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A를 상업적 이익보다 보편적 가치를 위해 사용하라
윤석열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가 연일 화제다. 정부는 8월 29일 국회에 제출할 2024년 ODA 예산 규모를 6조 5천억 원으로 발표했다. 최종 규모는 12월 국회 예산 심의를 거치면 확정되겠지만, 역대 최대의 ODA 예산이다.
늘어난 ODA 예산 규모 외에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도 주목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9월 10일 인도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23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은 “보편타당한 원칙과 규범”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며, “내년에는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무상 개발협력,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지원 등 3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고, 20억 달러 이상의 중장기 지원 패키지를 마련해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적극 돕겠다”고 했다. 같은 회의에서 발표한 녹색기후기금(GCF)에 대한 3억 달러 공여도 화제다.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는 관계자라면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보다 큰 맥락에서 살펴볼 지점이 있다. 이번에 발표한 2024년 정부 예산(총 지출)은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2023년 예산 증가율인 5.1%에 비해 절반 정도 수준이다. 정부의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이며, 사실상의 마이너스 예산 편성이라고 언론은 지적했다. 공공 지출이 사실상 축소됐지만, ODA 규모는 역대 최고다.
정부의 표현인 “국격에 걸맞은 ODA 확대”에 대해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는 이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예산 증대를 환영하며 열렬히 박수를 쳐야 하는가? 아니면 예산이 축소된 타 분야 눈치를 보며 조용히 미소만 지어야 하는가? ODA 예산 확대,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지원, 그리고 기후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 지원 모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인 한국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실행 이면에는 어떤 이슈가 있을까?
ODA 확대를 통한 국익 창출을 설명하는 2024년 예산안 카드뉴스 자료 (이미지 출처: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상업적 이익 추구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가는 한국 ODA
발전대안 피다는 ODA 예산 확대를 지켜보며 정부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중심이 과거 보편적 가치 실현과 국익 추구가 혼재하던 상황에서, 점차 상업적 이익이라는 단기적 국익 추구로 옮겨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더욱 짙어질 것으로 예측하며, 상업적 이익 추구가 향후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대표적 색깔이 될 것을 우려한다.
이번에 증대된 ODA 예산의 초점은 국익 증진에 있다. “늘어난 ODA 예산은 우리 기업과 청년의 해외 진출 등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분야에 중점 편성하겠습니다.” 8월 29일 개최된 제36회 국무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 내용이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4년 예산안 20대 핵심 과제’는 보다 자세한 내용을 제시한다. 과제명 ‘20. 국격에 걸맞은 ODA 확대로 국익 창출’은 늘어난 ODA 2조 원의 사용처를 4개의 포인트로 설명한다.
첫째는 “(해외 진출) 수출 시장 개척 및 청년 인재 해외 진출을 위해 디지털 디바이드 등 우리 강점 분야와 국제기구 지원 확대(+0.6조 원)”다. 둘째는 “(전략 지원) 공급망, 수출 시장 등에서 핵심 협력 관계인 인·태지역과 경제교류 수요가 높은 아프리카 지역 지원 확대(+0.6조 원)”고, 셋째는 “(우크라이나 지원) 전후 재건을 지원하고, 우리 기업의 재건 사업 참여 기회 확대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큰 폭 증액(+0.4조 원)”이다. 마지막은 “(인도적 지원)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로서 재난 구호, 식량, 의료 등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기여(+0.4조 원)”다.
첫째에서 셋째 포인트까지 관통하는 핵심어는 수출, 시장, 경제, 기업이다. 이는 윤 대통령이 “모든 외교의 중심을 경제와 수출에 놓고…”, “…수출 증진을 위해 1호 영업 사원으로 뛰겠다”고 2월 23일 개최된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밝힌 내용과 결이 같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G20에서 발표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평화 회복 지원에 앞장서는 책임 있는 역할을 보여 주는 한편,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 본격 참여를 위한 기반 조성 작업”이라고 밝혔다. ‘책임 있는 역할과 재건 본격 참여’가 혼재한다. 재건 ‘참여’에는 직접적인 재건 활동도 있을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기재부가 발표한 ‘24년 예산안 20대 핵심 과제’에서 밝힌 “우리 기업의 재건 사업 참여 기회 확대”다.
ODA는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수단일 뿐인가
기재부가 발표한 ‘2023~2027년 국가 재정 운용 계획 주요 내용’은 보다 명확한 내용을 제시한다. 본 문건은 ‘(10) 외교·통일 분야’의 내용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에 동참하고, 향후 재건 사업에 우리 기업의 수주 지원을 위하여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와 “우리 기업·인력 진출에 ODA를 활용하여 청년 인재 해외 진출 및 우리 기업이 강점을 보유한 디지털 분야 지원 확대”를 제시한다. 이 두 문장의 핵심은 ‘우리 기업의 수주 지원’ 그리고 ‘우리 기업 진출’이다. 분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보편적 가치’ 보다 우리나라 기업의 이익 추구가 더 돋보인다.
지난 7월 13일 윤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 당시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대해 밝혔다. “정부는 민간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별로 민관 합동 수주 지원단을 구성해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사업이 본격화되면 공적개발원조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 금융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 했다. 경제계는 건설 업계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재건 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기업의 재건 사업 참여 증진을 위해 어떻게 ODA를 활용할지 주목된다. 7월 14일 폴란드에서 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한 기업인이 한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단순 인프라 복구 차원을 넘어 우크라이나 현지 회사와 MOU를 체결해 ITS 지능형 교통 체계 등 첨단 시스템 구축 사업 진출을 추진 중이다. ODA 확대 등을 통한 마중물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ODA는 전후(戰後) 기업 진출을 위한 마중물이라는 것이다.
확대된 ODA 예산 내용 중 상업적 이익 추구와는 거리가 먼 부분도 있기는 하다. ‘청년 해외 진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의료용품, 구호 장비 그리고 재난 대응·난민 지원과 식량 원조’인데, 예산 규모는 0.9조 원이다. 그 중 인도적 지원 분야에 대한 규모는 크게 확대됐다. 9월 7일 개최된 ‘제16회 서울ODA국제회의’에서 오영주 외교부 2차관은 “인도적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인도적 지원 예산은 2천993억 원에서 내년 7천401억 원으로 약 2.5배가 증액됐다. 하지만 이같이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부분이 존재함에도, 이상에서 언급한 3대 포인트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늘어난 한국 ODA 예산 2조 원의 무게 중심이 상업적 이익 추구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 출처: 대한민국 대통령실 홈페이지)
무심한, 혹은 싸늘한 대중의 반응
ODA 예산 증대 외에도 주목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대통령의 ODA 정책 관련 발표 중 예산 증대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한국 사회의 여론은 비교적 잠잠했다. 아마 ODA 자체가 일반 대중에겐 여전히 낯선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원과 녹색기후기금(GCF) 지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여러 목소리가 나왔다. 전쟁과 기후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존중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를 국내 상황과 연결한 비판적 목소리들도 존재한다. 홍범도 장군 흉상은 이념 논쟁을 들먹이며 이전할 것을 주장하면서, 구 공산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는 지원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문제 제기가 있다. 균형 있는 외교가 아닌 극단적인 미국 편들기 외교 행위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정부가 2024년 국내 재생 에너지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42.3%인 4,436억 원을 삭감하며 녹색기후기금(GCF)에는 그에 비등한 금액인 3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ODA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으로, 어려운 국내 경제 상황 가운데 해외를 지원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는 의견도 있다.
이 같은 사회 구성원들의 부정적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녹색기후기금(GCF) 지원에 대한 문제 제기 중 일부는 물론 현 정권에 반대하는 그룹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ODA와 국내 상황을 연계하여 제기하는 비판적인 목소리는 그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국제사회에 대한 당연한 기여 정도로만 생각해오던 흐름을 벗어난 반응이다. 이는 정부가 국내외에서 실행하는 정책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큰 돈을 쓰지만, 국내에서는 예산을 삭감한다’와 같은 태도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앞으로 시민들이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정책을 국내 이슈와 비교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커질 것이다. 이는 향후 한국 사회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할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직면하게 될 중요한 지점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일관성 있는 대내외 정책을 요구한다
만약 정부가 평화, 기후, 보건, 인권, 교육, 젠더, 빈곤, 재난 대응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 정책과 국제개발협력 정책에서 일관되게 진정성 있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쉽게 국제개발협력에서 먼저 고개를 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ODA 예산 증대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고, 나아가 국제개발협력 자체가 큰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떨어진다면, 정부는 이를 얻기 위해 국제개발협력을 기업 진출 지원과 같은 상업적 그리고 단기적 국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 당시 실제 그런 일이 발생했다.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공여국들이 국민들의 ODA 예산 증대 반대와 그에 따른 예산 감축을 피하기 위해 ‘국익’을 ODA와 이전에 비해 더욱 노골적으로 연계했던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ODA는 본연의 목적을 잃고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만 전락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국가의 시민인가?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노골적으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의 시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6조 5천억 원이라는 규모의 한국 ODA로 분명히 전 지구촌의 많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이 이전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들은 더 평화롭고 평등하며 존엄하고 안전한,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시민들이 기대하는 이익이고 곧 국익이다. 이에, 한국 ODA는 상업적 이익이 아닌 보편적 가치 실현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글쓴이: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ODA를 상업적 이익보다 보편적 가치를 위해 사용하라
윤석열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가 연일 화제다. 정부는 8월 29일 국회에 제출할 2024년 ODA 예산 규모를 6조 5천억 원으로 발표했다. 최종 규모는 12월 국회 예산 심의를 거치면 확정되겠지만, 역대 최대의 ODA 예산이다.
늘어난 ODA 예산 규모 외에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도 주목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9월 10일 인도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23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은 “보편타당한 원칙과 규범”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며, “내년에는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무상 개발협력,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지원 등 3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고, 20억 달러 이상의 중장기 지원 패키지를 마련해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적극 돕겠다”고 했다. 같은 회의에서 발표한 녹색기후기금(GCF)에 대한 3억 달러 공여도 화제다.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는 관계자라면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보다 큰 맥락에서 살펴볼 지점이 있다. 이번에 발표한 2024년 정부 예산(총 지출)은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2023년 예산 증가율인 5.1%에 비해 절반 정도 수준이다. 정부의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이며, 사실상의 마이너스 예산 편성이라고 언론은 지적했다. 공공 지출이 사실상 축소됐지만, ODA 규모는 역대 최고다.
정부의 표현인 “국격에 걸맞은 ODA 확대”에 대해 국제개발협력에 참여하는 이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예산 증대를 환영하며 열렬히 박수를 쳐야 하는가? 아니면 예산이 축소된 타 분야 눈치를 보며 조용히 미소만 지어야 하는가? ODA 예산 확대,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지원, 그리고 기후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 지원 모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인 한국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실행 이면에는 어떤 이슈가 있을까?
ODA 확대를 통한 국익 창출을 설명하는 2024년 예산안 카드뉴스 자료 (이미지 출처: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상업적 이익 추구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가는 한국 ODA
발전대안 피다는 ODA 예산 확대를 지켜보며 정부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중심이 과거 보편적 가치 실현과 국익 추구가 혼재하던 상황에서, 점차 상업적 이익이라는 단기적 국익 추구로 옮겨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더욱 짙어질 것으로 예측하며, 상업적 이익 추구가 향후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대표적 색깔이 될 것을 우려한다.
이번에 증대된 ODA 예산의 초점은 국익 증진에 있다. “늘어난 ODA 예산은 우리 기업과 청년의 해외 진출 등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 분야에 중점 편성하겠습니다.” 8월 29일 개최된 제36회 국무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 내용이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4년 예산안 20대 핵심 과제’는 보다 자세한 내용을 제시한다. 과제명 ‘20. 국격에 걸맞은 ODA 확대로 국익 창출’은 늘어난 ODA 2조 원의 사용처를 4개의 포인트로 설명한다.
첫째는 “(해외 진출) 수출 시장 개척 및 청년 인재 해외 진출을 위해 디지털 디바이드 등 우리 강점 분야와 국제기구 지원 확대(+0.6조 원)”다. 둘째는 “(전략 지원) 공급망, 수출 시장 등에서 핵심 협력 관계인 인·태지역과 경제교류 수요가 높은 아프리카 지역 지원 확대(+0.6조 원)”고, 셋째는 “(우크라이나 지원) 전후 재건을 지원하고, 우리 기업의 재건 사업 참여 기회 확대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큰 폭 증액(+0.4조 원)”이다. 마지막은 “(인도적 지원)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로서 재난 구호, 식량, 의료 등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기여(+0.4조 원)”다.
첫째에서 셋째 포인트까지 관통하는 핵심어는 수출, 시장, 경제, 기업이다. 이는 윤 대통령이 “모든 외교의 중심을 경제와 수출에 놓고…”, “…수출 증진을 위해 1호 영업 사원으로 뛰겠다”고 2월 23일 개최된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밝힌 내용과 결이 같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G20에서 발표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평화 회복 지원에 앞장서는 책임 있는 역할을 보여 주는 한편,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 본격 참여를 위한 기반 조성 작업”이라고 밝혔다. ‘책임 있는 역할과 재건 본격 참여’가 혼재한다. 재건 ‘참여’에는 직접적인 재건 활동도 있을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기재부가 발표한 ‘24년 예산안 20대 핵심 과제’에서 밝힌 “우리 기업의 재건 사업 참여 기회 확대”다.
ODA는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수단일 뿐인가
기재부가 발표한 ‘2023~2027년 국가 재정 운용 계획 주요 내용’은 보다 명확한 내용을 제시한다. 본 문건은 ‘(10) 외교·통일 분야’의 내용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에 동참하고, 향후 재건 사업에 우리 기업의 수주 지원을 위하여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와 “우리 기업·인력 진출에 ODA를 활용하여 청년 인재 해외 진출 및 우리 기업이 강점을 보유한 디지털 분야 지원 확대”를 제시한다. 이 두 문장의 핵심은 ‘우리 기업의 수주 지원’ 그리고 ‘우리 기업 진출’이다. 분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보편적 가치’ 보다 우리나라 기업의 이익 추구가 더 돋보인다.
지난 7월 13일 윤 대통령의 폴란드 방문 당시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대해 밝혔다. “정부는 민간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별로 민관 합동 수주 지원단을 구성해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향후 사업이 본격화되면 공적개발원조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 금융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 했다. 경제계는 건설 업계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재건 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기업의 재건 사업 참여 증진을 위해 어떻게 ODA를 활용할지 주목된다. 7월 14일 폴란드에서 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한 기업인이 한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단순 인프라 복구 차원을 넘어 우크라이나 현지 회사와 MOU를 체결해 ITS 지능형 교통 체계 등 첨단 시스템 구축 사업 진출을 추진 중이다. ODA 확대 등을 통한 마중물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ODA는 전후(戰後) 기업 진출을 위한 마중물이라는 것이다.
확대된 ODA 예산 내용 중 상업적 이익 추구와는 거리가 먼 부분도 있기는 하다. ‘청년 해외 진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의료용품, 구호 장비 그리고 재난 대응·난민 지원과 식량 원조’인데, 예산 규모는 0.9조 원이다. 그 중 인도적 지원 분야에 대한 규모는 크게 확대됐다. 9월 7일 개최된 ‘제16회 서울ODA국제회의’에서 오영주 외교부 2차관은 “인도적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인도적 지원 예산은 2천993억 원에서 내년 7천401억 원으로 약 2.5배가 증액됐다. 하지만 이같이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부분이 존재함에도, 이상에서 언급한 3대 포인트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늘어난 한국 ODA 예산 2조 원의 무게 중심이 상업적 이익 추구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 출처: 대한민국 대통령실 홈페이지)
무심한, 혹은 싸늘한 대중의 반응
ODA 예산 증대 외에도 주목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대통령의 ODA 정책 관련 발표 중 예산 증대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한국 사회의 여론은 비교적 잠잠했다. 아마 ODA 자체가 일반 대중에겐 여전히 낯선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원과 녹색기후기금(GCF) 지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여러 목소리가 나왔다. 전쟁과 기후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존중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를 국내 상황과 연결한 비판적 목소리들도 존재한다. 홍범도 장군 흉상은 이념 논쟁을 들먹이며 이전할 것을 주장하면서, 구 공산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는 지원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문제 제기가 있다. 균형 있는 외교가 아닌 극단적인 미국 편들기 외교 행위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정부가 2024년 국내 재생 에너지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42.3%인 4,436억 원을 삭감하며 녹색기후기금(GCF)에는 그에 비등한 금액인 3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ODA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으로, 어려운 국내 경제 상황 가운데 해외를 지원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는 의견도 있다.
이 같은 사회 구성원들의 부정적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녹색기후기금(GCF) 지원에 대한 문제 제기 중 일부는 물론 현 정권에 반대하는 그룹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ODA와 국내 상황을 연계하여 제기하는 비판적인 목소리는 그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국제사회에 대한 당연한 기여 정도로만 생각해오던 흐름을 벗어난 반응이다. 이는 정부가 국내외에서 실행하는 정책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큰 돈을 쓰지만, 국내에서는 예산을 삭감한다’와 같은 태도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앞으로 시민들이 정부의 국제개발협력 정책을 국내 이슈와 비교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커질 것이다. 이는 향후 한국 사회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할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직면하게 될 중요한 지점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일관성 있는 대내외 정책을 요구한다
만약 정부가 평화, 기후, 보건, 인권, 교육, 젠더, 빈곤, 재난 대응 등 다양한 분야의 국내 정책과 국제개발협력 정책에서 일관되게 진정성 있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쉽게 국제개발협력에서 먼저 고개를 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ODA 예산 증대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고, 나아가 국제개발협력 자체가 큰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떨어진다면, 정부는 이를 얻기 위해 국제개발협력을 기업 진출 지원과 같은 상업적 그리고 단기적 국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 당시 실제 그런 일이 발생했다.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공여국들이 국민들의 ODA 예산 증대 반대와 그에 따른 예산 감축을 피하기 위해 ‘국익’을 ODA와 이전에 비해 더욱 노골적으로 연계했던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한국에서 발생한다면, ODA는 본연의 목적을 잃고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만 전락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국가의 시민인가?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노골적으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의 시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6조 5천억 원이라는 규모의 한국 ODA로 분명히 전 지구촌의 많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이 이전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들은 더 평화롭고 평등하며 존엄하고 안전한,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시민들이 기대하는 이익이고 곧 국익이다. 이에, 한국 ODA는 상업적 이익이 아닌 보편적 가치 실현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글쓴이: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