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대안 피다는 국제개발협력의 안팎과 활동가의 사이를 흐르는 콘텐츠를 만드는 비영리 스타트업 '라운지플러스'와 함께 국제개발협력의 경계 또는 사각지대에서 새롭거나 대안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총 3회에 걸쳐 연재되는 본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은 '호모인테르'의 박재윤·오유현 공동대표인데요. 호모인테르는 인간다운 통역을 통해 상호연결성을 느끼고 서로 다름이 풍요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상호문화철학과 심리정서적 측면을 통합한 공공 서비스 통역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지난 2018년 활동가 연구팀으로 출발한 이래 6년간 자신만의 활동 영역을 공고히 하며 지역사회부터 국제기구까지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하며 바쁘게 일하고 있는 호모인테르. AI가 통역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시대에 '사람의 얼굴을 한 소통'의 가치를 확산하는 호모인테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통역이란 신뢰로 연결된 상호문화의 교집합을 만드는 일
호모인테르 박재윤·오유현 공동대표 인터뷰
호모인테르의 캐릭터, 코코와 달달 (출처: 호모인테르 블로그)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homo)', 그리고 사이를 의미하는 '인테르(inter)'라는 두 라틴어 단어가 결합한 단체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단체명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박재윤 (이하 재윤) | 서울시 <활력향연>* 프로젝트 때부터 팀명으로 썼는데요. 소통하는 인간, 그리고 연결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사는 인간은 없잖아요.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도 나오는 것처럼, 무인도에 떨어지면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서라도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인간이죠. 그래서 '호모 인테르'인 거고요. 특히 난민·이주민 통역을 하시는 분들은 언어적 연결자이자 문화적 연결자, 그리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정서적 연결자라고 해요. 그런 측면에서 이 이름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았고, 그렇게 팀명으로 출발한 '호모인테르'가 단체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줄여서 '호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자어로 '호인(好人)'은 좋은 사람을 말하잖아요. 그런 중의적인 뜻도 가지고 있죠.
* 활력향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시NPO지원센터(현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한 공익 활동가 연구 지원 사업
소통은 곧 연결이고, 연결은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죠. 호모인테르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소통'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는데요. 현재의 우리 사회의 소통에 통합되지 못하고 배제되고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요?
재윤 | 호모인테르를 구상할 때 경계, 접촉, 만남 같은 개념들을 다루고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경계선 바깥쪽, 이방인, 우리-너희 같은 식의 구분 짓기, 타자화 등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소외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됐는데, 이게 통역의 사각지대인 거예요. 이 사회에서 같이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같은 한국 땅에 살면서도 외국인, 이주민이라는 이름으로 공공 서비스에 접근을 못 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런 분들이 사회에 융합이 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나아가기 이전에, 사회의 기본적인 인권으로서의 공적 접근권에 있어 배제되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배제되지 않는 소통'을 이야기했고요.
활동을 하다 보니 이 슬로건의 의미가 확장이 되더라고요. 저희는 내면의 셀프 케어를 강조하는데, 자기가 자기를 배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소통'이란 연결감을 계속 회복해 가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유현 (이하 유현) | 난민 통역에 있어 소수 언어는 여전히 서비스가 부족하고, 아예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통역을 할 때 난민 당사자들이 자신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체크하는데, 그건 공용어일 뿐이고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부족어는 아니에요. 이주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난민은 상황이 더 심각하죠.
재윤 | 결국 인권의 차원에서 언어와 소통을 보자는 거예요. 소수언어를 구사하는 소수자들을 단순히 돕는 차원이 아니라요. 예를 들어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에서 국제회의를 하면 단 한 사람이 참여를 해도 그 사람을 위해 통역을 해요. 한국에서는 영어가 공용어니까 영어를 쓰라고 하잖아요. 아주 소수언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이 사회에 필요한데요. 언어 인권의 차원에서 공공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자는 이야기를 저희가 하고 있어요.
유현 | 재난의 경우, 이태원 참사의 사례에서도 이주민들은 언어 장벽이 있다 보니 심리 상담 서비스를 포함한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이렇게 재난 관련 지원과 심리 상담 통역에서 배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활동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인간'의 이름으로 활동하시는 두 분이라, 서로 소통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으실 것 같아요.
재윤 | 저희도 처음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죠. 일하는 방식도 다르고, 소통의 방식도 달랐어요. 그래서 소통에 있어서도 조율이 필요했고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유현: 요즘도 가끔씩 안 될 때도 있지만요.) 바로 그때가 배움의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교육을 나가면 같이 진행을 하는데, 연차가 쌓인 요즘에는 '합이 왜 이렇게 좋냐', '부부 아니냐' 이런 얘기도 많이 들어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데요. 우리가 소통이 되어야 사람들에게도 우리 콘텐츠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얘기를 서로 하면서, 그 순간을 배움의 순간이라 생각했어요.
그만큼 달랐던 두 분이 처음 의기투합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지는데요.
재윤 | 유현 대표님은 본래 재난 심리 지원 활동을 하는 조직에서 활동하고 계셨고, 저는 표현 예술 상담 쪽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요. 중간에 아는 분이 저희 둘이 만나면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고 하셔서 처음 대화를 시작하고, 서로 통하는 지점들을 발견했어요. 그즈음 유현 대표님이 <활력향연> 프로그램을 해 보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서 호모인테르라는 이름으로 지원을 하게 됐죠.
두 분 모두 심리 상담과 관련된 배경이 있으셨군요. 상담과 통역이라니, 연결되는 지점이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조금 아리송하네요.
유현 | 저는 프랑스에서 10년 정도 있다가 2014년에 한국에 돌아왔는데요. (주: 오유현 대표는 프랑스 국가 공인 심리상담가다.) 2015년 네팔 대지진 이후에 인도적 지원 분야와 심리 지원 분야의 활동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난 현장에서의 심리 지원 활동을 해 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결과 김동훈 대표님(주: 라이프라인 코리아 대표·더프라미스 상임이사)의 발의로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 국제재난심리지원단 이지스(AEGIS: Aid Ecosystem for Global Inner-peace Solutions)가 결성됐죠. 저는 프랑스에서부터 심리 상담을 하면서 난민이나 이주민, 노숙자, 노인, 자폐 스펙트럼 아동 등 위기 상황에 있는 다양한 경계인들을 만나 왔는데요. 그 경험을 살려 이지스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또 국내에서도 난민 지원 단체들을 통해 난민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전문 통역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어 통역에 대한 필요가 있어 통역을 하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관심을 갖게 됐죠. 엄청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통역을 하는 건 포기하고, 통역하는 분들이 잘할 수 있게 지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윤 | 저의 경우에는 언어를 좋아해서 학부 때 불문학과 영어교육을 전공했고,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며 늘 세계시민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국제기구에 관심이 생겨 국제대학원도 갔고요. 프랑스에서 석사 과정으로 MBA를 하고 프랑스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이주민의 삶을 경험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글로벌 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나는 사람을 키우고 교육하는 것에 관심이 있구나' 하고 깨닫고 상담, 다문화, 상호문화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어요. 저도 전문 통역사는 아니지만 프랑스에 살면서, 또 상담사로 일을 하면서 관련 분야에서 통역을 할 상황이 많이 있었는데요. 유현 대표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호문화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난민 통역의 사각지대를 해결해야겠다는 데에서 고민이 통했어요.
호모인테르 오유현·박재윤 공동대표
난민 통역의 사각지대는 앞서도 언급해 주셨는데, 국내에 난민 통역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 문제일까요?
유현 | 난민 통역을 하는 인력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 자원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특히 학생들이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그 풀이 고정적일 수가 없고요. 통역사 풀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성만 된다고 끝이 아니라 이분들이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도 이루어져야 하는데요. 보수 교육을 제공한다든지 통역 현장에서의 힘든 지점을 해소한다든지 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활동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예요.
재윤 | 그래서 저희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통역 교육의 방식은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하는 대화 통역과 같은 난민 통역의 특수성을 담지 못하고 국제회의 통역 방식 그대로였는데, 이건 옳지 않다고 본 거죠. 통역 현장의 환경 자체가 포멀한 게 아니기 때문에 우선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했고요. 그리고 통역사가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에 대비한 지원책이 없었어요. 저희가 처음 교육을 진행했을 때가 기억이 나는데, 한 분이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통역을 하면서 밤마다 악몽을 자꾸 꾸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요. 난민 통역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든 현장이고, 통역을 하시는 분들도 간접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데 그런 어려움에 닥쳤을 때 번아웃이 오면 그만두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기존 인력이 빠져나가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호모인테르가 하는 일은 통역 자체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과 이주민을 위해 통역을 하는 분들이 더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군요.
재윤 | 예전에 비영리단체들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만든 '모엔'이라는 대학생 비영리 스타트업에서 저희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요. 우리는 통역을 제공하는 건 아니지만, 심리적 지원도 하고 통역 교육도 하는 단체라고 설명을 하니까 곰곰히 듣더니 딱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정리해 주더라고요. '호모인테르는 돕는 사람들을 돕는 단체네요'라고요. 그때부터 저희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표현을 쓰고 있어요.
유현 | 저희 팀의 배경에서 비롯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희 두 명 모두 통역의 경험이 있고 상담을 공부하기도 했다 보니 마음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가졌어요. 보통 통역이라고 하면 대단히 멋진 장면을 떠올리는데요. 백조가 수면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물 속에서는 쉼 없이 발장구를 치고 있듯이, 보이지 않는 노고가 많은 일이에요. 특히 난민·이주민 통역에 있어서는 그 어려움이 더 크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아까도 대리외상, 간접외상 이야기를 했지만 심리적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일이에요. 고문이나 폭력에 대한 얘기를 전달해야 되기도 하니까요. 비밀 유지 문제 때문에 이런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도 없다 보니, 이분들이 경험할 심리적 어려움을 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통역사들만 저희 활동의 참여자들은 아니에요. 저희가 주로 하는 질문 중에 '통역은 누가 하나요?'라는 질문이 있어요. 대부분 '통역사가 하죠' 하고 대답하는데요. 저희는 교육을 할 때 항상 소통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와야 된다고 해요. 현장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소통의 룰을 알아야 되거든요.
재윤 | 저희가 강조하는 게, '통역을 위한 통역'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통역'이라는 얘기예요. 흔히 통역사를 불렀는데 소통이 잘 안되는 것 같으면 통역사만 문제 삼아요. 통역사의 능력이 부족해서, 통번역대학원을 나오지 않은 비전문 통역사라서 그런 거라고 치부해 버리는 현상을 많이 보는데요. 저희는 그게 아니라는 얘기를 해요. 소통을 함께하는 나머지 분들도 통역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소통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하죠. 통역사는 부스에 들어가 있고 청자는 수신기를 끼고 통역을 듣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니까요. 통역사는 뒤에 그림자처럼 머물러 있는 이들이 아니고, 소통의 현장에 참여하는 모두가 그 통역 상황을 3자 대화로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국제개발협력 활동 현장을 떠올리면서 많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네요. 오히려 언어적 기술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현장을 잘 알고, 취약한 환경에 놓인 현장을 애정 있게 바라봐 주는 참여자가 통역을 할 때 현지 주민들과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유현 | 최근 인도적 지원 현장에서의 소통에 대한 자료가 번역된 게 있는데요.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60% 이상의 응답자들이 현장의 인도적 지원 활동가와 소통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실제로 현지 스태프가 전달하는 한국 활동가의 설명을 사업 지역 주민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례에 대해 듣기도 했고요. 국제개발협력을 하시는 분들이 통역에 대해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현지 스태프가 통역을 할 때 어떤 가이드를 줘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가야 된다고 봐요. 저는 소통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데, 국제개발협력을 하시는 분들도 현장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가시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의도하는 바를 소통하지 못한다면 목표하는 변화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재윤 |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저는 신뢰라고 생각해요. 동시통역의 세계에서는 '오늘 통역이 있었어?' 하는 얘기를 듣는 게 최고의 통역이라고 해요. '오늘 통역 잘했다' 이상으로, 대화가 끝나고 나서 '맞다, 오늘 통역이 있었구나' 하고 완전히 까먹게 하는 게 진짜 통역의 최고봉인 거예요. 물론 난민 통역 현장에서는 사람이 앞에 있기 때문에 진짜 없는 사람처럼 여길 순 없겠죠. 그렇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물 흐르듯이 신뢰를 가지고 흘러가는 게 필요하고 그런 면에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는 게 중요해요.
전문 통역사들은 의뢰를 받을 때 길게는 한 달, 짧아도 일주일 전에는 해당 통역 건에 대한 정보를 받잖아요. 완전히 생소한 분야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학습을 많이 하고 간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분들보다 그 영역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다면, 예를 들어 현장 활동을 십몇 년 한 사람이라면 언어 때문에 소통이 잘 된다기보다는 그 현장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신뢰가 있기 때문에 잘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이렇게 얘기했다면 그게 맞겠지' 하고 신뢰가 흐를 수 있게 교감을 하면서 소통을 할 수 있는 거죠.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다름'에 대한 경계와 혐오가 커져가는 것이 문제인데요. 이런 시대에 있어 통역, 그리고 통역사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유현 | 이주민 비율이 높은 일부 지역들에서는 점차 그분들만 모여 사는 동네들도 생기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걱정이 많이 돼요. 점차 단절과 불통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결국 통역사는 언어적, 문화적, 정서적인 매개를 하는 존재니까 사회적인 단절, 계층과 문화의 단절을 이어냄으로써 이주민들이 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그분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재윤 | 우리가 서로 다름에 대해서 긍정적인 접근을 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게 바로 상호문화적인 접근이거든요. 상호문화의 시작이 '겹침'에서 출발해요. 서로 다르기만 하면 만날 일이 없어요. 너무 같아도 질문이 일어나지 않고요. 겹치면서 비로소 대화가 시작되는데요. 서로 달라서 겹쳐지지 않는 두 개의 원을 신뢰라는 것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대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게 통역사들이에요. 그래서 겹침과 만남의 역할에 있어서의 연결자, 즉 '호모 인테르'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다름과 배제, 차별에 대해 스스로 잘 인지하고,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통을 매개할 것인가 고민함으로써 단순한 기계적 언어 전달이 아닌, 평화의 소통을 만들어 가는 것이 통역사들의 역할이 아닐까요.
인터뷰 진행·정리: 발전대안 피다 x 라운지플러스
발전대안 피다는 국제개발협력의 안팎과 활동가의 사이를 흐르는 콘텐츠를 만드는 비영리 스타트업 '라운지플러스'와 함께 국제개발협력의 경계 또는 사각지대에서 새롭거나 대안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총 3회에 걸쳐 연재되는 본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은 '호모인테르'의 박재윤·오유현 공동대표인데요. 호모인테르는 인간다운 통역을 통해 상호연결성을 느끼고 서로 다름이 풍요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상호문화철학과 심리정서적 측면을 통합한 공공 서비스 통역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지난 2018년 활동가 연구팀으로 출발한 이래 6년간 자신만의 활동 영역을 공고히 하며 지역사회부터 국제기구까지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하며 바쁘게 일하고 있는 호모인테르. AI가 통역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시대에 '사람의 얼굴을 한 소통'의 가치를 확산하는 호모인테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통역이란 신뢰로 연결된 상호문화의 교집합을 만드는 일
호모인테르 박재윤·오유현 공동대표 인터뷰
호모인테르의 캐릭터, 코코와 달달 (출처: 호모인테르 블로그)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homo)', 그리고 사이를 의미하는 '인테르(inter)'라는 두 라틴어 단어가 결합한 단체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단체명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박재윤 (이하 재윤) | 서울시 <활력향연>* 프로젝트 때부터 팀명으로 썼는데요. 소통하는 인간, 그리고 연결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사는 인간은 없잖아요.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도 나오는 것처럼, 무인도에 떨어지면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서라도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인간이죠. 그래서 '호모 인테르'인 거고요. 특히 난민·이주민 통역을 하시는 분들은 언어적 연결자이자 문화적 연결자, 그리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정서적 연결자라고 해요. 그런 측면에서 이 이름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았고, 그렇게 팀명으로 출발한 '호모인테르'가 단체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줄여서 '호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자어로 '호인(好人)'은 좋은 사람을 말하잖아요. 그런 중의적인 뜻도 가지고 있죠.
* 활력향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시NPO지원센터(현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한 공익 활동가 연구 지원 사업
소통은 곧 연결이고, 연결은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죠. 호모인테르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소통'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는데요. 현재의 우리 사회의 소통에 통합되지 못하고 배제되고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요?
재윤 | 호모인테르를 구상할 때 경계, 접촉, 만남 같은 개념들을 다루고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경계선 바깥쪽, 이방인, 우리-너희 같은 식의 구분 짓기, 타자화 등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소외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됐는데, 이게 통역의 사각지대인 거예요. 이 사회에서 같이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같은 한국 땅에 살면서도 외국인, 이주민이라는 이름으로 공공 서비스에 접근을 못 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런 분들이 사회에 융합이 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나아가기 이전에, 사회의 기본적인 인권으로서의 공적 접근권에 있어 배제되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배제되지 않는 소통'을 이야기했고요.
활동을 하다 보니 이 슬로건의 의미가 확장이 되더라고요. 저희는 내면의 셀프 케어를 강조하는데, 자기가 자기를 배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소통'이란 연결감을 계속 회복해 가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유현 (이하 유현) | 난민 통역에 있어 소수 언어는 여전히 서비스가 부족하고, 아예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통역을 할 때 난민 당사자들이 자신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체크하는데, 그건 공용어일 뿐이고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부족어는 아니에요. 이주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난민은 상황이 더 심각하죠.
재윤 | 결국 인권의 차원에서 언어와 소통을 보자는 거예요. 소수언어를 구사하는 소수자들을 단순히 돕는 차원이 아니라요. 예를 들어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에서 국제회의를 하면 단 한 사람이 참여를 해도 그 사람을 위해 통역을 해요. 한국에서는 영어가 공용어니까 영어를 쓰라고 하잖아요. 아주 소수언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이 사회에 필요한데요. 언어 인권의 차원에서 공공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자는 이야기를 저희가 하고 있어요.
유현 | 재난의 경우, 이태원 참사의 사례에서도 이주민들은 언어 장벽이 있다 보니 심리 상담 서비스를 포함한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이렇게 재난 관련 지원과 심리 상담 통역에서 배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활동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인간'의 이름으로 활동하시는 두 분이라, 서로 소통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으실 것 같아요.
재윤 | 저희도 처음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죠. 일하는 방식도 다르고, 소통의 방식도 달랐어요. 그래서 소통에 있어서도 조율이 필요했고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유현: 요즘도 가끔씩 안 될 때도 있지만요.) 바로 그때가 배움의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교육을 나가면 같이 진행을 하는데, 연차가 쌓인 요즘에는 '합이 왜 이렇게 좋냐', '부부 아니냐' 이런 얘기도 많이 들어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데요. 우리가 소통이 되어야 사람들에게도 우리 콘텐츠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얘기를 서로 하면서, 그 순간을 배움의 순간이라 생각했어요.
그만큼 달랐던 두 분이 처음 의기투합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지는데요.
재윤 | 유현 대표님은 본래 재난 심리 지원 활동을 하는 조직에서 활동하고 계셨고, 저는 표현 예술 상담 쪽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요. 중간에 아는 분이 저희 둘이 만나면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고 하셔서 처음 대화를 시작하고, 서로 통하는 지점들을 발견했어요. 그즈음 유현 대표님이 <활력향연> 프로그램을 해 보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서 호모인테르라는 이름으로 지원을 하게 됐죠.
두 분 모두 심리 상담과 관련된 배경이 있으셨군요. 상담과 통역이라니, 연결되는 지점이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조금 아리송하네요.
유현 | 저는 프랑스에서 10년 정도 있다가 2014년에 한국에 돌아왔는데요. (주: 오유현 대표는 프랑스 국가 공인 심리상담가다.) 2015년 네팔 대지진 이후에 인도적 지원 분야와 심리 지원 분야의 활동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난 현장에서의 심리 지원 활동을 해 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결과 김동훈 대표님(주: 라이프라인 코리아 대표·더프라미스 상임이사)의 발의로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 국제재난심리지원단 이지스(AEGIS: Aid Ecosystem for Global Inner-peace Solutions)가 결성됐죠. 저는 프랑스에서부터 심리 상담을 하면서 난민이나 이주민, 노숙자, 노인, 자폐 스펙트럼 아동 등 위기 상황에 있는 다양한 경계인들을 만나 왔는데요. 그 경험을 살려 이지스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또 국내에서도 난민 지원 단체들을 통해 난민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전문 통역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어 통역에 대한 필요가 있어 통역을 하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관심을 갖게 됐죠. 엄청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통역을 하는 건 포기하고, 통역하는 분들이 잘할 수 있게 지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윤 | 저의 경우에는 언어를 좋아해서 학부 때 불문학과 영어교육을 전공했고,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며 늘 세계시민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면서 국제기구에 관심이 생겨 국제대학원도 갔고요. 프랑스에서 석사 과정으로 MBA를 하고 프랑스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이주민의 삶을 경험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글로벌 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나는 사람을 키우고 교육하는 것에 관심이 있구나' 하고 깨닫고 상담, 다문화, 상호문화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어요. 저도 전문 통역사는 아니지만 프랑스에 살면서, 또 상담사로 일을 하면서 관련 분야에서 통역을 할 상황이 많이 있었는데요. 유현 대표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호문화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난민 통역의 사각지대를 해결해야겠다는 데에서 고민이 통했어요.
호모인테르 오유현·박재윤 공동대표
난민 통역의 사각지대는 앞서도 언급해 주셨는데, 국내에 난민 통역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 문제일까요?
유현 | 난민 통역을 하는 인력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 자원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특히 학생들이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그 풀이 고정적일 수가 없고요. 통역사 풀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성만 된다고 끝이 아니라 이분들이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도 이루어져야 하는데요. 보수 교육을 제공한다든지 통역 현장에서의 힘든 지점을 해소한다든지 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활동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예요.
재윤 | 그래서 저희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통역 교육의 방식은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하는 대화 통역과 같은 난민 통역의 특수성을 담지 못하고 국제회의 통역 방식 그대로였는데, 이건 옳지 않다고 본 거죠. 통역 현장의 환경 자체가 포멀한 게 아니기 때문에 우선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했고요. 그리고 통역사가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에 대비한 지원책이 없었어요. 저희가 처음 교육을 진행했을 때가 기억이 나는데, 한 분이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통역을 하면서 밤마다 악몽을 자꾸 꾸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요. 난민 통역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든 현장이고, 통역을 하시는 분들도 간접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데 그런 어려움에 닥쳤을 때 번아웃이 오면 그만두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기존 인력이 빠져나가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호모인테르가 하는 일은 통역 자체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과 이주민을 위해 통역을 하는 분들이 더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군요.
재윤 | 예전에 비영리단체들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만든 '모엔'이라는 대학생 비영리 스타트업에서 저희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요. 우리는 통역을 제공하는 건 아니지만, 심리적 지원도 하고 통역 교육도 하는 단체라고 설명을 하니까 곰곰히 듣더니 딱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정리해 주더라고요. '호모인테르는 돕는 사람들을 돕는 단체네요'라고요. 그때부터 저희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표현을 쓰고 있어요.
유현 | 저희 팀의 배경에서 비롯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희 두 명 모두 통역의 경험이 있고 상담을 공부하기도 했다 보니 마음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가졌어요. 보통 통역이라고 하면 대단히 멋진 장면을 떠올리는데요. 백조가 수면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물 속에서는 쉼 없이 발장구를 치고 있듯이, 보이지 않는 노고가 많은 일이에요. 특히 난민·이주민 통역에 있어서는 그 어려움이 더 크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아까도 대리외상, 간접외상 이야기를 했지만 심리적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일이에요. 고문이나 폭력에 대한 얘기를 전달해야 되기도 하니까요. 비밀 유지 문제 때문에 이런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도 없다 보니, 이분들이 경험할 심리적 어려움을 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통역사들만 저희 활동의 참여자들은 아니에요. 저희가 주로 하는 질문 중에 '통역은 누가 하나요?'라는 질문이 있어요. 대부분 '통역사가 하죠' 하고 대답하는데요. 저희는 교육을 할 때 항상 소통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와야 된다고 해요. 현장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소통의 룰을 알아야 되거든요.
재윤 | 저희가 강조하는 게, '통역을 위한 통역'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통역'이라는 얘기예요. 흔히 통역사를 불렀는데 소통이 잘 안되는 것 같으면 통역사만 문제 삼아요. 통역사의 능력이 부족해서, 통번역대학원을 나오지 않은 비전문 통역사라서 그런 거라고 치부해 버리는 현상을 많이 보는데요. 저희는 그게 아니라는 얘기를 해요. 소통을 함께하는 나머지 분들도 통역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소통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하죠. 통역사는 부스에 들어가 있고 청자는 수신기를 끼고 통역을 듣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니까요. 통역사는 뒤에 그림자처럼 머물러 있는 이들이 아니고, 소통의 현장에 참여하는 모두가 그 통역 상황을 3자 대화로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국제개발협력 활동 현장을 떠올리면서 많이 공감이 가는 부분이네요. 오히려 언어적 기술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현장을 잘 알고, 취약한 환경에 놓인 현장을 애정 있게 바라봐 주는 참여자가 통역을 할 때 현지 주민들과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유현 | 최근 인도적 지원 현장에서의 소통에 대한 자료가 번역된 게 있는데요.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60% 이상의 응답자들이 현장의 인도적 지원 활동가와 소통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실제로 현지 스태프가 전달하는 한국 활동가의 설명을 사업 지역 주민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례에 대해 듣기도 했고요. 국제개발협력을 하시는 분들이 통역에 대해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현지 스태프가 통역을 할 때 어떤 가이드를 줘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가야 된다고 봐요. 저는 소통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데, 국제개발협력을 하시는 분들도 현장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가시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의도하는 바를 소통하지 못한다면 목표하는 변화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재윤 |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저는 신뢰라고 생각해요. 동시통역의 세계에서는 '오늘 통역이 있었어?' 하는 얘기를 듣는 게 최고의 통역이라고 해요. '오늘 통역 잘했다' 이상으로, 대화가 끝나고 나서 '맞다, 오늘 통역이 있었구나' 하고 완전히 까먹게 하는 게 진짜 통역의 최고봉인 거예요. 물론 난민 통역 현장에서는 사람이 앞에 있기 때문에 진짜 없는 사람처럼 여길 순 없겠죠. 그렇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물 흐르듯이 신뢰를 가지고 흘러가는 게 필요하고 그런 면에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는 게 중요해요.
전문 통역사들은 의뢰를 받을 때 길게는 한 달, 짧아도 일주일 전에는 해당 통역 건에 대한 정보를 받잖아요. 완전히 생소한 분야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학습을 많이 하고 간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분들보다 그 영역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다면, 예를 들어 현장 활동을 십몇 년 한 사람이라면 언어 때문에 소통이 잘 된다기보다는 그 현장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신뢰가 있기 때문에 잘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이렇게 얘기했다면 그게 맞겠지' 하고 신뢰가 흐를 수 있게 교감을 하면서 소통을 할 수 있는 거죠.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다름'에 대한 경계와 혐오가 커져가는 것이 문제인데요. 이런 시대에 있어 통역, 그리고 통역사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유현 | 이주민 비율이 높은 일부 지역들에서는 점차 그분들만 모여 사는 동네들도 생기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걱정이 많이 돼요. 점차 단절과 불통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결국 통역사는 언어적, 문화적, 정서적인 매개를 하는 존재니까 사회적인 단절, 계층과 문화의 단절을 이어냄으로써 이주민들이 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그분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재윤 | 우리가 서로 다름에 대해서 긍정적인 접근을 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게 바로 상호문화적인 접근이거든요. 상호문화의 시작이 '겹침'에서 출발해요. 서로 다르기만 하면 만날 일이 없어요. 너무 같아도 질문이 일어나지 않고요. 겹치면서 비로소 대화가 시작되는데요. 서로 달라서 겹쳐지지 않는 두 개의 원을 신뢰라는 것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대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게 통역사들이에요. 그래서 겹침과 만남의 역할에 있어서의 연결자, 즉 '호모 인테르'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다름과 배제, 차별에 대해 스스로 잘 인지하고,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통을 매개할 것인가 고민함으로써 단순한 기계적 언어 전달이 아닌, 평화의 소통을 만들어 가는 것이 통역사들의 역할이 아닐까요.
인터뷰 진행·정리: 발전대안 피다 x 라운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