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날리면 논란에 묻힌 대통령의 글로벌펀드 기부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가 아닌, 발전을 위한 협력이어야 한다
지난 9월 21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직후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000 쪽팔려서 어떡하나” 라는 발언에서 000이 ‘바이든’인가 아니면 ‘날리면’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어 거짓말 여부와 언론 탄압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 XX’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영어로 번역돼 타국 언론에 보도됐다.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도자의 저속한 언어 사용에 온 사회가 피곤해 하고 있지만, 정작 그 발언이 나온 계기가 된 글로벌펀드에 대한 1억 달러 기부에 관한 이야기는 듣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 10월 4일 개최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이 국무조정실 방문규 실장에게 글로벌펀드 기부 관련 질의를 했다. 김 의원은 ”2023년도 예산안을 보면 96억 원이 들어있습니다. 3년간 1억 불을 기부하려면 최소한 현재 환율로 478억 원이 반영돼야 되는데 9월 2일 현재 없습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대통령께서 참석하기로 전혀 되어 있지 않다가 갑자기 1억 달러를 기부하기로 하면서 행사 참석을 한 건데 국제개발협력의 주요 부서인 국무조정실이 제대로 관여한 바가 없는 거죠”라고 지적했다. 핵심은 당초 정부의 계획에 없던 1억 달러를 대통령이 갑자기 기부했다는 것이다.
이번 기부로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의 예방 및 치료 재원의 범세계적 조성을 위해 지난 2002년 설립된 국제적 협력기구인 글로벌펀드에 대한 한국의 재정 기여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2020~2022년 3년간의 기여가 2천5백만 달러였는데, 2023~2025년 3년간은 1억 달러로 4배 증대한 것이다. 한국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지구촌 이웃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게 된 점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 대한 기여를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정부 예산안에도 없던 약 1천억 원 이상의 국제개발협력 재원의 기여가 너무나 쉽게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전 세계의 발전을 위해 활용되는 국제개발협력 자금이 국익 창출을 위해 마치 결정권자를 만나기 위한 행사 입장료 같이 쓰인 것이다. 글로벌펀드 회의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는 명분이 없었다면, 윤 대통령은 원래대로 예정된 한미 스타트업 써밋에 참석했을 것이고, 글로벌펀드 1억 달러 기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미국 대통령을 만날 기회를 만들기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한 게 뭐가 나쁜가?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적 측면을 보아야 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향후에도 계속 권력자들은 한국의 국익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개도국 발전에 정말 필요하다 하더라도 공적개발원조(ODA)를 지원하지 않거나, 쉽게 지원을 철회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 한국의 정치적 국익이나, 해외 시장 확대와 기업 진출이라는 경제적 국익에 분명한 도움이 될 기회가 있다면, 충분한 검토를 기반으로 한 계획 없이 찰나의 순간에 ODA 지원을 결정할 것이다. 이번 1억 달러 기부로 얻은 48초의 기회에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금융 안정화 방안, 대북 공조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언론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한 현대차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이번 1억 달러 기부가 지구촌 질병 퇴치보다도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를 우선순위로 두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우리는 권력자들이 지구촌 발전이 아닌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ODA를 활용한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위해 급조된, 국정 농단의 결과물이자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치욕인 코리아 에이드(Korea Aid)다. 대통령이 방문할 아프리카 3개국에서 보건, 음식, 문화 사업이 결합된 원조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것이 코리아 에이드의 핵심 내용이다. 왜 이런 걸 하는지, 누가 국제적 추세에 맞지 않는 이 이벤트를 기획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이 폭발했다. 이후 이 엉뚱한 ODA 프로그램에 누군가 자신의 사익 추구를 연결했고, 그 결정 과정을 아마추어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조 베테랑들은 그저 묵묵히 권력 실세의 지시를 따랐다. 코리아 에이드가 결정된 과정도 문제가 있었다. 사전에 최고 정책 결정 기구인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코리아 에이드는 2016년 5월 30일 대통령 순방 기간 중 개최된 제 26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VIP 순방 후속 조치’라는 제목으로 그 명칭조차 언급되지 않은 채로 의결됐다. 그리고 곧이어 8월 개최된 제 27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2017년 국제개발협력 추가 사업 추진 계획’이라는 제목하에 구체적 내용이 밝혀지고 본격 추진이 결정됐다. 이번 글로벌펀드 1억 달러 기부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먼저 진행한 것이다. 코리아 에이드는 2010년 OECD DAC 회원국 가입 이후 빠르게 발전하던 한국 국제개발협력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정권이 교체된 후 곧 폐기됐다. 이 스캔들은 권력과 사익 추구 그리고 무책임한 당국이 결합해 생산한 결과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한 기회를 창출하는 도구로서의 글로벌펀드 기부, 사적 권력의 이익창출 수단으로서의 코리아 에이드. 이 두 사례는 지구촌 발전이라는 명분을 가진 국제개발협력이 언제라도 쉽게 권력과 이익을 실현할 하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이 기부한 1억 달러는 2023년부터 2025까지 3개년 동안 사용된다. 지난 2020~2022년 3년간의 기여금은 2천5백만 달러였다. 그러면 정부의 2026~2028년 기여금 규모는 어떨까? 또 1억 달러 규모일지, 아니면 2023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지 지켜보자. 전 세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인 한국의 기여가 순간적인 이익에 따라 급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글로벌펀드에 대한 1억 달러 기부를 통해 대통령과 핵심 권력자들은 국익 추구를 위한 유용한 수단인 ODA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들이 ODA의 본래 목적이 아닌 도구적 유용성에만 주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국제 회의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며, 4차 중점협력국 선정, 4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26~2010년) 수립 등 여러 다양한 정책 형성 절차들이 예정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권력자들이 이러한 ODA의 도구적 유용성에만 초점을 둘까 크게 염려된다. 오랜 기간 동안 정권핵심층이 국제개발협력을 잘 모르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잘 아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단기적 국익 추구보다는 개발도상국의 인도적 필요를 최우선에 두는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되어야 한다.
글쓴이: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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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날리면 논란에 묻힌 대통령의 글로벌펀드 기부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가 아닌, 발전을 위한 협력이어야 한다
지난 9월 21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직후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000 쪽팔려서 어떡하나” 라는 발언에서 000이 ‘바이든’인가 아니면 ‘날리면’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어 거짓말 여부와 언론 탄압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 XX’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영어로 번역돼 타국 언론에 보도됐다.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도자의 저속한 언어 사용에 온 사회가 피곤해 하고 있지만, 정작 그 발언이 나온 계기가 된 글로벌펀드에 대한 1억 달러 기부에 관한 이야기는 듣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 10월 4일 개최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이 국무조정실 방문규 실장에게 글로벌펀드 기부 관련 질의를 했다. 김 의원은 ”2023년도 예산안을 보면 96억 원이 들어있습니다. 3년간 1억 불을 기부하려면 최소한 현재 환율로 478억 원이 반영돼야 되는데 9월 2일 현재 없습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대통령께서 참석하기로 전혀 되어 있지 않다가 갑자기 1억 달러를 기부하기로 하면서 행사 참석을 한 건데 국제개발협력의 주요 부서인 국무조정실이 제대로 관여한 바가 없는 거죠”라고 지적했다. 핵심은 당초 정부의 계획에 없던 1억 달러를 대통령이 갑자기 기부했다는 것이다.
이번 기부로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의 예방 및 치료 재원의 범세계적 조성을 위해 지난 2002년 설립된 국제적 협력기구인 글로벌펀드에 대한 한국의 재정 기여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2020~2022년 3년간의 기여가 2천5백만 달러였는데, 2023~2025년 3년간은 1억 달러로 4배 증대한 것이다. 한국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지구촌 이웃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게 된 점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 대한 기여를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정부 예산안에도 없던 약 1천억 원 이상의 국제개발협력 재원의 기여가 너무나 쉽게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전 세계의 발전을 위해 활용되는 국제개발협력 자금이 국익 창출을 위해 마치 결정권자를 만나기 위한 행사 입장료 같이 쓰인 것이다. 글로벌펀드 회의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는 명분이 없었다면, 윤 대통령은 원래대로 예정된 한미 스타트업 써밋에 참석했을 것이고, 글로벌펀드 1억 달러 기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미국 대통령을 만날 기회를 만들기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한 게 뭐가 나쁜가?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적 측면을 보아야 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향후에도 계속 권력자들은 한국의 국익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개도국 발전에 정말 필요하다 하더라도 공적개발원조(ODA)를 지원하지 않거나, 쉽게 지원을 철회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 한국의 정치적 국익이나, 해외 시장 확대와 기업 진출이라는 경제적 국익에 분명한 도움이 될 기회가 있다면, 충분한 검토를 기반으로 한 계획 없이 찰나의 순간에 ODA 지원을 결정할 것이다. 이번 1억 달러 기부로 얻은 48초의 기회에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금융 안정화 방안, 대북 공조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언론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한 현대차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이번 1억 달러 기부가 지구촌 질병 퇴치보다도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를 우선순위로 두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우리는 권력자들이 지구촌 발전이 아닌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ODA를 활용한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위해 급조된, 국정 농단의 결과물이자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치욕인 코리아 에이드(Korea Aid)다. 대통령이 방문할 아프리카 3개국에서 보건, 음식, 문화 사업이 결합된 원조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것이 코리아 에이드의 핵심 내용이다. 왜 이런 걸 하는지, 누가 국제적 추세에 맞지 않는 이 이벤트를 기획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이 폭발했다. 이후 이 엉뚱한 ODA 프로그램에 누군가 자신의 사익 추구를 연결했고, 그 결정 과정을 아마추어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조 베테랑들은 그저 묵묵히 권력 실세의 지시를 따랐다. 코리아 에이드가 결정된 과정도 문제가 있었다. 사전에 최고 정책 결정 기구인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코리아 에이드는 2016년 5월 30일 대통령 순방 기간 중 개최된 제 26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VIP 순방 후속 조치’라는 제목으로 그 명칭조차 언급되지 않은 채로 의결됐다. 그리고 곧이어 8월 개최된 제 27차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2017년 국제개발협력 추가 사업 추진 계획’이라는 제목하에 구체적 내용이 밝혀지고 본격 추진이 결정됐다. 이번 글로벌펀드 1억 달러 기부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먼저 진행한 것이다. 코리아 에이드는 2010년 OECD DAC 회원국 가입 이후 빠르게 발전하던 한국 국제개발협력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정권이 교체된 후 곧 폐기됐다. 이 스캔들은 권력과 사익 추구 그리고 무책임한 당국이 결합해 생산한 결과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한 기회를 창출하는 도구로서의 글로벌펀드 기부, 사적 권력의 이익창출 수단으로서의 코리아 에이드. 이 두 사례는 지구촌 발전이라는 명분을 가진 국제개발협력이 언제라도 쉽게 권력과 이익을 실현할 하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이 기부한 1억 달러는 2023년부터 2025까지 3개년 동안 사용된다. 지난 2020~2022년 3년간의 기여금은 2천5백만 달러였다. 그러면 정부의 2026~2028년 기여금 규모는 어떨까? 또 1억 달러 규모일지, 아니면 2023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지 지켜보자. 전 세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인 한국의 기여가 순간적인 이익에 따라 급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글로벌펀드에 대한 1억 달러 기부를 통해 대통령과 핵심 권력자들은 국익 추구를 위한 유용한 수단인 ODA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들이 ODA의 본래 목적이 아닌 도구적 유용성에만 주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국제 회의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며, 4차 중점협력국 선정, 4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26~2010년) 수립 등 여러 다양한 정책 형성 절차들이 예정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권력자들이 이러한 ODA의 도구적 유용성에만 초점을 둘까 크게 염려된다. 오랜 기간 동안 정권핵심층이 국제개발협력을 잘 모르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잘 아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단기적 국익 추구보다는 개발도상국의 인도적 필요를 최우선에 두는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되어야 한다.
글쓴이: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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