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글로벌과 로컬의 경계를 허물며 만드는 지속가능한 삶의 가치 - 순천 유익한상점 양진아 대표 인터뷰

2024-09-30
조회수 431

발전대안 피다는 국제개발협력의 안팎과 활동가의 사이를 흐르는 콘텐츠를 만드는 비영리 스타트업 '라운지플러스'와 함께 국제개발협력의 경계 또는 사각지대에서 새롭거나 대안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총 3회에 걸쳐 연재되는 본 시리즈의 마지막 주인공은 유익한상점/(주)유익컴퍼니 대표 양진아 님입니다. 유익한상점은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편집숍인데요. 지역과 지구를 살리는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가게로, 로컬 콘텐츠와 대안적 소비에 관심이 있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양진아 님은 국제개발협력 활동가 출신으로서 발전대안 피다의 오랜 회원이기도 한데요. 개발협력 경험을 살려 공정무역 제품을 소개하던 것에서 출발해 이제는 글로벌과 로컬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양진아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글로벌과 로컬의 경계를 허물며 만드는 지속가능한 삶의 가치

순천 유익한상점 양진아 대표 인터뷰


순천시 조곡동에 위치한 유익한상점 전경


서울의 NGO에서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하시다가 내려오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순천에서 유익한상점을 여시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양진아 |  저는 구례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순천에서 나왔어요. 대학교나 직장은 다 타지에서 다녔고요. 사실 다시 돌아올 줄은 저도 몰랐는데, 남편이 여수로 발령을 받으면서 내려오게 됐죠. 그때까지만 해도 뭘 해야겠다는 뚜렷한 마음은 없었어요. 


그러다 친구의 부탁으로 고등학생들에게 제가 했던 일에 대해 소개해 줄 일이 있었는데, 서울에서라면 국제개발이나 인권에 관심이 있을 경우 어디서 자원봉사나 인턴십을 하라고 얘기를 해 줄 수가 있겠지만 순천은 제가 지역을 너무 모르니까 되게 난감하더라고요. 그때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단절된 경력을 살려서 지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좋은 기회로 공정무역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갔는데요. 그곳에서 본 공정무역 가게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련되고 예쁘더라고요. 쇼윈도 진열도 마치 명품숍처럼 되어 있고요. 매장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이 쇼핑을 잘할 수 있도록 공간에 여유를 둔다는 원칙이 있었어요. 이런 세련된 매뉴얼에 따라 운영되는 걸 보면서 ‘이렇게 예쁜 가게를 해 보면 좋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막상 처음 창업을 하시려면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시작을 하시게 되셨나요?


양진아 |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서울에서 오랫동안 요리를 하다가 내려와 있었어요. 둘이 서로 뭘 할까 하다가 친구가 먼저 파스타 전문점을 내면서 저한테 식당 한편에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봐라’ 한 거죠. 그래서 친구 가게에서 숍인숍(shop-in-shop: 매장 안의 매장) 형태로 공정무역 바구니를 팔기 시작했어요. 6개월간 시범 판매를 했는데 너무 잘된 거예요. 그래서 문어발 식으로 그런 숍인숍을 여러 군데에서 했어요. 파스타 가게에 공정무역 바구니를 놓았다면 책방에는 코끼리 똥으로 만든 종이 제품을 놓는 식으로, 아이템은 공간에 맞게 차이를 뒀고요. 그렇게 식당, 서점, 호스텔, 카페 등 총 네 군데에서 2년간 계속 테스트를 했어요. 



숍인숍 형태로 운영하시다가 지금과 같은 정식 매장을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까요?


양진아 |  카페를 하던 후배와 한 달간 팝업스토어를 운영했었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거예요. 도대체 진짜 가게는 어디 있는 거냐고요. 후배가 저 대신 한 달 동안 판매를 해 줬는데, 이제는 제발 구멍가게라도 좀 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알아본 곳이 여기예요. 저희 친척 할머니의 댁인데, 마침 비어 있었거든요. 거의 무상으로 빌려주셔서 일단 부담 없이 1년만 해 보자는 마음으로 가게를 열었죠. 


첫 3개월은 길에 사람도 안 다니고, 지역에 어떻게 소개를 해야 될까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봄이 되면 이 뒤에 흐르는 동천에 피는 벚꽃을 보러 순천 사람들이 다 나오는 때가 있거든요. 그 사람들이 여기에 오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프리마켓을 열었어요. 저희 가게와 제가 숍인숍을 했던 가게 4팀, 그리고 추가로 5팀을 더 소개 받아서 한 3시간만 해 보자고 했는데, 첫 마켓이 너무 재밌어서 그 해에만 7번을 열었어요. 그러다 저희 단골들도 판매자로 나오기도 하고요. 그렇게 첫 해에 서로 멤버십이 형성되면서 굉장히 좋은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어요.



유익한상점 양진아 대표


유익한상점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소개하는 것 외에도 ‘밀크로드’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통해 우유팩을 재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데요.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양진아 |  순천은 ‘생태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지역인데, 사실 좀 부담스러운 단어긴 했어요. 그런데 매일 길을 다니다 보면 생태를 키워드로 한 슬로건들이 눈에 보이니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게 되더라고요. NGO에서 활동가로 일했던 경험 덕분에 아이디어를 프로젝트로 만드는 데는 익숙했거든요. 마침 친한 후배가 우유팩을 모아서 생협 매장에 갖다 주면 휴지로 바꿔 준다는 얘기를 해 줘서 저도 한번 모아 봤는데, 한 달에 한 번만 교환을 할 수 있어서 불편함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수집을 해 보기로 했죠. 잡지에서 봤던 우유팩 재활용 제지 업체에 무작정 연락을 했어요. 처음에는 개인은 안 받는다고 하길래 '저희 가게는 조금 더 규모가 있다'고 설득을 했죠. 


처음에는 택배 상자로 한두 개 정도였는데, 저희가 가게를 오픈하고 프리마켓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지역의 작은 카페들이 다 저희 가게에 우유팩을 가져다 주기 시작하면서 양이 점점 많이 늘어났어요. 그때 코로나 때문에 6개월간 가게 문을 닫은 상태였는데, 우유팩 수거량이 매달 늘어나니까 오히려 더 바빴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저희가 모아서 보낸 우유팩의 무게가 8.5톤 정도인데, 5톤을 재활용하면 20년생 소나무 100그루를 베지 않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작년에는 그 성과를 환산해서 나무 100그루를 심으러 몽골에 다녀오기도 했고요. 


밀크로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지역의 가능성을 많이 봤다고 생각해요. 우유팩을 모아서 저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손도 많이 가는데, 너무 열심히 참여해 주시는 거예요. 코로나로 문을 닫고 있을 때도 사람들은 우유팩을 모아 저희에게 가져다 주었고, 저희는 그걸 재활용 업체에 보내는 활동을 계속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재활용 휴지를 코로나 환자들을 격리하는 의료원에 보내 주기도 했고요. 사실 돈을 번 건 아니었지만,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이 쌓였던 것 같아요. 



말씀을 듣다 보니, 처음에는 ‘유익한’ 상품들을 소개하는 가게의 콘셉트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뭔가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된 것 같이 느껴집니다. 


양진아 |  맞아요. 사실 이 한옥을 매입하면서 인생의 큰 변화가 생겼어요. 사실 활동가로 일할 때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큰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한옥을 유지하고 은행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가게 운영 방향도 달라져야 했죠. 무엇보다 손님들이 한옥을 너무 좋아했고, 저 역시 이 공간을 지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정부 지원 사업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로컬 크리에이터’ 사업에 지원을 해서 첫 해에는 떨어졌다가 두 번째 해에 선정이 되었어요. 순천 하면 순천만 갈대잖아요. 이 한옥을 부분적으로 수리해서 지역 장인과 함께 순천만 갈대 빗자루를 만드는 클래스를 진행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지역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이후의 가게 운영 방향도 지역사회에 더욱 집중하는 쪽으로 확장됐어요. 가게가 기차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보니 지역 기념품을 찾는 손님들이 많기도 했고요. 점차 지역 작가들과 협력하여 그들의 제품을 판매하고, 정부 지원을 통해 가게 하드웨어를 보수하며 지역적 특성을 더 강화하게 됐어요. 이렇게 점점 더 로컬과 밀접하게 연결된 가게로 성장하게 된 거죠.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 중에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싶어도 개발협력 관련 일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대표님처럼 개발협력의 경험을 살려서 청년들이 지역에서 도전해 볼 만한 일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양진아 |  해 볼 만한 것이 없지는 않다고 봐요. 예를 들어 공정무역 제품을 직접 수입하고 유통하는 무역업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저희도 처음에는 스리랑카 같은 나라에서 직접 공정무역 제품을 수입해 볼까 고민했었거든요. 초도 발주 물량과 예산이 커서 그렇지,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현지 제품의 디자인을 한국 시장에 맞게 재포장하거나 커스터마이징하는 등의 작업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제품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또 다른 예로는 여행사를 통해 국제적인 경험을 살릴 수도 있는데요. 대학교와 협력해 해외 봉사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지자체와 협력해 특화된 여행 패키지를 개발하는 거죠. 지자체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원하기 때문에 B2G로 소수 정예 프로그램을 기획해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리고 기획 전시나 지역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환경이나 SDGs를 주제로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을 해서 지역과 글로벌 이슈를 연결하는 전시나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죠. 사실 ‘국제’라는 것이 멀게 느껴질 수 있어도, 결국 내가 당장 입고 있는 옷이나 먹는 음식과도 다 연결되어 있는 문제잖아요. 첫 스타트가 어려워 보일 수는 있어도, 여러 방식으로 다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지역을 잘 파악하고, 처음에 가서 좀 편안해지는 기간을 갖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느끼기에 결국 현장이 해외에서 지역으로 바뀔 뿐이지, 조사를 하고, 문서를 만들고, 관계를 쌓는 과정은 같거든요.


요즘은 로컬과 관련된 지원 사업이 굉장히 많고, 중간 지원 조직도 많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초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요. 국제개발협력의 경험을 지역으로 가져오면 독특한 자산이 될 수 있고, 지역 내 다양한 기회를 통해 그 경험을 활용할 수 있으니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 유익한상점 채널



인터뷰 진행·정리: 발전대안 피다 x 라운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