘텐츠 차원에서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유료로 이용할 수 있는 높은 품질의 지식 콘텐츠가 적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냥 적당한 퀄리티에 무료로 뿌려지는 콘텐츠가 훨씬 많죠. 여기에 투자를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구조가 안 나와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마케팅이나 IT 분야에서는 한 15만 원짜리 강의를 들으면 그만큼 내 연봉이 뛴단 말이죠. 그런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내가 나의 커리어에 돈을 투자하고 더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소비한다 한들, 나의 보수를 제한하는 것은 나의 실력이 아니라 발주 기관에서 나의 맨데이(주: 투입 일수)를 얼마로 정했는가, 나의 파견 기간을 어디까지로 잡았는가, 이런 것들이니까 사람들이 실력을 쌓는 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돈을 투자해서 만들 정도로 품질이 높은 콘텐츠는 더 많이 나올 수도 있는데 아직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김칩이 매체로서 콘텐츠를 통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 수행하고 싶은 핵심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러에포 | 처음 시작했던 그대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그게 개인적 차원의 청년의 이야기였다면, 최근에는 청년들 간의 이야기, 청년들이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요. 사실 김칩만 있을땐 불가능할 수도 있거든요. 근데 행동팀이 있기 때문에 ‘빈포선셋’(주: 빈곤포르노 근절 캠페인 그룹), ‘비스킷 포 미얀마’(주: 미얀마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 캠페인) 등의 활동이 진행되고 있으니 김칩을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확산하고 다른 사람들의 참여도 촉진하는 스피커로서 기여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김칩이 갖는 미디어로서의 역할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멤버들의 목소리를 실으면서 청년으로서의 정체성도 추구하고, 그러면서 객관적인 태도도 유지하는 것이 공통의 목표예요. 객관적인 팩트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건 김칩이 할 일은 아니에요. 글을 통해서 어딘가 가려운 데를 좀 긁어 주는 그런 재밌는 콘텐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단신 기사의 경우에도 있는 걸 요약만 해서 내보내는 건 우리의 역할이 아니고, 청년의 관점으로 비판도 하고, 후속 대책도 요구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레아 | 김칩이 원래 갖고 있던 색깔을 더 강화하는, 그러니까 기존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더 다채롭게 만든다는 기조로 새 멤버들이 모였다고 생각해요. 공적 재원과 기성 세대가 의사 결정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개발협력 분야지만, 실제 활동을 하는 건 청년들이고 이 청년들이 계속 살아남고 커야 이 판이 바뀐다는 걸 인지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거든요. 그런 건강한 비판의 시작으로서 김칩이 계속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뉴스레터를 통해 전할 단신 기사를 선별할 때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내용들보다는 찾아내기 어려운, 또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려고 노력하고요. 기획 기사나 에세이를 쓰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 내더라도 뭔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 주고 계세요.
사진 제공: 공적인사적모임
말씀 나누면서 ‘청년’, ‘청년의 관점’을 많이 언급해 주고 계세요. 김칩에서 말하는, 혹은 두 분이 생각하시는 ‘청년’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러에포 | 마음이 젊은 사람이죠.
레아 | 제가 처음에 김칩에 합류했을 때, 공사모 원년 멤버분께서 제게 가이드를 주시면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강조하셨어요. 스스로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게 좋겠다고 해 주셔서, 그 이야기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어요. 사실 저도 법적으로 정하는 청년의 범위는 벗어났거든요 (웃음). 스스로 청년이라고 생각해야 청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스스로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담을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러에포 |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김칩 멤버들의 연령대 구성도 달라질 수 있고, 독자들의 페르소나(주: 마케팅 용어로, 고객층의 공통적인 특성을 대표하는 가상의 인물)도 달라질 수 있어요. 저희가 내부적으로 콘텐츠의 표준화 작업에 힘은 쓰지만, 그 안에서 콘텐츠의 다양성은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변화에 따라 김칩도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멤버들의 변화하는 목소리도 유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구독자들과 함께 변화해 갈 김칩의 모습도 기대가 됩니다. 그렇다면 구독자들이 김칩을 통해 얻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레아 | 연대감. 결국 외롭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이 판에 처음 들어왔을 때 회사 사람들 외에는 같은 분야 사람들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고, 궁금한 걸 누군가에게 묻고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너무 없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회사 안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퇴사를 하고, 그렇게 내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는 걸 보면서 이렇게 계속 외롭게 살아야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 막 입문한 분들이 좌절하거나 괴로운 상황이 닥쳤을 때 외로워하지 않고, 나 말고도 누군가 이 길을 걸은 사람도 있고, 똑같은 길을 걷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를 응원해 줄 수 있다는 그런 연대감을 김칩에서 느꼈으면 해요.
러에포 | 용기와 동료애. 별것 아닌 계기로 시작했지만 좋은 동료들 덕분에 꾸준하게 할 수 있었어요. 이런 걸 보면서 ‘쟤도 저렇게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사소하게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그러면 그만큼 또 좋은 동료들이 생기고, 그걸 보는 분들이 다시 지지를 얻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꾸준하게 제가 이 자리에 있음으로써 다른 분들이 용기와 동료애를 얻어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칩, 그리고 피움의 구독자들을 위해 앞으로 계획 중인 김칩의 활동이나 콘텐츠를 미리보기로 공개해 주실 수 있나요?
러에포 | 올 연초에 공사모 인원이 거의 두 배 이상 늘었어요. 그래서 사실 이번 연도에는 기존에 갖고 있던 콘텐츠에 새로 오신 분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접목하고 안정화할지가 제일 큰 이슈였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좀 안정이 된 게 보이니까, 내년에는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적용해 볼까 하는 이야기들을 계속 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내년에는 좀 더 초년생을 위한 코너가 있으면 좋겠다, 단신 기사를 5줄 내외로만 보는 건 아쉬우니 그걸 좀 더 톺아보자, 협업도 다양하게 해 보자 등 여러 의견들을 더 많이 받아 보는 시간이 지금은 필요한 것 같아요. 한마디로 일단 현재와 비슷한데 조금 더 다양한 코너들을 내년에는 시도해 보지 않을까 싶네요.
레아 | 제가 김칩 발행될 때마다 자체적으로 분야를 분류해서 어디가 콘텐츠가 비고 어디에 몰리는지를 체크하고 있었는데요, 올해는 너무 바빴지만 내년에는 시간이 조금 더 날 것 같아서 비는 부분에 기사를 좀 더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인터뷰 콘텐츠도 ‘NGO는 아니지만 국제개발협력 합니다’ 코너 외에도 대학교 학생들과 협업해서 진행해 본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제안을 해 보려고 하고요. 다른 매체들과의 협업도 좋겠고, 공사모 멤버들을 위한 내부 강의들이 있는데 그걸 김칩 구독자 대상으로 오픈한다거나, 찬반 논란이 될 만한 이슈들이 개발협력 분야 내부에 많이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도 설문을 받아본다거나 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에 더욱 다채로운 콘텐츠로 채워질 김칩이 기다려집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김칩 외에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매체’의 기능을 하고 있는 독립 채널들이 생겨났는데요. 각자 다른 다양한 형태로 개발협력 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러에포 |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중요한 건 만드는 분들이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시면서, 외부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만족감을 얻으면서 오래오래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저희 같은 미디어의 특성은 뭐가 됐든 쭉 가는 힘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 소진되지 않고 오랫동안 뵈었으면 좋겠어요.
레아 | 저도 비슷해요. 결국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내가 보고 싶고 내가 읽고 싶은 걸 만들어야 재밌는 것 같거든요. 내가 읽고 싶고 재밌어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구독자도 생기고 청자도 생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직은 이 판이 작은 만큼 너무 의식해서 각 잡고 휘황찬란한 걸 만들려고 하면 진짜 힘들 것 같아요. 그냥 소소하게 즐거운 거 하시면서 조금씩 키워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최근에 공사모 안에서도 번아웃이라는 이슈를 많이 논의했어요.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 우리가 시간을 내서 만드는 과정에서 당연히 어느 시점에는 번아웃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이상한 게 아니니까, 쉬어야 될 때 쉬고 하고 싶을 때 하면서 이어 나가는 것도 필요한 용기인 것 같아요. 아무도 안 보면 우리라도 보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힘을 빼고요.
인터뷰 진행・정리: 김향지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
‘느슨한 연대’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직접 전하기’가 주된 흐름이 되어 가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 생태계. 발전대안 피다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해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의 오늘을 말하는 다양한 독립 미디어 채널들을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그 두 번째 순서로 국제개발협력 청년 커뮤니티 플랫폼 ‘공적인사적모임’에서 발행하고 있는 뉴스레터 ‘김칩’을 만드는 러에포님, 레아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김칩은 2022년에 피다와 협업하여 ‘국제개발협력 NGO 활동가 노동 이슈 솔루션 그룹’의 활동 소식을 공동으로 전하기도 했었죠. 2023년 11월 현재 2,500여 명의 구독자 수를 자랑하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종사하거나 입문을 희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실공히 가장 핫한 채널로 꼽히고 있는 김칩의 이야기, 지금 바로 소개합니다.
마음이 젊은 청년의, 청년을 위한, 청년에 의한 스피커
- 뉴스레터 ‘김칩’ 러에포, 레아 인터뷰
안녕하세요!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김치앤칩스(김칩) 내에서는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가요?
러에포 | 안녕하세요. 저는 닉네임 ‘러에포’로 활동하고 있고, 본업으로는 르완다에서 농업 사업 담당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칩에서는 팀장을 맡고 있는데, 다른 역할이 빌 때 ‘땜빵’도 자주 하고 있어요.
레아 | 저는 올해 초에 공적인사적모임(공사모) 김칩팀에 합류해 ‘레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발협력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고요. 김칩에서는 ‘국개협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를 기획해서 운영하고 있고, 비정기적으로 에세이와 기획 기사도 쓰고 있어요.
공사모가 처음에는 본래 독서 모임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봤던 것 같아요. 어떻게 뉴스레터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김치앤칩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러에포 | 처음에는 초기 멤버 4명이서 퇴사자 모임으로 시작했어요. 저도 코로나 때 미얀마에 있다가 들어와서 파견 대기를 하다 보니 특별히 할 게 없었고, 핑키(주: 공적인사적모임 대표)님도 프리랜서로 막 일을 시작하셨을 땐데 코로나라 할 게 없었어요. 다들 이러다 보니 ‘뭐 하지?’ 하다가 처음에는 독서 모임을 했어요. 그런데 말이 독서 모임이지 만나서 책은 안 읽고 맨날 수다만 떠니까 좀 건설적인 걸 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요. 건설적인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개발협력 분야의 소식이나 정보를 전하는 채널이 별로 없는 거예요. 우리가 받아 볼 수 있는 소식은 기관에서 발행하는 뉴스 정도고, 언론 기사도 국정감사 때나 잠깐 올라오지 (평소에는)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그나마 그런 것들이라도 모아서 큐레이션(curation: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하고, 책 소개 같은 것도 하면서 풍부한 콘텐츠를 발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당시 핑키님이 긴 글 위주의 기획 기사를 작성하고, 저랑 다른 분이 기사 큐레이션을 담당했는데, 나머지 한 분이 마케터 출신으로 이런 뉴스레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특별한 계기랄 건 없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한 게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김치앤칩스’라는 이름에도 대단한 의미는 없어요. 다른 분들이 물어보실 때마다 좀 민망해서 이제 이쯤 됐으면 대단한 의미를 하나 넣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웃음). 설명을 붙여 보자면, 국제개발협력 하면 영국이 많이 언급되니까 영국의 대표 음식인 ‘피시 앤 칩스’, 그리고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에서 따서 국내 뉴스와 해외 뉴스를 한 번에 소개한다는 취지가 있었어요. 그리고 너무 기성 언론 같은 느낌이 나지 않게 재치 있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맞물려서 짓게 된 이름입니다.
레아 | 지금은 아예 ‘김칩’으로 리브랜딩을 했어요. ‘김치앤칩스’의 줄임말로서가 아니라, 아예 이름 자체를 ‘김칩’으로 바꾼 거죠. 마치 방탄소년단이 BTS가 된 것처럼요 (웃음).
김칩 소개 페이지 화면 갈무리
다양한 형태의 매체 중에 ‘뉴스레터’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러에포 | 우선 처음 시작할 땐 코로나 시기에 직접 만나지 않고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측면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공사모가 사용하는 메신저에 메시지를 보내면 ‘10개의 시간대에 보내겠습니까’ 하고 확인 문구가 뜨거든요. 그만큼 (비대면으로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 수 있는) 확장성 있는 매체인 거죠. 그리고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모두 10년차 미만의 실무자들이었다 보니 ‘우리가 어디 가서 이야기를 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야기라는 게 물론 말로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글로 남겨서 확산할 수 있는 채널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뉴스레터를 선택했어요. 또 유연한 매체로서 갖는 특징이 있다 보니, 구독하실 분들만 있다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 거죠. 일반적으로 국제개발협력 사업 수행 기관에서 발행하는 홍보성 소식 말고, 우리가 하고 싶고 전하고 싶은 얘기, 주목받지 못한 얘기들을 내보낼 수 있는 좋은 플랫폼으로 뉴스레터를 택했던 게 제일 컸어요.
혹시 추후에는 다른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에도 도전해 보실 계획도 있나요?
레아 | 아예 가능성을 막아 놓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다른 채널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시도해 볼 수도 있고, 언젠가 라이브 방송만 한번 해 본다든지 행동팀(주: 공사모는 김칩팀, 행동팀, IT팀, 홍보팀으로 구성되어 있다)과 연계해서 오프라인 행사를 해 본다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들은 조금씩 나오고 있어요. 다만 아직 누군가가 주도해서 대규모로 기획을 할 수 있는 여력은 없는 상황이죠.
앞서 소개해 주신 것처럼 처음에는 4명이 만들던 뉴스레터였는데, 가장 최근 발행호에는 무려 21명이 ‘만드는 사람들' 목록에 이름을 올렸어요. 이 많은 인원들끼리의 역할 분담과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러에포 | 공사모 안에서의 팀 구분이 대단히 뚜렷한 건 아니라서, 21명이 모두 김칩팀 소속은 아니에요. 역할로 보자면 기사를 수집하시는 클리퍼들이 있고, 그걸 큐레이션하시는 분들도 있고, 인터뷰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코너 운영만 하시는 분들도 있는 등 다양한 역할이 있어요. 이렇게 되기까지 시행착오를 좀 거치긴 했는데요. 4명에서 13명, 다시 21명으로 인원이 늘어나면서 역할을 적절히 분배하고 가이드라인을 잡는 등의 표준화 작업이 최근 1년간 저의 가장 큰 이슈였어요. 지금은 역할별로 누가 어떤 걸 봐야 되고 마감 주기는 언제고 하는 것들이 명확히 있어서, 굉장히 과업 중심으로 잘 맞물려서 움직이죠.
레아 | 몇 달치 일정표가 미리 나와 있고, 각 호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코너를 언제까지 마감한다는 게 정해져 있어요. 그 일정에 맞춰서 원고를 제출하면 에디터님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필자의) 의도에 어긋난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피드백 과정을 거치고, 최종본이 나왔을 때 다 같이 보면서 오탈자 등을 확인해서 최종 발행을 하는 방식이죠. 처음에 들어왔을 때도 되게 체계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더욱 체계적으로 바뀌고 있고요. 그러면서 품질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각 코너별로 무엇을 지향점으로 두는지, 어떤 표현을 피하는지 등을 내부 합의를 통해 계속 만들어 주셔서, 헷갈리는 지점이 있을 때 가이드라인을 보면 명확해지죠.
발행 3주년 당시 김칩 149호 화면 갈무리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한 지도 만으로 3년이 넘었는데요. 처음 발행을 시작했을 때의 목표나 방향, 그리고 지금의 지향점에서 바뀐 것이 있나요?
러에포 | 사실 초기 목표는 정말 소소했어요. 뉴스레터는 왠지 한번 시작하면 영원히 해야 될 것만 같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딱 열 번만 해 보자고 했는데, 벌써 160호까지 왔어요. 이제는 주변에 보시는 분들도 많고, 국제개발협력 내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지향점이 특별히 없었는데 생겼다고 할 수 있겠죠. 예전에는 김칩이 먼저 크게 있고 그걸 준비하는 모임으로 공사모가 있었다면, 지금은 공사모가 더 크고 그걸 대변하는 채널이자 스피커로서 김칩이 있는 것 같아요.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에 기여한다는 공사모의 미션과 비전이 있고, 김칩도 그걸 따라가려고 해요. 앞으로도 계속 청년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고, 공사모 활동을 더 촉진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개발협력을 공개된 장으로서 보여주는 것에 지향점이 있습니다.
레아 | 저는 처음의 비전이 똑같이 유지되고 있다고 느꼈어요. 다만 좀 더 공표를 했다는 느낌이에요. ‘우리는 청년들을 더 많이 모아서 느슨한 연대를 더 강화하는 구조로 가져가겠다’는 걸 더 대놓고 표면화하고 있을 뿐, 처음부터 비슷한 색깔을 계속 띄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정체성은 같지만) 더 잘 보여지게 만들고 있는 거죠.
영향력을 언급해 주셨는데, 실제로 김칩이 정말 많이 커졌어요. 말씀하신 대로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나요?
레아 | 최근 들어서 느끼는 게, 저는 김칩 멤버가 아니었을 때도 주니어들을 만나면 김칩을 많이 소개하고 다녔거든요. 예전에는 처음 들어 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와서는 ‘그건 알고 있어요’, ‘그건 이미 받아 보고 있어요’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공사모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참여자가 400명이 넘어갔을 때도 느꼈죠. 물론 모든 참여자들이 김칩을 열심히 읽는 구독자는 아닐 수 있지만, 공사모 활동 소식이 다른 매체에서 많이 소개가 되는 건 아니고 대체로 김칩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보니 아마 그 400명 중 높은 비율이 김칩과 엮여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김칩은 구독자들과의 쌍방 소통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구독자의 의견이라든지, 소통 과정에서 느낀 김칩 구독자들만의 특성 같은 것이 있을까요?
러에포 | 최근에는 안정기로 들어서서인지 초창기에 비해 구독자들의 직접적인 피드백이 많진 않아요. 그런데 확실한 건 주니어분들은 국제개발협력이 폐쇄적인 분야라 정보를 어떻게 얻을지 막막했는데 감사하다는 피드백이 많은 편이에요. 그에 비해 연차가 높은 분들은 힘들고 떠나고 싶을 때 활동 이야기를 통해서 용기를 얻어 간다는 얘기를 해 주세요.
레아 | 그런 특성이 제일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삶과 현업에 너무 찌들어서 피곤해 죽겠지만 김칩을 보면서 환기가 돼서 ‘그래 나도 저랬었지’ 하는 마음에서 읽어 주시는 분들과, 이 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정보를 얻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제일 많은 목소리인 것 같아요.
러에포 | 그러면서 또 비판할 때는 굉장히 명확하게 해 주시기도 하세요. 최근에 발행 3주년을 맞아서 핑키님이 대표로 에세이를 쓰셨는데, ‘일단 무턱대고 시작한 용기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피드백이 있었어요. 이런 따뜻한 피드백이 있는가 하면, 어떤 콘텐츠에 대해서는 객관성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고 피드백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팀장님 같은 느낌이에요 (웃음).
공적인사적모임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게요. 3년간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다양한 개발협력 이슈를 접하고, 그러면서 개발협력 생태계의 트렌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혹시 그 과정에서 느끼거나 목격하신 이 분야의 변화가 있을까요?
러에포 |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요. 변한 것도 물론 있죠. 예를 들어, 처음에는 초기 멤버 4명이 모두 환경 단체 출신이다 보니까 기후에 관한 얘기도 많았고, ODA나 개발협력 정책에 대한 내용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환경 얘기가 너무 많다는 피드백도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기사 10개를 선정하면 그중에 서너 개에는 기후 이야기가 들어가는데 이제는 그런 피드백이 없고, 되게 다양한 기후 얘기가 나와도 다들 이해를 하세요. 넓게는 북반구 전체와 한국 정부의 책임 묻는 기사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래서 개발협력 분야에도 그런 경향이 반영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건 새마을운동과 K-라이스벨트로 이어지는 그런 국익 추구의 기조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DAC 피어리뷰 시민사회 보고서를 봤는데, 그동안 김칩에서 다뤄 왔던 주제들이 다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정말 변하지 않는 흐름들이 있어요. 원조 분절화 얘기나, 지나친 국익 추구라거나, 한국 기업 퍼주기식이라거나, 예산은 늘어났는데 감시 체계는 부족하다거나, 이런 얘기들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레아 | 저는 그래도 좀 변화된 부분이라고 한다면 김칩을 포함해서 목소리를 내는 매체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많아지면서 노동 환경 영역이 주목을 더 받게 된 것 같아요. 우리 업계 젊은이들의 사명감 페이, 열정 페이에 관한 문제들이 10년 전에도 똑같이 있었지만 그때는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선배들도 다 그렇게 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나 보다’ 했다면 최근에는 관련된 연구도 많이 하시고 사람들 간에 담론도 많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의 변화는 분명히 있지 않나 싶어요.
최근에 KOICA에서 인력 등급 체계가 바뀌어서 6급이 생겼어요. 과거에는 가장 낮은 급수인 5급에서 4급으로 넘어가려면 7년이 걸렸거든요. 그 사이에는 받는 돈이 안 바뀐다는 거죠. 7년 동안 근무를 했는데 월급이 안 바뀐다면 누가 그 판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5급에서 4급으로 넘어가는 부분에 한계점이 있었는데, 최근에 6급을 만들면서 기존에 5급이 받던 돈을 6급이 받고, 6급에서 5급으로 넘어가는 데 이제 3년밖에 안 걸려요. 중간 다리가 생기면서 월급이 그래도 조금 올라가는 구조가 된 거죠. 많은 청년들의 애로사항이 계속 발생하고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런 변화도 가능해진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같이 모여 있는 익명 카톡방도 있고 뉴스레터도 있으니까 ‘내가 당하는 부당함이 진짜 부당한 거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구조도 만들어진 것 같고요. 다만 기존 언론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이 아닐 뿐인 거죠.
콘텐츠를 제작하시는 입장에서 보실 때,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더 많아져야 하는 콘텐츠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러에포 |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얘기를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된다고 봐요. 특정 정당들에 대한 얘기는 물론 객관적으로 해야겠죠. 하지만 정책과 관련된 제안 같은 것은 청년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콘텐츠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빈곤포르노 얘기가 나왔을 때도 개발 NGO들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한 내외부의 불만과 질타도 있었잖아요. 불편한 이야기를 했을 때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다들 얘기를 못 하는데, 그래서 안전하게 비판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피다에서는 애드보커시를 하시니까 이런 얘기들을 피움에서도 많이 다루시잖아요. 그런데 그걸 볼 때마다 이쯤 되면 다른 데서도 좀 거들어 주는 콘텐츠가 나올 때가 됐는데 싶지만, 아직 없는 걸 보면서 좀 더 많은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적이거나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건 결국 국내 단체들의 재원이 ODA 예산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일까요?
러에포 | 저는 시민사회에서만 계속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사실 시민사회는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인건비와 맞닿아 있는 예산 문제가 있고, 그걸 알기 때문에 윗분들도 조직 운영에 있어 그런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걸 미얀마 사태 때 좀 실감했어요. 미얀마에서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는데 쿠데타에 대해 의견을 쉽게 못 내는 것을 보면서, 어쨌든 개발협력 하는 단체들에서는 이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결국 재원인 거죠.
레아 | 예산이 많은 걸 제한하는 것 같아요.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돈은 다 정부 ODA 예산에서 나오고 있는 판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는 주니어 양성도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돈을 더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콘텐츠 차원에서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유료로 이용할 수 있는 높은 품질의 지식 콘텐츠가 적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냥 적당한 퀄리티에 무료로 뿌려지는 콘텐츠가 훨씬 많죠. 여기에 투자를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구조가 안 나와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마케팅이나 IT 분야에서는 한 15만 원짜리 강의를 들으면 그만큼 내 연봉이 뛴단 말이죠. 그런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내가 나의 커리어에 돈을 투자하고 더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소비한다 한들, 나의 보수를 제한하는 것은 나의 실력이 아니라 발주 기관에서 나의 맨데이(주: 투입 일수)를 얼마로 정했는가, 나의 파견 기간을 어디까지로 잡았는가, 이런 것들이니까 사람들이 실력을 쌓는 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돈을 투자해서 만들 정도로 품질이 높은 콘텐츠는 더 많이 나올 수도 있는데 아직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김칩이 매체로서 콘텐츠를 통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 수행하고 싶은 핵심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러에포 | 처음 시작했던 그대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그게 개인적 차원의 청년의 이야기였다면, 최근에는 청년들 간의 이야기, 청년들이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요. 사실 김칩만 있을땐 불가능할 수도 있거든요. 근데 행동팀이 있기 때문에 ‘빈포선셋’(주: 빈곤포르노 근절 캠페인 그룹), ‘비스킷 포 미얀마’(주: 미얀마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 캠페인) 등의 활동이 진행되고 있으니 김칩을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확산하고 다른 사람들의 참여도 촉진하는 스피커로서 기여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김칩이 갖는 미디어로서의 역할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멤버들의 목소리를 실으면서 청년으로서의 정체성도 추구하고, 그러면서 객관적인 태도도 유지하는 것이 공통의 목표예요. 객관적인 팩트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건 김칩이 할 일은 아니에요. 글을 통해서 어딘가 가려운 데를 좀 긁어 주는 그런 재밌는 콘텐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단신 기사의 경우에도 있는 걸 요약만 해서 내보내는 건 우리의 역할이 아니고, 청년의 관점으로 비판도 하고, 후속 대책도 요구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레아 | 김칩이 원래 갖고 있던 색깔을 더 강화하는, 그러니까 기존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더 다채롭게 만든다는 기조로 새 멤버들이 모였다고 생각해요. 공적 재원과 기성 세대가 의사 결정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개발협력 분야지만, 실제 활동을 하는 건 청년들이고 이 청년들이 계속 살아남고 커야 이 판이 바뀐다는 걸 인지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거든요. 그런 건강한 비판의 시작으로서 김칩이 계속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뉴스레터를 통해 전할 단신 기사를 선별할 때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내용들보다는 찾아내기 어려운, 또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려고 노력하고요. 기획 기사나 에세이를 쓰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 내더라도 뭔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 주고 계세요.
사진 제공: 공적인사적모임
말씀 나누면서 ‘청년’, ‘청년의 관점’을 많이 언급해 주고 계세요. 김칩에서 말하는, 혹은 두 분이 생각하시는 ‘청년’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러에포 | 마음이 젊은 사람이죠.
레아 | 제가 처음에 김칩에 합류했을 때, 공사모 원년 멤버분께서 제게 가이드를 주시면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강조하셨어요. 스스로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게 좋겠다고 해 주셔서, 그 이야기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어요. 사실 저도 법적으로 정하는 청년의 범위는 벗어났거든요 (웃음). 스스로 청년이라고 생각해야 청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스스로 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담을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러에포 |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김칩 멤버들의 연령대 구성도 달라질 수 있고, 독자들의 페르소나(주: 마케팅 용어로, 고객층의 공통적인 특성을 대표하는 가상의 인물)도 달라질 수 있어요. 저희가 내부적으로 콘텐츠의 표준화 작업에 힘은 쓰지만, 그 안에서 콘텐츠의 다양성은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변화에 따라 김칩도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멤버들의 변화하는 목소리도 유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구독자들과 함께 변화해 갈 김칩의 모습도 기대가 됩니다. 그렇다면 구독자들이 김칩을 통해 얻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레아 | 연대감. 결국 외롭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이 판에 처음 들어왔을 때 회사 사람들 외에는 같은 분야 사람들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고, 궁금한 걸 누군가에게 묻고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너무 없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회사 안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퇴사를 하고, 그렇게 내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는 걸 보면서 이렇게 계속 외롭게 살아야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 막 입문한 분들이 좌절하거나 괴로운 상황이 닥쳤을 때 외로워하지 않고, 나 말고도 누군가 이 길을 걸은 사람도 있고, 똑같은 길을 걷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를 응원해 줄 수 있다는 그런 연대감을 김칩에서 느꼈으면 해요.
러에포 | 용기와 동료애. 별것 아닌 계기로 시작했지만 좋은 동료들 덕분에 꾸준하게 할 수 있었어요. 이런 걸 보면서 ‘쟤도 저렇게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사소하게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그러면 그만큼 또 좋은 동료들이 생기고, 그걸 보는 분들이 다시 지지를 얻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꾸준하게 제가 이 자리에 있음으로써 다른 분들이 용기와 동료애를 얻어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칩, 그리고 피움의 구독자들을 위해 앞으로 계획 중인 김칩의 활동이나 콘텐츠를 미리보기로 공개해 주실 수 있나요?
러에포 | 올 연초에 공사모 인원이 거의 두 배 이상 늘었어요. 그래서 사실 이번 연도에는 기존에 갖고 있던 콘텐츠에 새로 오신 분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접목하고 안정화할지가 제일 큰 이슈였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좀 안정이 된 게 보이니까, 내년에는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적용해 볼까 하는 이야기들을 계속 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내년에는 좀 더 초년생을 위한 코너가 있으면 좋겠다, 단신 기사를 5줄 내외로만 보는 건 아쉬우니 그걸 좀 더 톺아보자, 협업도 다양하게 해 보자 등 여러 의견들을 더 많이 받아 보는 시간이 지금은 필요한 것 같아요. 한마디로 일단 현재와 비슷한데 조금 더 다양한 코너들을 내년에는 시도해 보지 않을까 싶네요.
레아 | 제가 김칩 발행될 때마다 자체적으로 분야를 분류해서 어디가 콘텐츠가 비고 어디에 몰리는지를 체크하고 있었는데요, 올해는 너무 바빴지만 내년에는 시간이 조금 더 날 것 같아서 비는 부분에 기사를 좀 더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인터뷰 콘텐츠도 ‘NGO는 아니지만 국제개발협력 합니다’ 코너 외에도 대학교 학생들과 협업해서 진행해 본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제안을 해 보려고 하고요. 다른 매체들과의 협업도 좋겠고, 공사모 멤버들을 위한 내부 강의들이 있는데 그걸 김칩 구독자 대상으로 오픈한다거나, 찬반 논란이 될 만한 이슈들이 개발협력 분야 내부에 많이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도 설문을 받아본다거나 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에 더욱 다채로운 콘텐츠로 채워질 김칩이 기다려집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김칩 외에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매체’의 기능을 하고 있는 독립 채널들이 생겨났는데요. 각자 다른 다양한 형태로 개발협력 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러에포 |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중요한 건 만드는 분들이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시면서, 외부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만족감을 얻으면서 오래오래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저희 같은 미디어의 특성은 뭐가 됐든 쭉 가는 힘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 소진되지 않고 오랫동안 뵈었으면 좋겠어요.
레아 | 저도 비슷해요. 결국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내가 보고 싶고 내가 읽고 싶은 걸 만들어야 재밌는 것 같거든요. 내가 읽고 싶고 재밌어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구독자도 생기고 청자도 생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직은 이 판이 작은 만큼 너무 의식해서 각 잡고 휘황찬란한 걸 만들려고 하면 진짜 힘들 것 같아요. 그냥 소소하게 즐거운 거 하시면서 조금씩 키워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최근에 공사모 안에서도 번아웃이라는 이슈를 많이 논의했어요.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 우리가 시간을 내서 만드는 과정에서 당연히 어느 시점에는 번아웃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이상한 게 아니니까, 쉬어야 될 때 쉬고 하고 싶을 때 하면서 이어 나가는 것도 필요한 용기인 것 같아요. 아무도 안 보면 우리라도 보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힘을 빼고요.
📌 김칩/공적인사적모임 채널
인터뷰 진행・정리: 김향지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