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ODA'에서 '코리아에이드'까지
박근혜 정부 개발협력의 퇴보
박근혜 정부 출범 4주년을 맞은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는 100만 명의 시민들이 탄핵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촛불집회가 해를 넘겨 17번째 계속되는 가운데, 시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뜨겁다. 한편, 국정농단 사태와 함께 부각된 ‘코리아에이드’로 논란이 끊이지 않던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지난해 코리아에이드 예산 부분삭감 결정이 나면서 어느 정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러나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인 1월 30일, 미얀마 ODA 사업에서 이권을 챙긴 ‘알선수재’ 혐의로 특검이 최순실 씨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일명 ‘미얀마 K타운’ 사태를 기점으로 논란은 다시 재점화됐다. 이후 지난 2월 한 달간 거의 유례없이 ODA가 메인뉴스에 오르내리면서 한국 개발협력은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 비단 K타운, 코리아에이드만이 아니라 분절화, 투명성 등 한국 개발협력의 구조적인 문제들에서부터 개별 사업의 효과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점과 평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현 사태 자체의 문제점만큼이나 사태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 즉 한국 ODA가 최순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ODA 감시활동을 이어 온 발전대안 피다도 논평과 성명서, 정부 질의서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알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일회적인 비난으로만 그친다면, 모든 것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바꾸어내지 못할 수 있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주요 정책과 방향, 체계 등을 포함해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의 개발협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발표한 140개 국정과제 중 개발협력과 관련된 2개 과제 및 7개 세부 추진계획을 중심으로 한국 개발협력에 어떠한 진전과 한계가 있었는지 평가해보고자 한다.
박근혜 정부의 개발협력 국정과제, 과연 제대로 추진되었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중 개발협력과 관련된 과제는 크게 ‘ODA 지속확대 및 모범적·통합적 개발협력 추진’과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의 두 가지이다(표 1 참조). 일부 다른 과제에 과학 ODA, 문화 ODA, 관광 ODA 등도 명시되어 있지만, 상위 목표가 해당 분야에 한정되어 있어 여기서는 직접 개발협력과 연관된 위의 두 가지 국정과제 및 각 과제의 하위 추진계획으로 포함된 7개 항목에 한해 살펴볼 것이다.
<표 1> 박근혜 정부의 개발협력 관련 국정과제 목록
*출처: 박근혜정부 국정과제(2013~2017) /2016.4 관계부처 합동
첫째, ODA 규모 공약 달성의 예견된 실패
▶ ODA/GNI 비율을 국제사회 수준에 맞춰 지속 확대 ㅇ ’15년까지 ODA/GNI 비율 0.25%를 목표로 추진하고, Post-MDGs 논의동향 및 국내외 경제여건 등을 고려하여 추후 검토 |
한국이 ODA 규모와 관련해 처음 목표를 제시한 것은 이명박 정부 당시 ‘중기 ODA 확대 계획(2008)’에서였다. 경제규모 대비 원조수준을 나타내는 국민총소득(이하 GNI) 대비 ODA 비율을 2015년까지 0.25%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2011년 수립한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에서 연도별 목표치로 구체화하였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HLF4) 연설에서 이를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 공약을 그대로 국정과제에 포함했지만, 달성기한인 2015년 기준 ODA/GNI 비율은 0.14%로 결과적으로는 목표치의 절반을 겨우 넘기는 데 그쳤다.
물론 한국 ODA가 급격한 양적 증가로 질적 수준을 담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조건 규모를 키우는 것만이 바람직하지는 않고, 현재의 경제상황에서 0.25% 달성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수치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충분한 검토 없이 전 정부의 공약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는 데 있다. 2006년부터 10년간 한국 ODA 규모는 약 15억 3천만 달러가 증가해 네 배 이상 커졌고, 매년 평균 17.9%의 증가세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2012년 ODA 증가율이 21.43%, ODA/GNI 비율이 0.14%인 것에 반해 박근혜 정부 이후인 2013년 증가율은 5.90%, ODA/GNI 0.13%로 출범 첫해인 2013년을 기점으로 증가세가 크게 꺾인다. 2006년-2012년의 평균 증가율이 24.4%인데 반해 박근혜 정부 이후인 2013년-2015년의 평균 증가율은 5.12%로 오히려 대폭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1] 이러한 수치로 볼 때, 한국은 그간 구체적인 실현계획 없이 국제사회에 허울 좋은 공약만을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표 2> 연도별 총 ODA 규모추이(2011-2015)
*출처: OECD DAC 통계자료 바탕으로 재구성
결국,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수립한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16-2020)」에서 ODA/GNI 비율을 2016년 이후 매년 0.01%씩 증가하여 2020년까지 0.20%를 달성하는 것으로 목표를 하향조정했다. 현재 UN 권고치는 0.7%이고 2015년 기준 OECD 개발원조위원회(이하 DAC) 28개 회원국(EU 제외) 평균이 0.30%이며 한국이 23위로 경제규모에 비해 하위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0.20%도 결코 높은 수치는 아니다. 2015년 실시한 OECD DAC 중기검토 결과문서에서도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기준인 ODA/GNI 0.7%를 달성할 수 있도록 현실적이지만 좀 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 수차례 공개적으로 선언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고, 공약 미이행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2차 기본계획에 명시된 연도별 목표치를 달성해 나가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졸속으로 채택된 부실한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16-2020)」
▶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16~’20)」 수립 ㅇ 그간의 ODA 기본계획(‘11~’15) 추진성과를 평가하고, ‘16년 이후 ODA 규모 등을 포함한 제2차 ODA 기본계획 수립 |
한국 정부는 2010년 제정한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따라 2011년 첫 번째 중장기 정책으로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2011-2015)」을 발표했다. 당시에도 내용상으로는 대외원조의 ‘한국화’ 방안이라는 지적과 함께 절차적으로도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와의 심도 있는 토론과정이 부재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선진화 방안에 이은 두 번째 정책인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16-2020)」의 수립과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2차 기본계획의 방향과 내용을 이미 설정한 상태에서 국제개발협력 실무위원회 통과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시민사회와 형식적인 간담회를 진행했다.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을 중심으로 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간담회 전인 9월 기본계획 수립에 대한 10대 제언을 전달하고, 실무위 통과 이후에도 2차 기본계획의 졸속 채택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1월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통해 최종 의결됐다. 향후 5년간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근간이 될 기본계획이 또다시 급속하게 추진된 것이다.
이렇게 졸속으로 채택된 2차 기본계획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아쉬운 지점이 많다. 시민사회에 처음 공개된 기본계획(안)에서는 “글로벌 리더 국가로 도약”이 가장 상위의 비전으로 명시되어 있었으나, 이것은 기대효과이지 그 자체로 비전이 될 수 없다는 시민사회의 지적에 따라 최종적으로는 “인류의 공동번영과 세계평화에 기여”로 수정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ODA 규모도 이전 목표보다 퇴보했으며, ODA의 질적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유무상 분절화 극복, 중점협력국 제도 내실화, ODA 콘텐츠 정비 등 한국 개발협력의 고질적인 과제들도 기존 정책을 일부 개선하는 정도에 그쳐 2차 기본계획이 선진화 방안에 대한 충분한 평가를 토대로 수립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또한, NGO 사업 지원예산을 10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분명하게 명시한 선진화 방안과는 달리 2차 기본계획에서는 시민사회 파트너십 확대를 위한 어떠한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2015년부터 시민사회 대상 민관협력사업 예산이 정부 출연금에서 민간 경상보조금으로 전환되면서 과도한 행정절차와 규제로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셋째,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조정기능 한계 및 미흡한 운영체계
▶ ODA 통합추진 및 협업체계 공고화 ㅇ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총괄ㆍ조정기능 강화 및 유ㆍ무상 관계기관 협의회를 통한 연계ㆍ협력 강화 ㅇ 관계기관간 참여ㆍ협력 촉진 등 협업 이행기반 강화 |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분절화’다. OECD DAC 28개 회원국 중 23개국은 외교부가 전담하거나 주도하고, 2개국은 독립부처가 주관하는 등 특정 부처 및 기관이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체계가 대다수인데 반해 한국은 외교부가 무상원조, 기획재정부가 유상원조를 주관하는 이원화된 구조이다. 2017년 현재 지자체 9개를 포함하여 총 42개 기관이 1,243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특히 기획재정부가 전담하는 유상원조와 달리 무상원조의 경우 40여 개가 넘는 기관이 시행해 사업 중복, 거래비용 증가 및 ODA 효율성 저해 등의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분절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해왔지만, 실질적인 통합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 2013년부터 무상원조관계기관협의회를 개최해 매년 무상원조 사업 간의 유사·중복 사례를 조정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이나, 기초 단계에서만 간략히 검토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분절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 부족하다. 국제개발협력 주요 정책 및 계획을 심의·의결하고 40여 개가 넘는 시행기관 간의 조정을 위해 지난 2006년 국무조정실 산하에 설치한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이하 국개위)’ 역시 실질적인 조정 역할에 한계가 있다. 25명 이내의 주요 행정기관 및 관계기관의 장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어 안건을 상세히 심의하기 어려운 데다 형식적인 의결절차에 불과하다. 실제로 2015년 총 4회의 국개위 중 2회, 2016년 총 5회의 국개위 중 3회를 서면심의로 대체했고, 매년 추진방향과 주요 과제를 담은 종합시행계획을 비롯하여 ‘중점협력국 재조정(안)’, ‘중점협력국 대상 국가협력전략(CPS)’,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 ‘개발금융의 ODA 확산방안’ 등 중요하고 민감한 안건을 대면논의 없이 통과시켰다. 국개위를 설립하고 운영한 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 국개위의 실질적인 기능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유·무상 통합, 무상원조 통합 등 추진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여전히 베일에 싸인 중점협력국 선정과 국가협력전략(CPS) 수립
▶ 중점협력국 조정 및 국가협력전략 수립ㆍ개선 ㅇ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점협력국 조정 ㅇ 중점협력국에 대한 국가협력전략(CPS) 수립 및 개선 |
중점협력국은 유·무상을 통틀어 전체 ODA 예산의 70% 이상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국가로, 지난 2010년 처음으로 26개국을 중점협력국으로 선정했다. 감사원은 1차 중점협력국에 대해 국민소득이 높고 외채 감축 정책을 추진하는 페루 등 3개국과 내전으로 기업 진출이 어려운 콩고 등 2개국을 포함해 총 26개국 중 12개 국가를 부적절하게 선정했고, 네팔, 솔로몬군도, 동티모르 등 9개 중점협력국에 대한 지원이 미얀마 등 비중점협력국 보다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감사원 조사결과에 대한 개선조치 없이 2015년 ‘ODA 중점협력국 재조정(안)’을 다시 발표했다. 2차 중점협력국은 지난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상세한 선정기준 및 시민사회와 학계, 민간 전문가와의 간담회 없이 일방적으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OECD DAC 동료검토에서 제시된 중점협력국 축소 의견에도 불구하고 26개국에서 24개국으로 소폭 조정되었다. 또 24개국 중에는 앞서 감사원에서 지적했던 1차 중점협력국의 문제와 같이 페루, 콜롬비아, 아제르바이잔 등 1인당 GDP가 7-8천 불이 넘는 고중소득국가가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표 3> 2차 중점협력국 재조정 명단
*출처: 중점협력국 재조정(안), 국무조정실
중점협력국에 대한 지원규모, 중점분야 및 실행계획을 담은 국가협력전략(Country Partnership Strategy, 이하 CPS)의 경우, 1차 CPS가 수립 지연으로 2013년 8월에야 완료된 것과 달리 2차 CPS는 지난해 연말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2차 CPS 역시 수립과정을 둘러싼 잡음이 많았다. 일방적인 1차 CPS 수립에 대한 문제제기로 정부는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16-’20)」을 통해 2차 CPS 수립과정에서 산·관·학·연 작업반을 구성해 대내적 설득력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5년 4월부터 9월까지 운영된 CPS 작업반에 시민사회 참여는 보장되지 않았고, 국무조정실은 이미 9개국 CPS가 확정된 이후 나머지 15개국 CPS 초안이 작성된 상황에서 당일 자료제공을 조건으로 시민사회에 간담회를 제안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충분한 검토 및 실질적인 의견 전달을 위해 자료 사전제공을 요청하는 의견서를국무조정실에 전달했으나, 이에 대한 답변 없이 지난해 12월 제28차 국개위를 통해 나머지 15개국 CPS도 통과되었다. 이렇게 시민사회가 어떤 의견도 개진하지 못한 채 두 번째 중점협력국 선정과 CPS 수립은 정부의 독단적인 추진으로 결정됐다.
다섯째, 박근혜 정부의 대표 브랜드 ‘새마을운동 ODA’의 무분별한 확산
▶ 발전경험 활용 등을 통한 수원국 개발 효과성 제고 ㅇ 발전경험 중 비교우위가 있는 프로그램(예 : 새마을운동)을 수원국 현실에 맞춰 지속 개발ㆍ적용하고, 개발재원과 지원수단 다변화 ㅇ 성과와 현장 중심의 ODA 사업평가 및 평가결과의 환류 강화 |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유독 한국의 개발경험을 전수하는 ‘한국형 모델’을 강조해왔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기획재정부가 실시하는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KSP: Knowledge Sharing Program)’과 외교부, 행정자치부, 농림부, 경상북도 등이 실시하는 ‘새마을운동 ODA(이하 새마을 ODA)’가 있다. 특히 새마을 ODA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기관에서 추진됐지만, 2015년 예산이 총 547억 원으로 2011년(253억 원)에 비해 4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하는 등 박근혜 정부 이후 규모가 크게 확대되어 가히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개발협력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표 4> 새마을운동 ODA 추진기관별 예산추이(2011-2015)
*출처: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2016.04), 국무조정실
지난해 4월, 정부는 새마을 ODA에 대해 명확한 개념이 없었고, 전략적 접근이 부족하며 부처별 연계 없이 분산적으로 추진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을 수립하고, 5대 중점과제를 새롭게 제시했다. 하지만 2011년에 이미 ‘새마을운동 ODA TF’를 구성하고 기관별 사업 연계로 통합형 개발협력모델 구축을 목표로 하는 「새마을운동 ODA사업 기본계획」을 마련했고, 2014년에는 개별 부처 및 지자체의 새마을 ODA 사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지구촌 새마을운동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5년간 2,000억 원 가량이 투입된 새마을 ODA의 명확한 개념조차 수립되지 않았고, 비슷한 과제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은 과연 그간의 사업이 제대로 추진된 것인지 반문하게 한다.
새마을 ODA 사업 자체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농촌의 빈곤퇴치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박정희 정권의 독재 유지를 위한 국가주도의 운동이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새마을운동을 한국의 대표적인 개발모델로 정립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제기부터 기존 농촌개발사업과 새마을 ODA 사업이 차별점이 있는지 등 여러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에서 현장사업 수행자들의 농촌개발 관련 전문성 부족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데, 발전대안 피다가 지난해 르완다에서 새마을세계화재단의 새마을 ODA 사업현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전문성이 부족한 단원들에게 사업 기획 및 예산 편성에 대한 권한이 주어져 효율적인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ODA’와 같이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정권의 목적에 따라 무리하게 확대되는 브랜드 사업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점이다. 차기 정권에서 ‘새마을 ODA’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여섯째, 일자리 대책으로 둔갑한 개발협력 인재 양성
▶ 개발협력 글로벌 인재 양성을 통한 해외진출 지원 ㅇ 해외봉사단ㆍODA 청년인턴 사업ㆍ주니어 컨설턴트 제도 등을 활성화하고, 맞춤형 ODA 교육 확대 |
박근혜 정부는 청년층의 해외진출을 강조하면서 각 부처에서 추진되던 청년 해외진출 프로그램을 통합한 브랜드로 2015년 ‘K-Move’를 출범하고, 2017년까지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두 배로 증가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코이카의 해외봉사단, 행정안전부의 IT 봉사단,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생 봉사단, 지식경제부의 퇴직전문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세계태권도평화봉사단 등 각 부처의 해외봉사단을 통합한 브랜드인 ‘World Friends Korea’도 ‘K-Move’의 일환으로 소개되고 있다. 해외봉사단 사업이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부처의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은 비단 청년층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프로그램에 따라 활동기간 및 지원항목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1-2년의 한정된 기간에 급여가 아닌 소정의 생활비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평소 해외봉사활동에 관심이 있거나, 국제개발협력에 진로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활동이지 이들을 ‘취업자’로 보기는 어렵다.
또, 코이카가기관의 해외사무소나 사업수행기관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ODA 청년인턴’ 제도 역시 최저임금 수준의 월 급여를 지원하기는 하나, 고용기간이 6개월에서 최대 1년이고 중복지원이 되지 않는 데다 인턴 종료 이후 기관 자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지 않아 사실상 일회성 제도이다. 물론 인력을 채용하기 쉽지 않은 소규모 기관이나 개발협력 분야의 구직자들에게는 단기적으로는 유용할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해 내는 것이다. 지난 2011년부터 시행한 ODA 청년인턴의 예산은 68억에서 2017년 107억 원으로 매년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청년층 취업률은 증가시킬지언정 개발협력 분야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해외봉사단, 인턴 제도 등이 모두 일자리 정책으로만 소비되면서 개발협력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려는 방안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일곱째, 이행 준비가 덜 된 ‘지속가능발전목표’
▶ 능동적 경제외교를 통해 글로벌 경제문제 해결에 적극 기여 ㅇ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설정에 선도적으로 참여하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등 관련 국제기구와 협력 강화 |
2015년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기한이 만료되면서 경제, 사회, 환경 등 더 폭넓은 영역을 포괄하는 17개 목표의 지속가능발전목표(이하 SDGs)가 채택되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SDGs에 대한 글로벌 수준의 이행점검 회의인 고위급정치포럼(HLPF: High Level Political Forum)에서 총 22개 국가가 자국의 SDGs 이행현황과 과제에 대해 발표하는 ‘국별 자발적 평가(VNR: Voluntary National Review)’에 참여했다. 한국이 SDGs 이행에 책임감을 갖고 국별 자발적 평가에 참여한 것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적으로는 제3차 지속가능발전계획과 3개년 경제혁신 계획, 녹색성장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는 개발협력 구상 등을 통해 SDGs를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단순히 기존 정책을 SDGs에 끼워 맞춘 것이다. 또, 한국은 기존 지속가능발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환경부 산하에 소속되어 있어 경제, 사회, 환경 등 SDGs의 총체적인 측면을 포괄하기 어렵다. SDGs 이행과 관련된 다양한 부처 간의 입장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이행체계를 마련해야 하지만, 정부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ODA를 통한 SDGs의 국제적 이행에서도 아직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수립하지 못했다. 2차 기본계획에서는 SDGs 이행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종합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이행 2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중점 이행분야를 담은 ‘개발협력 구상’ 외에 종합전략은 별도로 수립되지 못했다. SDGs 이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추진체계 정비와 이행전략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근간을 뒤흔든 최순실 표 ODA, ‘코리아에이드’와 ‘K타운’
지난해 10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기념 ODA 사업인 ‘코리아에이드’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 개발협력계는 발칵 뒤집혔다. 사업 방향 및 효과성으로 비판받던 코리아에이드 사업이 순식간에 비선실세의 이권 개입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최순실은 미르재단, 플레이그라운드, K스포츠재단 등을 코리아에이드 출범식 및 사업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했고, 특히 미르재단은 코리아에이드 기획과정에서부터 주도적으로 개입했다. 국정감사 등을 계기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면서 국회 예산심사에서 올해 예산이 일부 삭감되었지만, 코리아에이드는 6개국에서 101억 원의 규모로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 1월 말에는 최씨가 ODA 자금으로 미얀마에 컨벤션센터를 건립하는 ‘K타운’ 사업 추진과정에서 특정 기업의 참여를 약속하고 지분을 받은 혐의가 추가로 밝혀졌다. 이로써 한국 ODA가 한 개인의 사익을 위해 휘둘린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 개발협력의 구조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집약된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40여 개에 달하는 여러 기관의 사업들이 분절적으로 시행되다 보니 감시가 소홀하고, 기획-실행-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데다 국익을 명분으로 민간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씨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ODA를 좌지우지한 것은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박근혜 정부가 초래한 한국 개발협력의 퇴보라고 할 수 있다. ‘개발협력 4대 구상 마스터플랜’ 등 두 사업 외에 추가로 제기된 개입 의혹을 낱낱이 조사하고, 이미 개입이 확인된 코리아에이드는 명칭 및 기존 사업계획을 폐기해 사업을 전면 폐지하는 방식으로 최순실 표 ODA를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한국 개발협력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의 개발협력이 OECD DAC 가입,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제정,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 수립 등으로 공여국으로서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SDGs 채택으로 국제사회의 환경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 가야 할 시기였다. 이전 정부가 처음이라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현 정부는 그 점을 교훈 삼아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개발협력 분야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8개의 세부 추진계획을 돌아본 결과, 1차 중점협력국에 이은 2차 중점협력국 선정과정과, 선진화 방안에 이은 2차 기본계획까지 여전히 같은 잘못을 답습하고 있다. 또, 이명박 정부가 ‘녹색 ODA’와 ‘자원외교’를 남겼다면, 박근혜 정부는 ‘새마을 ODA’와 ‘코리아에이드’를 남겼다. 이렇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업적이 아닌 과오가 쌓여가면서 한국 개발협력은 날로 퇴보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이번 최순실 ODA 이권개입 사태는 지금까지 쌓아 온 한국 개발협력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아직 시기도 알 수 없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하게 될 차기 정권은 과연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국제개발협력 전반을 재점검하는 작업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빨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일 수 있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2-28
작성: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
[1] [OWL 111호] 한국 ODA 양적 성장목표 결국 이루지 못하다 -OECD DAC 2015년 잠정통계 결과분석-
http://www.odawatch.net/469690
'새마을 ODA'에서 '코리아에이드'까지
박근혜 정부 개발협력의 퇴보
박근혜 정부 출범 4주년을 맞은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는 100만 명의 시민들이 탄핵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촛불집회가 해를 넘겨 17번째 계속되는 가운데, 시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뜨겁다. 한편, 국정농단 사태와 함께 부각된 ‘코리아에이드’로 논란이 끊이지 않던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지난해 코리아에이드 예산 부분삭감 결정이 나면서 어느 정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러나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인 1월 30일, 미얀마 ODA 사업에서 이권을 챙긴 ‘알선수재’ 혐의로 특검이 최순실 씨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일명 ‘미얀마 K타운’ 사태를 기점으로 논란은 다시 재점화됐다. 이후 지난 2월 한 달간 거의 유례없이 ODA가 메인뉴스에 오르내리면서 한국 개발협력은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 비단 K타운, 코리아에이드만이 아니라 분절화, 투명성 등 한국 개발협력의 구조적인 문제들에서부터 개별 사업의 효과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점과 평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현 사태 자체의 문제점만큼이나 사태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 즉 한국 ODA가 최순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ODA 감시활동을 이어 온 발전대안 피다도 논평과 성명서, 정부 질의서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알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일회적인 비난으로만 그친다면, 모든 것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바꾸어내지 못할 수 있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주요 정책과 방향, 체계 등을 포함해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의 개발협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발표한 140개 국정과제 중 개발협력과 관련된 2개 과제 및 7개 세부 추진계획을 중심으로 한국 개발협력에 어떠한 진전과 한계가 있었는지 평가해보고자 한다.
박근혜 정부의 개발협력 국정과제, 과연 제대로 추진되었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중 개발협력과 관련된 과제는 크게 ‘ODA 지속확대 및 모범적·통합적 개발협력 추진’과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세계 평화와 발전에 기여’의 두 가지이다(표 1 참조). 일부 다른 과제에 과학 ODA, 문화 ODA, 관광 ODA 등도 명시되어 있지만, 상위 목표가 해당 분야에 한정되어 있어 여기서는 직접 개발협력과 연관된 위의 두 가지 국정과제 및 각 과제의 하위 추진계획으로 포함된 7개 항목에 한해 살펴볼 것이다.
<표 1> 박근혜 정부의 개발협력 관련 국정과제 목록
*출처: 박근혜정부 국정과제(2013~2017) /2016.4 관계부처 합동
첫째, ODA 규모 공약 달성의 예견된 실패
▶ ODA/GNI 비율을 국제사회 수준에 맞춰 지속 확대
ㅇ ’15년까지 ODA/GNI 비율 0.25%를 목표로 추진하고, Post-MDGs 논의동향 및 국내외 경제여건 등을 고려하여 추후 검토
한국이 ODA 규모와 관련해 처음 목표를 제시한 것은 이명박 정부 당시 ‘중기 ODA 확대 계획(2008)’에서였다. 경제규모 대비 원조수준을 나타내는 국민총소득(이하 GNI) 대비 ODA 비율을 2015년까지 0.25%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2011년 수립한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에서 연도별 목표치로 구체화하였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HLF4) 연설에서 이를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 공약을 그대로 국정과제에 포함했지만, 달성기한인 2015년 기준 ODA/GNI 비율은 0.14%로 결과적으로는 목표치의 절반을 겨우 넘기는 데 그쳤다.
물론 한국 ODA가 급격한 양적 증가로 질적 수준을 담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조건 규모를 키우는 것만이 바람직하지는 않고, 현재의 경제상황에서 0.25% 달성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수치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충분한 검토 없이 전 정부의 공약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는 데 있다. 2006년부터 10년간 한국 ODA 규모는 약 15억 3천만 달러가 증가해 네 배 이상 커졌고, 매년 평균 17.9%의 증가세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2012년 ODA 증가율이 21.43%, ODA/GNI 비율이 0.14%인 것에 반해 박근혜 정부 이후인 2013년 증가율은 5.90%, ODA/GNI 0.13%로 출범 첫해인 2013년을 기점으로 증가세가 크게 꺾인다. 2006년-2012년의 평균 증가율이 24.4%인데 반해 박근혜 정부 이후인 2013년-2015년의 평균 증가율은 5.12%로 오히려 대폭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1] 이러한 수치로 볼 때, 한국은 그간 구체적인 실현계획 없이 국제사회에 허울 좋은 공약만을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표 2> 연도별 총 ODA 규모추이(2011-2015)
*출처: OECD DAC 통계자료 바탕으로 재구성
결국,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수립한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16-2020)」에서 ODA/GNI 비율을 2016년 이후 매년 0.01%씩 증가하여 2020년까지 0.20%를 달성하는 것으로 목표를 하향조정했다. 현재 UN 권고치는 0.7%이고 2015년 기준 OECD 개발원조위원회(이하 DAC) 28개 회원국(EU 제외) 평균이 0.30%이며 한국이 23위로 경제규모에 비해 하위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0.20%도 결코 높은 수치는 아니다. 2015년 실시한 OECD DAC 중기검토 결과문서에서도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기준인 ODA/GNI 0.7%를 달성할 수 있도록 현실적이지만 좀 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 수차례 공개적으로 선언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고, 공약 미이행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2차 기본계획에 명시된 연도별 목표치를 달성해 나가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졸속으로 채택된 부실한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16-2020)」
▶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16~’20)」 수립
ㅇ 그간의 ODA 기본계획(‘11~’15) 추진성과를 평가하고, ‘16년 이후 ODA 규모 등을 포함한 제2차 ODA 기본계획 수립
한국 정부는 2010년 제정한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따라 2011년 첫 번째 중장기 정책으로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2011-2015)」을 발표했다. 당시에도 내용상으로는 대외원조의 ‘한국화’ 방안이라는 지적과 함께 절차적으로도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와의 심도 있는 토론과정이 부재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선진화 방안에 이은 두 번째 정책인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16-2020)」의 수립과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2차 기본계획의 방향과 내용을 이미 설정한 상태에서 국제개발협력 실무위원회 통과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시민사회와 형식적인 간담회를 진행했다.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을 중심으로 한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간담회 전인 9월 기본계획 수립에 대한 10대 제언을 전달하고, 실무위 통과 이후에도 2차 기본계획의 졸속 채택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1월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통해 최종 의결됐다. 향후 5년간 한국 국제개발협력 정책의 근간이 될 기본계획이 또다시 급속하게 추진된 것이다.
이렇게 졸속으로 채택된 2차 기본계획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아쉬운 지점이 많다. 시민사회에 처음 공개된 기본계획(안)에서는 “글로벌 리더 국가로 도약”이 가장 상위의 비전으로 명시되어 있었으나, 이것은 기대효과이지 그 자체로 비전이 될 수 없다는 시민사회의 지적에 따라 최종적으로는 “인류의 공동번영과 세계평화에 기여”로 수정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ODA 규모도 이전 목표보다 퇴보했으며, ODA의 질적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유무상 분절화 극복, 중점협력국 제도 내실화, ODA 콘텐츠 정비 등 한국 개발협력의 고질적인 과제들도 기존 정책을 일부 개선하는 정도에 그쳐 2차 기본계획이 선진화 방안에 대한 충분한 평가를 토대로 수립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또한, NGO 사업 지원예산을 10배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분명하게 명시한 선진화 방안과는 달리 2차 기본계획에서는 시민사회 파트너십 확대를 위한 어떠한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2015년부터 시민사회 대상 민관협력사업 예산이 정부 출연금에서 민간 경상보조금으로 전환되면서 과도한 행정절차와 규제로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셋째,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조정기능 한계 및 미흡한 운영체계
▶ ODA 통합추진 및 협업체계 공고화
ㅇ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총괄ㆍ조정기능 강화 및 유ㆍ무상 관계기관 협의회를 통한 연계ㆍ협력 강화
ㅇ 관계기관간 참여ㆍ협력 촉진 등 협업 이행기반 강화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분절화’다. OECD DAC 28개 회원국 중 23개국은 외교부가 전담하거나 주도하고, 2개국은 독립부처가 주관하는 등 특정 부처 및 기관이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체계가 대다수인데 반해 한국은 외교부가 무상원조, 기획재정부가 유상원조를 주관하는 이원화된 구조이다. 2017년 현재 지자체 9개를 포함하여 총 42개 기관이 1,243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특히 기획재정부가 전담하는 유상원조와 달리 무상원조의 경우 40여 개가 넘는 기관이 시행해 사업 중복, 거래비용 증가 및 ODA 효율성 저해 등의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분절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추진해왔지만, 실질적인 통합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 2013년부터 무상원조관계기관협의회를 개최해 매년 무상원조 사업 간의 유사·중복 사례를 조정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이나, 기초 단계에서만 간략히 검토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분절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 부족하다. 국제개발협력 주요 정책 및 계획을 심의·의결하고 40여 개가 넘는 시행기관 간의 조정을 위해 지난 2006년 국무조정실 산하에 설치한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이하 국개위)’ 역시 실질적인 조정 역할에 한계가 있다. 25명 이내의 주요 행정기관 및 관계기관의 장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어 안건을 상세히 심의하기 어려운 데다 형식적인 의결절차에 불과하다. 실제로 2015년 총 4회의 국개위 중 2회, 2016년 총 5회의 국개위 중 3회를 서면심의로 대체했고, 매년 추진방향과 주요 과제를 담은 종합시행계획을 비롯하여 ‘중점협력국 재조정(안)’, ‘중점협력국 대상 국가협력전략(CPS)’,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 ‘개발금융의 ODA 확산방안’ 등 중요하고 민감한 안건을 대면논의 없이 통과시켰다. 국개위를 설립하고 운영한 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 국개위의 실질적인 기능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유·무상 통합, 무상원조 통합 등 추진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여전히 베일에 싸인 중점협력국 선정과 국가협력전략(CPS) 수립
▶ 중점협력국 조정 및 국가협력전략 수립ㆍ개선
ㅇ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점협력국 조정
ㅇ 중점협력국에 대한 국가협력전략(CPS) 수립 및 개선
중점협력국은 유·무상을 통틀어 전체 ODA 예산의 70% 이상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국가로, 지난 2010년 처음으로 26개국을 중점협력국으로 선정했다. 감사원은 1차 중점협력국에 대해 국민소득이 높고 외채 감축 정책을 추진하는 페루 등 3개국과 내전으로 기업 진출이 어려운 콩고 등 2개국을 포함해 총 26개국 중 12개 국가를 부적절하게 선정했고, 네팔, 솔로몬군도, 동티모르 등 9개 중점협력국에 대한 지원이 미얀마 등 비중점협력국 보다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감사원 조사결과에 대한 개선조치 없이 2015년 ‘ODA 중점협력국 재조정(안)’을 다시 발표했다. 2차 중점협력국은 지난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상세한 선정기준 및 시민사회와 학계, 민간 전문가와의 간담회 없이 일방적으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OECD DAC 동료검토에서 제시된 중점협력국 축소 의견에도 불구하고 26개국에서 24개국으로 소폭 조정되었다. 또 24개국 중에는 앞서 감사원에서 지적했던 1차 중점협력국의 문제와 같이 페루, 콜롬비아, 아제르바이잔 등 1인당 GDP가 7-8천 불이 넘는 고중소득국가가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표 3> 2차 중점협력국 재조정 명단
*출처: 중점협력국 재조정(안), 국무조정실
중점협력국에 대한 지원규모, 중점분야 및 실행계획을 담은 국가협력전략(Country Partnership Strategy, 이하 CPS)의 경우, 1차 CPS가 수립 지연으로 2013년 8월에야 완료된 것과 달리 2차 CPS는 지난해 연말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2차 CPS 역시 수립과정을 둘러싼 잡음이 많았다. 일방적인 1차 CPS 수립에 대한 문제제기로 정부는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16-’20)」을 통해 2차 CPS 수립과정에서 산·관·학·연 작업반을 구성해 대내적 설득력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5년 4월부터 9월까지 운영된 CPS 작업반에 시민사회 참여는 보장되지 않았고, 국무조정실은 이미 9개국 CPS가 확정된 이후 나머지 15개국 CPS 초안이 작성된 상황에서 당일 자료제공을 조건으로 시민사회에 간담회를 제안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충분한 검토 및 실질적인 의견 전달을 위해 자료 사전제공을 요청하는 의견서를국무조정실에 전달했으나, 이에 대한 답변 없이 지난해 12월 제28차 국개위를 통해 나머지 15개국 CPS도 통과되었다. 이렇게 시민사회가 어떤 의견도 개진하지 못한 채 두 번째 중점협력국 선정과 CPS 수립은 정부의 독단적인 추진으로 결정됐다.
다섯째, 박근혜 정부의 대표 브랜드 ‘새마을운동 ODA’의 무분별한 확산
▶ 발전경험 활용 등을 통한 수원국 개발 효과성 제고
ㅇ 발전경험 중 비교우위가 있는 프로그램(예 : 새마을운동)을 수원국 현실에 맞춰 지속 개발ㆍ적용하고, 개발재원과 지원수단 다변화
ㅇ 성과와 현장 중심의 ODA 사업평가 및 평가결과의 환류 강화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유독 한국의 개발경험을 전수하는 ‘한국형 모델’을 강조해왔다.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기획재정부가 실시하는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KSP: Knowledge Sharing Program)’과 외교부, 행정자치부, 농림부, 경상북도 등이 실시하는 ‘새마을운동 ODA(이하 새마을 ODA)’가 있다. 특히 새마을 ODA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기관에서 추진됐지만, 2015년 예산이 총 547억 원으로 2011년(253억 원)에 비해 4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하는 등 박근혜 정부 이후 규모가 크게 확대되어 가히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개발협력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표 4> 새마을운동 ODA 추진기관별 예산추이(2011-2015)
*출처: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2016.04), 국무조정실
지난해 4월, 정부는 새마을 ODA에 대해 명확한 개념이 없었고, 전략적 접근이 부족하며 부처별 연계 없이 분산적으로 추진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을 수립하고, 5대 중점과제를 새롭게 제시했다. 하지만 2011년에 이미 ‘새마을운동 ODA TF’를 구성하고 기관별 사업 연계로 통합형 개발협력모델 구축을 목표로 하는 「새마을운동 ODA사업 기본계획」을 마련했고, 2014년에는 개별 부처 및 지자체의 새마을 ODA 사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지구촌 새마을운동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5년간 2,000억 원 가량이 투입된 새마을 ODA의 명확한 개념조차 수립되지 않았고, 비슷한 과제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은 과연 그간의 사업이 제대로 추진된 것인지 반문하게 한다.
새마을 ODA 사업 자체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농촌의 빈곤퇴치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박정희 정권의 독재 유지를 위한 국가주도의 운동이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새마을운동을 한국의 대표적인 개발모델로 정립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제기부터 기존 농촌개발사업과 새마을 ODA 사업이 차별점이 있는지 등 여러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새마을운동의 국제적 확산방안」에서 현장사업 수행자들의 농촌개발 관련 전문성 부족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데, 발전대안 피다가 지난해 르완다에서 새마을세계화재단의 새마을 ODA 사업현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전문성이 부족한 단원들에게 사업 기획 및 예산 편성에 대한 권한이 주어져 효율적인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ODA’와 같이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정권의 목적에 따라 무리하게 확대되는 브랜드 사업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점이다. 차기 정권에서 ‘새마을 ODA’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여섯째, 일자리 대책으로 둔갑한 개발협력 인재 양성
▶ 개발협력 글로벌 인재 양성을 통한 해외진출 지원
ㅇ 해외봉사단ㆍODA 청년인턴 사업ㆍ주니어 컨설턴트 제도 등을 활성화하고, 맞춤형 ODA 교육 확대
박근혜 정부는 청년층의 해외진출을 강조하면서 각 부처에서 추진되던 청년 해외진출 프로그램을 통합한 브랜드로 2015년 ‘K-Move’를 출범하고, 2017년까지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두 배로 증가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코이카의 해외봉사단, 행정안전부의 IT 봉사단,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생 봉사단, 지식경제부의 퇴직전문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세계태권도평화봉사단 등 각 부처의 해외봉사단을 통합한 브랜드인 ‘World Friends Korea’도 ‘K-Move’의 일환으로 소개되고 있다. 해외봉사단 사업이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 부처의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은 비단 청년층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프로그램에 따라 활동기간 및 지원항목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1-2년의 한정된 기간에 급여가 아닌 소정의 생활비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평소 해외봉사활동에 관심이 있거나, 국제개발협력에 진로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활동이지 이들을 ‘취업자’로 보기는 어렵다.
또, 코이카가기관의 해외사무소나 사업수행기관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ODA 청년인턴’ 제도 역시 최저임금 수준의 월 급여를 지원하기는 하나, 고용기간이 6개월에서 최대 1년이고 중복지원이 되지 않는 데다 인턴 종료 이후 기관 자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지 않아 사실상 일회성 제도이다. 물론 인력을 채용하기 쉽지 않은 소규모 기관이나 개발협력 분야의 구직자들에게는 단기적으로는 유용할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해 내는 것이다. 지난 2011년부터 시행한 ODA 청년인턴의 예산은 68억에서 2017년 107억 원으로 매년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청년층 취업률은 증가시킬지언정 개발협력 분야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해외봉사단, 인턴 제도 등이 모두 일자리 정책으로만 소비되면서 개발협력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려는 방안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일곱째, 이행 준비가 덜 된 ‘지속가능발전목표’
▶ 능동적 경제외교를 통해 글로벌 경제문제 해결에 적극 기여
ㅇ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설정에 선도적으로 참여하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등 관련 국제기구와 협력 강화
2015년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기한이 만료되면서 경제, 사회, 환경 등 더 폭넓은 영역을 포괄하는 17개 목표의 지속가능발전목표(이하 SDGs)가 채택되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SDGs에 대한 글로벌 수준의 이행점검 회의인 고위급정치포럼(HLPF: High Level Political Forum)에서 총 22개 국가가 자국의 SDGs 이행현황과 과제에 대해 발표하는 ‘국별 자발적 평가(VNR: Voluntary National Review)’에 참여했다. 한국이 SDGs 이행에 책임감을 갖고 국별 자발적 평가에 참여한 것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적으로는 제3차 지속가능발전계획과 3개년 경제혁신 계획, 녹색성장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는 개발협력 구상 등을 통해 SDGs를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단순히 기존 정책을 SDGs에 끼워 맞춘 것이다. 또, 한국은 기존 지속가능발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환경부 산하에 소속되어 있어 경제, 사회, 환경 등 SDGs의 총체적인 측면을 포괄하기 어렵다. SDGs 이행과 관련된 다양한 부처 간의 입장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이행체계를 마련해야 하지만, 정부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ODA를 통한 SDGs의 국제적 이행에서도 아직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수립하지 못했다. 2차 기본계획에서는 SDGs 이행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종합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이행 2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중점 이행분야를 담은 ‘개발협력 구상’ 외에 종합전략은 별도로 수립되지 못했다. SDGs 이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추진체계 정비와 이행전략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근간을 뒤흔든 최순실 표 ODA, ‘코리아에이드’와 ‘K타운’
지난해 10월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기념 ODA 사업인 ‘코리아에이드’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 개발협력계는 발칵 뒤집혔다. 사업 방향 및 효과성으로 비판받던 코리아에이드 사업이 순식간에 비선실세의 이권 개입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최순실은 미르재단, 플레이그라운드, K스포츠재단 등을 코리아에이드 출범식 및 사업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했고, 특히 미르재단은 코리아에이드 기획과정에서부터 주도적으로 개입했다. 국정감사 등을 계기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면서 국회 예산심사에서 올해 예산이 일부 삭감되었지만, 코리아에이드는 6개국에서 101억 원의 규모로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 1월 말에는 최씨가 ODA 자금으로 미얀마에 컨벤션센터를 건립하는 ‘K타운’ 사업 추진과정에서 특정 기업의 참여를 약속하고 지분을 받은 혐의가 추가로 밝혀졌다. 이로써 한국 ODA가 한 개인의 사익을 위해 휘둘린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 개발협력의 구조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집약된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40여 개에 달하는 여러 기관의 사업들이 분절적으로 시행되다 보니 감시가 소홀하고, 기획-실행-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데다 국익을 명분으로 민간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씨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ODA를 좌지우지한 것은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박근혜 정부가 초래한 한국 개발협력의 퇴보라고 할 수 있다. ‘개발협력 4대 구상 마스터플랜’ 등 두 사업 외에 추가로 제기된 개입 의혹을 낱낱이 조사하고, 이미 개입이 확인된 코리아에이드는 명칭 및 기존 사업계획을 폐기해 사업을 전면 폐지하는 방식으로 최순실 표 ODA를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한국 개발협력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의 개발협력이 OECD DAC 가입,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제정,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 수립 등으로 공여국으로서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SDGs 채택으로 국제사회의 환경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제2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 가야 할 시기였다. 이전 정부가 처음이라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현 정부는 그 점을 교훈 삼아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개발협력 분야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8개의 세부 추진계획을 돌아본 결과, 1차 중점협력국에 이은 2차 중점협력국 선정과정과, 선진화 방안에 이은 2차 기본계획까지 여전히 같은 잘못을 답습하고 있다. 또, 이명박 정부가 ‘녹색 ODA’와 ‘자원외교’를 남겼다면, 박근혜 정부는 ‘새마을 ODA’와 ‘코리아에이드’를 남겼다. 이렇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업적이 아닌 과오가 쌓여가면서 한국 개발협력은 날로 퇴보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이번 최순실 ODA 이권개입 사태는 지금까지 쌓아 온 한국 개발협력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아직 시기도 알 수 없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하게 될 차기 정권은 과연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국제개발협력 전반을 재점검하는 작업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빨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일 수 있다.
기사 입력 일자: 2017-02-28
작성: 이유정 발전대안 피다 간사 / daralee0123@gmail.com
[1] [OWL 111호] 한국 ODA 양적 성장목표 결국 이루지 못하다 -OECD DAC 2015년 잠정통계 결과분석-
http://www.odawatch.net/469690